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X파일로 뜬 ‘道德君子’ 노회찬의 선택
‘돈 받은 일 없다’ 끝까지 손사래
‘합리적 진보’, ‘깨끗한 정치인’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 결국 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댓글조작의혹사건의 주범 드루킹측으로 부터 5천만원대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의혹과 관련, 특검의 수사칼날이 자신에게로 향하자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노 의원은 유서를 통해 ‘4천만원을 받았으나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드루킹을 알지도 못하고 돈을 받지 않았다’고 강력부인했으나 입장을 백% 선회, 돈을 받았음을 시인한 것이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노의원이 정의당 원내대표로서 드루킹특검법에 강력히 반대했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눈길을 끌고 있다.
노회찬 의원을 스타 정치인으로 만든 것은 이른바 삼성 X파일에 있는 떡값 검사들을 폭로하면서부터다. 이로 인해 노 의원은 검사들로부터 고소를 당해 의원직을 박탈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도 현실정치의 벽, 즉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
<안치용 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 노회찬 빈소
정의당 원내대표 노회찬의원, 지난 23일 오전 9시38분 서울시 중구 신당동의 한 아파트에서 투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은 한 아파트의 3,4호라인의 17층과 18층 사이 창문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현장에는 노의원의 외투와 외투 내에서 신분증이 들어있는 지갑, 정의당 명함, 유서 3통등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진보의 큰 별이 추락한 것이다. 노 의원이 자살한 것은 드루킹 측으로 부터 5천만원대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 자신의 고교동창인 도모변호사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된 것은 물론, 특검이 공개적으로 노 의원의 소환을 시사하는 등 강도높은 수사를 진행하는 데 대한 압박감 때문이었다는 지적이다.
노 의원은 당에 남긴 유서에서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 부터 4천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며 돈을 받은 사실은 시인하고 대가성은 부인했다. 또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회원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 말은 노 의원이 처음에는 이 돈을 불법 정치자금으로 인식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미묘한 대목이다. 노 의원은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 잘못이 크고 책임이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밝혔으며, 그 방법으로 자살을 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유서는 노 의원의 평소 주장을 180도 뒤집은 것이다. 노 의원은 드루킹 관련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강력하게 부인했었다. 특히 지난 7일에는 JTBC 뉴스룸에 출연, ‘나는 언론기사를 보고 알았는데, 내가 그 기사를 보면서 신기하게 생각한 것이 그 기사에 따르면 나한테 돈을 주려고 모은 시점이 2016년 3월이다. 그때 문재인 정권에서 내가 입각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때는 내가 국회의원도 아니었고, 국회의원 하기 위해서 국회의원 출마준비에 정신없을 때인데, 아직 탄핵사건도 나기 전인데 거기서 무슨 입각이니 국민연금이니 하는 얘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발상이다’라고 말했다. 돈이야기가 오고간 적도 없고 자신도 보도를 보고 최근에야 알게 됐다는 것이다. 노 의원은 지난 20일 여야원내대표단의 일원으로 워싱턴DC를 방문했을 때도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했었다.
노의원은 심지어 지난 4월말에는 자신의 아내의 운전기사로 근무한 경공모 회원 장모씨에 대해 드루킹측이 3백만원을 전달한 것과 관련, 드루킹과 경공모 회계 담당자, 그리고 장모씨가 유죄선고를 받은 사실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고 부인했었다. 노 의원은 당시 기자들에게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고, 너무 놀라서 캠프관계자들에게 물어봤다’며 자신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했었다.
정치자금의 벽을 넘지 못하고…
노의원은 금품수수의혹을 부인한 것은 물론 드루킹특검법에 강력하게 반대했다는 사실도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는 지적을 낳고 있다. 원내의석은 6석이지만 결정적 국면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는 정의당은 지난 5월 특검법안 논의때 ‘검경수사에서 새로운 문제가 드러나면 그때 특검을 논의할 논의해도 될 일’이라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당시 자유한국당과 바른 미래당은 물론 정의당과 공동교섭단체를 구성한 민주평화당까지 야 3당 공조체제를 유지해 특검과 국정조사를 추진했지만 정의당은 반대했었고, 5월 18일에야 특검법안에 최종합의 했던 것이다. 그가 유서를 통해 돈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그동안 이 사건과 관련한 그의 행보가 순수성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정의당이 드루킹 특검을 반대한 이유가 금품불법수수 때문이었냐’고 따지기도 했었다. 드루킹특검 반대 는 결과적으로 그에게 돈을 준 드루킹에게 유리한 행동이었으므로 자연히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노 의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노 의원에 대해서는 특검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특검은 노 의원에 대해 ‘공소권 없음’결정을 내리더라도 ‘금품을 준 사람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안 된다’며 ‘금품을 건넸다는 진술도 있다’고 강조했다. 특검은 노의원을 연결해주고 2016년 수사 때 허위증거를 제시, 불기소처분을 받도록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도모변호사에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지난 19일 법원은 ‘증거위조교사혐의에 관해 법리상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었다. 노 의원이 유서를 통해 금품을 받았다고 밝힘에 따라, 특검은 다시 도변호사를 집중 수사, 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 의원의 고백으로 과연 지난 2016년 12월말 이 사건을 불기소처분했던 검찰의 결정이 과연 타당했는지, 박근혜 탄핵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당시 야권의 눈치를 보며, 유력한 야권인사인 노 의원에 대한 봐주기 수사를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여지도 충분해 보인다.

▲ 드루킹 김동원
노동운동 대부, 영원한 합리적 진보
노 의원은 정치자금의 벽을 넘지 못하고 목숨을 끊었지만 ‘합리적인 진보’를 추구, 진보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바꾸었다는 점에서 장점이 많았던 정치인으로 기억된다. 무엇보다도 그가 자신의 몸을 던져 노동운동에 앞장섰다는 사실은 말만 앞세우는 다른 진보정치인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이다. 고려대에 다니다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직업학교에서 용접을 배워 용접기능사 자격증을 딴뒤 서울, 부산, 인천 등에서 위장취업을 했었다. 노동운동의 위해서는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1982년 한국노동당 창당준비위위원회를 만들기도 했으며, 독자적 진보정당을 만들었고, 2004년 17대 국회에 진출, 눈부신 의정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노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에는 서울 노원병에 출마, 영화배우 남궁원씨의 아들인 홍정욱 씨에게 패했었다. 하지만 본보취재결과 홍정욱 씨는 제18대 국회의원선거당시 부인 손정희씨 소유의 하와이부동산을 재산시고에 포함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공직선거법을 위반했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국회의원 출마자가 선관위에 허위재산신고를 하면 후보자격이 박탈된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은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았고 지난 2016년 12월 본보보도를 통해 밝혀졌었다. 노의원이 18대 선거에서 무자격후보에게 금배지를 사기당하는 아픔을 겪었던 것이다.
노 의원은 ‘잘못이 크고 책임 무겁다, 법정형으로도, 당의 징계로도 부족하다’며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고 죽음을 택했다. 만약 그가 죽음을 택하지 않고 이같은 사실을 국민에게 털어놓고 잘못을 인정하며 용서를 구했으면 어땠을까? 그리고 사법부의 판단을 받은 다음,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정치판에서 약자의 편에 서줬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 의원의 자살은 좀처럼 반성과 사과를 찾아보기 힘들고 몰염치가 판치는 현실에서 우리사회가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