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우리 경제 성장을 이끌어줘서 감사한다’ 文의 삼성예찬론은…
이재용 풀어주라는 간접메시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에 대한 2심 법원의 집행유예 판결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심 재판부가 양형 기준을 고려했을 때 최소 년 수인 4년형을 선고하더니, 2심 재판부는 아니나 다를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이 부회장을 석방시켰다. 정권 초반 법원이 이러한 판결을 내린 것은 사실상 정권 상층부의 묵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1심 선고를 앞두고 공개석상에서 삼성그룹의 역할에 대해 극찬한 바 있다. 대통령이 사법부 결정에 간섭할 수 없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원칙이지만, 재판부도 사람인지라 대통령의 발언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서실장을 지냈던 참여정부에서 삼성에 대한 잇따른 특혜를 줬단 사실도 과연 문 대통령이 삼성이란 경제 권력에서 자유로운 대통령인지를 의심케 만드는 부분이다. 본지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3개월 만에 삼성을 향한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을 지적한 바 있는데, 결국 그러한 시나리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판결이 이번에 나온 것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풀려난 다음날 삼성그룹은 평택에 반도체 사업 관련 30조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은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계획이라고 해명했지만, 총수 석방 다음날 이 같은 발표를 한 것은 여론전환용으로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투자계획과 총수 일가의 거취를 엮는 것은 정권의 용인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집권 여당이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 판결에 대해 반발하고 있기 때문에 가려져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삼성 봐주기는 이미 정권 초부터 노골적이었다.
文, 정권 초부터 노골적으로 삼성 예찬
문 대통령은 취임 3개월 만에 기업인들을 청와대로 불러 이른바 ‘호프미팅’을 했는데, 이 자리에서 삼성그룹의 역할에 대해 극찬한 바 있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본격적인 간담회에 앞서 가진 ‘칵테일 타임’에서 권 부회장에게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기도 하고, 또 반도체 라인이나 디스플레이에서 대규모 투자도 하고 있다”며 “그래서 항상 삼성이 우리 경제 성장을 이끌어줘서 아주 감사드린다. 기쁘시겠다”고 말했다. 권 부회장은 “기쁨이라기보다 더 잘돼야 하니까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삼성은 워낙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으니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덕담했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발언이 이 부회장의 1심 선고를 눈앞에 뒀었다는 점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대화를 단순한 덕담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시기가 적절치 않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로 1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혐의나 뇌물액수에 비해서 턱없이 낮은 징역 4년 만을 선고했다. 당시 양형 기준으로 징역 4년은 가장 낮은 형량을 선고한 것이다. 그리고 2심 재판부는 이 부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며 그를 석방했다. 1심 재판부가 형량을 최대한 낮췄기 때문에 2심 재판부가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재판에 넘겨진 재벌총수들의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뒤 2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로 석방되는 것은 이른바 ‘3·5법칙’으로 불릴 정도로 정형화돼 있다. 이번에는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오묘하게 숫자를 바꿨지만 대세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이 부회장의 봐주기 판결이 정권과의 교감 하에서 이뤄졌다는 의심은 단순히 과거 재벌들의 판결과 이번 판결이 유사하다고 해서만은 아니다. 문 대통령은 이미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겪으면서 비슷한 의혹을 받은 바 있었다. 참여정부가 삼성공화국이란 오명을 뒤집어 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참여정부 때도 삼성 x파일 면죄부 전력
이런 얘기가 나오게 된 계기는 참여정부가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에 면죄부를 주면서부터다.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 혼자만의 책임으로 뒤집어 씌울 순 없지만 ‘민정수석 문재인-검찰총장 김종빈(수사 도중 정상명으로 교체)-서울중앙지검 2차장 황교안’으로 이어지는 수사 지휘부가 사실상 하나마나한 수사 결과를 내놓으며 삼성에 면죄부를 준 것은 사실이다.
X파일 사건이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삼성 구조조정본부(현 미래전략실) 본부장이었던 이학수 부회장이 홍석현 중앙일보사 회장과 만나 나눈 사적인 대화가 김영삼 정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현재의 국정원)에 의해 도청·녹음됐고, 이 내용이 MBC에 의해 공개된 사건이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은 이회창 대선후보 측에 100억 원의 정치 자금을 전달하는 문제와, 실명으로 거론된 검사 7명에게 ‘명절 떡값’을 돌리는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두 갈래에서 논란이 됐다. 첫째, 삼성의 비자금이 불법 정치자금으로 전달됐다는 의혹과, 둘째, 안기부가 민간인들의 대화 내용을 도·감청했다는 민간인 사찰 의혹이었다. 문재인 민정수석을 포함한 노무현 정부 청와대가 당시 특검 수사에 반대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특검법을 최종적으로 무산시킨 것은 검찰 중간 수사결과 발표 이후 갑자기 ‘변심’한 한나라당의 반대였지만, 노무현 정부 청와대도 반대 입장인 것은 맞았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2005년 7월 25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현재의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라고 규정했다. 홍석현 당시 주미대사의 거취 논란에 대해 노 대통령은 “불법 도청으로 만들어진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고심되는 부분”이라며 “법적으로 불법이므로 (그 내용의) 공개도 불법이라는 것과, 불법 취득 정보도 국민적 공익을 위해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 사이에 인식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했다.
같은 해 8월 25일에는 “이상한 테이프가 하나 나와서 또 이회창 후보 대선자금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회창 씨는 1997년 ‘세풍’ 사건 때도 조사를 받았고, 지난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때도 조사를 받았다. 이번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세 번째 조사를 받으면 대통령인 내가 너무 야박해 보이지 않겠느냐”며 X파일의 ‘내용’ 부분의 의혹에 대해 사실상 ‘덮고 가자’는 취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을 ‘개혁의 기수’로 믿고 따랐던 지지자들과 시민·사회단체는 이에 대해 정면 비판을 했다. 참여연대 등 108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X파일 공대위’는 다음날인 8월 26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 대통령은 ‘97년 대선자금 수사를 덮자’는 노골적인 수사 중단 지시를 즉각 철회하라”고 성토했다.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 이에 앞서 8월 5일 기자 간담회에서 “도청 사실에 대한 수사는 이미 국정원이 자체 조사를 하고 있고 검찰 수사도 병행되고 있다. 수사를 검찰에 맡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특검에 대한 부분은 조금 어렵다. 오히려 특검에 맡긴다면 서너 달 후에나 (특검이) 활동하게 되는데, 그때까지 검찰 수사를 덮자는 얘기”라며 반대한 것도 맞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검찰 수사는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두 갈래’ 의혹의 첫째 부분, 즉 파일의 ‘내용’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도 기소되지 않았다. 당시 수사를 일선에서 지휘한 황교안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2005년 12월 14일 수사결과 중간 발표에서 “이건희 회장을 서면 조사하고 이학수·홍석현·김인주 등을 소환 조사했지만 참여연대 등의 고발 내용(특가법상 뇌물 등)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며 “관련자들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리고 불기소 처분했다”고 밝혔다.
앞에선 재벌개혁…뒤로는 재벌옹호
문재인 대통령도 본인이 몸담았던 참여정부 당시 삼성공화국이 공고해졌음을 인정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문 대통령은 자신이 처음으로 대선에 나갔던 2012년 10월 11일 한 공개석상에서 “참여정부 시절 재벌 개혁 정책이 흔들렸고, 그 결과 ‘재벌 공화국’의 폐해가 더 심화되었음을 잘 알고 있다. 이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민주화와 재벌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할 철학과 비전, 구체적인 정책과 주체의 역량이 부족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한다”며 “시장만능주의가 세계적으로 시대적 조류였던 당시의 외부적 환경만 탓할 수는 없다”는 반성까지 했다. “그러나 두 번 실패하지는 않겠다”고 그는 덧붙여 강조했다.
하지만 이런 반성도 한 때일 뿐, 결국 문재인 정권에서도 과거에 일어나던 재벌 봐주기가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이제 모든 관심은 대법원 선고로 쏠리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최근 선고된 이재용 등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판결은 법리상으로나 상식상으로나 대단히 잘못된 판결”이라며 “대법원에서 반드시 시정될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백번 양보해도 뇌물 36억원만 인정해도 절대 집유가 나올 게 아니다”라며 “장시호, 차은택보다 이재용과 장충기가 책임이 더 가벼운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월 13일 최순실 뇌물 (사건) 선고가 임박했다”며 “최순실 1심 판결은 이재용 뇌물공여 범죄사실이 포함돼 (이재용 부회장 사건과) 동전의 양면이어서 그 재판에서 정상적으로 뇌물수수 유죄 판결이 나면 이재용 2심이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