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계좌 1500개에 보유재산 무려 5조원이지만…
“과징금 대상은 고작 2%,
실명제법 시행 뒤 개설한
차명계좌 20여개에 불과”
김용철 전 변호사의 폭로로 촉발된 지난 2008년 삼성특검수사에서 이건희 삼성회장의 차명계좌가 약 1200개 발견됐지만, 그동안 금융위원회는 실명제법위반에 따른 과징금부과 대상이 아니라며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았었다. 본보가 입수한 금융위원회의 2009년 12월 공문에 따르면 ‘타인명의의 차명계좌라도, 실존하는 사람으로 전환됐으면 과징금 부과대상이 아니다’라고 답변, 사실상 차명을 조장하는 어처구니없는 결정을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법제처는 지난 12일 ‘실명전환은 계좌실소유주로의 실명전환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림에 따라 8년여 만에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극히 당연한 상식의 승리이다. 하지만 과징금부과대상은 1993년 금융실명 긴급재정명령 이전에 개설한 계좌에 한해서만 부과되도록 돼 있어, 대담하게도 전체 차명계좌의 98%이상을 이 명령이후에 개설한 이 회장에게는 과징금 부과대상계좌가 약 20여개에 불과하다. 금융실명 제법에 결정적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금융실명긴급명령이후에는 차명계좌를 개설해도 과징금을 한푼도 부과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이건희회장의 차명계좌는 경찰의 수사로 260개가 더 드러나 거의 1500개에 육박하고 있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본보가 입수한 금융위원회의 2009년 12월 2일자 공문, 이 공문은 경제개혁연대의 질의에 대한 회신이다. 이 공문에서 금융위는 ‘해당금융기관에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 SDI 주식의 실명 이건희 전환에 대한 과징금등 징수여부를 조회한 결과 해당금융기관은 과징금 원천징수 및 납부사실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여기서 말한 해당금융기관은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구 굿모닝신한증권]. 한국투자증권, 대우증권, 한양증권, 한화증권, 하이투자증권등 7개였다. 즉 그 이전해인 2008년 삼성특검을 통해 4조5천억원규모의 약 1200개의 이건희회장 차명계좌가 발견됐지만, 단 한 푼의 과징금도 징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존인물전환은 실명인정’ 과징금 징수 면제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해당금융기관의 이 같은 조치는 합법적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이 공문에서 ‘주요이유’ 라며 ‘가명이나 허무인 명의가 아닌 주민등록표상의 실명으로 개설된 계좌로서, 실명전환의 대상에 해당되지 않아 과징금 부과대상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또 금융기관에 계좌가 개설된 경우 실명전환의무기간내에 실명전환돼야 하고 이 기간이 끝난뒤 비실명재산을 실명으로 전환했다면, 과징금 부과대상이 되지만, 금융기관을 통한 거래가 없었던 주식이라면 실명전환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특히 금융위는 ‘실명전환의무기관이 끝났더라도 개인의 경우 주민등록표에 기재된 성명 및 주민등록번호를 통한 실지명의가 확인되는 경우라면 실명전환 및 과징금 징수의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 했다.
금융위원회의 이 같은 공문은 차명계좌를 개설해도, 그 차명이 실제 주민등록표상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것으로, 차명계좌를 조장하는 결정과 다름없다. 금융위의 바로 이 같은 결정으로 수많은 차명계좌들이 실제 존재하는 사람의 명의를 빌린 경우 과징금부과를 피했다.
비단 이건희 삼성회장 뿐 아니라, 실존하는 인물에 재산을 위탁한 사람들은 차명계좌가 적발돼도 과징금은 한푼도 내지 않아도 되는 근거를 금융위가 제공한 셈이다. 이는 금융실명제, 반드시 본인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해야 한다는 이 법의 취지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지만, MB정권 시절 버젓이 이같은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하지만 8년여 만에 이 같은 잘못된 결정이 뒤집혔다. 법제처는 12일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실시이전에 자금실소유주를 위해 타인이 자신의 명의 또는 가명으로 개설한 계좌를 실명제실시직후 10월 12일까지 2개월동안의 실명전환의무기간에 타인명의로 실명 전환했지만, 1997년 12월 금융실명법 도입이후 실소유주와 계좌명의인이 다른 사실이 확인되면, 실소유주는 계좌를 자신의 실명으로 전환하고 금융기관은 과징금을 원천징수해야 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즉 실제 존재하는 타인의 명의로 실명전환을 했더라도, 실소유주가 아니라면 차명게좌로서 실명법 위반이므로 당연히 과징금을 내야 한다는 결정이다.
지금도 1993년 8월 12일 이전 개설된 차명계좌로 존재하는 이건희회장의 재산이 있다면 전액 과징금 부과대상이며, 이회장외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금융실명거래법 부칙 제6조1항에 규정된 과징금은 긴급명령당시, 즉 1993년 당시 금융자산가액의 50%다.
실명제 법 개정 이전 전체 차명계좌는 1229개
이건희회장의 차명계좌는 지난 2007년 12월 20일부터 2008년 4월 18일까지 실시된 삼성특검 수사결과 1197개가 발견됐었다. 그 뒤 금감원이 전수조사를 실시. 이 회장 차명계좌 32개를 추가로 발견, 전체 차명계좌는 1229개가 됐다. 이중 1133개가 7개 증권회사에 개설된 증권계좌이며 96개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2개 은행에 개설된 은행계좌였다.
특검은 2007년 12월말현재 이회장이 486명의 차명을 이용, 1199개의 증권 및 은행계좌를 통해 4조5373억원을 보유했음을 밝혀냈다. 하지만 이 계좌 중 98%정도는 1993년 긴급명령이후에 개설됐고, 그 이전에 개설된 차명계좌는 20여개에 불과하고, 2007년말 이 계좌의 잔액은 약 965억원이며, 1993년 당시의 잔액은 파악할 수가 없다. 과징금은 1993년 당시 자산가의 50%가 부과되므로, 그 잔액을 알 수 없어 과징금이 얼마나 될지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 회장은 이처럼 무려 1229개 차명계좌에 4조5천억원이상을 예치했지만 금융실명거래법상 과징금 부과대상은 계좌개설시기가 1993년 긴급명령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에 98%가 과징금 부과대상에서 제외된다.
정부당국은 금융실명거래법 제정당시, 이 법 제정이후에는 차명계좌의 존재를 개설하는 경우를 예상치 못했는지, 아니면 차명계좌 등을 가진 재벌들을 배려한 것인지, 과징금 부과대상에서 제외했다. 금융실명법 제정이후 차명계좌를 개설했다면 그 죄가 더 크지만, 현행법은 큰 도둑은 빠져나가도록 돼 있는 것이다. 원천적 결함을 안고 있는 것이다.
법시행 뒤 차명계좌개설 과징금면제 특별배려
삼성특검은 차명계좌를 확인한 것은 2007년 12월말 기준이며, 금융실명제법이 제정된 지 10여년이 지난 때이다. 이때 1197개 차명계좌에 4조5373억원이 예치된 사실이 밝혀진 만큼, 만약 과징금부과대상을 긴급명령 제정 전 개설된 계좌로 한정하지 않았다면 이에 대해 전액 과징금 부과가 가능해 2조2천여억원의 징수가 가능했을 것이지만, 금융실명법의 결함으로 이 회장은 2조원이상의 재산의 지킨 셈이다.
한편 이회장의 차명계좌는 지난 8일 경찰의 수사를 통해 260개가 더 발견됐다. 특검 1197개, 금감원 32개에다 경찰 발견 260개를 더하면 1489개, 약 1500개에 달한다. 얼마나 더 숨겨져 있는지 모르지만, 발견된 것만 약 1500개인 것이다.
경찰은 지난 8일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이회장등 삼성오너일가의 주택수리비용을 수사한 결과, 엉뚱한 사람 명의의 수표가 발견됐고, 이 계좌는 삼성 전‧현직 임원 8명의 계좌에서 나온 돈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삼성측은 8명의 계좌가 2008년 삼성특검 때 확인되지 않은 72명의 계좌 중 일부로 2011년 국세청에 신고해 1300여억원의 세금을 납부했다고 밝혔고, 이 같은 진술은 사실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260개 차명계좌에 숨겨져 있던 돈이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이와 관련 국세청에 납부한 세금만 1300여억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4-5천억대가 예금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발견된 이회장의 차명계좌 보유재산은 5조원, 이에 대한 과징금이 부과된다면 2조5천억원정도의 징수가 가능했다는 계산이다.
경찰수사에서 이회장의 업무상 횡령액수는 30억원이라고 파악했다. 업무상 횡령은 50억원 이상이며 최소 징역 5년에서 무기징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경찰이 횡령을 더 철저히 수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지난 5일 항소심 선고를 받은 이재용 부회장도 횡령액수를 1심의 절반인 36억여원으로 줄임으로서 50억원에 미달했기 때문에 집행유예선고가 가능했다. 공교롭게도 이회장부자의 횡령액수는 50억원을 넘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