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총수 기업인 연예인 판사출신 변호사부터…한국일보 회장까지
‘해외원정도박 빚…한국에서 갚다가 덜미’
1997년부터 2002년까지 한국 부유층들의 라스베이거스 원정도박사건은 당시 한국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도박성을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특히 라스베이거스에서 원정도박을 즐기며 미라지호텔 카지노에서 도박 빚을 지고 호스트들이 한국으로 찾아와 돈을 수금하고 미국으로 불법 송금 반출한 사실이 드러나고 이른바 미라지 호텔 카지노 호스트인 로라 최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일파만파 파문을 일으켰던 엄청난 사건이었다. 로라 최 리스트에는 한국일보 장재국 회장에서부터 판사출신 변호사 대기업 회장 기업인 연예인 등 44명 중 원정도박자 명단이 공개되고 9명의 거물급 인사들이 구속되는 등의 파장이 일었다. 당시 이 사건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월간 ‘말’지의 오연호 기자(현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의 심층보도는 센세이션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번 미국의 한 시민단체가 ‘FBI에서 작성한 트럼프대통령관련 비밀보고서 전체를 공개하라’고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FBI가 공개한 문건에서 로라 최 리스트 수사 기록과 ‘말’지의 말이 맞아 떨어졌다. 당시 로라 최 리스트 사건을 보도했던 말지의 충격적인 기사를 재조명해 보았다. <편집자 주>
1997년 7월 23일
인터컨티넨탈 호텔 2316호실. 미국 라스베이거스 미라지 호텔 카지노의 한국 고객 전담직원인 로라 최씨(당시 42세)는 한 고객에게 영수증을 써주고 있었다. 그 고객은 판사출신 변호사 홍선협씨. 홍씨는 막 최씨에게 한국돈 8천3백만원을 건넨 직후였다.
남자 변호사와 여자 카지노 딜러. 그들은 왜 호텔방에서 은밀히 현금다발을 주고 받았을까. 도박 빚이 청산되는 순간이었다. 홍 변호사는 97년 6월 3일부터 이틀간 미라지호텔 카지노에서 10만달러를 빌려 도박을 해서 모두 잃었다. 그로부터 한 달 보름 후 그는 ‘모범적으로’ 빚을 갚고 있었다. 그래서 10% 디스카운트까지 받았다.

▲장재국 전 한국일보 회장
2년 만에 다시 찾아온 ‘로라 최 리스트’
로라 최씨가 홍 변호사에게 막 영수증을 전달하려는 순간, 밖에서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최씨가 문을 열자 평상복을 입은 남자들이 서 있었다. 여섯 명 정도였다.
“검찰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검찰 직원들은 곧 그 방을 수색했다. 베갯잇 속까지 들춰봤다. 결국 검찰 직원들은 최씨가 도박 빚쟁이들로부터 거둬들인 9만달러의 여행자수표를 찾아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결정적인 범죄행각 물증을 찾아냈다. 이른바 ‘로라 최 리스트’였다.
그 리스트가 불거지자 검찰은 해외도박자 일제소탕 작전을 펼쳤다. 그리고 검찰 주변엔 소문이 난무했다. 당시 <동아일보>(97년 8월 24일)의 한 관련 기사 제목은 ‘로라 최 입을 막아라…재계 카지노리스트 공포’였다. 로라 최의 검거소식을 맨 처음 전한 <시사저널>(97년 8월 20일자)은 “검찰주변에서는 서울에서 발행되는 유력 일간지의 사주도 도박을 한 혐의가 있어 검찰이 내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적었다. 리스트에는 모두 44명이 올라 있었다. 그 후 4개월간 계속된 수사 결과 리스트에 오른 9명이 구속됐고 20여명이 수배를 받았다. 그러나 그 중 거액의 라스베이거스 해외 원정도박을 하고도, 리스트에 오르고도 무사한 사람이 세 명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 또다시 여름과 함께 ‘로라 최 리스트’가 찾아왔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7월 11일자에서 로라 최의 카지노 딜러 인생을 심층취재해 2면에 걸쳐 실었다. 그 보도에서 우리의 주목을 가장 끈 대목은 로라 최의 VIP고객인 ‘고래’(whale)들의 이야기였다. 그 고래들은 언론계 거물을 포함해 재벌급 회사의 간부, 유명 연예인들이 포함돼 있다고 그 신문은 전했다.
<워싱턴포스트>의 보도를 계기로 다시 국내언론들은 ‘로라 최 리스트’에 관심을 두었다. 몇몇 일간지는 2년전인 97년 여름의 검찰수사가 축소수사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 의혹의 핵심은 한 거물급 인사와 그와 동행한 또 다른 두 사람이 리스트에 올라 있었음에도 무사했다는 거였다.
<말>은 <워싱턴포스트>의 보도 전후로 미국 로스엔젤레스와 국내취재를 통해 ‘로라 최 리스트’의 전모에 접근할 수 있었다. 또한 그 리스트에 오른 44명 전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 3명이 왜 검찰수사에서 무사했는지 의혹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그 3명 가운데 ‘대표’격인 장존(John)이라는 인물의 정체를 추적했다. 장존은 44명 가운데 두 번째로 큰 액수인 1백86만달러에 달하는 도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수사를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명수배조차 되지 않았다. 당시 검찰은 “20만달러 이상은 전원 구속한다”는 방침을 세웠는데도 그는 예외였다. 이 글은 그 미스터리에 대한 추적보고서의 제 1탄이다.
리스트에 오른 44명의 적나라한 도박 역사
로라 최씨가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검거된 다음날인 97년 7월 24일. 그는 서울지방검찰청 836호실에서 외사부 최정진 검사(사시29회, 현 법무연수원 파견)와 마주 앉았다. 피의자 신문조서를 받은 것이다.
최씨는 우선 자신의 신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55년생. 본적은 서울 종로구 연지동 244번지. 미국주소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9736 팔제이. 79세 된 어머니와 14세 된 아들을 둠. 72년 성만여고를 졸업하고 76년 도미하여 77년부터 현재까지 호텔 카지노의 딜러로 일함. 미라지 호텔에서 한국고객 전담 마케팅 책임자로 일해온 것은 92년부터임. 부동산은 60만불 정도이고 매월 평균 6천불 정도 소득. 83년에 미국시민권을 취득하였고 한국국적은 말소시키지 않은 상태.”
최씨는 97년 7월 17일에 입국했다. 그러니까 엿새만에 붙잡힌 것이었다. 수금대상자였던 44명의 고객 가운데 단 몇 명만을 만난 상태였다. 그는 업무도 다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고객의 신상에 대해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검찰에 수금장부를 압수당했기 때문이다. 그 장부가 곧 ‘로라 최 리스트’였다.

▲ ‘로라 최’인터뷰가 실린 <대한매일> 2001년 11월 28일자 3면.
그 장부의 이름은 ‘미라지 호텔 마케팅담당자들에 의한 요약 경과보고서’(The Mirage Summary Aging Report By Marketing Authorizer). 작성일자는 97년 5월 12일과 6월 30일이었다. 그것은 미라지 호텔 카지노의 수금부에서 도박자금을 빌려준 한국인 고객 이름과 빚 내역을 알파벳 순으로 기재해 놓은 것이었다.
이 장부엔 가로로 여섯 개의 란이 있었다. 이름, 고객분류기호(VIP와 CDE 등으로 분류), 처음 도박자금을 빌린 날, 마지막 빌린 날, 미수금 총액, 그리고 변제방법 등이었다. 이 장부를 찬찬히 들여다 보면 등장하는 인물들의 도박과 변제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첫 번째로 등장하는 안영성씨는 레코드회사 사장으로 96년 8월 10일경 10만달러를 차용해 도박을 했고 5만달러는 갚고 미수금이 1만7천달러인데 3만3천달러는 한국에서 변제하였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이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 가운데 가장 큰손은 오종섭씨(43, 대전 동양백화점 부회장). 그는 97년 6월 7일 무려 3백만달러(약 35억)를 빌려 전부 잃었다. 그는 이후 카지노에서 딴 돈 1백11만달러와 수표 1백만달러 등으로 변제해 미수금은 50만달러 정도였다.
20억원대 도박한 장존의 정체
로라 최씨에 따르면 오씨는 미라지호텔에 드나드는 한국인 고객 가운데 “제일 큰 손님”이었기 때문에 그 해 정초에 카지노의 지배인과 담당자가 인사차 그를 만나러 한국을 방문할 정도였다고 한다. 오씨는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 돈을 따기도 했는데 비록 현금이 있다 하더라도 빚을 내서 다음 도박을 했다. 최씨는 “그것은 노름하는 사람의 속성”이라면서 “빚을 내서 하면 잃었을 경우에도 디스카운트가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리스트에 오른 이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가정주부에서부터 회사 사장, 연예인, 방송사 피디, 안경점 주인 등. 이들은 어떻게 도박에 빠져드는가. 김인태씨(동남그룹 회장)의 경우에서 잘 드러난다. 처음에는 몇천달러를 빌리다가 두 번째는 10만달러를, 세 번째는 50만달러를 빌려 모두 잃은 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의 계산에 따르면 이들의 평균 도박시간은 33시간 33분이었고 한판당 평균 내기돈은 1만8천달러가 넘었다.
‘로라 최 리스트’에 오른 44명 가운데 가장 우리의 주목을 끄는 사람은 장존(Chang John)이다. 본지가 입수한 한 검찰 수사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문:위 요약보고서에 나와 있는 장존은 누구인가요.
답:네, 장존은 한국에서 사업하는 사람으로서 저와 같은 마케팅책임자인 마카오리가 담당하는 고객인데, 96.2.28-3.2간 미화 1,868,666불 상당을 차용하여 도박을 한 사람입니다.
한국돈으로 계산해 무려 20억원대의 도박을 했던 장존은 과연 누구일까. 그러나 이 수사기록에는 그의 정체를 묻고 답하는 데 더 이상의 진전이 없다. 위 인용문이 전부다. 44명 중 두 번째로 큰 액수의 불법도박꾼인데 왜 그에 대한 기록은 그토록 간단할까.
21쪽에 달하는 이 수사기록에서 장존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또다른 도박자 최창식씨에 대한 문답대목에서 발견된다.
문:위 요약보고서에 나와 있는 최창식은 누구인가요.
답:네, 최창식은 장존의 비서로서 96. 2.29경 미화 10만불을 마카오리가 담당을 하여 이를 차용하여 도박을 하였던 것으로서 97.5.12까지는 변제를 하지 않았는데 6.30자 요약보고서에는 그 사이에 변제가 되었는지 그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로라 최는 최창식씨가 “장존의 비서”라고 말했다. 만약 최씨의 진술이 맞다면 장존은 최창식씨를 비서로 두고 있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최창식씨는 누구인가. 이 기록에는 그가 장존의 비서라고만 되어 있을 뿐 그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없다. 분명한 것은 그가 장존과 같은 시기에 머라지호텔 카지노에 있었다는 점이다. 장존은 96년 2월 28일에서 3월 2일 사이에, 최창식은 “2월 29일경”에 도박 돈을 빌린 것으로 문제의 장부에 기록돼 있다.
본지의 취재에 따르면 최창식씨는 당시 한국일보 회장실 비서였다. 당시 한국일보 회장은 장재국씨였다. 그렇다면 장존은 장재국씨를 말하는 것인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추론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지만 여기에서 잠시 결론을 유보하고 피의자 신문조서의 또다른 대목을 보자. 장존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임무박.
문:위 요약경과보고서에 나와 있는 임무박은 누구인가요.
답:네, 임무박은 제주도에서 호텔 카지노를 하였던 사람으로 알고 있으며 장존과 함께 미라지호텔 카지노에 오는 사람으로서 마카오리가 담당을 하고 있으며 96. 3.2-4까지 금액불상을 차용하여 97.5.29경에 10만불을 변제하고 6.30 현재 미화 40만불이 미수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안강민, 피라미는 구속시키고 거물은 봐주고
장존, 최창식, 임무박. 세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미라지 호텔 카지노에 있었다. 도박자금 차용일은 하루이틀씩 차이가 나지만 세 사람은 동행했을 가능성이 많다.
로라 최는 임무박씨가 “장존과 함께 머라지호텔 카지노에 오는 사람”이라고 진술했다. 임무박씨는 한국 카지노계에서 정덕진, 정덕일 형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로 알려진다. 카지노계에 정통한 한 재미교포 출신 국내사업가는 “임무박씨는 장강재 전 한국일보 회장과 친분이 깊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무박씨가 장강재 회장이 작고한 이후에 그의 동생인 장재국 회장과 가까운 사이를 유지해 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97년 7월의 검찰수사에서 모두 무사했다는 점이다. 장존은 1백86만달러, 임무박은 50만달러, 최창식은 10만달러를 빚내 도박을 한 것으로 ‘로라 최 리스트’에는 적혀 있지만 그들은 구속은커녕 벌금형도 받지 않았다. 현행 외환관리법은 1만달러 이상을 당국의 허가없이 가지고 출국하거나 거래하는 것은 불법으로 되어 있다.
왜 이들은 특혜를 받았을까. 이 모든 의혹은 결국 장존의 정체와 닿아 있다. 장존은 검찰이 함부로 손대기 힘든 대한민국의 유력자였기 때문에 그와 동행했던 최창식과 임무박도 검찰수사로부터 자유로웠을 것이란 추측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만에 하나 이들이 구속되지 않은 이유가 돈만 빌렸을뿐 도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없다는 것이 로라 최의 진술이었다. 다음은 97년 7월 29일 작성된 또다른 수사기록의 일부다. 도박꾼들이 돈을 빌리는 과정과 그 용도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문:카지노에서 돈은 어떻게 차용하나
답:한국인 고객이 와 도박자금 차용을 요청하면 카지노 총책임자와 한국인 담당 마케팅 책임자가 고객에 대한 정보를 받은 뒤 신용한도를 결정한다. 최저 1만달러에서 최고 5백만달러까지다.
고객이 카지노의 마커(차용증서의 일종)에 차용금액, 날짜를 적고 본인 서명 후 내게 주면 카지노에 보관시킨다. 그런 다음 곧바로 카지노 컴퓨터에 입력한다. 출납계 담당자나 테이블의 플로맨들이 컴퓨터에 입력된 차용금액을 보고 칩을 계산해 준다. 칩은 1달러짜리부터 2만5천달러짜리까지 8개 종류가 있다.
문:한국인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경우는 없나.
답:카지노에서 쓰라고 빌려주는 돈이므로 칩으로만 지급한다.
문:피의자(로라 최)가 소지해온 ‘마케팅 책임자에 의한 미라지호텔 요약경과 보고서’의 컴퓨터 출력 용지에 적힌 내용은 모두 카지노측으로부터 돈을 빌린 사람들의 내역이란 말인가.
답:그렇다.
문:도박과 관련없이 돈을 빌린 사람은 없나.
답:없다.
이상의 진술로 볼 때 위 세 사람이 빌린 돈은 명백히 도박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검찰은 이들에 대해 전혀 손을 대지 않았다.
‘장존의 비서 최창식’은 장재국 회장의 수행비서
왜 그랬을까. 왜 검찰은 1백86만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해외에서 불법도박으로 날린 장존을 추적해 잡아내지 못했을까. 당시 담당검사였던 최정진 검사는 7월 15일 오후 기자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장존의 정체를 파악해내지 못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누군지 특정이 안 되고, 입증자료가 없고, 본인(로라 최)이 (장존이 누구인지를) 이야기 하지 않아서 기소하지 못했다.”
그러나 가장 기초적인 입증자료는 피의자 신문조서에도 나와 있다. 최창식은 장존의 비서이고 장존은 최창식을 비서로 둔 사람이다. 동행자로 보이는 최창식을 조사했다면 금방 장존의 정체는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최 검사는 그와 관련한 추가질문에 답하지 않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97년 7월 수사 당시 서울지검장은 얼마 전 검찰을 떠난 안강민씨(사시 8회, 현 변호사)였다.
다음은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97년 1월∼98년 3월)과 7월 16일 오후 6시 30분에 가진 전화 인터뷰.
문: ‘로라 최 리스트’에 오른 사람 중에 한국일보 회장 장재국씨가 있었는가.
답: “그 당시 그런 풍문이 있었다. 작고한 장강재라는 설도 있었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그런 소문들을 로라 최에게 확인해 본 결과 사실이 아니었던 것으로 (일선 검사들로부터) 보고받았던 것 같다.”
문: 결국 장존이 누구인지 알아내지 못했나.
답: “그런 외국이름이 하나 있었는데 결국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문:장존은 비서인 최창식과 함께 라스베이거스에 갔다고 되어 있으니 최창식이 누구인지를 조사하면 금방 장존의 정체가 드러날 것 아닌가. 최창식은 당시 장재국 한국일보 회장의 비서였다.
답: “최창식이 한국일보 회장 비서라는 것을 (검찰수사 관계자들이) 몰랐던 것 같다.”
정말 그런 기초적인 것도 몰랐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안강민 전 서울지검장은 “같다”라는 말과 “기억이 잘 안난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했다.
최창식씨는 한국일보 여의도 영업소(여의도동 21-3 서울상가 1층) 소장직을 겸임하면서 장재국 회장의 비서로 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7월 16일 본지기자가 여의도 영업소를 찾아갔을 때 한 직원은 “최창식 소장님은 1년에 한번 올까말까 한다”면서 “작년 10월에 한번 왔다”고 말했다. 사무실의 한 책상엔 최창식 명의의 통장 계좌번호가 네개 붙어 있었다. 또다른 직원은 그가 작년에 소장직을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의 전방위적 ‘장재국 회장’ 구명 로비
한국일보 회장실의 한 직원은 최창식씨가 현재 비서로 일하고 있느냐고 묻자 “여기에 안 계시고 다른 곳에 계신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그런 분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한국일보측은 최창식씨가 언제 장재국 회장의 비서로 있었는가를 묻는 질의에 7월 17일 낮 12시 현재까지 응답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일보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창식씨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을 했다는 시점인 96년 2월말경 장재국 회장의 수행비서 역할을 했으며 97년말까지 회장 비서실 직제에 올라 있었다”면서 “그의 마지막 직급은 부장급”이었다고 전했다. 또다른 관계자는 “그는 회장실 비서 직제에 올라와 있는 인물이었음에도 회사일이 아닌 장 회장 개인의 일을 봤기 때문에 97년 말경 노조로부터 ‘회사에 불필요한 인원’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됐고 그 직후에 공식적으로는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편집국의 한 관계자는 “그는 장 회장이 해외여행을 할 때마다 거의 매번 따라다닌 인물”이라고 말했다.
장존이 장재국 회장인가의 여부를 확인할 때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기에 가장 쉬운 것은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를 대는 것이다. 즉 장존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을 하고 있던 96년 2월 말 만약 장 회장이 국내에 있었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그는 큰 의혹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일보측은 그의 출입국 기록을 통해 알리바이를 증명해보라는 <말>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질의서 참조, 출입국관리소는 본인과 그 친척에 한해 출입국관리기록을 보여주고 있다.)<말>의 확인 결과 장 회장은 그 때 미라지호텔에 투숙해 있었다.
장재국 회장은 1952년 서울에서 장기영 한국일보 창업주의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70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90년부터 3년간 한국일보 사장을 지냈다. 당시 한국일보 회장이던 큰형 장강재씨가 93년 8월 2일 간암으로 숨지자 장재국씨는 93년 11월부터 97년 1월말까지 회장을 맡았다. 그러니까 ‘장존’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도박을 했던 96년 2월말 당시, 장재국씨는 한국일보사의 회장 신분이었다. 그는 97년 1월말 형인 장재구씨에 밀려 회장직에서 물러났으나 98년 10월에 다시 복귀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는 한국일보 주식의 9.4%를 갖고 있다. (최대주주는 작고한 장강재 전 회장의 직계가족들과 그들의 영향권안에 있는 백상문화재단으로 51% 소유).
장재국 회장은 97년 1월3일 한국일보 지면을 통해 ‘1997년 새해, 우리의 다짐’을 발표했다. 그 중에는 한국경제를 걱정하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난 한해는 나라의 경제가 어려웠습니다. 문민정부 출범이래 가장 힘든 한해를 언론계도 국민과 함께 견뎌 왔습니다. 여러 경제지표와 전망들은 지난해에 이어 새해에도 경제적 난국이 지속될 것임을 말해주고 있어 걱정이 큽니다. 특히 가슴아픈 일은, 적지않은 직장의 근로자들이 평생을 일하던 직장과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에게서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새해의 다짐을 했던 장 회장. 그토록 국가경제가 힘든 시절에 20억원에 달하는 거금을 3일간의 불법도박으로 날렸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것은 실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장 시절인 92년 1월에도 그는 미라지호텔에서 50여만달러를 차용해 도박을 했다는 설로 로스엔젤레스 교포신문(선데이저널) 에 실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일보 장재국, 사건 발생 4년 만에 끝내 구속
한국일보는 1954년 창간이래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다. 재정난이 악화돼 한빛은행 등 채권은행단이 한국일보 주식의 59.7%를 담보로 소유하고 있는 상태다. 한국일보 내부에서는 이번 기회에 경영진과 관련된 각종 비리의혹들이 해소되어 한국일보가 안팎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적지 않다.
문서가 보여주는 진실에는 한계가 있다. 검찰의 수사기록에는 장존이 장재국 회장일 수 있다는 높은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어느 대목에도 장재국이라는 세 글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건발생 4년만에 끝내 구속된다.
9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원정도박 사건 연루의혹을 받아온 장재국(50) 전 한국일보 회장은 로라 최 리스트사건이 표면화 된지 4년만에 도박혐의로 수사선상에 올랐던 `장존”이라는 인물이 한국일보 장재국 회장이라는 결정적 단서를 포착, 끝내 구속 수감 됐다.
장 씨는 공식 확인된 것만으로 쳐도 90년대 초반부터 해외 원정도박을 벌이다가 로라 최 리스트사건이 표면화 된지 4년만인 2002년 7월에 구속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