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핵심열쇠 십상시…뒷돈 챙긴 정황 포착
국정원 검은 돈,
전당대회 핑계로 ‘삥땅’까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배달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 중 2명인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안봉근 전 국정홍보비서관이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매월 상납 받은 돈 중 일부가 2016년 8월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흘러들어가고 나머지는 이들이 개인적으로 착복했다는 의혹에 대해 검찰이 은밀히 별건으로 수사를 하고 있는 사실을 <선데이저널>이 확인했다. 당시 상황에 잘 알고 있는 한 새누리당 인사는 “두 사람이 받은 돈의 일부가 새누리당 전친박계 이정현 대표 지원 당선을 위해서 당에 유입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시 새누리당 전당대회는 친박계 이정현 의원과 비박계 주호영 의원이 팽팽하게 맞섰는데 2017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권을 장악해야 하는 친박계를 지원하기 위해 두 비서관이 당에 돈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받은 돈의 용처는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당시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였던 이 인사의 증언이 맞는다고 한다면 국정원 돈이 청와대를 거쳐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것인 만큼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질 전망이다. 국민 혈세가 특정 정당의 전당대회에서 불법정치자금에 사용된 것이고, 청와대가 그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파문이 커지고 있는 두 비서관의 국정원 자금 불법 파문을 <선데이저널> 한국특파원이 깊숙이 단독으로 취재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검찰은 2013~2016년 청와대로 간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40억원 이상인 것으로 파악했다.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수집이나 사건 수사에 쓰는 예산으로 영수증 처리를 안 해도 되지만 목적과 다르게 쓸 경우 국고손실죄 등이 적용된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 국정원이 보수단체 등을 지원한 ‘화이트리스트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특수활동비가 청와대에 전달된 단서를 포착했다. 박근혜 정부 국정원에서 인사와 예산을 총괄한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도 검찰에서 수차례 조사를 받으며 관련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안팎에서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참모들이 받은 국정원 돈이 정치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십상시의 핵심인 문고리 3인방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파문은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의 진실의 문을 여는 또 다른 키라는 차원에서 관심이 모아진다. 검찰은 10월 30일 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과 이재만 전 총무비서관을 긴급 체포했다. 검찰은 매년 국정원이 특수활동비 중 수십억 원을 안봉근 이재만에게 건넸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안봉근 이재만 자택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 시절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 자택 10여 곳도 압수수색했다. 안봉근 이재만은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며 청와대 국정 운영에 깊숙이 관여했다. 십상시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 인물로 꼽혔다. 이 세 사람을 국정농단의 진실을 풀 수 있는 핵심열쇠로 지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십상시 중 최측근 문고리 3인방
문제는 국정원에서 받은 검은 돈 중 상당액수가 증발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에서 받은 돈과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간 액수가 맞지 않아 당시 국정원에서도 의문을 제기했지만 문고리 3인방의 권세에 눌려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문고리 3인방은 1998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에 당선돼 정치권에 입문하면서 함께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들에 대한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3명은 15년 전부터 내 곁에 있었고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왔다. 그간 물의를 일으키거나 잘못한 적이 없다”고 밝히는 등 깊은 신뢰를 표했다.
지난해 박근혜 정권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청와대 핵심인 문고리 3인방에 대한 혐의도 의심받았다. 하지만 정호성만 체포됐고, 이재만, 안봉근은 유유히 빠져나갈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장본인들이기 때문이다.최근 검찰은 정호성에게 청와대 기밀 문건을 최순실에게 유출시켰다는 혐의로 2년 6개월 징역을 구형했다. 정호성은 “우리 정치 사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만큼 비극적인 사람이 또 있겠느냐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빗나간 충성심을 보여줬다.안봉근은 최순실이 청와대를 오가도록 도와줬을 뿐만 아니라 ‘청와대 비선진료’ 김영재 원장 등의 출입도 허용토록 해준 장본인이다. 최근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비선보고를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추명호 전 국정원국장의 연결고리로도 지목되고 있다. 이재만 전 비서관은 청와대의 재무, 인사, 민원 등을 비롯해 온갖 비자금을 주물렀던 인물이다.
인사위원회 고정 멤버인 만큼 최순실 인사개입에 깊이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정농단 관련 의혹에서는 빠져나갔지만 결국 국정원으로부터 뇌물 수수 혐의로 안봉근 이재만은 체포됐다.
청와대가 각종 선거에 깊이 관여
문제는 용처다. 과연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이 거액을 착복했겠냐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이들을 신뢰했던 이유는 사심이 없었던 인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검찰에서는 두 사람이 개인적을 착복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두 사람은 이 돈의 전달자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한 인사는 본지에 두 사람의 돈 중 상당수가 새누리당 전당대회 자금으로 사용됐다는 제보를 해왔다. 제보자는 본지에 이와 같이 말했다.
“2016년 8월에 있던 새누리당 전당대회는 2017년 지방선거와 대선을 지휘할 당대표를 뽑는 선거였던 만큼 친박계와 비박계가 사활을 걸었던 선거다. 친박계에서는 이정현 의원을 밀었고, 비박계는 주호영 대표를 밀었다. 정병국 의원도 유력한 후보였지만, 지역에서 갑작스럽게 정 의원을 비방하는 지역 의원들의 기자회견과 이어지는 검찰 수사로 중간 낙마했다. 이후 두 사람의 2파전이 이어졌는데, 청와대에서 상당히 이 선거에 관심이 가졌다. 당시 현기환 정무수석을 비롯해, 문고리 3인방이 이 선거를 직접 챙겼고, 자금력이 약한 이정현 대표 측의 자금사정도 챙겼다. 안봉근, 이재만 두 사람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돈을 당에 전달했고, 이것이 대의원들에게 살포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돈이 국정원에서 나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실제로 당시 이정현 의원은 조직력이나 자금력에서 밀린다는 예상을 뒤엎고 당대표로 선출됐다. 이 의원은 당시 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조직력이나 자금력이 밀린다는 사실을 시인했으나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다. 결과적으로 청와대가 국정원의 돈을 활용해 선거를 도왔을 가능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제보자의 이 같은 진술은 최근 검찰 수사의 흐름을 보면 사실에 가까울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두 사람에 대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2016년 4월 총선 여론조사에 사용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즉 청와대가 각종 선거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선거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의미다.
검찰은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국정원으로부터 현금 5억원을 받아, 2016년 4.13총선 여론조사에 사용한 것으로 파악하고 조사하고 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초, 청와대는 여론조사업체에 의뢰해 총선 경선 등과 관련한 설문 조사를 다수 실시한 뒤 업체에 그 비용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었다. 이후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원에 돈을 요구해 현금 5억원을 제공받아 여론조사 수행업체 관계자에게 밀린 대급을 지급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이미 해당 여론조사업체를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하고 관련자도 조사한 상태다. 또 검찰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오전부터 이재만, 안봉근 전 비서관을 불러 국정원으로부터 돈을 받은 경위와 사용처 등을 집중 추궁하고 있다. 전날 검찰은 구속 상태인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도 불러 조사를 벌였다. 이들은 국정원에 돈을 상납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대체로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안 전 비서관의 경우 국정원으로부터 매달 개인적으로 별도의 돈을 받은 정황도 포착됐다. 다만 안 전 비서관은 이 부분에 대해 진술을 거부하고 있는 중이다. 조윤선, 현기환 전 청와대 정무수석도 재임기간 동안 매달 500만원을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부분도 파악돼 조사 중이다. 이들은 정무수석으로 재임하는 동안 국정원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정무수석 등에 돈을 전달하는 과정에는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도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검찰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등 ‘최순실게이트’가 불거지자 안 전 비서관이 국정원에 연락해 “돈 전달을 중단하라”고 말한 사실도 파악하고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특수활동비 제 멋대로 사용
국정원은 대선 7개월 전인 2012년 5월 특수활동비로 인터넷 언론을 설립했다. 정치 댓글 공작을 벌인 국군 사이버사령부 530단이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아 여론몰이를 위한 콘텐츠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의혹이 이미 불거지고 있다. 국정원은 사이버사에 연간 30억~60억원의 특수활동비를 지원해왔는데, 이 가운데 일부는 사이버사 심리전단 부대원들에게 수당 성격의 활동비로 지금됐다. 2012년 대통령 선거 직전에는 ‘민간인 여론조작팀’ 3500명을 조직적으로 운영하며 한해 30억원의 예산을 썼다. 국정원 적폐청산 티에프에 따르면, 국정원은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민간인으로 30개팀을 운영하며 인건비로 한 달에 2억5000만~3억원을 지급했다. 국정원은 특수활동비로 자체 여론조사도 벌였다. 이를 근거로 정부에 대응방향 등을 조언하는 보고서도 작성해 청와대에 제출했다.
검찰은 국정원뿐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떡고물을 챙긴 정황을 포착하고 국정원 특수활동비수사와는 별건으로 두 사람의 친인척들의 계좌를 쫒고 있는 것으로 파악돼 이번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