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산 김원봉 장군의 직계조카…밀양 생가터에 기념관 설립
‘항일 무장투쟁 선봉장
항일투쟁 아우르는 통일전선 추구’
조선의열단 약산 김원봉 장군을 기리는 기념관이 지난 7일 김 장군의 생가터인 밀양에서 성대하게 거행됐다. 김원봉 장군의 조카인 LA출신 사업가 김태영 박사와 김 장군의 친 여동생인 김학봉 여사, 밀양 박일호 시장과 독립운동가 후손, 지역인사,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했다. 수많은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경남 밀양시에 일제 강점기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조선의열단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은 전국 최초이며 독립운동의 성지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김 현(취재부기자)
LA에서 민주평통중앙상임위원과 미주상공회의소 총연합회 부이사장을 지냈으며 에너지 무역업과 의류제조업으로 성공한 LA출신 김태영 박사는 한인사회에서 잘 알려진 사업가다.
김 박사는 수년전부터 숙부인 조선의열단 김원봉장군의 독립운동사를 기리기 위해 한국으로 나가 밀양 생가터에 ‘의열기념관’ 개관해 화제가 되고 있다.
독립운동의 성지 밀양 출신 독립운동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해천 항일독립운동테마 거리’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경남 밀양시에 일제 강점기 무장 독립운동 단체인 조선의열단을 기리는 기념관이 건립 되었다.
총사업비 12억원 들여 건립된 의열기념관
항일의열투쟁을 주제로 한 기념관으로는 밀양기념관이 전국 최초며 독립운동의 성지로서의 역할과 기능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밀양시는 3월 7일 오후 내이동 901번지 해천변에 지은 의열기념관에서 약산 김원봉 장군 여동생 김학봉 여사와 조카 김태영 박사, 박일호 시장과 독립운동가 후손, 지역인사, 시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했다.
의열기념관 건립사업은 김태영 박사 주도로 2016년 11월 약산 김원봉 장군 생가지를 매입하면서 시작됐고, 2017년 12월 전시물 제작과 리모델링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3월 7일 기념관을 개관하게 됐다.
조선의열기념관이 문을 연 곳은 밀양 출신 조선의열단 단장이었던 약산 김원봉 장군 생가터다. 밀양시는 이 생가터를 2016년 11월 매입하고 지난해부터 전시물 제작과 재단장 공사를 해왔다.
총사업비 12억원을 들여 건립된 의열기념관은 지상 2층 건물로 쉼터공간인 옥상을 포함해 전시공간은 304㎡ 규모다.
1층에는 조선의열단 투쟁 주요 사건을 소개하는 연대표와 의열투쟁 관련 자료 검색대, 김원봉 장군 연설장면 동영상을 볼 수 있다.
2층에서는 조선의열단 창립단원 소개 코너와 일제 강점기 ‘밀양경찰서 폭탄 투척의거’를 웹툰 형식으로 제작한 동영상도 있다.
남북에게 버려진 안타까운 독립운동의 영웅
옥상 쉼터에는 광복의 기쁨과 평화로움을 상징하는 청동상 등이 세워졌다. 옥상 휴식공간에서는 조선의열단 단원 석정 윤세주 선생 등 항일 독립운동가들 생가와 항일운동을 주제로 한 해천 거리를 조망할 수 있다.
이번 기념관건립에 전적으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의열단 약산 김원봉장학회 회장인 김태영박사는 ‘조선의열단은 독립운동의 산실이며 숙부인 김원봉 장군을 비롯한 밀양출신 독립운동가를 기리기 위해 밀양기념관을 건립했다’라고 말하며 ‘전국에서 최초로 개관한 독립운동기념관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한 투사와 열사들을 기리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며 기념관 건립에 대한 의의를 피력했다.
김원봉 장군은 일제 해방을 위해 목숨을 내걸고 무장 독립투쟁을 이끈 인물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했던 독립운동가로 항일 독립운동사에 손꼽히는 영웅이다.
독립운동 가운데 중 특히 무장투쟁 노선으로는 절대 빼놓으려야 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다. 빼놓을 수 없는 굵직굵직한 단체의 장을 여럿 맡았으며 김 장군의 거취에 따라 무장투쟁세력들의 판도가 달라질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었다. 또한 해방 후 월북 1948년 8월 북조선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에 선출 활동하다가 김일성에게 숙청되어 묻혀버렸고, 한국에서 조차 북한 정권에 공헌한 공산주의자로 인식되어 독립운동 경력까지 도매금으로 넘어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으나 뼈 속부터 항일투쟁가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의 영웅이다.
김태영 박사 주도로 독립운동업적 평가 움직임
그러나 최근 한국에서는 독립운동 경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교과서에도 실릴 정도로 재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은 김원봉 장군에게 100만 원이라는 현상금이 걸렸었는데 이는 현재 화폐가치로 약 320억이다. 어떻게 환율을 고려했는지는 모르지만 320억이라는 금액으로 본다면 거의 세계 주요 테러리스트 집단의 우두머리들에게 내건 금액과 맞먹는다.
물론 금액이 이러했기 때문에 일본이 김원봉을 잡아들여도 제보자에게 이 금액을 지불할 능력도 없었고 그럴 의지도 없었을 것이라는 게 정설. 이 때문에 위에도 나와 있듯이 김원봉은 같은 자리에 2시간 이상 머무르지 않았다. 참고로 임시정부 주석인 백범 김구에게 걸린 현상금은 60만 원이었다.
최근에는 교과서에 실리게 되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에서 의열단과 조선의용대의 활동내용이 출제가 되면서 입시를 위해서라도 김원봉을 기억한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 그리고 영화 암살과 밀정 등 대중매체에서 조금씩 다뤄지면서 대중들에게도 점점 더 알려지고 있다.
특히 김태영 박사의 주도로 김원봉장군에 대한 독립운동업적이 실제적으로 평가받게 되면서 밀양시가 적극적으로 나서 약산 김원봉 장군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은 여로 모로 시사하는 의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