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도 ‘최고’지만, 논란도 ‘최대’
“지금 내앞에 그대가 있소. 그러면 됐소…” 애기씨가 연모하는 남자에게 하는 말이다. 지금 한국 tvN방송의 주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지금 국내 인기와 병행하여 미주의 시청자들도 주말에 비디오 상점에 달려가고 있다. 그래서 코리아타운의 비디오 상점들이 오랜만에 <미스터 션샤인>으로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이 작품은 ‘태양의 후예’ ‘도깨비’를 제작한 김은숙 작가와 이응복 PD가 3번째로 호흡을 맞추는 작품에다 430억원(미화 약4,000만달러)이라는 사상 초유의 제작비에다 주연 배우로는 이병헌과 김태리를 포함한 호화 배역들이 출연해 국내외 시청자들이 모두 인기1위 드라마로 일찌감치 점찍은 상태이다. 스토리 역시 고종황제가 다스리는 1900년대 초 열강들이 호시탐탐 조선을 노리는 시절에 조선을 대표하는 사대부의 아가씨가 이름없는 의병으로 나서면서 미국 해병대의 조선인, 일본 사뮤라이가 된 조선인, 양가 집안에서 정한 정혼자 등 세 남자와의 아슬아슬한 연모와 짝사랑을 벌이는 드라마이기에 흥미도 매회 증폭되어 간다. <성진 취재부 기자>
코리아타운 8가와 옥스포드 쇼핑몰에 자리잡은 ‘비디오 코리아’ 상점 주인은 요즘 토, 일요일이면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 DVD를 빌려가는 고객들로 신바람이 났다. 업주 정씨는 “요즘 ‘미스터 션샤인’을 빌려보는 고객이 매주 50여명이 넘는다”면서 “이같은 방 송 드라마 열기는 최근 들어 이례적이다 ”라고 말했다. 또 정씨는 “이 드라마가 입소문이 나면서 그야말로 폭발적 인기”라면서 “소제 자체도 신선하면서 과거에 볼 수 없었던 시대극이란 점도 인기를 보태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스터 션샤인>은 총 24부작인데 처음 시작한 지난 7월 7일에는 8.5%로 시작했는데 매회 거듭할 수록 시청율이 계속 기록을 깨면서 지난 8월 26일(일) 16부는 시청율이 16%를 넘어서 당일 시간대 한국 드라마 중 최고 시청율이었다. 앞으로 8부작이 남아 오는 9월 23일(일)에 막을 내린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번에 빌려 이번 9월 노동절 연휴에 ‘방콕’을 즐기면서 시청하면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 매회 한편의 영회를 극장에서 보는 느낌의 TV드라마라는 점도 시청자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시대는 조선의 외교권이 뺏긴 1905년부터 조선이 망하는 1910년 사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미스터 션샤인>은 노비 출신으로 어린시절 기구한 사연 탓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인이 된 유진 초이(이병헌 분)와 사대부 영애이지만 비밀 의병으로 활동 중인 고애신(김태리 분)의 이야기를 그린다.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가 모두 주인 양반에게 죽음을 맞이하고 미국으로 가 군인이 돼 돌아온 유진 초이가 의병으로 활동하다 부모가 죽고 조부에게 맡겨져 사대부가의 ‘애기씨’로 동네 사람들에게 추앙받지만, 부모의 의기를 물려받은 듯 총포술을 배워 밤이 되면 요인 암살에 나서는 고애신. 그리고 백정의 아들로 태어나 조선인들에게 조차 핍박받다 일본으로 건너가 낭인이 돼 돌아온 구동매(유연석). 친일파 아버지에 의해 일본인에게 팔리듯 결혼했지만 늙은 남편이 죽고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글로리 호텔을 운영하는 쿠도 히나(김민정). 이처럼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부모대의 상처 하나씩을 안고 있다. 그런데 구국에 대한 뜻을 저버리지 않고 곧게 살아가는 고애신을 제외하고는 유진, 구동매, 쿠도 히나 모두 조선에 대한 증오와 분노를 갖고 있다. 그들은 한때 모두 조선인이었지만 지금은 미국인이거나 일본인 혹은 돈을 주는 자의 국적을 가진 이들로 살아간다.
3남자와 사대부 아가씨
드라마에서 이병헌은 40대 후반의 나이에 맞게 중후한 분위기를 보이고, 김태리는 20대 후반 이지만 실제보다도 어려 보이는 비주얼이지만 이들의 연기력과 김은숙 작가의 대본이 만나 시너지 효과를 냈다. 유진 초이와 고애신은 같은 목표물을 향해 사격하려다 처음 만났고, 이후 서로에 대한 호감을 느꼈다. 그러한 상황 속 영어 문외한 고애신이 ‘러브’에 대한 뜻을 모른 채 적극적으로 다가서며 이들의 로맨스엔 불이 붙었다. 약재 창고에서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고백하고 포옹하는 등의 장면은 시청자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 충분했다. 고애신의 곁을 떠나기에 앞서 유진 초이가 건넨 장갑, 오르골 등도 애틋함을 배가시켰다. <미스터 션샤인>은 지금껏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시대극을 형식으로 가져왔다. 구한말 혼돈의 시기에 이름 모를 의병들의 항일투쟁기를 소재로 삼았다.
넷플릭스를 통한 전 세계 동시 방영 같은 글로벌한 접근답게 미술에 상당한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이 작품은 당대의 여러 이국 문화들이 뒤섞인 시대의 풍경을 매력적으로 연출해 냈다. 그리고 그 위에 의병들이 어떤 우여곡절을 겪으며 탄생하는가의 과정을 그리면서, 김 작가 특유의 멜로적 구도까지 담아 냈다. 우선 <미스터 션샤인>은 국내 TV드라마 사상 430억원(미화 4천만 달러)이라는 최대 제작비가 투입되어 화제를 모았다. 애초 이 드라마는 SBS에서 방영 제작하려 했으나 430억원이라는 제작 비에 도박을 꺼리는 바람에 결국 tvN이 맡았다. 제작비가 엄청나 간접광고가 눈에 많이 띈다. “내부자”들로 다시 한번 배우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은 이병헌의 ‘아이리스’ 이후 9년만의 드라마 복귀작,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로 데뷔해 국내외 영화제 신인상을 석권한 라이징 스타인 김태리의 첫 드라마 출연, 무엇보다 태양의 후예와 도깨비의 연타석 흥행을 이끌어 낸 김은숙 작가의 야심작이라는 점에서 많은 기대가 모았는데 예상대로 대박 인기 상승이다. 특이한 점은 드라마 자체가 영화처럼 21:9 종횡비로 제작되었다. 다만 tvN 방송 송출 자체는 16:9 규격으로 되다보니 16:9 규격에 맞춰서 레터박스를 추가한 상태로 방송된다. 드라마에서 위 아래로 검은띠가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라고 한다. 유진과 애신이 서로의 정체를 확인하는 2회 엔딩은 김은숙 작가의 히든카드와도 같았다. 많은 시청자들이 손으로 상대방의 코와 입을 가리고 서로의 눈매를 확인하는 두사람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장면은 오래오래 기억하게 되는 강렬하고 상징적인 장면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김은숙만의 고도의 전략인 셈이다.
서로 눈매 확인하는 장면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화제가 분분하자 자연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왜곡 시비나 잘못된 역사 고증 등 시비거리도 많이 나오고 있다. 타운내 8가와 옥스포드 쇼핑몰에 자리잡은 비디오코리아(Video Korea)에 최근 이 드라마 DVD를 빌리려 온 한 미군 해병대 출신 한인은 “드라마가 재밌다고 하여 빌려보았는데 드라마에 미해병대위로 나오는 이병헌이 입고 있는 미 해병대 군장이 잘못되었다”면서 “당장 방송사에 전해 고치도록 해보라”고 독촉했다. 이 드라마는 방영 초반에 드라마 내용이 친일성향이라는 지적도 받아 제작진이 이례적으로 사과하기도 했다. 극 중 구동매 캐릭터로 인해 촉발된 ‘친일 미화’와 역사 왜곡 논란은 역사 고증 문제 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었다. 극 중 구동매가 소속됐다고 설정된 ‘흑룡회’는 그 상부조직인 겐요 샤가 일본 보수 극우 단체로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다는 점에서 ‘흑룡회’를 미화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실제로 문제가 됐다. 제작진은 ‘흑룡회’를 ‘무신회’라는 가상 조직으로 바꾸며 사과문을 올렸다. “격변의 시대에 백정으로 태어난 설움으로 첫발을 잘못 디딘 한 사내가 의병들로 인해 변모해 가는 과정”을 담으려 했다는 해명도 내놨다. 뒤늦게 이런 조치가 나왔다는 건 시대극이라는 만만찮은 장르를 다루면서도 역사 고증에 대해 철저한 준비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 드러낸다.
고증 실패로 구설수
파장은 커져 청와대 국민청원으로까지 이어졌다. 드라마가 ‘피해국과 가해국 입장’을 묘하게 ‘전복’시켜 놓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인물 개개인에게 부여된 서사가 조선이라는 나라를 피해국이 아닌 그것을 ‘자초한 쪽’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일제강점기라는 상황은 일제라는 외부의 적과 동시에 구한말 조선의 무력함이 만들어낸 친일파라는 내부의 적이 조응한 면이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방영 회수가 많아지면서 지적 사항도 많아져 갔다. 그래도 인기는 계속 치솟고 있다. 그러나 잘못된 역사 고증과 역사 왜곡 논란은 그치질 않았다. 구한말 의병운동 연구가인 오영섭 연세대 연구교수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스터 션샤인>이 다룬 신미양요 당시 미국인이 조선 땅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묘사된 장면들과 극 중 고애신이 화승총이 아닌 연발총을 사용한 건 실제와 다르다고 밝혔다. 이 드라마 내용에는 한성 한복판에서 미군과 일본군이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장면도 나온다. 이를 두고 최형익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한 언론 기고문을 통해 <미스터 션샤인의 한미외교사의 역사왜곡>이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최 교수는 “구한 말 어느 시기를 다루고 있기에 그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을까”라면서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구한말의 국제정세를 올바로 이해한다면 이런 일은 절대로 발생할 수 없다. 더구나 이 작품이 다루는 1900년대 초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면서 “역사왜곡이다”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미국 대통령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이다. 원래 미국의 대조선 외교 원칙은 중립과 불간섭주의였지만 루스벨트 행정부 들어 친일로 급격히 기울었다.
왜냐하면, 만주지역에서의 러시아의 팽창을 일본이 나서서 막아주기를 내심 바랐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할 진대 어떻게 미군과 일본군이 백주 대낮에 한성(서울) 한복판에서 총을 겨누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묻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문제는 구한 말의 한미관계를 심각할 정도로 왜곡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 따라서 드라마에서처럼 미해병대 장교가 고급 호텔에서 묵으며 대리 공사로 생활하는 일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일이다. 최 교수는 작가가 세계 2차대전 이후에나 가능했을 법한 초강대국으로서 미국의 이미지를 이제 갓 세계열강으로 부상하던 세기의 전환기에 덧칠했다고 지적하면서 있지도 않은 일, 아니 보다 정확히 실제 역사에서 발생할 수 없는 일을 작가적 상상력에만 의존해서 그려내는 것은 중대한 역사왜곡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미스터 션샤인>은 흔들리고 부서지면서도 엄중한 사명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가는 이름 없는 영웅들의 유쾌하고 애달픈, 통쾌하고 묵직한 항일투쟁을 그린 역사 드라마다. 각각의 인물들은 더할나위 없이 매력적이었다. 모든 드라마들이 1,2회에서 공을 드린다. 시청자들을 계속 잡아 두고 싶기 때문 이다. 2회에서 의병이었던 부모의 피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애신은 사회적 금기와 할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바깥세상에 눈과 귀를 기울인다. 당시를 살아 가던 여성에겐 감히 허락되지 않았던 일이다. 그럼에도 애신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끝끝내 ‘총’을 손에 쥔다. 이 ‘총’의 끝이 어디인가. 드라마를 보아야 하는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