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 기막힌 코드
‘박정희 등쌀에 망명 후 펄떡펄떡’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파리에서 실종된 지 38년이 흐른 가운데, 김전부장과 박정희 장기 집권 붕괴의 단초가 된 YH사건당시 YH의 장용호사장이 미국 조지아주 목장을 공동소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두 사람은 사돈을 맺으려 할 정도로 절친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정희 18년 장기집권의 종식시키는 도화선역할을 한 두 사람이 이토록 절친했다는 사실은 운명이라는 말로 밖에는 설명되지 않는다. 김형욱 실종 38년, 박정희시해 38년, 미국법원과 등기소 서류를 바탕으로 김형욱-장용호의 사이를 밝혀본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38년 전인 지난 1979년 10월 7일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에 대한 미국 뉴저지주 법원의 사망판결 뒤 1981년 10월 상속법원에 제출된 재산상속서류에 따르면 김형욱 명의의 유일한 부동산은 조지아주 월튼카운티의 9토지지구 내 406, 407, 422, 423 등 네 필지 땅의 지분 50% 였다. 이 4필지의 전체 면적은 320에이커(129만4994㎡·약 40만평)에 달하는 광활한 땅으로, 당시 카운티 정부의 평가가격은 에이커당 1260달러, 따라서 사망 당시 김형욱의 지분은 약 20만1600달러에 해당한다고 기재돼 있다. 그러나 본보가 실제 계약서 등을 확인한 결과 전체면적은 323에이커에 달했다.
323에이커 목장 절반씩 소유
월튼카운티는 농장과 목장이 많은 지역이며 이 부동산도 일부 기록에는 RANCH, 즉 목장으로 기재돼 있으나 목장으로 운영됐는지는 알 수 없다. 현 시세는 당시의 10배, 즉 에이커당 1만2천 달러정도로 김형욱이 323에이커의 절반을 갖고 있으므로 현재의 환율을 적용하면 재산가액은 21억 원 정도에 이른다.

▲ 장용호 YH무역 사장
그렇다면 과연 김형욱 외에 나머지 50%를 소유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바로 1979년 YH사건으로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장용호 YH무역 사장으로 밝혀졌다. 그 단서는 뉴저지주 법원에서 발견된 또 한 장의 서류에서 찾을 수 있었다.
김형욱의 고문변호사인 알란 D 싱거 변호사는 김형욱 재산을 정리하면서 1982년 9월 20일 조지아주 소재 부동산회사에 이 땅의 가치를 물었고 이 부동산회사는 같은 해 9월 29일 회신을 했다. 이 서류에 ‘월튼카운티 알렌디스트릭트 소재 김형욱과 장용호 소유의 부동산’이라고 명시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 알란 D 싱거변호사는 김형욱의 미국재산 관리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사실상 김 씨 집안의 집사역할을 한 사람으로, 김형욱의 프레이저 청문회 증언 당시 동행했던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이에 앞서 1982년 6월 17일에는 워싱턴 DC 소재 셔털랜드로펌도 김형욱 재산상속서류 작성을 담당한 ‘윌렌츠-골드만-스피쳐 법무법인’의 리차드 러트에게 편지를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 편지는 ‘김형욱의 상속자인 부인 김영순(한국명 신영순)씨가 김형욱 명의 조지아주 부동산의 지분 50%를 이전받는 방법’에 대해 조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단서를 바탕으로 부동산 소재지인 조지아주 월튼카운티 등기소를 온라인으로 조회한 결과 김형욱과 장용호가 40만평의 초지를 공동 명의로 소유했음이 명확히 입증됐다. 이 땅은 김형욱이 50%, 장용호 사장의 부인 장순경(한국명 김순경)씨와 딸 장은희씨가 각각 25%씩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고 김형욱 사망 뒤 김 씨 지분은 김영순씨에게 상속된 것으로 드러났다.
김형욱 실종 뒤 두 가족들 분할매각
김영순씨는 김형욱이 실종되자 이 땅을 상속받은 뒤 1984년부터 이 땅을 팔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씨와 장순경, 장은희 씨 등 소유주 3명은 1984년 7월 24일 장용호씨에게 이 땅 매도에 관한 전권을 위임한 서류가 발견된 것이다.
김씨는 뉴저지주 알파인에 살았고 여자의 몸으로 멀리 떨어진 남쪽 지방의 조지아주를 오가며 부동산을 정리하기에는 힘들었기에 장 씨에게 일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89년 매매계약이 취소되는 등 진통을 겪었고 취소서류에는 장 씨가 김영순씨를 비롯한 3명의 소유주를 대신해 서명했다.

▲ 김형욱 사망판결 뒤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상속법원에 제출된 재산상속서류. 서류 상단에 ‘김형욱의 재산’이라는 제목 하에 부동산 부분이라고 명시돼 있으며, 조지아주의 토지내역과 추정가치가 적혀 있다.
또 장용호씨가 1990년 월튼카운티의 바로 옆인 뉴튼카운티와 이 땅에 관한 측량 등의 문제로 주고받은 문서에는 김영순씨가 김형욱씨의 법적 상속인임이 명시돼 있다. 이 땅이 덩치가 커서 쉽게 팔리지 않자 현지인에게 빌려주는 방식으로 관리하다 결국 1992년과 1994년 두 차례에 걸쳐 마침내 모두 팔았다.
김영순씨와 장용호씨측은 1992년 6월 26일 전체 323에이커 중 63.3 에이커를 매각한데 이어 약 2년 뒤인 1994년 2월23일 나머지 259.4에이커를 매각한 것으로 월튼카운티 등기소에 보관된 매매서류를 통해 확인됐다. 김영순씨의 매도계약서와 장순경씨 등의 매도계약서 등 두 계약서 모두에 장용호씨가 증인으로 서명했음도 밝혀졌다.
장용호씨의 아내인 장순경씨는 위임장과 매도 서류 등에서 장용호씨 자택인 뉴욕주 낫소카운티 그레잇넥의 12 호스슈레인을 자신의 주소로 기재했고 장은희씨는 위임장에서 나의 아버지가 장용호라고 밝힘으로써 가족관계가 확인됐다.
또 장용호씨는 1972년 맨해튼 32가에 6층 빌딩을 매입, 1984년 이를 한국 중앙일보에 팔았으며 당시 계약서와 모기지서류 등에서 그레잇넥의 12 호스슈레인을 자신의 주소로 기재했으므로 김형욱과 조지아주 땅을 공동매입한 장용호씨는 YH무역의 장용호 사장임이 입증된 것이다.

▲ 김형욱 일가의 고문변호사인 알란 D 싱거 변호사가 1982년 미국 조지아주 부동산 회사에 땅의 가치를 문의한 편지. ‘김형욱과 장용호의 재산’이라고 명시돼 있다.
조지아주 월튼카운티 등기소는 온라인상으로는 1990년대 이후의 부동산 등기서류만 조회되고, 그 이전의 서류는 직접 방문해야만 조회가 가능해 김씨와 장씨가 언제 조지아땅을 매입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1979년 이전에 땅을 매입했으며 매도서류 등을 통해 공동소유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김형욱씨의 큰 며느리인 김경옥씨는 “시아버지가 시누이 신혜씨를 장용호씨의 아들과 혼인시키기 위해 혼담이 오고 갈 정도로 장씨와 절친한 사이였다”고 밝혔다.
YH사건 장용호의 물고물리는 인맥
장씨는 1962년 대한무역진흥공사 코트라 뉴욕무역관 부관장으로 부임했다가 가발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으며 1969년 제8대 뉴욕한인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형욱씨는 1925년 1월생인 반면, 장용호씨는 1929년 3월생으로 김씨가 네 살 더 많았다. 반면 김씨의 부인 신영순씨와 장씨의 부인 장순경씨는 각각 1933년 3월과 2월생 동갑내기인 것으로 확인됐다.
장용호씨는 최치환 의원의 소개로 김형욱을 알게 됐고, 김형욱과 육사 8기 동기생으로 5.16 혁명주체로 공화당 초대사무총장, 원내총무등을 지낸 김동환의원, 육영수여사의 오빠인 육인수 의원, 최두고의원, 김형욱부장등과 자주 어울리면서 김씨와 자주 어울렸다.
또 장씨는 박대통령의 큰 사위인 한병기씨와 절친했고, 김 씨 또한 한 씨와 친해서 더욱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장 씨는 육 여사의 고향인 충북 옥천출신으로 516이전에 육 여사를 알았고, 한병기씨와 함께 청와대에서 친구의 장모인 육 여사도 몇 차례 만나기도 했었다. 장 씨 또한 1960년 31세의 나이에 고향 옥천에서 제5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했을 정도로 옥천의 유지여서 육여사집안과 교류가 있었던 것이다.
장씨는 1972년 뉴욕 맨해튼 32가에 빌딩을 매입했고 1년 뒤 자신이 설립한 부동산회사인 CSKY로 명의를 이전했다. 장 씨는 이 빌딩을 12년간, 그러니까 YH사건 이후에도 5년간 소유하다 1984년 한국중앙일보에 매도했고, 현재 미국 내 최대한인 슈퍼마켓인 H마트 창업자인 권일연회장의 친형인 권중갑 서울식품회장에게 팔았다. 현재 이 빌딩의 가격은 2천만 달러 상당을 호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