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선정한 업체에 낙찰 받도록 치밀한 모의
‘이번엔 우리가…다음엔 네가’ [입찰담합]
SK에너지 GS칼텍스 등 3개업체가 주한미군에 유류를 납품하면서 가격을 담합, 미국 정부에 1억달러이상의 손실을 끼친 혐의에 대해 지난 14일 유죄를 인정했다. 이에 따라 3개 업체는 2억3600만달러에 달하는 벌금과 배상금을 미국정부에 납부하기로 합의했다. 이 담합에는 현대오일과 에쓰오일등 국내 4대정유업체가 모두 개입돼 있으며, 조만간 현대오일이 기소될 것이 확실시되며 에쓰오일은 기소를 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본보가 형사상 유죄인정합의서와 민사배상합의서등을 검토한 결과 이 사건은 지난 2014년 담합에 가담했던 내부자의 제보로 수사가 시작된 퀴탐소송으로 밝혀졌다. 퀴탐소송의 경우 통상 내부제보자가 미국정부 회수액의 25%에서 30%정도의 보상금을 해당업체로 부터 받게 되므로 제보자는 6천만달러, 약 7백억원 상당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위반업체들은 보상금까지 별도로 지급해야 하므로 전체 부담액은 3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유류 담합사건의 전모를 짚어 보았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연방법무부는 지난 14일 SK에너지와 GS칼텍스, 한진등 3개사가 주한미군에 유류를 납품 하면서 가격을 담합, 일정액이하로는 납품하지 못하게 한 것은 물론 상호합의하에 특정 업체가 납품받게 하는 방법으로 미국정부에 1억달러의 이상을 손실을 끼쳤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 업체는 이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고 형사상 벌금 8200만달러, 민사상 배상금 1억5400만 달러를 미국정부에 납부하기로 합의했다고 덧붙였다. 한화로 무려 2670억 원에 달하는 벌금과 배상액을 물게 된 것이다.
퀴탐소송 승소 때 제보자에 30% 보상금지급
본보가 이들 3개 업체의 유죄인정합의서와 민사배상합의서, 기소장과 민사판결제안서등을 검토한 결과 놀랍게도 이번 사건은 내부자제보로 시작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월 28일 익명의 내부자가 오하이오남부연방법원에 퀴탐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물론 내부자의 제보에 대해 연방검찰이 이를 장기간 수사한 뒤 신빙성이 확인됨에 따라 내부자에게 퀴탐소송이 허용된 것이다.
연방검찰은 기소장에서 내부제보자와 내부제보자가 기소한 사건의 사건번호 등을 명시했지만 일반인이 볼 수 없도록 삭제,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 퀴탐소송이란 공익에 관련된 범죄에 있어 내부자가 검찰 등 사법당국에 이를 제보하고 기소까지 할 수 있게 한 제도로, 피고의 혐의가 인정되고 미국정부에 벌금과 민사배상금등을 납부할 경우 보상금을 받는 제도다. 즉 내부제보자가 검찰을 대신해 이들 3개 업체를 담합혐의로 기소했고 연방검찰이 이를 수사함으로써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연방검찰은 14일 오하이오남부연방법원에 제출한 기소장에서 피고는 SK에너지와 GS칼텍스, 한진등 3개업체이지만 운송업체인 B와 정유회사 C도 유류담합에 가담했다고 명시했다. 이는 SK등 3개사는 연방검찰수사에서 혐의가 드러나고 이에 따른 유죄를 인정했지만 B와 C등 2개사에 대한 수사는 현재 진행 중이며, 조만간 기소될 것임을 의미한다. 즉 주한미군 유류입찰과정에서 담합한 업체가 3개사가 아니라 5개사로 늘어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소장에 따르면 이들 업체가 주한미군유류납품과정에서 가격담합, 특정업체 밀어주기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것은 2015년 3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11년 이상의 오랜 기간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업체들이 사용한 수법은 고의적으로 입찰에 참여하지 않거나, 낙찰될 수 없는 높은 가격으로 입찰함으로써 특정업체가 낙찰 받도록 조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업체는 한국에서 일반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가격보다는 높은 가격을 적어냄으로서 사전에 정한 최저가 입찰업체가 낙찰 받더라도 그 가격은 일반판매가격보다 높아서 자동적으로 부당이득을 취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방식으로 10년 이상 미군유류납품입찰을 조작, 미국정부에 1억달러이상의 손해를 입힌 것이다.
사전모의 – 일반 가격보다 높은 가격 입찰
2006년 입찰에서는 GS칼텍스와 SK 에너지, 그리고 B사와 C사 등이 담합을 통해 각각 전체 아이템에서 서로의 낙찰 받을 아이템을 조율해서 합의했다. 2006년 2월부터 2009년 7월까지의 기름공급권이었다. 이에 따라 일부 업체는 입찰에 참여하지 않거나, 다른 업체가 입찰 받을 수 있도록 고의적으로 높은 가격을 써내는 방법으로, 사전에 선정된 회사가 낙찰 받도록 조작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2006년 입찰은 어느 정도 분점해서 나눠 갖는 방식이었다면 그 다음 부터는 몰아주기 방식으로 변한다. ‘한번은 내가 하고 그다음은 니가 하고’ 하는 식이다. 쪼개서 낙찰 받으니 일만 많고 골치 아프니 순번을 정하자는 식이다.
2008년 주한미군 중 육군과 공군의 기름입찰의 경우 SK에너지와 GS칼텍스, 그리고 운송회사인 B사, 정유회사인 C사가 사전에 미팅, 전화통화, 이메일 등을 교환하며 낙찰자를 사전에 선정했다. 연방검찰은 이들은 사전회합을 통해 2006년의 낙찰결과를 반영해, GS칼텍스 등은 SK에너지와 경쟁하지 않는다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즉 이번 입찰에서는 SK에너지를 밀어주기로 한 것이다. 실제 입찰에서 GS칼텍스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제시했고, B사와 C사는 주한미군 측의 입찰참여요청에도 불구하고, 입찰에 참여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SK에너지가 낙찰됐고 2008년 7월부터 2010년까지 2년간 계약을 체결했고, 이 계약이 2013년 7월까지 연장됐다.
2009년 또 다른 주한미군 기관의 기름입찰은 2009년 10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약 4년간의 기름공급 계약이었다. 이 계약을 앞두고 2008년 말부터 2009년 중반까지 관련업체들이 사전회합을 갖고 누가 낙찰 받을 것인지의 조율에 나섰다. 특히 이번 공모에는 정유회사인 A회사와 운송회사인 한진이 가담했고 기존 공모자들은 한진과 A회사에도 일부 아이템을 나눠주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입찰결과 GS칼텍스가 낙찰받기로 사전에 조율된 한개 아이템을 운송회사인 B회사와 정유회사인 C회사가 낙찰 받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난리가 났다. 이들은 다시 모임을 갖고 수습방안을 논의했고, 이미 낙찰 받은 B회사가 C회사가 아닌 GS칼텍스의 기름을 공급받아 납품받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한진, 사전담합보다 낮게 제시해 낙찰 성공
2013년 입찰에서도 반란이 발생했다. 2009년 입찰에서 사실상 들러리로 나섰던 한진과 정유회사 A사가 사전회합에서 정해진 가격보다 낮은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했고 한진이 거의 모든 아이템의 낙찰에 성공했다. 한진이 입찰자중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했지만 이마저 한국의 일반소비자가격보다는 높은 것이었다. 한진이 담합가격을 깨고 낮은 가격에 입찰함에 따라 GS칼텍스와 다른 회사는 일부만 낙찰 받았고, SK에너지는 단 한 아이템도 낙찰 받지 못했다.
또 사전합의가 깨지는 사태가 발생하자 입찰이 끝난 뒤 부랴부랴 수습을 위한 논의가 시작됐다. 한진과 GS칼텍스등이 회합했고, 한진은 A회사가 아닌 GS칼텍스로 부터 기름을 공급받아 미군에 납품하기로 했다. 말하자면 이면계약인 셈이다. A회사보다 GS칼텍스가 훨씬 저렴한 가격을 제시했다는 것이 연방검찰의 설명이다. 발주자인 미군도 모르게 기름공급회사가 A회사에서 GS칼텍스로 뒤바껴버린 것이다. 당초 공모에 가담했던 A회사는 한진과 함께 반란을 도모, 성공했지만, 결국 토사구팽된 꼴이다.
이 같은 기소내용을 살펴보면 이미 기소돼 유죄를 인정한 회사 3개사 외에 3개사가 더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중 운송회사 B사와 정유회사 C사는 공모자라고 적시, 기소를 앞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2009년과 2013년 한진과 파트너를 맺고 동반 입찰했다고 명시된 정유회사 A사는 기소대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특히 정유회사 A는 입찰에 성공하고도 기름을 납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내부자 누군가가 이 같은 가격담합사실을 연방검찰에 제보했다.
이런 사실들을 연결해 유추해보면 이 사건이 가격담합과정에 참여했다가 피해를 본 업체의 제보로 시작됐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국내정유업체들이 가격을 담합, 미국정부에 손해를 끼치려다 스스로 카르텔이 붕괴되면서 제발 등을 찍었을 가능성이 크다. 불손한 동거가 불행을 낳은 셈이다.
한진의 유죄인정합의서에는 내부제보자가 당초 입찰에 참여했던 공모자임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명시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진의 합의서에는 ‘내부제보자와 내부제보자의 회사, 그리고 그 회사들의 자회사나 계열회사, 현재 소유주나 이전 소유주에게 까지 이 소송과 관련한 법률경비 등 제반비용을 모두 지불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내부제보자가 가격담합 등에 공모했던 회사에서 나와서 자신의 회사를 설립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대오일과 운송업체 1개, 조만간 기소될 듯
그렇다면 정유회사A사와 C사는 어디인가? 이를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와 가격경쟁을 벌일 수 있는 회사는 거대 정유회사다. 국내에는 빅4 정유회사가 있다. SK에너지와 GS칼텍스 외에 현대오일과 에쓰 오일이며, 조만간 기소가 불가피한 회사는 현대오일일 가능성이 크고, 한때 한진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한진의 지분매각으로 관계가 소원해진 기업은 에쓰오일이다.
한진은 에쓰오일 지분 28.41%를 보유했으나 2013년 미군유류입찰을 따낸 다음해인 2014년 7월 이 지분을 2조원에 사우디아라비아석유회사 아람코에 매각한다고 발표했었다. 따라서 A사는 에쓰오일, C사는 현대오일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특히 GS칼텍스는 2개 회사와 달리 또 다른 중대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연방검찰의 GS칼텍스 형사기소장에는 GS칼텍스의 직원이 2014년, 제보자가 연방정부에 불법담합을 제보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담합증거를 은폐하려 한 것은 물론 제보자가 미국검찰에서 증언하지 못하도록 협박하고 위협하고, 돈으로 회유하려 했으며, 미국사법당국과의 연락 등 의사소통을 지연시키고 방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방검찰은 이 같은 행동은 제보자가 미국사법당국에 정보를 제공하려는 것을 막으려한 범죄라고 적시했다.
반면 SK에너지와 한진의 형사기소장을 검토해본 결과 2개 업체는 이 같은 불법을 저지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GS칼텍스가 제보자신상을 알았던 것을 감안하면 GS칼텍스에 근무했던 직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연방정부와 3개 업체 합의 제보자 보상금은 별개
이번 사건으로 SK에너지는 형사상 벌금 3400만 달러와 민사배상금 9038만 달러등 약 1억2438만 달러, GS칼텍스는 형사상 벌금 4670만 달러와 민사배상금 5750만 달러등 약 1억420만 달러, 한진은 형사상벌금 140만 달러와 민사배상금 620만 달러등 760만 달러를 내기로 합의했다. 민사배상액은 SK에너지가 압도적으로 많지만 형사벌금은 GS칼텍스가 SK에너지보다 더 많이 부과됐다. 이는 GS칼텍스가 증거인멸, 증인협박, 회유등의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이들 연방정부와 3개 업체의 합의서에는 이 합의금에는 사건제보자에게 지급할 보상금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명시돼 있다. 이들 업체들은 각각 별도로 이 사건제보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 통상 퀴탐소송 내부제보자의 보상액은 전체 징수액의 25%에서 30% 선에서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방법무부에서 보상액을 결정, 통보하게 되며, 이 사건은 2억3600만 달러에 달하므로 6천만달러정도에서 보상액이 결정될 것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예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