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하는 전우에게
태극기 덮어주며 명예롭게 보내는 의식
지난 14일 LA한국장의사에서 6·25 전쟁 참전용사 예비역중령 고 김대벽 집사의 장례식이 나성영락교회 박은성 목사의 집례로 거행됐다. 이날 장례식에서 일반장례에서는 볼 수 없는 경건한 의식이 진행됐다. 바로 국가유공자에 대한 태극기 관포식이었다. 이날 고인과 함께 6‧25전쟁에 참가했던 참전 용사들이 마지막으로 이별하는 전우에게 태극기를 덮어주며 명예롭게 보내는 의식이었다. 이날 의식에 사용된 태극기는 대한민국 정부가 고인의 참전 공훈을 인정하고 그 명예를 대한 민국이 지켜준다는 깊은 뜻이 있는 국기인 것이다. 이날 장례식장에는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한 LA총영사관 조기가 설치됐다. 또한 고인이 초급장교로 임관된 전시사관학교인 육군종합학교 조기, 6‧25 참전유공자회 조기 등도 설치됐다. 그런데 앞으로는 고 김대벽 참전용사처럼 국가유공자가 사망하면 대통령 명의의 근조기를 볼 수 있다.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지난 6월 1일부터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강화하기 위하여 국가유공자가 사망한 경우 대통령 명의의 근조기를 증정한다고 밝혔다.
대통령 명의 근조기로 격상
지난해 8월 14일 문재인대통령이 독립유공자 유족 초청 청와대 오찬에서 “대통령 명의 조기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기존 국가보훈처장 명의 근조기를 대통령 명의 근조기로 격상한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국가유공자 사망 시 유족 또는 장례주관자가 가까운 보훈관서로 사망신고를 할 경우 장례하는 곳에 따라 보훈병원, 위탁병원, 무공수훈자회 장례단 등을 통해 대통령 명의 근조 기를 증정한다”고 설명했다. 또 유족까지 확대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올해 1월 말 현재 국가유공자는 애국지사, 참전용사, 순직공무원, 5‧18민주유공자 등을 포함해 총 73만 996명이다. 한국에서는 2013년도부터 장례의전선양단이 활동을 하고 있다. 벌써 올해 6월 5일 현재 2163명의 국가유공자 선배 전우들의 장례의전과 6220명의 영구용 태극기를 영전에 올렸다. 장례의전 선양단은 국가유공자가 영면했을 때 예복을 입은 역전의 용사(평균75세, 20여 명)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최고의 예우를 표하는 장례의전 봉사팀이다. 무공수훈자회는 이와 함께 전국의 산야에 잠들어 있는 국가유공자들의 유해를 수습해 전국 광역 시‧도별로 14회의 합동 봉안식을 거쳐 모두 238위의 영현을 국립현충시설에 모시는 일도 병행해 왔다. 올해는 지난 6월 1일부터 국가유공자 빈소에 대통령 근조기를 증정해 국가유공자의 예우를 한층 더 높여준 특별한 호국보훈의 달도 맞이했다.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는 대통령근조기 증정 임무를 부여받고 전국 시‧도지부 선양부장을 미리 소집해 대통령근조기 증정방법 및 중요성에 대해 교육 하고 전쟁기념관 전사자명비 앞에서 전수식을 거행했다. 유공자의 예우강화, 유가족의 자긍심과 감사, 주변의 부러운 시선 등을 보면 이번 대통령근조기 조문은 따뜻한 보훈의 으뜸정책이다.
어느 美 참전용사의 마지막길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는 앞으로도 대통령근조기 증정 업무를 차질 없이 수행해 국가유공자의 빈소를 더욱 명예롭게 해 드릴 것이라고 한다. 무공수훈자회는 그간 많은 선양사업을 펼쳐왔다. 그중에서도 장례의전선양단 운영, 호국영령 합동봉안식, 장진호전투영웅 추모행사 등 크고 작은 사업으로 호국영령들을 추모해왔다. 국가에서도 대통령근조기 조문 등 국가유공자에 대한 관심과 예우가 점차 나아지고 있다. 2013년 1월 15일 출근길의 워싱턴 시내에는 일제히 조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정식 기념일도 아닌 이날 조기가 걸린 것은 지난 2012년 12월 27일 세상을 떠난 한 노병의 장례식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라디오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위해 특별 지시를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프랭크 버클스(Buckles)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110세를 일기로 사망 하기 전까지 1차 세계대전(1914~18년)에 참전했던 미군 중 최후의 생존용사였다. 하지만 그는 흔히 말하는 ‘전쟁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1917년 16세의 나이로 입대, 프랑스 서부 전선 후방 배치, 1년 남짓 앰블런스 운전병으로 근무…. 그의 군 이력은 이게 전부다. 전투 현장에는 가본 적도 없다. 당연히 부상을 당하지도 않았고, 무공훈장도 없다. 그럼에도 이날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은 여느 ‘국가적 영웅’의 그것 못지않게 성대했다. 국방부가 직접 주재하며 최고 격식을 갖췄고, 수천 명의 추모 인파가 몰렸다. 장례식 시작 2시간 전에 식장에 도착한 기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더이상 못 들어간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함께 조문을 한 것은 나중에 TV를 보고 알았다. ‘군번 15577번, 상병 전역.’버클스는 이날 이렇게 미국 최초의 육군 대원수이자 1차 세계대전 때 유럽 원정군 총지휘관이었던 존 퍼싱 장군 옆자리에 안장됐다. 고향인 웨스트버지니아의 농장에서 조용히 노년을 보내던 버클스는 부시 행정부 시절 참전 용사 들에 대한 재조명이 본격화되면서 ‘명사’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백악관‧의회‧국방부 등이 그를 초청했고, 학교에서도 ‘살아있는 역사책’의 강연을 듣기 위해 앞다퉈 그를 모셨다.
미국 위해 희생한 모든 용사에 경의
영국의 국방장관은 농장까지 직접 찾아와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그의 집에는 각지에서 감사의 편지가 쇄도했다. 그는 108세 때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무슨 전쟁영웅도 아닌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게 고마워 손이 떨려서 더 못쓸 때까지 사인을 해서 답장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미국민들의 이런 관심과 애정을 버클스 개인에 대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한 470만명의 참전용사, 11만 6000명의 전사자, 20만 4000명의 부상자 전체, 더 나아가 미국을 위해 희생한 모든 용사에 대한 경의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버클스의 장례식은 미국이 참전용사들의 자긍심을 살려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제대로 된 나라는 이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