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 미연방하원의원 진출 ‘앤디김’당선자의 힘과 저력

이 뉴스를 공유하기

‘극적인 선거 드라마 연출’ 트럼프 최측근 거물 정치인을 꺾다

한인으로서는 미국 민주당 소속으로 최초의 한인계 연방하원 의원이 된 한인 2세인 앤디 김(36, Andrew Kim)당선자(Member-elect of the U.S. House of Representatives)는 내년 1월 3일 연방 의사당에서 역사적인 의원 선서를 하게된다. 한인으로서는 미국 민주당 소속 연방하원의원으로서 최초의 한인계 의원이며, 미하원 역사상 김창준 의원에 이어 두번째 한인 남성 의원이다. 정치 초년병이다. 이번 중간선거에서 김 당선자는 극적인 선거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의 선거구는 65만 명의 유권자 중 백인이 85%, 한국인은 불과 300여 명인 지역구에서  ‘트럼프 측근’인 2선의 공화당 현역 의원 톰 맥아더(58)와 막판까지 접전을 벌이다 최후 승자가 되었다. 미주한인사회는 앤디 김 당선자를  보면서 한인이 미국 대통령에 나올지도 모른다는 부푼 꿈을 지니게 되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앤디 김 당선자가 승리한 뉴저지주 제3 하원선거구(New Jersey’s 3rd district)는 미전국에서 첨예하게 벌어진 30개 선거 지역 중에서도 전국민의 주목을 받은 지역의 하나였다. 앤디 김과 상대 톰 맥아더와의 경쟁은 비록 두 사람 사이의 격돌이었지만 실상은 오마바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간의 싸움이었다고 미국 언론들이나 정치 분석가들이 지적했다. 앤디 김은 오마바 시절 백악관 안보담당분야의 보좌관이었고, 톰 맥아더 의원은 트럼프의 보험정책 입안자였기 때문이다. 앤디 김 당선자의 승리는 처음 출마한 ‘정치 신인’이 65만 유권자 중 백인이 85%, 한국인이 300여 명에 불과한 선거구(뉴저지 3선거구)에서 3선에 도전하는 공화당 현역 의원과 맞붙어서 거둔 승리 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상대인 톰 맥아더 후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건강보험 개혁안인 ‘트럼프 케어’를 설계한 중진이다. 이번 선거 캠페인 기간 중 김 당선자는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필 머피 뉴저지 주지사, 여배우 파이퍼 페라보 등으로부터 열열한 지지를 받았다.

공화- 민주 양당 대통령 국가안보 담당관 출신

정치분석 여론조사기관인 쿡정앤디킴치보고서(Cook Political Report)에 따르면 앤디 김 후보가 출마한 뉴저지의 제 3 연방하원의원 선거구는 올해 중간선거에서 가장 첨예하게 시소게임을 벌이는 전국 30개 지역 중 하나다. 이 선거구는 2016년에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 버락 오바마 전대통령이 두번이나 승리한 곳이다. 민주당원들이 공화당원 유권자들보다 약 12,000명 이상 많다. 봉사는 김 당선의 ‘아메리칸 드림’의 뿌리이다. 그는 공화당과 민주당 등 양당 대통령 시절을 통해 국가안보분야를 책임졌던 인물로 누가 대통령이든 국민과 주민을 위한 봉사를 으뜸으로 삼았다.
김 당선자가 출마를 통해 첫 번째 TV 광고에서도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대통령 밑에서 국가안보 담당관으로 봉사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번 선거 캠페인에서 약값 인하, 사회 보장 확대 등의 공약을 내세워 지역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다. 의료‧사회 복지 방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소아마비를 앓았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김 후보의 아버지 김정한씨는 고아 출신으로 매사추세츠공대(MIT)와 하버드대를 거쳐 유전공학 박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김 당선자는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이념적 편가르기에 대해 염증을 느낀다.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이슈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했다. 김 후보는 또 “미국 전역의 한국인 커뮤니티에선 양질의 일자리 창출, 고등 교육, 헬스케어에 대한 관심이 높다”며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면 한국계 미국인들의 복지 개선으로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뉴저지 주민인 마티 화이트먼 씨(내과의사)는 “헬스케어 문제에 관심이 많은 앤디 김 후보를 지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봉사는 아메리칸 드림의 뿌리’

막판 역전극으로 승기를 잡은 앤디 김 당선자는 “당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공통 분모를 찾고, 그들의 관심사를 대변하고자 했기에 좋은 결실을 이룰 수 있었다”고 했다. 선거가 지난 6일에 끝나고 개표작업이 계속된 11일 낮 12시 현재 앤디 김 후보는 상대보다 1.1% 리드한 총 150,311표(49.9%)로 상대 맥아더 의원의 146,887표(48.8%)보다 3,424표 차이로 앞서고 있다. 최종 공식 결과도 이 추세에 다르지 않을 것이다. 지난 6일 선거 당일 밤 뉴저지주 마운트 로럴의 한 호텔에 모여 당선 파티를 준비하던 앤디 김 후보 지지자 200

▲앤디 김 당선자가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앤디 김 당선자가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여 명은 이날 밤 오후 11시경 환호성을 질렀다. 개표 초반 오션카운티에서 25% 포인트 차로 뒤지던 앤디 김이 민주당 텃밭인 벌링턴카운티 개표가 시작되면서 단숨에 격차를 줄이며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초박빙 승부는 다음 날까지 이어졌다. 6일 밤샘 개표가 진행되어 7일 오전 1시가 다 돼 갈 무렵 개표가 99% 이뤄졌을 때 앤디 김 후보의 득표율은 48.9%. 3선에 도전하는 맥아더 후보(49.8%)에게 2,315표(0.9%포인트) 뒤졌었다.

그 시간 에 앤디 김 후보는 승리파티장 단상에 올라 “미국이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모든 표를 개표하고 승리를 가져오도록 할 것”이라고 약속하고 행사장을 일단 빠져 나갔다. 그의 선언대로 앤디 김후보는 7일 밤 선거사무소 연단에 다시 올라 지지자들 앞에서 이번에는 승리를 선언했다. 그의 선언대로 8일 오전 2시 현재 앤디 김은 49.8%를 득표해 맥아더 후보 (48.9%)에게 2,612표(0.9%포인트) 차로 앞섰다. 역전의 승기를 잡은 것이다. 상대 맥아더 후보는 “힘든 싸움이었다. 끝까지 결과를 볼 준비가 돼 있다”며 패배를 바로 인정하지 않았다. 부재자와 임시 투표 7000여 표가 아직 남았다는 것. 이번 선거 캠페인 기간 동안상대 후보인 공화당 맥아더의원은 김 후보를 “워싱턴의 엘리트 주의자이며 아웃사이더”로 몰아 부쳤다. 맥아더 대변인은 광고를 둘러싼 김 후보에 대한 인종 차별에 대한 비난을 일축했다.

“미국이 주목한 앤디 김” 언론들 극찬

앤디 김 당선자는 지난 8일 “한반도 이슈에 대해 미 의회에서 크고 강한 목소리를 내겠다”며 그의 모국에 대한 관심도

▲상대 후보 공화당의 톰맥아더 의원

▲상대 후보 공화당의 톰맥아더 의원

밝혔다. 그는 지난 10일 자신의 지역구인 뉴저지주 벌링턴에서 진행된 조선 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안보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상임위인 하원 군사 위원회에 지원해 외교 정책 이슈 방면에서 의회 리더가 되고 싶다”며 “내게 우선순위는 북한과의 평화적인 관계 수립”이라고 말했다. 김 당선자는 또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대화하고 한국과도 이 문제를 조율하는 것은 고무적”이라며 “하지만 한때 주한 미국 대사 선임이 너무 지연되는 등 한국 이슈가 미국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게 아니냐는 신호가 나오고 있어 걱정스럽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미국의 핵심 파트너, 핵심 동맹이라는 점을 보다 공고히 해야 하며, 이에 대해 나도 의회에서 역할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제‧외교 전문가인 김 후보는 북핵과 관련한 해법을 묻자 “지금의 대화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며 “북핵은 한국인과 미국인 모두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이슈인 만큼 민주‧공화당 할 것 없이 당파 이해를 떠나 문제 해결을 위한 실마리를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 과정에서 상대 후보 측은 선거 광고에 ‘앤디 김, 그는 우리의 일원이 아니다’라는 말

▲앤디 김 당선자가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찍은 사진.

▲앤디 김 당선자가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 찍은 사진. 

을 넣는 등 김 후보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부각하는 ‘네거티브 전략’을 사용했다. 그는 “유권자들은 네거티브 캠페인에 식상해 한다. 정책 위주로 밀고 나갔다”고 했다. 영 김 후보와 앤디 김 당선자의 당선이 공식적으로 선포되면 1998년 김창준 전 의원(공화)이 3선을 끝으로 퇴임한 뒤 20년 만의 한국계 연방의원 탄생이자, 이민 역사상 공화, 민주당 출신의 첫 동반 입성 이란 점에서 쾌거다.

 

개인적 성취 넘어 한인사회 발전의 표상

미주 한인사회에는 약 250만 명의 한인이 있으나 미주류 정계 진출은 미흡했다. 지난 20년간 단 한 명도 상하원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하면서 따라서 주류 사회에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정책 결정 과정에서도 소외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번 중간선거에서 당선 확정을 눈앞에 둔 이들은 개인적 성취를 넘어 한인 사회의 발전을 상징하는 존재다. 한국계 미국인이 정치적으로 미 정계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두 나라를 잇는 가교가 된다는 점 에서도 의미가 깊다. 영 김과 앤디 김은 각기 북한 인권 문제와 통일 문제 등에도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이번 선거의 선전은 한인 사회도 연방 무대에 진출할 정도로 성숙했고, 미국 주류 사회에도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어 앞으로 더 많은 제2의 앤디 김과 영 김을 많이 배출하는 기대를 낳고 있다.
————————————————————————————————————————————————————

[화제] 앤디 김, 그는 누구? 그의 꿈과 야망은…

‘평범한 한국인 이민자 아들이 미국을 위대한 국가로 만들겠다’

앤디 김 당선자는 이번 선거에 출마하면서 ‘아메리카의 드림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36세의 젊은 나이에 워싱턴 의사당에 입성하게 되는 그를 보면서, 21세기 중에 한인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는 꿈을 그릴 수 있게 됐다. 고아 출신에 소아마비를 앓았던 김 당선자의 아버지 김정한 박사(71)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미국 최고의 명문 매사추세츠 공대(MIT)와 하버드대를 거쳐 유전 공학 박사가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빈농 출신의 간호사였던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회봉사를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앤디 김 당선자는 부모를 닮는 것이 자신의 꿈과 희망이었다고 말한다. 연세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가 정착한 부친 김박사(71)는 “앤디가 의사가 되길 원했지만 ‘약한 사람, 약한 국가를 돕기 위해 정치를 하고싶다’는 꿈을 꺾지 못했다”며 “주민에게 약속한 대로 기업 후원금은 받지 않고 개인 후원 금만 받아 풀뿌리 선거를 치르며 진정 성을 보여 줬다”고 말했다. 앤디 김 당선자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처음으로 미 정치계에 발을 들여 논 초년병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김 당선자는 정서나 사고방식이 사실상 미국인이다. 한국어도 서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지지해 준 한인 사회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평범한 한국인 이민자의 아들이 미 연방의원이 될 수 있는 것 이 이 나라를 위대하게 만든다”면서 “의회에서 이러한 가치를 지키고 한국계를 포함한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앤디 김 당선자의 과거 중요 공직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시절 국가안보회의에서 이라크 담당 국장을 지낸 군사전략 전문가이다. 보스턴에서 태어나 뉴저지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김 당선자는 시카고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이 이름을 올린 ‘로즈 장학생’으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국제관계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이라크 및 이슬람국가 담당 보좌 관과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령관 전략 참모를 지낸 국제·외교 전문가다.

국방부 이라크 전문가로 문제 주도

그는 뉴저지주 말튼에서 한인 아버지 김정한 박사와 간호사인 어머니 김 여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2004년 명문 시카고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나중 그는 세계적으로 권위있는 로즈 장학금 (Rhodes Scholarship)으로 명문 옥스포드 대학에서 국제관계를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 국무부에서 일했으며 아프가니스탄에서 데이비드 페트 레이어스 (David Petraeus) 장군의 고문으로 존 알렌 (John Allen) 고문을 역임했다. 그는 2009년 9월 국무부의 이라크 전문가로 오바마 행정부에 합류했다. 2011 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5개월 동안 아프가니스탄 주둔 2명의 미군 사령관 2명인 데이비드 페트라우스 장군과 존 알렌 (John Allen) 장군의 민간인 군사문제 참모였다. 그는 30세 약관 시절인 2013년에 국방부에서 이라크 문제를 주도했다. 이어 2015년 8월까지 백악관에서 오마바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국가안보위원회에서 이라크 담당국장(Iraq’s Obama’s National Security Council)을 지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2003년 당시 처음에는 나도 반전 시위자였으나 미국이 전쟁에 참여 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생각했다”면서 “무엇이 가장 책임있는 방식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고 기자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중동 지역에서 이슬람테러단체에 대한 군사전문가전문가로 활동했다. 특히 그는 2013년 여름 IS테러앤디킴 가족단체가 신자르 산맥에서 수 만 명의 사람들을 공격했을 때 미군의 공습전략을 도모하였고, 또한 난민구호를 위한 인도적 구호조정팀의 일원이었다. 그는 “당시 대량학살이 다가오고 있었다”라고 말하면서 “그때 미국만이 수만 명의 사람들을 구할 수가 있었다”면서 “그것은 민주당이나 공화당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임무를 끝내야 하는 것이 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미국이 IS에 대한 전쟁과 테러 위협에 대처하기위한 정부의 노력을 어떻게 개선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책을 쓰고 있다. 김 당선자는 군사전략가로 성장하기 전 USAID에서 2005년 2월부터 7월까지 5개월 동안 근무했다. 그의 이력서에 따르면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정규직으로 일했다. 2004년 시카고 대학교를 졸업 한 후, 김은 ‘헨리트루먼 장학금’으로 USAID에서 4개월을 보냈다. 나중 USAID의 아프리카국에서 분쟁관리 전문가 연구를 위해 로즈 장학금으로 옥스퍼드대학에서 연구했다.

“국민을 먼저 생각”

김 당선자는 USAID에서 GS-9 수준으로 봉급을 받았다. 민간인으로 GS-9 급수는 미 육군의 중위와 같은 급수이다.
전직 동료들은 앤디 김이 철저한 근무자세로 활동했으며, 특히 미국의 국가안보의 전문가로 활동했다고 소개했다. USAID의 코니네 그라프 (Corinne Graff)는 “앤디 김 (Andy Kim)과 분쟁관리 전문가로서 활동하는 다른 USAID 요원들이 수행한 작업은 취약한 미국의 국가안보와 직결된 중요한 임무 였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국가안보회의 (National Security Council)에서 앤디 김과 함께 일한 전 USAID 보좌관인 케리 로우리 (Keri M. Lowry) 아프리카 담당 국장은 “미국의 국가 안보와 아프리카의 테러와 극단주의에 대처하기위한 부시 행정부의 최우선 정책에 대한 지원을 절대적으로 지원 했다”면서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 때 나는 그와함께 USAID에서 일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그의 국가안보에 대한 헌신과 전문성을 내가 장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앤디 김 후보 캠페인 매니저인 잭 캐롤(Zack Carroll)은 “그는 정치적으로 임명된 사람이 아니다”면서 “그는 누가 상급자인지에 상관없이 일을 완수 하는 공무원이었다”고 강조했다. 또 그는 “유권자들은 이런 앤디 김 후보의 면모에 지지를 보냈다”고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 USAID에서 근무

공화당 부시 행정부에서 USAID에서 근무하는 동안, 앤디 김 후보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소말리아의 테러리즘에 관한 국가안보 문제와 수단과 우간다에서의 대량학살 및 아동학대와 아사 등을 포함하여 아프리카 전역의 분쟁위기에 대한 미국의 대응 방안을 준비하는데 기여했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