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달콤했고…지금은 뱉고 싶다’
MB가 쇠고랑 찰 수밖에 없는 이유들
국가정보원이 2012년에 치러진 대통령선거에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문재인 정부가 전면적 조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 간 국정원은 그야말로 3류 흥신소로 전락했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 정부 인사의 호텔방을 뒤지다 발각되는가 하면, 진보 시민단체 회원을 미행하다 들키기도 했다. 멀쩡한 공무원을 간첩으로 만들기도 하고, 언론의 주목을 받던 직원이 차 안에서 자살하는 일도 일어났다. 가장 믿을 수 없는 일은 조직적인 댓글부대를 운영하며 대통령 선거에 개입한 일이다. 이것도 국정원 적폐청산 TF 조사를 통해서 밝혀진 일이지만, 국정원 안팎에서는 국정원이 대선뿐만 아니라 각종 지방단위 선거에도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사건 중 어느 하나도 그 진실이 제대로 드러난 바 없다. <선데이저널>은 지난 9년 간 국정원에서 벌였던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꾸준히 지적해왔고, 최근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국정원 관련 사건은 대부분 이 범주에 들어가고 있다. 게다가 지난 정권에서 국정원을 정면겨냥하다 오히려 좌천된 윤석열 당시 국정원 댓글 수사 팀장이 현재 중앙지검장으로 재직 중이다. 이번 수사과 과거 수사와 다를 것이란 의미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이명박 정권의 의혹이 이 시점에 문제가 되는 것은 그동안 제대로 밝혀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은 국정농단 사건을 거치면서 사법적 심판을 받았고 의혹의 실체도 상당부분 드러난 상태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의 의혹은 설만 무성한 채 베일에 가려 있었다.
최근 한국의 정치권과 언론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명박 정권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수사를 했지만 의혹을 제대로 규명하지 못했다. 오히려 진실을 밝히려 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등이 찍혀나갔다. 국정원은 관련 기록을 삭제하며 자신의 치부를 숨겼다. 그러나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현재까지 밝혀낸 사실만 봐도 당시 검찰 수사 결과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사실상 국정원의 관리를 받는 한국 언론들도 국정원의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 잠시 취재하다 멈췄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지난 정부 국정원과 관련한 치부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각종 조사·수사 결과를 종합하면 이명박 정권 때 국정원은 대선에 개입했고, 박근혜 정권은 이에 대한 규명을 가로막았다. 두 정권의 권력형 비리가 이해관계로 물고 물린 셈이다. 두 정권이 ‘정권 후 면죄부’와 ‘정권 창출 수혜’를 주고받았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두 전직 대통령 간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박근혜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동일한 행태도 ‘봉인된 5년’의 원인으로 꼽힌다. 박근혜 정권 국정원도 보수단체를 동원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깔아놓은 정보기관의 정치개입 관행을 박근혜 정권이 이어받은 셈이다. 박근혜 정권이 이명박 정권 국정원의 정치개입을 파헤치는 건 ‘제 발등 찍기’가 되는 구도였다는 것이다.
MB 정권 의혹, 朴이 덮었다
이 시점에서 주목되는 것이 바로 <선데이저널>이 이미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간 대선 100일전 단독회동이다. 두 사람만 참석한 채 벌어진 이 독대가 있은 후 수상쩍은 일들이 벌어졌다. 급기야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여직원이 모처에서 댓글 작업을 하는 일이 발각됐고, 전직 대통령의 정상회담 대화록이 외부로 공개됐다. 이 대화록은 국가기록원에 봉인된 원본과 국정원이 가지고 있던 사본만 있었던 때다. 이런 의혹들이 과연 이번 정권에서 그 실체를 드러낼 수 있을지가 최대 관심사다.
이미 국정원은 ‘댓글 사건’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5월~2012년 12월 알파(α)팀 등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한 사실이 드러났다. 사이버 외곽팀의 운영 목적은 4대 포털(네이버·다음·네이트·야후)과 트위터에 친정부 성향의 글을 올려 국정 지지여론을 확대하고, 사이버공간의 정부 비판 글들을 ‘종북세력의 국정방해’ 책동으로 규정해 반정부 여론을 제압하는 것이었다고 TF는 밝혔다. 원 전 국정원장 취임 이후 심리전단은 2009년 5월 다음 포털 커뮤니티 ‘아고라’ 대응 외곽팀 9개팀을 신설하고 2009년 11월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지속적으로 확대, 2011년 1월에는 α팀 등 24개의 외곽팀을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어 2011년 8월에는 사이버 대응 업무 효율성 제고를 목적으로 24개 팀을 △아고라 담당 14개팀 △4대 포털 담당 10개팀으로 재편했다. 2011년 3월에는 트위터 외곽팀 4개를 신설했고, 2012년 4월에는 6개팀으로 확대해 운영했다. 이에 따라 2012년 4월 이후 국정원 심리전단의 외곽팀은 최대 30개로 늘어났다. 외곽팀은 대부분 별도 직업을 가진 예비역 군인·회사원·주부·학생·자영업자 등 보수·친여 성향 인물들이었으며 개인시간에 활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국정원은 댓글부대 운영을 위해 인건비만 매달 2억5000만~3억원을 썼으며 대선이 있었던 2012년에는 총 30억원을 지출했다고 한다. 정권 유지와 정권 재창출에 국정원이 이용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에 국민 세금이 사용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 국정원에서 일어난 일들을 의도적으로 덮었다. 이를 막기위해서는 검찰과 법원까지도 가리지 않고 막은 것으로 보인다. 본지가 국정원 사건의 키맨으로 꼽은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무죄가 난 것도 이와 연관이 깊어 보인다.
김용판이 키맨
뿐만 아니라 국정원이 2011년 청와대로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국정홍보에 활용하라는 지시를 받고 총선·대선에서 여당 후보 지원 방안을 마련해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점도 이번에 확인됐다. 국정원 예산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2040세대의 현 정부 불만 요인’ 등의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하고, 손학규·안철수·박원순·우상호 등 야당 인사들을 지속적으로 사찰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아직까지 본국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지만 국정원은 지난 정권 학원가에 대한 사찰까지 시도한 것으로 본지가 확인 보도한 바 있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 민간인 사찰보다 더욱 중대한 범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은 무소불위 권력으로 남아 있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진행된 검찰의 국정원 수사는 원세훈 전 원장 개인 비리에 초점이 맞춰졌고, 이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2013년 민주당이 원 전 원장을 고발하자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했다. 그러나 채동욱 당시 검찰총장은 혼외자 건으로 청와대에 의해 쫓겨났고, 윤석열 당시 수사팀장(현 서울중앙지검장)은 좌천됐다. 황교안 당시 법무장관은 원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반대하며 수사에 사사건건 훼방을 놓았다. 국정원의 적폐청산TF 조사로 국정원 정치 공작에 청와대 지시가 있었다는 점이 확인됐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은 사과나 반성 한마디 없다. 역시 BBK사건과 관련해서도 지금까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도 그가 감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이다.
국정원직원 임모씨 번개탄 자살사건 의혹 드러나나
‘국정원 직원 자살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자살 아닌 타살 확실시
국가정보원은 2015년 이탈리아 한 해킹 업체로부터 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프로그램을 구입한 국정원 직원이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경찰이 사건을 대충 마무리 했지만, 국정원 직원 임 모 씨의 죽음이야말로 미스터리의 결정판이다. 임씨는 유서에서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적법한 대북 정보수집’으로만 프로그램이 사용됐다면 임씨의 극단적 선택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언론이 집중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상황에서 업무 담당자로서 갖게 되는 ‘부담’만으로 임씨 자살을 설명하기도 애매한 부분이 많다. 조직이 나서서 사건의 파장을 최소화하는 상황에서 한 가정의 가장이 자살을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국정원은 임씨가 자살한 지 하루 만에 ‘동료 직원을 보내며’라는 직원일동 명의의 자료를 배포했다. 그런데 국정원은 이 자료에서 임씨의 유서내용을 임의로 해석했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습니다.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였습니다”라는 임씨 주장에 대해 국정원은 “책임을 자기가 안고 가겠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자살 동기에 대한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상황에서 국정원이 임의로 자살의 동기를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임씨가 숨지기 전 수일에 걸쳐 국정원 내부의 고강도 감찰을 받았고 숨진 당일에도 감찰이 예정됐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자살 동기에 대한 재수사 필요성마저 제기되는 상황이다.
임씨의 가족들이 불과 5시간 연락두절에 임씨를 실종신고 하고 경찰이 곧바로 수색에 나서 소방대원들이 1시간30분만에 임씨를 발견했다는 경찰 발표는 통상적인 실종사건의 수사속도에 비추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사건 직후 공개된 유서, 이어진 국정원의 대응, 경찰의 일사천리 수사는 임씨의 사망 경위에 대한 의혹을 부채질한 바 있다.
임씨가 자살 직전 관련 파일을 삭제한 사실도 의문을 키웠다. 임씨는 유서에서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지원했던 자료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업무에 대한 욕심으로 잘못된 판단을 했다는 것이지만 국정원에서 20년간 사이버안보분야 전문가로 일해온 요원이 실수로 파일을 삭제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 바 있다. 더욱이 자신의 본연의 업무로서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있는 대테러, 대북공작과 관련된 자료를 삭제했다는 주장은 의구심을 낳았다. 따라서 이 사건 역시 국정원 개혁을 위해 밝혀야 할 우선순위 사건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