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하복’…댓글사건 국정원 조직적 수사방해
‘밝혀진 사실만 인정하고
구체적 내용은 묵비하라’ <특별지침>
국정원 댓글사건과 관련, 원세훈 전 국장원장이 5번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재판 끝에 5년 만에 징역 4년 실형이 확정된데 이어, 박근혜 초대국정원장인 남재준 전원장도 이 사건 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남재준 전원장의 취임 뒤 첫 번째 임무가 사실상 국정원 댓글수사 방해였던 셈이다. 남전원장 외에도 8명의 직원들이 전원 유죄판결을 받음으로써 박근혜정부의 국가기관이 나라의 근간인 사법부 수사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었음이 입증 됐다. 본보는 원세훈전원장 판결문과 국정원댓글 수사방해사건 판결문을 통해 이들이 여론조작 사건에 사용한 아이디 등은 물론 국정원이 수사방해실무팀까지 구성해 작성한 ‘대응기조’등의 문건도 확보했다. 드루킹의 뿌리가 이미 MB정부 때 탄생했던 셈이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23일 국정원 댓글사건수사와 재판을 방해한 혐의로 기소된 남재준 전 국정원장에 대해 징역 3년6개월과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또 함께 기소된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에게 징역 1년과 자격정지 1년을, 이제영 검사에게 징역 1년6개월과 자격정지 1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서천호 전 국정원 2차장에게 징역2년6개월과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김진홍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에게 징역 2년을, 문정욱 전 국익정보국장에게 징역 2년에 자격정지 1년을, 고일현 전 종합분석국장에 징역 1년6개월과 자격정지 1년 6개월을, 하경준 전 국정원 대변인에게 징역1년과 자격정지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날 실형선고에 따라 구속기간만료로 지난달 15일 석방됐던 김진홍 전 단장과 문정욱 전 국장은 1주일 만에 다시 법정 구속됐다.
이명박 국정원과 박근혜 국정원 ‘잔혹사’
국정원댓글사건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사이버활동을 하던 심리전단 안보사업 3팀 5파트소속직원 김모씨가 2012년 12월 11일 주거지인 서울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제18대 대통령선거개입 등을 의심해 선거관리위원회에 신고한 민주통합당 국회의원들과 대치하게 된 사건을 말한다.
12월 12일 새벽까지 대치한 민주통합당은 수서경찰서에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가정보원법 위반혐의로 김 씨와 심리전단장 민병주를 고발했고, 수서경찰서는 4개월간 수사를 한 뒤 2013년 4월 18일 민병주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장등 국정원 직원4명을 검찰에 송치했었다.
즉 이명박정부 때 발생한 사건이 박근혜정부 출범이후 검찰로 넘어온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수사대상인 국정원은 정치개입이라는 구태를 뿌리 뽑기보다는 감추는데 급급했다. 박근혜정부 초대 국정원장인 남재준원장은 인사청문회 준비와 국정원 부서업무부고, 감찰보고 등을 통해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정치에 관여하고 선거개입소지가 있는 사이버활동을 전개한 사실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를 조직적 사이버활동이 아니라 정당한 대북심리전 활동 중에 발생한 일부 직원들의 개인적 일탈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검찰의 압수수색이 불가피해지자 서천호 국정원 2차장에게 유관부서회의체 구성을 지시, 서차장이 자신을 팀장으로 하는 간부진 TF를 구성, 자신이 퇴임하는 2014년 4월 14일까지 운영하면서 검찰수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 간부직TF외에도 2013년 10월에는 실무TF까지 만들어 더욱 디테일하게 수사를 방해했다.
본보가 확보한 TF팀의 문서를 보면,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직후인 2013년 4월 25일 국정원 법률보좌관실은 ‘현안사건관린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조사 대응기조보고’라는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법률보좌관실은 심리전단의 활동은 사이버상 자행되고 있는 종북좌파세력의 여론왜곡에 대응하고 북한의 사이버전사들을 색출하기 위한 정당한 국가안보활동이라고 규정했다.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종북좌파들의 정부시책비판은 사회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대정부전복책동에 대한 방첩활동이며, 이 과정에서 일부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점이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만 책임을 통감한다고 적고 있다. 즉 기본적 대응기조는 정당한 국가안보활동이며, 일부 직원의 일부 활동에 대해서만 책임을 통감한다는 식으로 밀고 나간다는 것이다.
원세훈 댓글 조작에 ‘잘 모른다고 하라’지침
법률보좌관실은 이 사건과 관련해 이미 재판을 받고 있던 원세훈 전원장의 답변내용도 적고 있다. 원전원장의 변호를 맡은 이기배변호사에게 확인한 결과 김모직원등에 관한 부분만 본인에게 책임이 있으며, 그 외 심리전단조직의 활동에 대해서는 책임을 질 생각이 없고, 구체적 댓글활동에 대해서도 지시한 적이 없다는 답변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병주 심리전단장의 답변기조는 더욱 상세히 파악하고 있다. 민 단장은 심리전단 인원과 활동내역에 대해서는 소극적으로 인정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단장직을 맡은 이후의 활동에 대해서도 기본대응기조에 따라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즉 ‘국가안보활동이다, 그 외는 모른다’ 이런 기조를 유지했던 셈이다.
또 김 모와 이 모등 심리전단 직원 2명에 대해서는 자신의 지시에 따라 활동했다는 점을 인정했으며, 안보3팀소속 이모씨에 대해서도 경찰수사 결과 국정원 직원임이 거의 확인됐으므로 직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반면 협력자 이모씨에 대해서는 ‘부지’, 즉 모른다는 입장을 견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불법행위에 대한 지시는 절대 없었고, 직원 개개인활동내역도 단장은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으며, 게재한 게시글등도 사후에 보고받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언론에 일부 보도된 직원ID, 협력자 관계등도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 답변지침도 기재돼 있다. 검사가 이미 확인된 글을 열거하며 정치관여, 선거관여 여부를 심문하면 ‘북의 심리전에 대응하기 위한 방첩활동이자, 적극적인 대북심리전에 해당한다’는 주장을 유지하라고 적고 있다. 특히 국정원직원이 정치인의 실명을 기재한 댓글에 대해서는 ‘해당 정치인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금강산 관광 등 안보관련 사항에 중점을 둔 것으로 안보위해주장에 대한 반박활동’이라고 진술한다는 방침을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루 뒤인 2015년 4월 26일에도 ‘현안사건관련 전 심리전단장 조사결과’라는 문건을 작성하고 검사의 심문내용을 일문일답식으로 소상하게 적고 있다. 국정원은 이 문건 첫머리에 ‘전체적인 분위기’라는 소제목하에 ‘검찰의 신문내용 및 전 단장의 답변내용은 국정원에서 미리 예상, 대비한 내용에 따라 진행됐다’고 명시돼 있다. 기본대응기조라는 원칙에 따라 답변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댓글부대 동원 “청와대 게시판 불만 글까지 삭제”
드루킹 사건의 뿌리는 MB정부가 원조
이 문건에 따르면 민전단장은 직원활동실태에 대해 ‘알 수 없었다’, 대응논지가 상부에서 하달됐느냐는 질문에는 ‘잘 모르겠으나 확인해 보겠다는 정도로 답변했다고 기재돼 있다. 또 ‘협조자 및 국정원 예산지원 여부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이라고 기재한 뒤 답변은 ‘직원 개인의 활동영역으로 잘 알지 못한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원세훈 전원장의 ‘원장님 지시 – 강조말씀’에 대해 집요한 확인질문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른바 ‘젊은층 우군화방안등의 문건을 본 적이 있는지, 인수인계를 받았는지, 관련회의에 참석했는지등’에 대해 민전당장은 당시 지역지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관련말씀이 있었던 부서장회의의 주관부서도 아니어서 잘 모른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며 검찰심문사항을 상세히 적고 있다. 또 향후 조사받을 심리전단 직원들은 대응논지의 존재여부, 협조자활용부분에 대해 조사 전에 진술내용을 미리 협의할 필요가 있다고 적고 있다. 직원들에게 대응기조를 교육시키고 그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답변을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거론은 직원 개인의 일탈’ 꼬리 자르기 실행
또 같은 날 법률보좌관실에 연구관으로 파견돼 근무하던 이제영검사는 ‘현안사건관련 이종명 전 3차장조사 대응기조보고’라는 문건을 작성했으며, 내용은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조사 대응기조보고와 비슷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이차장은 민단장과 비슷한 답변기조를 유지했으며, 앞으로 쟁점이 될 사항에 대해 어느 선까지 답변할 것인지를 적고 있다. 사실상 답변지침이나 마찬가지다. 안보3팀장 최모씨의 존재에 대해서는 사실을 인정해도 무방하지만, 그 외 팀장, 직원들의 인적사항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하라, 정치권, 즉 야당을 통해 왜곡해서 전파한 자료를 토대로 질문하면 ‘내 기억으로는 그런 취지는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정도로 가볍게 반박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적고 있다, 대등지시와 작업지시 등에 대해 추궁하면 3차장으로서 심리전단 내부에서 어떻게 지시사항이 전달됐는지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라고 사실상 지침을 내렸다.
같은 해 5월8일 이제영검사는 ‘현안사건관련 이모 전2기획관조사 대응기조보고’를 통해 이 기획관은 ‘인터넷 오늘의 유머 게시판 등에 찬반표시를 한 것에 대해 구체적 지시를 한 적이 없으며 직원들이 그런 활동을 했다면 종북성 글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거나, 개인적 차원의 행동이었을 것이고, 특정정치인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하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었다’고 진술했다고 보고했다.
또 8월 27일 이제영검사가 ‘원[국정원] 댓글사건 제1회 공판진행상황보고’를 작성한 뒤 서천호가 퇴임하고 간부진TF가 열리지 않은 2014년 4월 14일까지 국정원 심리전단사건의 재판 때마다 공판진행 상황보고문건을 작성했다. 9월 7일 제4회 공판보고 문건에는 안보3팀 장 최모씨 증인신문내용이 적혀있다. 최팀장은 원장지시강조말씀을 참고만 했으며 이슈 및 대응논지는 팀장인 자신은 전달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또 협조자 활동비조로 월 3백만원씩을 지급했으나, 협조자 이름 등은 사건이후에야 알았으며, 이모씨외에 협조자는 없다고 진술했다. 9월 24일에는 5차공판진행상황보고를 통해 댓글사건의 단초가 됐던 오피스텔의 주인공 김모씨의 진술을 적고 있다, 김씨는 이 공판에서 ‘파트장을 통해 이슈 및 대응논지를 전달받았지만 논지선정이유는 알지 못하며 찬반클릭은 실험적 차원에서 한 것이라는 등 검찰에서의 진술을 대체로 유지했다고 적혀있다. 10월 1일 6차공판, 10월 15일에는 8차 공판보고와 대응방안 등이 작성됐다.
일부 급진파 정치인들은 종북세력 동조자로
국정원은 간부급TF 구성에 이어 2013년 10월 14일 실무진TF를 결성했다.
이로 부터 불과 3일 뒤인 10월 17일 심리전단 안보산업5팀인 트위터팀 직원 3명에 대한 검찰조사가 실시됐다. 직원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계속됨에 따라 실무TF를 구성하고 더욱 세밀한 대응에 나선 것이다. 실무진TF의 첫 작품은 10월 29일 ‘트위터현안관련 실무직원조사 대응기조’라는 문건이었다. 기본대응기조는 ‘정치인 실명이 거론된 트윗, 리트윗은 대통령후보 등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이 종북세력의 주장과 동일하며, 그 주장을 반박하다보니 해당정치인 실명을 일부 거론’한 것으로 정해졌다.
업무지시도 종북세력에 대한 대응 등 일반적 지시만 있었고 구체적 업무글 작성은 개개인이 알아서 올렸다고 기재함으로써 일부 직원의 일탈로 몰고, 불길이 국정원전체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꼬리자르기에 나선 모습이 역력하다. 활동후 보고가 이뤄졌지만 주간이나 월간활동실적을 종합하는 개괄적 보고에 불과하다, 지나친 표현으로 특정정치인을 거론한 부분은 개인적 의견이라고 치부했다, 또 직원들은 자신이 작성한 글이 맞는 경우에만 소극적으로 인정하고, 과한 표현이 있으면 개인적 활동이라고 진술하라는 기조가 유지됐다.
2013년 10월 15일 작성된 ‘원댓글사건 제8회 공판진행상황보고’는 바로 이 트위터공판과 관련, 원차원의 공판대응실무TF를 구성, 10월 16일부터 활동을 시작하고 총력대응예정 이라고 적고 있다. 11월 4일 ‘트위터사건 공판진행상황’에는 황모씨가 진술을 번복했음이 적시돼 있다. 황씨는 검사가 ‘업무메뉴얼을 원내망 이메일로 받아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받아본 적이 없다’고 답변했으며 이는 검찰조사때의 답변과 다르다고 밝혔다. 즉 황씨는 검찰수사때는 업무메뉴얼을 원내망 이메일을 통해 직접 봤다고 진술했다가 공판에서 이를 번복한 것이다.
국정원 TF팀은 황씨가 검찰조사 때 업무매뉴얼 관련 진술이 마음에 걸렸는지 황씨가 다른 심리전 직원들과 다른 진술을 했었다는 사실도 적고 있다. 그러나 황씨는 검찰수사 때와는 달리 공판에서는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당황해서 착각했다, 이슈 및 대응논지도 서면이 아니라 구두로 전달받았다고 번복했다. 실무TF의 활동이 성과를 발휘한 셈이다. 또 2013년 12월 9일 문건에는 직원 이모씨도 검찰수사 때 이슈 및 논지를 이메일을 통해 전달받았다고 진술했다가, 이 지시에 따라 트위터 활동을 한 것은 인정하지만, 구두로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을 번복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법원, 댓글 조작 수사방해는 법치주의 훼손
실무TF의 활동은 2014년에도 계속돼서 2014년 3월 19일, 2014년 4월 9일, 2014년 4월 29일까지 공판진행상황과 대응방안 등에 대한 보고가 계속됐다. 간부 TF팀 팀장인 서천호 2차장의 재직 시까지 활동을 계속했던 것이다. 이처럼 국정원의 댓글수사방해는 마치 공작을 방불케할 만큼 철저하게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이 수사를 담당한 검사가 수사축소지시에 발발,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하기도 했으며, 결국 박근혜정권의 이 같은 악행이 자충수가 되면서 스스로 정권을 무너뜨리는 하나의 단초가 됐다.
이에 앞서 국정원 댓글을 직접 지시한 몸통격인 원세훈 전원장은 지난 4월 19일 마침내 징역4년, 자격정지 4년의 판결이 확정됐다. 2013년 기소된 뒤 5년간 5번의 재판 끝에 형이 확정된 것이다.
1심에서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2심에서는 징역3년 선고를 받으며 법정구속됐으나, 약 5개월 뒤 대법원이 유무죄 판단을 보류한 채 고법으로 파기 환송시켜 버렸다. 결국 2017년 8월 30일 파기환송심에서 공직선거법상 선거개입금지 위반, 국가정보원법상 정치관여금지 위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되며 징역4년이 선고되면서 다시 구속됐고, 지난 4월 대법원에서 파기환송심의 형량이 그대로 확정된 것이다.
파기환송심에서 트위터활동은 계정 391개, 글 29만5600건이 인정됐다, 이는 2심에서 617개 계정, 대법원에서 691개 계정이 인정된 것보다 약 3백개가 적은 것이다. 특히 18대 대선후보들이 출마선언을 하고 후보자로 확정된 이후 작성한 게시글 10만6천은 선거운동에 해당된다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대한민국법원은 수사와 재판에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은 사법정의의 초석이며 이를 방해하는 범죄는 법치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며 목적이 무엇이든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규정했다. 국정원이 그같은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질렀다. 지금 이 순간 그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고 장담할 수 없다. 뼈를 깎는 자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를 감시하고 막을 수 있는 상시적 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구축하는 것만이 법치주의를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