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이 끝나면 북한 도발은 계속 될 것”
미국의 NBC방송은 올림픽대회의 주관 방송사로 이번 평창올림픽대회 개막 2주전 대구에서 김현희씨와 특별 인터뷰를 가졌다. 2018년 평창올림픽은 대한민국 최초의 올림픽대회였던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이후 30년만에 처음 개최하는 올림픽대회이다. 김현희씨는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를 방해할 목적으로 1987년 중동 근로자를 태우고 귀국하는 대한항공858기를 테러로 폭파시킨 장본인으로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지난 1월24일 NBC의 빌 닐리(Bill Neely)앵커는 NBC Nightly News시간을 통해 강한 어조로 “그녀는 ‘살인자’였다. 하지만 다른 살인자들과 다르다”고 운을 띄었다. 그리고는 이어 “김현희씨는 1987년 현재 북한 통치자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의 명령에 따라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한 북한의 전직 간첩이며 살인자 였다”며 “올림픽이 평창에서 불과 2주 만에 열리게 되는 시점에서 인터뷰에 응한 그녀는 세계가 김정은을 믿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면서 “그녀는 동계 올림픽에 선수를 보내는 김정은의 결정에 담긴 어두운 동기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이날 NBC방송은 김현희씨와의 인터뷰 뉴스를 시작하면서 1987년 당시 폭파된 대한항공 858의 잔해 모습과 희생된 승객들의 가족들의 울부짖음 그리고 중동에서 체포된 김현희씨가 압송되어 김포 공항에서 트랩을 통해 내려오는 모습등을 비추었다. 이어 NBC의 빌 닐리 앵커는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푸른 정장을 하고 나온 ‘살인자’였다. 그리고 어떤 살인자도 아니다”면서 뉴스를 전해 나갔다. 이날 김현희씨는 북한 정권은 한국을 동맹국과 분리시키고 궁극적으로 공산주의 통치하에 한반도 통일을 도모하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녀는 “북한은 올림픽을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고 하면서 “북한 정권은 국제적인 고립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하면서, 한국과 손을 잡고 대북제재를 피하려고 노력하고있다”고 말했다.
또 그녀는 남북단일 올림픽 대표팀을 “김정은의 곡예팀”이라고 묘사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KAL폭파범이 되었는지를 말했다. 그녀는 “나는 김정일이 지시한 임무를 수행하기위해 내 인생을 바치는 것이 영예라고 여겼다.”면서 “즉 세뇌 당했다.”고 강조했다. (“I was brainwashed that giving my life carrying out a mission ordered by the Kim family is an honor.”) 김현희는 나는 로봇처럼 명령을 수행하도록 훈련 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나이 19세 대학생 때 평양에서 스파이가 되도록 선발됐다. 그녀는 1987년에 행한 첫 번째 임무(KAL기 폭파)를 수행하기 전 수년간 훈련을 받았다. 그녀는 한국 제트여객기에 폭탄을 실어 날려 버렸다. 그 목적은 당시 한국에서 열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에 선수들을 참가시키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각인 시키는 것이었다.
김현희는 그녀의 아버지로 가장한 북한의 동료 스파이 요원과 함께1987 년 11 월 29 일 바그다드 에서 KAL 857 호기에 탐승해 기내 선반에 폭탄을 비밀리에 장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서울이 목적지인 여객기에서 중간 기착지인 아부 다비에서 둘 다 내렸다. 그 여객기는 서울에 도착하지 못했고 버마 안다만 해 상공에서 폭발해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는데, 그들 대부분은 한국인이었다.
19세에 북한 스파이로 뽑혀
김현희씨는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임무는 서울 올림픽을 방해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북한은 서을올림픽 개최가 한반도를 영구적으로 분단시키고, 한국이 북한보다 더 경제적으로 부강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나는 한국 여객기를 폭파시킴으로써 ‘남조선 괴뢰’ 들에게 경고를 주라는 명령을 받았다”면서 “그러한 명령을 내린 이면에 김정일이 있다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당시 오늘의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이 북한의 통치자였다. 김현희씨는 “내 폭파 임무도 김정일이 지시한 것이었다”고 말하면서 “당시 김정일은 북한에서 대남공작의 모든 것을 관장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북한에서 사는 것은 마치 거대한 감옥소의 생활이나 다름없으며 노예 생활이나 다를 것 없다. 명령에 복종만이 있을 뿐이었다”고 술회했다.
“나는 김정일이 지시한 임무를 수행하기위해 내 인생을 바치는 것이 영예라고 여겼다. 즉 세뇌 당했다.” 그래서 KAL여객기 폭파가 한국에 혁명을 가져 올 것이고 한반도 통일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임무를 수행했다”고 말했다.
김현희 씨는 그 임무 수행에 대하여 망설이지도 않고 의심의 여지가 없었지만, 그 대한항공 여객기에서 아주 색다른 기분 전환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내가 비행기에 탑승한 순간, ‘나는 적국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러나 폭탄을 놓고 긴장되면서 한편 이상하리만치 두렵기도 했다. 나는 잠시 동안 이 비행기의 모든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감정조차도 두렵게 느껴졌다. 그런 감정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나는 로봇처럼 명령에만 따라야 한다고 훈련 받았다. 나는 통일을 위해서는 이정도 사람들은 희생 되어야 한다고 생각함으로써 감정을 지우려고 애썼다. 북한에서는 이런 의심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만약 당신이 그런 의심을 품는다면 바로 정치범 수용소로 가든가 아니면 처형을 당하기 때문이다.>
KAL기내에서의 ‘느낌’
이날 70분 동안 NBC와 인터뷰에서 그녀는 전에 자신이 지녔던 감정을 스스로 날려보낸 느낌을 밝혔다.
김현희 씨는 자신의 폭파로 희생된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가라는 묻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 라고 답했다. 이 대답을 하면서 그녀의 눈은 눈물로 가득 찼고, 그녀의 눈을 반복적으로 깜박 거렸다. 그녀는 “매년마다 희생자 기념관을 방문하여 사과를 하려고 한다”며 “영혼을 위해 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KAL 858여객기를 폭파 시키는데 성공했지만 피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바레인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됐으며, 동료 스파이처럼 자살한 것처럼 캠슐을 깨물기 전에 제지당했다.
그녀는 한국으로 압송되어와 1주일이 넘는 심문 끝에 모든 것을 자백했으며, 한국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은 그녀가 북한정권에 의해 세뇌 당했다는 이유로 사면 했으며, 그녀를 평생 보호하에 둘 것으로 조치했다.
그후 30년 동안 그녀는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항상 암살 당하지 않을가 두려워해야 했다.
NBC방송은 오늘의 한반도 정세를 설명했다. 한국전쟁은 1953년에 평화조약이라기보다는 휴전협정으로 끝났다. 이는 공식적으로는 아직도 전쟁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시험, 그리고 김정은과 도날드 트럼프 간의 말장난 등으로 양국관계는 긴장상태로 치달았다.
김정은은 미국과 함께 한국을 계속해서 파괴하겠다고 위협한 반면, 트럼프는 평양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대립각을 세웠다. 한편 휴전선 북방 수천 개의 북한군 포대들이 불과 약 30 킬로미터 남쪽에 있는 서울의 1,000만 명의 시민들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한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대북자세와 선제공격의 위험성에 대한 대립으로 북한과의 대화재개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렉스 틸러슨 미국무장관과 허버트 맥 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이 동맹국들 사이에 “쐐기를 박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했다.
현재 54세의 김씨는 사면 이후 “나는 (북한측의)암살자 명단에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1988년 서울올림픽 참가를 거부했으나,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에 22명의 선수단과 수백 명의 응원단, 연예인, 기자들을 파견했다. 그러나 김현희 씨는 “북한의 목표가 한반도에서 미군을 없애고 올림픽 이후 몇 개월 이내에 북한이 다시 도발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북한은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것이 북한정권의 생명선이기 때문이다” (“North Korea won’t give up its nuclear weapons. They’re its lifeline.”) 라고 단정했다.
———————————————————————————————————————————————————-
김현희는 누구인가?
‘좌파세력에 시달려 지난 15년동안 집에서도 못살고 유랑생활’
김현희씨는 한반도 분단사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비극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1987년 1년 앞으로 박두한 88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훼방하려고 북한 김정일정권이 저지른 만행이었던 대한 항공 858기 폭파의 2인조 폭파범 가운데 한 명이었다. 2인조 폭파범은 바레인 공항에서 체포 되는 과정에서 남성 공범(김승일)은 음독자살했고 음독자살 시도에 실패한 김현희는 체포되어 한국으로 송환되었다. 김현희씨는 이 폭파 만행의 공범으로 대법원에 의해 사형판결이 확정되었지만 서울에서 수사기관에 사건의 전모를 진술함으로써 이 사건이 북한에 의하여 자행된 국가범죄였음을 입증하는 산 증인이 된데 대한 속죄의 차원에서 특별사면 처분을 받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더구나, 김현희씨는 그가 특수공작원으로 훈련을 받는 기간 중 만났던 납북 일본인 여성(일본 이름: 다구치 야에코ㆍ북한 이름: 리은혜)의 존재를 밝힘으로써 일본과 북한 사이에 납북일본인 문제를 새로운 외교 현안으로 부상시키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은 그후 북한이 범행을 부인하는 가운데 국내의 친북ㆍ좌파 세력에 의한 끈질긴 조작 시비의 대상이 되었다.
노무현 정권 때는 국가정보원 안에 특히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의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입증 하는 것을 목적 중의 하나로 하는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가 내노라 하는 친북ㆍ좌파 인사들로 구성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이 위원회는 작년 오히려 문제의 858기 폭파가 실재했을 뿐 아니라 북한의 지령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하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좌파 정권 10년 동안에 나라의 정권기관과 TVㆍ방송 매체를 장악한 친북ㆍ좌파 세력들은 국가 기관과 TVㆍ방송매체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여 김현희와 그의 가족에게 과거 이디 아민이 지배 하던 우간다에서나 있었음직한 인권유린 행위를 자행한 것이다.
그들은 김현희씨에게 “858기 폭파사건은 북한이 저지른 것이 아니라 남한에 의하여 조작된 것” 이라는 내용의 ‘양심선언’을 강요했었다. 더욱 분노를 금할 수 없는 것은 국정원 <과거사 진상조사 위원회>가 858기 폭파사건이 실재했던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린 뒤에도 이들 친북ㆍ좌파 세력은 김현희씨를 괴롭히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김현희씨에게 좌파에 놀아난 KBS, MBC, SBS방송들마저 가세해 “KAL 858기 폭파사건을 김정일이 지시하지는 않았다” 는 내용의 ‘양심선언’을 할 것을 끈덕지게 강요했고 이를 감당하지 못한 김현희로 하여금 어린 아들 딸과 함께 집을 버리고 동가숙ㆍ서가식의 유랑생활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김현희씨와 가족들은 본집에 들어 가지 못하고 지난 15년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