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 달 6월 특집1 아직도 계속되는 6․25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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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세계 끝까지 가서 전우 찾는다

6․25전쟁의 포성이 발포한지 68년이 다가오고 총성이 멎은 지 65년이 지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차가운 땅 속에 누워있는 전사자들이 많다. 6․25전쟁 당시 경기도 가평에서 공병 작전을 수행하다 전사한 국군병사 유해는 장장 68년 만에 전사자의 아들에게 전달됐다. 이같은 유해 전달은 바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노력 결과다. 국방부 유해발굴단이 그 사업을 해외로까지 확대하여 지난해는 하와이로 지난 달에 LA와 SF를 방문해 6․25 참전 용사들을 만났다.
<성진 취재부 기자>

한국의 국방부는 지난 1월 30일 한국전쟁 당시 건설공병단 소속으로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고 김재권 일병의 아들 김성택씨 집을 찾아 ̒호국의 영웅 귀환행사̓를 개최했다. 이날 유해 감식단은 강원도 강릉에 있는 김씨 집을 방문해 전사자 신원확인통지서, 국방부 장관 위로패, 전사자 유품 등을 전달했다. 국방부는 유가족과 협의해 김 일병 유해를 국립현충원에 안장할 계획이다. 이번에 국방부 산하 유해발굴감식단(단장 이학기 대령)이 LA를 방문해 6․25 참전용사들을 만보훈의달1나 이들의 증언을 모았다. 유해발굴감식단은 한국전 참전용사의 유해를 발굴해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순국 선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함이다. 아직도 어느 산하에 묻혀 있는 이들을 찾아내 국립묘지에 안장시키기 위함이다. 유해 발굴감식단이 지난해 하와이 방문 이래 이번에 처음으로 LA와 SF를 찾았다. 지난달 31일 용수산 식당에는 LA지역에 거주하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이 나와 70년이 가까워오는 까마득한 옛 전투의 기억을 떨리는 목소리로 증언했다. 혹시라도 자신들의 증언이 아직도 고혼 으로 방황하는 전우의 한 조각 뼈라도 찾아 주기를 소망했다. 잊지못할 한국전쟁의 참상을 기억하는 이들 참전용사들은 옛 전우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1950년 12월 강원도 양구 전투에서 부상당한 정용봉 박사(사진) (91,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 회장)는 이날 68년전 당시 백병전까지 벌였던 지역을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와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을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당시 전시사관학교인 육군종합학교를 졸업해 소위로 임관되어 배속된 8사단 16연대 소속 중화기 중대장 대리(당시 중대장 전사로 전시 임명)로 활약한 정 박사는 “그해 1950년 겨울은 무척이나 추웠다”면서 “한없이 내리는 눈발속으로 후퇴하면서 전투 지역 계곡에 남기고 온 전우들의 시체가 아직도 생생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 박사의 증언을 청취하고 인터뷰를 한 감식단의 이동식 분석관은 “우리 국방부에 당시 전사 자료들이 있지만 직접 전투에 참가한 장병들의 기억 속에 남았있던 그 증언이 매우 귀중하다”면서 “발굴 위치를 찾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분석관은 “전사자의 유해가 묻혀 있는 소재지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국방부에 남아 있는 자료는 모두 전투와 관련된 것이어서 실제 유해 발굴에 애로가 많다”며 “살아 남은 생존자의 기억을 통해 실제로 많은 성과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 분석관은 “실제로 그동안 국내에서 청취한 600건 이상의 증언들이 유해발굴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다”고 밝혔다. 이날 용수산 식당에서 열린 ‘유해발굴 증언 청취 및 사업설명회’에서 이학기 단장은 안사말을 통해 “참전용사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전우들의 실종과 전사에 대한 상황을 영구 보존하가위해 증언을 청취하기 위해서 왔다”면서 “오늘의 증언들을 영상으로 촬영하고 녹취록을 만들어서 향후 이 분들을 찾아 모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했다. 또 그는 “조국 대한민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목숨을 바치신 호국 영웅들 유해를 마지막 한 분까지 끝까지 찾아서 그 분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의 품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조국의 품으로 모시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유해발굴감식단의 LA방문은 6․25참전용사들의 증언을 기록하기 위한 첫 해외방문으로 남가주육군동지회(회장 최만규)와 6․25 참전유공자회미서부지회(회장 김해룡)의 도움을 받아 진행됐다.

‘참전자 증언이 고혼을 달래’

이날 김해룡 6․25 참전유공자회미서부지회장은 “정부에서 뒤늦게 나마 6․25 전몰 장병 유해 발굴을 위해 미국까지 파견한 것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LA방문을 도운 최만규 육군동지회장은 “보람있는 유해발굴 사업을 돕게 되어 자랑스러웠다”고 말했다. 한국의 유해발굴감식단은 현재까지 약 1만여구의 참전용사들의 유해를 발굴해 국립 현충원에 안장시켰다. 한국 국방부는 해외에 거주하는 6․25 참전용사자들도 만나 증언을 듣고 이를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유해발굴 사업을 더 확대할 계획이다. 유해발굴감식단은 지난 2000년 6·25 50주년 기념사업으로 한국 육군에 의해 시작돼 2007년 국방부 소속으로 재편됐다. 2016년에는 한미 전사자 유해가 처음 상호 봉환되는 행사도 가졌다. 이번에 LA와 샌프란시스코를 가장 먼저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단장 이학기-뒷줄 오른쪽에서 다섯번째)이 참전용사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단장 이학기-뒷줄 오른쪽에서 다섯번째)이 참전용사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방문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이학기 단장은 “6․25 참전 용사의 연령이 평균 80세 이상이어서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나오게 됐다”며 “국가보훈처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에 아직도 1400명의 참전 용사가 생존해 있는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에 이 지역을 우선 방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단장은 이번 방문을 통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약 60명 LA에서 80명 정도의 증언을 청취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단장은 남북정상회담 후속조치와 12일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이 모두 순조롭게 진행돼 앞으로는 DMZ(비무장지대)와 북한에서도 6․25전사자 유해를 발굴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이 단장은 비무장지대에만 약 1만구의 전사자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유해발굴 작업은 남북관계가 정상화로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남북공동유해발굴단도 구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6일 현충일 기념식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DMZ(비무장 지대)에서 유해 발굴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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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

 “전사자 유해 지구 끝까지 찾아간다”

6.25전쟁의 총성은 멎었지만 ‘잃어버린 전우’를 찾기 위한 미국의 ‘소리 없는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합동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JPAC) 조사팀은 한국내 첩첩산중 산골짜기를 따라 걸으며, 미군 유해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또한 강원도 촌락의 집집마다 들러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대한 ‘실낱같은’ 제보라도 얻고 있다. 비단 한국에서 뿐만 아니다. 베트남에서 중동 지역에서 그리고 태평양 섬들에서 실종됐거나 전사했으나 유해를 찾지 못한 전우를 찾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북한 땅에서까지 가능한 방법으로 찾고 있다. JPAC은 분석․협의․조사․발굴․감식팀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 조사팀은 전사자 유해가 정확하게 어디에 묻혀 있는지 현장 조사하고 확인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조사팀은 한 달간 일정으로 한 해 3~4번씩 한국을 찾는다.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시간과의 전쟁’. 시간이 흐를수록 70~80세 고령의 목격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뜨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찾아야 할 미군 전쟁포로 ․실종자는 모두 8100여 명. 남한에 2500명, 북한에 5600명이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적성국인 북한에서조차 90~95년, 북한 단독으로 208구를 발굴했다. 96~2005년에는 미북 공동으로 229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올해 들어 북한 단독으로 6구의 유해를 발굴했다.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만 61명. 남한지역에서는 96~2007년 모두 35구의 유해를 발굴, 5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우리는 미군의 전사자들이 고국의 품으로 돌아갈 때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단 한명의 전우도 우리는 결코 등 뒤에 남겨 두지 않을 것이다(We Never Leave Behind Any Americans)”라는 것이 구호이다. 반세기 전 묻힌 뼛조각 하나라도 지구 끝까지 찾아가는 JPAC. 그들의 부대 구호 ‘You Are Not Forgotten(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

한국전미군 실종자 8100명

‘Until They Are Home(그들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JPAC 부대 휘장에 새겨진 글이다. 미군 전사자 유해발굴을 주도하고 있는 JPAC은 미국의 자존이자 명예다. 미국 국민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고 있어 자긍심이 대단하다. 범국가적 차원에서 대통령부터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에 동참하고 있다. 1991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옐친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당시 미군 실종자 확인을 위한 지원 약속을 얻어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94년 방북 때 북한이 유해발굴에 적극 협조한다는 합의를 끌어내기도 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99년 중국 주룽지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미군 실종자 수색에 적극 협조해 달라고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국은 JPAC을 통해 군과 군인을 존경하고, 정부와 국민 간 신뢰를 드높여 국민들의 애국심을 한곳으로 결집시키고 있다. JPAC은 30년 된 미 육군중앙감식소 등을 통합해 2003년 하와이에서 재창설됐다. JPAC(합동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은 Joint미군 POW/MIA Accounting Command의 약칭. POW는 Prisoner Of War(전쟁포로), MIA는 Missing in Action(실종자)을 의미한다. 육군 준장이 사령관이며 육해․공군․해병대․군무원(25%) 450여 명으로 편성됐다. 부사관이 80%, 장교가 17%며, 박사급 전문 인력만 30명이 포진해 있다. 한국전쟁반과 베트남전쟁반, 세계대전․냉전반이 있으며 각 반 아래 전사연구관․통역담당관․정보담당관을 두고 있다. 현재 JPAC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실종된 7만8000명, 한국전쟁 8100명, 베트남전 1800명, 각종 분쟁 120명, 걸프전 1명의 전쟁포로와 실종자를 찾고 있다. 전 세계 전투 현장에서 유해 발굴을 통해 신원을 확인한 유해는 1300여 명이다. 태국․베트남․라오스․하와이 등 4곳에서 파견대가 활동하고 있다. 미 국방성(DPMO)과 태평양사령부(PACAM), 주둔 미군․무관, 대사관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의 JPAC(합동전쟁포로․실종자 확인사령부)는한국 국방부의 유해발굴감식단 창설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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