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몰리면 “농담”… 피해자 경우 “경악”
뿌리 깊은 인종차별 ‘세계여론에 뭇매’
지난 12일 일요일 워싱턴DC에서 열린 극우집회는 실제로 30여명 정도가 나와 시작하기도 전에 이에 맞불작전에 나선 수천명의 인종차별반대 집회자들에게 눌려 버렸다. 그러나 이날 집회는 미국사회에서 갈수록 증가하는 인종갈등의 어두운 면을 다시 각인시키면서 미국 사회에 커다란 우려를 낳게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인들의 인종차별 행위는 국내외를 통해서 다양하다. 이곳 코리아타운에서 “맥짱” “짱괘” 소리도 흔하게 들을 수 있다. 최근 국제적으로도 논란이 된 한국의 제주도 예멘 난민 수용 논란은 한국의 뿌리깊은 인종차별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미국 언론을 포함해 세계 각지의 언론들이 보도해 새삼 “어글리 코리안”이 다시 나오고 있다. 미국에선 설사 인종주의적 생각을 하고 있더라 도 그런 말을 꺼내는 것 자체를 범죄로 취급받을 수 있다. 한국에는 실제로 인종차별을 막는 아무런 법도, 제도도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성진 취재부 기자>
워싱턴 포스트지는 지난 2013년 경제 발전과 인종차별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인종 차별 의식을 수치화 할 필요를 느껴 만들어진게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s Survey)에서 인종차별이 심한 한국은 특이한 사례(Outlier)라고 소개했다. 소득수준과 교육수준이 높고, 평화로우며, 단일민족인 한국이 관용도가 낮은 건 매우 의외였다. 한국인의 1/3 이상이 다른 인종과 이웃에 살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미국(5%)에 비하면 6배 정도 많았다. 조사 연구관인 마이어스(B.R.Myers)는 한국인이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국가적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풀이했다. 최근 동남아 이민자의 유입으로 인한 한국 내 사회문제, 일본과의 뿌리깊은 대치관계도 원인으로 판단된다. 한국에서 인종차별은 은밀하게 전개된다. 이주민 노동자가 저소득층 일자리를 빼앗아간다며 경제 논리를 앞세우거나 다른 문화권 국가를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일이 수시로 벌어진다.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지면 ‘인종차별인 줄 몰랐다’고 해명하는 경우도 많다.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다.
인종차별, 미국에 비해 6배 이상 높아
지난 2014년 7월 뉴스위크 한국판에서 아일랜드 출신 존 파워 기자는 “한국인은 인종차별의 가해자가 됐을 땐 ‘악의 없는 농담’이라고 주장하지만 피해자가 되면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지적 했다. 과거 TV프로그램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전국 노래자랑’의 한 흑인 팬도 한국인들의 외국인에 대한 차별은 36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그의 부인은 사람들이 그를 만져본 뒤 손에 뭐가 묻지 않았는지 손을 턴 적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한 한국인은 자신은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토종’한국인인데 동남 아시아인과 흡사한 외모 때문에 심한 고충을 겪고 있다고 고백했다. 길거리에서 그에게 ‘더러운 외국인’이라며 욕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화를 내며 막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다른 TV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하는 가나 국적의 흑인, 샘 오취리도 방송에서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자신은 단역배우로 일하는데, 한국에서는 촬영 시 흑인은 뒤에, 백인은 앞에 서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 과거 동대문에 샘의 광고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한 친구가 흑인 사진이 한국에 걸렸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
아 눈물을 흘렸다는 일화는 한국인들의 흑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의 ‘국민 다문화 수용성 조사’(2012년)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다문화 수용성 지수는 성인은 51.81점, 청소년은 60.12점에 그쳤다. 또 성인 중 “다양한 인종·종교·문화가 공존하는 것이 좋다”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고작 36%였다. 그리고 국민 정체성 으로 ‘혈통’을 중시하는 비율은 86.5%로 매우 높았다. 이렇듯 한국인들의 다문화 수용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인종차별의 원인이 된다. 한국인들은 이주 노동자와 결혼 이민자,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을 인종차별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모두 인종차별이다.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2012년)’에서는 결혼이민자의 사회적 차별 경험 비율이 41.3%로 나타났다. 한국인들의 인종적 편견 및 차별은 심각하고, 또 개선이 시급한 문제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으나 다문화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는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미국은 1964년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민권법을 제정했고, 호주는 75년 인종차별금지법을 통해 ‘인종주의적 이유로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거나, 모욕하거나, 굴욕감을 주거나, 위협하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예멘 난민 혐오 조장 ‘히스테리’ 수준
지난 6일 미국에서 외교·안보 전문 매체로 평가받는 포린폴리시(FP)는 ‘난민 문제로 스트레스받는 한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페미니스트와 청년, 이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뭉쳐 예멘 난민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며 “이러한 행위는 거의 히스테리 수준”이라고 전했다. 이 잡지는 최근 한국의 ‘제주도 예멘 난민 반대’ 현상을 두고 여러 외신이 “히스테리 증세와 가깝다 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외신들은 한국인들이 예멘 난민에 관한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제노포비아 (xenophobia·외국인 혐오)’를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제주도에 난민 신청을 한 예멘 성인 남성 이 500명을 넘었다는 게 알려지자 청년층과 여성을 중심으로 ‘난민 혐오’ 정서가 퍼졌다. FP는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난민법·무사증입국 폐지” 청원에 답한 내용에 제노포비아가 배어있다고 진단했다. 박 장관은 지난 1일 청와대 소셜미디어(SNS)에 출연해 “난민 ‘본국 강제송환’이 가능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고, 난민인정 사유에 허위사실이 발견 되면 난민 지위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가짜 난민’을 찾아내겠다”는 박 장관의 말 자체를 제노포비아로 본 것이다. 이 매체는 예멘 난민을 대하는 문재인 정부의 태도도 비판했다.
FP는 “진보적인 문재인 정부에서 난민 혐오 문제가 불거져 다소 실망스럽다”며 “문재인 정부 지지층이 난민 문제에 민감한 청년과 여성, 중산층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가 지지층의 눈치를 보느라 예멘 난민을 홀대 한다는 것이다. 한국리서치에 따르면 여성(61%)과 2030세대(66~70%), 중도보수층(60~61%)이 주로 난민을 반대했다. 특히 FP는 ‘제주 실종 여성 사건’에서 “난민이 여성을 살해했다”는 소문이 떠돈 일을 두고 “한국 사회에 제노포비아와 인종차별주의가 만연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그 여성 사건은 단순 실족사 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외신이 한국의 이같
은 현상을 비판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뉴욕타임스(NYT)도 지난달 1일 ‘한국인의 끝없는 인종차별주의’라는 독자 기고문을 실었다. 이 기고문에서 “한국인은 이방인에 관대하지 않다. 예멘 난민 사태가 이런 한국인의 태도에 방아쇠를 당겼을 뿐”이라며 한국인이 가진 제노포비아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NYT는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 이 나 한국인 난민이 생겼는데, 지금 예멘 난민과 같은 대우를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일침을 놓았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지난달 12일 “한국에 온 난민들이 가짜 뉴스와 난민 반대에 시달리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인터넷에 난민에 대한 근거 없는 소문이 떠돌아 난민 공포증이 조성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에 예멘 난민이 들어오자 “유럽이 난민을 수용한 후 성폭행 사건이 늘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블룸버그 통신도 지난 6월 29일 “한국이 예멘 난민 문제를 다룰 때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펼치는 반 이민자 정책을 참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난민 공포증이 대세’
지난 2014년 한국에서 활동하는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의 외국인 투수 쉐인 유먼(35)은 등에 “누군가 듣고 있다”라고 쓴 티셔츠를 입고 부산 사직구장에 나타났다. 티셔츠 앞엔 ‘말조심’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국인 선수가 인터넷 방송에서 “유먼이 웃으면 하얀 치아와 공이 겹쳐 보인다 (유먼은 흑인이다)”는 발언을 하는 등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 분위기에 항의하는 표시였다.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2004년 72만여명에서 지난 2013년 현재 157만명으로 급증했다. 단일민족국가로 보기 어려운 다문화 사회가 됐지만 다른 인종·민족·문화를 수용하는 자세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이대로 가다간 미국 퍼거슨시의 인종차별 소요사태도 더 이상 먼 나라의 일만은 아니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전히 생소한 인종차별의 개념을 정립하고 체계적인 교육에 나설 때가 됐다. 한국 사회의 외국인·인종 차별이란 사례는 많다. “짱개(자장면)나 시켜 먹자.”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김모(21)씨는 지난 6월 교내에서 친구들과 음식 배달을 주문하려다 중국인 유학생의 항의 를 받았다. ‘짱개’란 표현이 중국인을 비하한다는 이유였다. 그는 10일 ‘쪽바리’(일본인을 비하 하는 속어) ‘김치녀’(한국 여자를 비하하는 속어) 같은 표현이 인터넷에서 흔히 사용되기에 ‘짱개’란 말도 흔한 농담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런 차별적 언어는 인터넷을 타고 젊은층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튀김옷 색깔이 검은 ‘흑형(남자 흑인을 부르는 은어) 치킨’
을 두고 벌어진 논란도 마찬가지다. 이 메뉴를 본 미국인이 트위터에 인종차별적이란 글을 남기면서 인터넷에서 논쟁이 붙었다. ‘흑형’이 흑인을 친근하게 대하는 표현 이란 주장에 한 네티즌은 “흑형 치킨을 뉴욕 뒷골목에서 팔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생각해보면 인종차별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성균관대에서 국어학을 전공하는 말레이시아인 소열녕(33)씨는 한국인의 ‘집단성’에 여러 번 불편 한 경험을 했다. 그는 “한국인과 의견 차이가 생기면 ‘너는 외국인이라 우리 정서를 모른다’고 말하곤 한다”며 “우리가 살면서 분명히 차이를 느낄 수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상대방의 종교나 국적을 탓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자기가 마치 5000만명 한국인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집단이 아닌 개인의 차이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4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수는 175만 명, 국내 다문화 가족은 약 80만 명에 이른다. 2014년 10월 유엔 인종차별 특별 보고관으로서는 처음으로 한국에 공식 방문 해서 인종차별 실태를 조사한 무투마 루티에레 보고관은 기자회견에서 “관계 당국이 관심을 둬야 할 심각한 인종차별이 분명히 존재 한다”고 말했다. 과거와는 달리 한국 내에 다양한 인종의 사람 들이 공존하게 되었으나, 과거부터 지적된 한국인들의 배타적 태도와 행동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인 배타적 감정이 문제
인종차별은 전 세계적으로도 큰 문제다. 최근 미국에서는 비무장 흑인이 백인 경찰의 공권력 남용으로 인해 사망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며 각지에서 강력한 항의 시위가 벌어졌다. 2011년 노르웨이와 이탈리아, 2014년 미국 텍사스에서 각각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공통점은 인종차별 주의자의 범행이라는 점이다. 이와 유사한 사건들, 그리고 그 외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많은 사건 들은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종차별은 왜 발생하는 것일까?
국립국어원 표준어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인종차별이란 ‘인종적 편견 때문에 특정한 인종에게 사회적, 경제적, 법적 불평등을 강요하는 일’이다. 따라서 모든 인종차별은 잘못된 인종적 편견에서 시작된다. 인종의 신체적 특징과 심리적 특성을 연관 지어 생각함으로써 인종적 편견이 생겨나고, 이에 따라 인종차별이 발생한다. 요컨대, 나와 다른 겉모습을 가진 상대에게 가지는 편견에서 인종차별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에서는 특히 단일민족이라는 믿음이 인종차별의 원인으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2006년의 한 조사에서는 성인 남녀 2000명 중 62.5%가 ‘우리 민족을 단일 민족이라고 생각 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렇게 국민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단일민족사상 과 더불어 혈통 중심의 민족관은 그동안 한국 내에서 다문화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 차별의 원인이 되어 왔다. 아울러 한국인들은 각종 매체의 영향으로 오리엔탈리즘이 반영된 왜곡된 시각으로 인종의 우열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즉, 무의식적으로 서양의 백인이 동양의 황인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2014 한국 인종차별 실태 보고대회’에서 연세대학교 김현미 교수가 “한국의 인종주의는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인 아시아인을 차별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라고 말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우리가 인종차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른 국적과 인종의 사람들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자녀들에게도 가르처야 한다. 모든 인간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가르처야 한다. 아니면 그 어린이가 커서 다른 인종으로부터 당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