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가 삼성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삼성 노조와해 연속보도…의심스런 속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쓰러진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의 사이가 벌어졌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건희 회장의 처남인 홍 회장은 한 때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불법정치자금을 정치권에 전달할 정도로 수족에 불과했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 회장이 쓰러진 후 홍 회장은 누나이자 이 회장의 처인 홍라희 여사를 등에 업고 이른바 ‘역성혁명’까지 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홍 회장에게 조카 이재용 부회장은 재판정에서까지 서운함을 토로할 정도로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됐다. 삼성그룹이 중앙일보와 JTBC에 대한 광고 집행을 대폭 줄인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주목할 만한 점은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에게 타격을 주기 위한 홍 회장 측의 공격은 현재 진행형이란 점이다. 이미 홍 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이 부회장에게 타격을 입혔으나, 이 부회장은 침몰하지 않았다. 여전히 정치 그리고 삼성에 미련을 두고 있는 홍 회장은 언론권력을 등에 업고 삼성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본국 언론에는 거의 보도되고 있지 않지만, 현재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공작에 대해 검찰이 높은 강도로 수사하고 있고 조만간 이병철 회장 이후 유지되던 삼성의 무노조 경영도 막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를 만든 사람이 바로 홍 회장의 입김 아래 있는 JTBC라는 사실이 거의 알려진 바 없다. JTBC는 지난 5월 삼성 노조 와해에 대한 연속 보도를 통해 결국 검찰 수사까지 이끌어 냈다.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이 씨와 홍 씨 일가의 힘겨루기를 들여다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은 이병철 고 삼성그룹 창업주 때부터 유지되던 원칙이다. 삼성 내부에서는 노조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계속 되어 왔지만 그 때마다 노조 설립은 번번이 실패해왔다. 삼성그룹이 조직적 차원에서 이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삼성일반노조라는 외부 단체까지 생겼지만 삼성은 이를 설립한 사람의 일거수일투족까지 감시했다. 하지만 삼성의 이런 노조 파괴 공작이 한 번도 언론의 주목을 받거나, 사법기관의 수사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본국의 언론이나 법조계가 사실상 삼성의 영향권 아래 있었기 때문이다.
JTBC 집요하게 노조와해 공작 보도
그러나 최근 삼성그룹 노조 와해 공작에 대한 검찰의 대대적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것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는 이유는 본국 언론에서 이를 거의 받아쓰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재용 부회장이 평양을 방문하기 전날도 검찰은 삼성그룹 계열사 에버랜드에 대한 압수수색까지 단행했다. 이런 소식은 거의 단신으로 처리됐다.
그런데 삼성 노조 와해 공작을 올해 초부터 꾸준하게 보도했던 언론이 있다. 바로 홍석현 회장이 사실상 사주로 있는 JTBC다. JTBC는 집요할 정도로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공작을 보도해왔다. 물론 JTBC가 먼저 이를 보도한 것은 아니다. 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송 관련 변호사 비용 대납 의혹 관련해 삼성그룹을 압수수색한 과정에서 노조 와해 문건이 발견됐고, 이에 따른 수사에 나선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한국 언론들이 이를 외면할 때 JTBC는 꾸준히 이 사실을 보도했다. JTBC가 삼성 노조를 공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JTBC는 2013년 심상정 의원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삼성그룹 노조 와해 공작을 최초로 보도했다.
노조를 와해시키려는 삼성그룹의 공격을 JTBC가 계속해서 할 수 있는 배경은 둘이다. 하나는 사주인 홍석현 회장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하고, 다른 하나는 삼성의 가장 약한 고리가 바로 노조 문제라는 사실을 홍 회장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홍 회장은 이건희 회장의 수족처럼 일하면서 노조 문제에 대한 삼성그룹의 대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JTBC가 개국과 함께 이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JTBC는 홍석현이 100% 지분을 보유한 중앙미디어네트워크와 29.8%를 보유한 중앙일보가 각각 25%와 5%씩 보유하고 있다. 이건희·이재용 부자가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수직적 지배구조를 구축했다면 홍석현은 중앙미디어네트워크와 제이콘텐트리를 중심으로 미디어 그룹을 확장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여전히 이건희의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JTBC는 홍석현의 소유라고 보는 게 맞다. 즉 홍 회장이 중앙일보로 삼성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삼성과의 관계가 걸림돌이 되지만, JTBC는 그렇지 않다.
이재용, JTBC에 노골적으로 서운함 토로
이재용 부회장이 그런 JTBC에게 서운함을 토로했다는 것은 지난 주 본지보도를 통해서도 한 번 기사화 된 적이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 농단 관련 재판에서 2016년 2월 15일 대통령 박근혜씨와 독대 자리에서 박씨가 JTBC를 두고 ‘이적단체’라는 표현까지 쓰며 흥분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은 박씨로부터 “홍석현 회장이 외삼촌이지 않느냐. 중앙일보 자회사 뉴스 프로그램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 이날 독대의 목적은 손석희 사장 교체 요구였는데 비단 박 씨만의 요구사안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역시 삼성비판보도를 앞장서온 JTBC가 눈엣가시였다. 그러나 홍 회장은 결과적으로 손 사장을 건드리지 않았다. 국정농단 국면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앞장서서 비판 보도했던 JTBC가 ‘외삼촌이 세운 회사’라는 점에서 삼성家의 당황스러움과 분노는 상당했는데, 이재용 부회장이 2017년 2월5일 구속 수감되며 이 감정은 정점을 찍었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지 몰라도 이후 홍 회장은 서울시 중구 서소문 중앙일보 빌딩에서 나와야 했다. 그리고 중앙일보에 대한 삼성의 광고 지원은 급감했다. 중앙일보가 있던 삼성생명빌딩은 중앙일보 로고까지 떼버렸다. 그 후 홍 회장은 그해 4월16일 유튜브를 통해 JTBC에 대한 청와대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며 ‘커밍아웃’했다. 홍 회장은 “언론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외압을 받아 앵커를 교체한다는 건 자존심이 용서하지 않았다. 시대착오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JTBC가 삼성그룹의 노조 와해 공작에 대해 꾸준하게 보도해왔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순진하게 손석희 사장 개인의 힘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손 사장의 보도 의지도 작용했지만, 사주인 홍 회장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합리적 시각이다. 본지도 몇 차례 보도했지만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이 씨 일가와 홍 씨 일가의 사이는 급격히 멀어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중앙일보에 대한 삼성의 광고 집행이 급격하게 준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어떤 의미에서 홍 회장이 JTBC 개국과 더불어 삼성그룹의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한 것이다.
어색한 평양 사진
이 때문에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방북에서 이재용 부회장과 홍석현 회장이 함께 참여한 것이 한국 언론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번 방북에서 이 부회장은 경제수행원으로 동행했고, 홍 회장은 한반도평화만들기 이사장이란 직함을 달고 원로자문단 자격으로 특별수행원에 포함됐다. 본지도 지난주에 관련 내용을 박스 기사로 보도했지만, 두 사람이 수행단 일정에 동행하면서 어떤 얘기를 나눴을 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은 한 장의 사진을 같이 찍어 외부에 공개하는 유화적 제스처를 취했지만, 둘이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이번 방북으로 인해 두 사람 간 사이가 단 번에 좋아졌을 것이라고 분석한 것은 순진한 전망이다. 이미 두 사람의 관계는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는 것이 내부의 평가다. 이재용 부회장은 둘째 치더라도 이건희 회장의 두 딸인 이부진, 이서현이 홍 회장에 대한 감정이 아주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JTBC를 앞세운 홍 회장의 공격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경영권 승계가 완전하게 끝나는 그 날까지는 계속될 전망이다.
삼성그룹 노조 와해 공작이 무엇이길래?
삼성그룹의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는 노조 와해 공작이 처음 세상에 드러난 것은 2013년이다. 앞선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JTBC를 통해 처음 폭로했다. 당시 심 의원은 ‘2012년 S그룹 노사전략’이란 이름의 문건을 들고 나왔는데, 지난 2013년 공개된 이 문건에는 삼성지회(구 에버랜드 노조) 조합원들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와 관리, 징계와 해고 등 노조를 와해하기 위한 전략이 담겨 있었다. 이 문건에는 ‘노조 설립 時(시) 즉시 징계할 수 있도록 비위 사실 채증 지속 *SMD(삼성디스플레이)는 문제 인력 개개인에 대한 「100과사전」을 제작, 개인 취향, 사내 지인, 자산, 주량 등을 활용 중’과 같이 불법 사찰 관련 내용이 담겼다.
당시 삼성지회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삼성 관계자 36명을 부당노동행위로 검찰에 고소·고발했으나 검찰은 ‘문건을 누가 작성했는지 알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이 사건은 검찰이 지난 2월 다스 수사 과정에서 삼성그룹의 노조와해 정황을 포착한 데 따라 삼성지회 등 시민단체가 지난 4월 재고소·고발하면서 5년 만에 다시 수사 선상에 올랐다.
사건 관여자는 이 회장을 비롯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전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김순택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등 피고소·고발인 39명을 포함해 참고인까지 1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 8월부터 최근까지 삼성지회 노조 측을 5차례 소환조사하면서 고소·고발장에 적시된 내용을 중심으로 최근 벌어진 사측의 노조활동 방해 의혹에 대해 집중 캐물었다고 한다. 지난 17일엔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본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벌어지기도 했다. 검찰은 사측의 부당노동행위가 입증된다고 판단, S그룹 문건을 지시·승인하고 그 진행 경과를 보고 받은 윗선이 어디까지인지를 확인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