‘안철수 제물삼아 발뺌’…박지원 겨냥하는 검찰의 서바이벌 게임
정치꼼수 9단 박지원이 이번 수사의 종착역
이번에도 빗겨갈 수 있을까?
문준용씨 채용의혹 조작 제보 사건의 핵심인물인 이준서 국민의당 전 최고위원이 본국 시간으로 7월 12일 새벽 구속됐다. 이 전 최고위원을 대선 제보 조작 과정의 ‘공범’으로 적시한 구속영장이 발부됨에 따라 검찰 수사는 국민의당 지도부를 향해 속도를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지난 대선 때 이 전 최고위원으로부터 조작된 파일을 받아 폭로에 앞장선 국민의당 공명선거추진단 관계자들과 그 ‘윗선’에 대한 수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국민의당은 구속영장 발부에도 불구, 이유미 당원의 ‘단독범행’이라는 당 자체 진상조사단의 결론이 뒤집힌 것은 아니라며 ‘지도부 연루설’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검찰 수사는 간단히 끝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검찰은 이유미, 이준서를 넘어 국민의당 최고위층을 정면 겨냥하고 있다. 검찰과 정치권에서는 지난 대선 당시 당 대표를 맡았던 박지원 전 대표가 결국 검찰 수사의 종착점이 될 것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검찰과 박지원 전 대표 간 악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검찰은 지난 몇 년 간 박지원이란 이름 석 자만 나오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지만, 박 전 대표는 번번이 그 칼날을 빗겨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 칼날을 버텨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국민의당은 이번 사건에 대해 초반부터 이유미씨의 단독범행이라고 강조하면서 이 전 최고위원도 ‘당한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자체 진상조사 결과에서도 이 전 최고위원이 이씨의 증거조작 사실을 사전에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은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해 ‘미필적 고의’를 들어 범죄 가능성을 알고도 이를 방조한 혐의를 중하게 보고,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법원도 “범죄사실이 소명되고 증거인멸 및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따라 ‘이유미 단독범행’을 주장하던 국민의당은 법적으로 할 말이 없게 됐다.
이 전 최고위원 구속은 곧 검찰 수사가 당 최고위층을 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상황으로 보면 검찰의 최종 타깃은 박지원 전 대표일 가능성이 높다. 박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당 대표와 동시에 선대위원장을 맡으며 선거를 진두지휘했다. 또한 박 전 대표는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 통화한 사실도 이미 확인됐다. 이런 모든 정황은 검찰 수사가 박 전 대표를 향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앞서 박 전 대표는 국민의당 진상조사에서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 통화한 사실이 확인되자 지난 5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 전 최고위원이 5월 1일 오후 4시31분 제게 전화해 36초간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통화 내용에 대해 그는 이 전 최고위원이 당 진상조사단과의 면담에서 “박 전 대표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바이버로 보낸 것을 확인해달라고 말씀드리니 알았다고 해 다른 이야기 없이 통화를 마쳤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바이버라는 메신저가 복구가 불가능한 메신저라는 점을 감안할 때, 뭔가 비밀스러운 얘기가 오갔음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즉 메신저를 통해 무언가를 주고받고, 통화에서는 이를 컨펌했을 수 있다는 의미다.
박지원과 검찰 질긴 악연
검찰은 이번만큼은 박 전 대표를 반드시 잡아넣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검찰과 박 전 대표 간 오랜 인연은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유명한 이야기다.
박 전 대표은 지난 2003년 대북 송금 특검으로 체포된 이래 현대그룹에서 150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았다. 이어 청와대 비서실장 재직 당시 SK그룹과 금호그룹에서 불법 자금을 받아 지난 2006년 5월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교도소에서 복수의 칼날을 갈던 박 전 대표는 채 1년도 지나지 않아 특별사면·복권되었고 18대 총선을 통해 국회로 돌아왔다.
이후 박 전 대표는 벼르고 있었던 듯 법제사법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검찰 저격수’를 자청했다. 지난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를 낙마시켰고 국정감사 등에서 검찰을 공격했다. 지난 2011년에는 국회 전체회의에서 당시 이귀남 법무부 장관에게 “왜 박지원 관련된 사람만 수사하느냐, 장관도 박지원이를 병신으로 보고 있다는 거냐”며 “그런 짓을 하니까 중수부를 폐지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에 앞장선 박 전 대표에 대해 일각에서는 “사감을 앞세워 활동한다”는 후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표는 저축은행 비리 관련하여 알선수재 혐의를 받게 되었고 이에 박 전 대표는 지난 2013년 8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하여 제3조(알선수재) 항목의 개정을 시도했다. 당시 박 전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은 현행법상 알선수재는 금품·이익을 수수한 자만 처벌하는데 비해 공여한 자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부분을 보완하여 ‘주고 받은’ 양자를 처벌하는 내용이다.
결국 박 전 대표는 파기환송심까지 가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당시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박 전 대표가 2010년 6월 오문철 전 보해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수사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 오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검찰은 박 전 대표가 2008년 3월 임석 전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에게서 2000만원(정치자금법 위반), 2010년 6월 오씨로부터 수사 청탁과 함께 3000만원, 2011년 3월 임건우 전 보해양조 회장 등에게서 3000만원(이상 특가법 알선수재) 등 모두 8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2012년 9월 기소됐다. 1심은 공여자 진술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세 가지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지만, 2심은 오 씨에게 돈을 받은 공소사실은 유죄로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오씨의 진술은 믿을만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오씨의 진술 자체에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내려보냈다. 박 전 대표는 당시 선고 직후 “검찰이 무리하게 조작해서 정치인의 생명을 끊어버리려는 것이 오늘로서 마지막이 되기를 바란다”며 “지금까지 아홉 번의 크고 작은 사건 속에서 검찰의 혹독한 검증을 받았고 그때마다 살아서 돌아왔다”고 운을 뗐다. 이어 “4년 전 검찰청사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을 때 누구도 저의 결백을 믿지 않았지만 오늘부로 끝났다”며 “검찰과의 길고 긴 끈질긴 악연을 이제 끝내고 싶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총선거 출마를 앞두고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통해 기사회생한 박 의원은 지난 4월 20대 총선에서 당선돼 ‘불사조’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박지원은 안철수 뒤에 숨어
이런 악연 때문에 검찰은 박 전 대표가 다시 수사선상에 오르기를 오매물망 기다렸고, 때마침 현직 대통령 아들의 제보 조작 사건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는 이번에도 본인과의 연루설에 선을 그은 채 안철수 전 대표를 방패삼아 숨는 모양새다. 안 전 대표는 본국시간으로 7월 12일 오후 사과 기자회견을 했는데, 박 전 대표는 안 전 대표의 사과가 시기적절했다는 말만 하면서 정작 본인의 책임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추미애 대표는 지난 10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국민의당은 이유미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은 박지원 전 대표의 발언으로 증명할 수 있다”며 박 전 대표를 정조준했다. 그는 박 전 대표가 지난 4월 1일 언론에 “3월 31일 저녁 문재인 후보 아들 특채의혹을 보고받았는데 당의 별도 팀에서 조사하고 있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이는 이유미 단독범행이 아니라는 것을 일찍이 밝히고 있는 것이며, 이전부터 상당히 준비했다는 것을 간접 시사한 것”이라고 몰아 세웠다.
국민의당이 5월 5일 제보조작을 공식 발표할 때 까지 상당한 내부 조율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추 대표는 “박 전 대표가 5월 1일 이준서 전 최고위원과 36초 통화했다”며 이 정도 시간이면 최종 컨펌(승인)하는 시간으로 충분하다며 박 전 대표의 직접 개입 가능성을 거론했다. 추 대표는 이에 더해 “김대중(DJ) 전 대통령으로부터 정치를 배웠다는 박 전 대표에게 양심에 따른 행동과 정치에 대한 책임을 촉구한다”고 박 전 대표를 자극했다.
이에 박지원 전 대표도 “지금은 취업비리 의혹이라는 ‘본질’은 간 데 없고 ‘조작의혹’만 남았다”고 강조했다. 또 추 대표가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며 “이래서야 어떻게 검찰개혁과 검찰 독립이 가능하겠는가”라며 비판했다. 36초 간 통화 논란에 관해서도 “(사건 일정상) 시간적으로 맞지 않다”며 일축했다. 특히 “국민의당은 검찰 수사에 충분히 협력했다”며 국민의당 수뇌부의 조작 연루 가능성을 배제했다. 오랜 야당 시절 옛 동지에서 이제는 여와 야로 나뉘어져 넘어설 수 없는 강을 건넌 듯한 두 사람. 이들이 협치가 깨진 현 정치권에서 이번 사태를 어떻게 봉함해 갈 수 있을 지 주목된다. 당내 진상조사단에서는 일단 박 전 대표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했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도 여전히 이유미 씨와 이 전 최고위원을 도운 당내 조력자가 추가로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 남아있고 검찰은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고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