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를 창조한 사나이’
박항서 감독은 누가 뭐래도 ‘영웅’
지난 15일 LA는 토요일이다. 송년 모임을 가기 위해 한인 택시를 불러 승차했다. 택시 기사가 “어제 밤 한 잠도 못잤다”며 “선생님도 축구 보셨어요?”라며 “와! 너무 멋있었어요. 박항서가 대박을 첬어요. 국위선양도 크게 하고요. 베트남 전역이 박항서와 코리아로 밤샘 파티를 벌렸답니다”라고 신나게 설명해주었다. 기자는 속으로 ‘아니…월드컵 경기도 아니고…동남아 축구에 밤잠을 설치다니….’라고 생각했다. 송년회에 가니 거기서도 베트남 축구가 화제였다. 몇몇 사람들도 이미 밤샘 축구 중계를 보았다고 했다. 박항서의 매직 열풍이 베트남은 당연하고 국내 까지 뒤흔들고, LA동포사회도 함께 기뻐했다. LA동포 축구팬들은 물론이고 유학생들도 폭발적인 관심을 나타냈다.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숙원과제인 2018 스즈키컵대회 10년만에 우승팀으로 만든 박항서라는 인물 하나가 동남아에서 ‘코리아 넘버 원!’을 심고 있다. 새로운 ‘한류’ 열풍이라 할 수 있다. <성진 취재부 기자>
박항서는 지난해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취임 기자회견에서 “나를 선택한 베트남 축구에 내가 가진 축구 인생의 모든 지식과 철학 그리고 열정을 쏟아붓겠다.”고 선언했다. 그때까지만해도 베트남은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물론 베트남 축구협회가 박항서를 영입하면서 주문한 것은 ‘스즈키컵 우승’이 조건이었다. 그 숙원을 단 1년만에 이뤄준 것이 박항서였다. 그래서 그는 지금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고의 감독이자 국민 영웅이 되었다. 베트남 국민들은 박항서가 마시는 바카스를 마시고 싶어하고, 박항서의 조국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태극기를 두르기를 좋아할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지금 베트남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한국인이 박항서다. 동남아에서 일찍이 이처럼 한국 열풍을 만든 예가 없었다. 한국과 베트남은 과거 베트남 전쟁 당시 북쪽 하노이 수도인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미국과 함께 “적국”이었다. 그후 월남전이 끝나고 통일 베트남은 과거를 디디고 한국과 우호관계를 맺어 왔는데, 박항서라는 축구 감독 하나가 한국과 베트남을 “형제 국가” 이상의 나라로 발전시켰다.
한때 한국에서 “퇴물 감독”이란 소리까지 들었던 박항서는 그의 인생신조인 ‘책임감’ 하나로 베트남은 외국인 감독들의 무덤 자리라는 소문을 일시에 날려 보냈다. 한국에서 축구 지도자 세대교체가 워낙 빠르게 진행 중이라서 환갑이 다 되어가는 그는 스스로는 ‘프로팀 커리어는 끝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아내가 “동남아는 어떠냐”고 물으며 직접 에이전트와 연결해 줬고 그는 솔직하게 “나는 지금 무직이며 일을 하고 싶다”는 말을 전했다. 며칠 후 베트남 국가대표팀 제의가 오고 박항서는 기뻐했으나 한편으로는 <베트남은 외국인 감독들의 무덤>이라는 소문을 듣고는 잘못 선택했나하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나를 선택한 베트남 축구에 내가 가진 축구 인생의 모든 것을 바친다”며 책임감을 표출했다. 지난해인 2017년 9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성인 및 U-23 감독으로 선임되어 10월에 취임했다. 한국인 지도자로는 역대 4번째로 외국 성인 대표팀을 맡는 감독이 되었다. 처음 취임했을 때 베트남 현지에선 체력이 다소 약하다는 식으로 귀띔을 해줬다지만, 정작 박항서 본인이 선수들의 체력을 테스트해 본 결과 전원이 합격할 만큼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는 한국에서 축구선수를 시작할 때부터 언론과 선배들이 ‘우리는 체력이 약하다’라는 말을 끊임없이 해왔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아예 심리적인 한계선으로 자리잡아버린 것. 이것을 타파한 것도 그의 성공신화의 한가닥이다.
‘박항서 신드롬’은 책임감
베트남에서 박항서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나라 국민들의 관심사다. 몇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이 한창 진행 중이었을 때, 베트남을 16강에 진출시킨 박항서 감독이 직접 발 마사지 기계를 들고 한 베트남 선수의 발을 정성스레 문지르고 있는 장면을 베트남 대표팀 수비수 쩐딘쫑이 인스타그램에 올려 화제가 되었는데, 박 감독에 의하면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때 현지어도 못하고 영어도 못했기 때문에 선수들에게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스킨십 뿐이었다”고 밝힌 바 있었다. 말이 안 통하기 때문에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감정을 전달하는 원초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한국산 바카스가 베트남에서 대박 상품이 되었다. 박항서가 현지에서 팔리고 있는 박카스의 모델이 되었다. 박카스가 옆나라 캄보디아에서는 국민 음료급으로 자리잡았지만, 베트남에서는 레드불 등 타 자양강장제에 밀려서 그리 잘 팔리던 음료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박항서를 광고 모델로 선정하고 나서는 점유율이 급속하게 상승해서 잘 나가고 있었는데 이번 스즈키컵 우승으로 그야말로 바카스가 동이 나버렸다고 한다. 베트남 기준으로 발음도 비슷한 덕분인지, 베트남 현지에서 박항서 감독의 별명으로 굳어지는 중. 한국발음도 비슷하다. 바캉서 / 박카스. 박카스와 비슷한 이유로 박항서 때문에 한국산 인삼 제품도 베트남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선수들의 체력을 위해서 박항서가 인삼을 달여서 먹게 했는데 이 때문에 입소문이 크게 퍼져서 인삼이 많이 팔린다. 현재 베트남에서 여러 CF를 찍었고, 박항서를 주제로 한 책도 나온데다. 박항서 다큐멘터리 영화도 스즈키컵 결승기간에 개봉했다.
또 베트남 내에서는 정부관료, 공산당 고위간부, 대기업 이나 국영기업 사장 및 임원직 정도가 아니면 만나기도 힘들 정도로 엄청난 위상을 갖고있다. 이제 스즈키컵에서 우승해서 국부 호치민 다음 인물로까지 비치고 있다고 한다. AFF 2018 조별리그 3차전에서 박항서 감독은 꽁푸엉 등 베트남 선수들을 윽박지른 미얀마의 안토니 헤이 감독과 신경전을 벌였다. 끝내 경기 후 악수도 안 하고 경기장을 나오자 헤이가 이 일을 두고 SNS로 저격을 했고, 베트남 팬들은 독일인들의 약점인 2:0 드립을 치며 응수했다. 그리고 미얀마는 마지막 경기서 말레이시아에게 0:3으로 지며 스즈키컵 4강 진출에 실패했고, 헤이 감독은 경질당했다. 베트남 선수들의 영양 관리가 체계적이지 못했는데, 아침 식사를 쌀국수로 해결하는 등 다소 불균형 했다고 한다. 이를 알게 된 박항서는 베트남 축구협회에 개선 요청을 했고, 그 결과 삼시 세끼 모두 고기, 달걀, 우유 등의 단백질이 대거 포함된 식단으로 바뀌었다. 박항서의 부임 이후 체력면에서 더 좋아진건 덤이며, 선수들 또한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게 되어 좋아했다는 것은 당연했다. 박항서가 진단한 베트남 선수단의 근본적인 약점은 기술과 전술 이해도 부족. 그래서 그동안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이 사용하던 포백을 버리고 스리백을 도입해 성공시켰다. 박항서의 또 하나 멋진 자세는 이번 스즈키컵 우승 다음날 현지 자동차 업체의 기념 행사에서 받은 격려금 10만 달러를 베트남 축구발전과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그 자리에서 격려금 전액을 기부했다는 것이다.
박감독 애용 박카스 대박
박항서 감독 부임 후 베트남은 역대 최고의 황금기를 누리고 있다. 지난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차지하며 베트남은 타오르기 시작했다.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 진출로 다시한번 끓어올랐다. 두 번 모두 역대 최고 성적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화룡점정,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에서 10년 만의 우승을 차지했다. 박 감독이 사령탑에 오른 후 전에 없는 성과를 1년 내내 올렸다. 선수들의 기량도 좋지만 박 감독의 경험과 능력이 없었다면 절대 지금의 역사를 이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베트남은 박 감독에게 열광하고 있다. 경기가 열린 미딩 국립경기장과 경기장 앞 광장, 그리고 시내 곳곳에서 박 감독의 흔적을 쉽게 발견했다. 박 감독 얼굴이 담긴 티셔츠를 입고 깃발을 흔든다. 인형, 머리띠에도 박 감독이 들어 있다. 뒤통수에 박 감독 얼굴을 새긴 사람도 볼 수 있었다. 택시나 거리 입간판에도 박 감독이 있다. ‘신드롬’, ‘전설’, ‘신화’ 등 어떠한 수식어를 갖다 붙여도 박 감독의 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베트남 민족운동 지도자로 구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호치민 다음으로 위대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박 감독은 16일 응우옌 쑤언 푹 총리의 고향인 다낭을 방문했다. 푹 총리뿐 아니라 주요 정치인들이 박 감독을 보기 위해 함께했다. 베트남내에서 그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자연스럽게 한국 호감도도 올라가는 모습이다. 하노이 시내에서는 박 감독 얼굴뿐 아니라 태극기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교민 아닌 베트남 사람들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얼굴에 태극기 페인팅을 하는 그림이 꽤 자연스럽다. 식당이나 택시에선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박 감독 이름을 외치며 환영하는 일도 흔히 일어난다. 동남아시아 6억 5천만 인구는 유럽과 남미인들 못지않게 축구를 좋아한다. 주말 밤이면 영국식 ‘펍’(선술집)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시청한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축구 실력은 국제축구연맹(FIFA) 순위에서 대부분 100위 밖이다. 2년마다 열리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축구 대항전인 스즈키컵은 그래서 열기가 뜨겁다. 올해로 12회째인 스즈키컵에서 그동안 타이가 5번, 싱가포르가 4번 우승했지만, 타이의 라이벌을 자처하는 베트남은 이번 대회 전까지 말레이시아와 함께 딱 한번밖에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관중석은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4만 관중으로 채워져 마치 월드컵 4강에 올랐던 2002년 한국의 ‘붉은 악마’를 보는 듯 장관을 이뤘다.
베트남의 ‘붉은 악마’
경기를 관람한 베트남 권력서열 2위 응우옌 쑤언 푹 총리는 시상대에 오른 박 감독을 한참이나 안은 뒤 양쪽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선수들은 박 감독한테 달려가 헹가래를 치며 기뻐했고, 일부 선수는 대형 태극기를 어깨에 두르기도 했다. 외신에 따르면, 이날 밤 우승 직후 베트남 국민들은 부부젤라를 요란하게 불며 베트남 국기(금성홍기)와 태극기, 박 감독의 대형 사진 등을 들고 환호했고, ‘베트남 보딕(우승)’, ‘베트남 꼬렌(파이팅)’, ‘박항세오(박항서의 베트남식
발음)’ 구호를 밤새 외쳤다. 수도 하노이를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불꽃을 터뜨리고 오토바이와 자동차 퍼레이드가 이어졌다. 그야말로 베트남 축구 사상 최고의 날이었다. 이로써 베트남은 세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았다. 우선 2008년 이후 10년 만에 사상 두 번째로 스즈키컵을 품에 안았다. 두번째는 이날 승리로 A매치(국가대표팀 간 경기) 16경기 무패(8승 8패) 세계신기록도 작성했다. 올해 러시아월드컵에서 우승한 프랑스는 지난달 17일 네덜란드에 0-2로 지면서 A매치 무패 행진을 15경기에서 중단했고, 이제 베트남이 세계 축구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마지막으로 베트남은 이번 대회 8경기에서 6승 2무로 승승장구하면서 12월 국제축구연맹 랭킹에서 베트남 축구 사상 역대 최고기록(1998년과 2003년 98위) 경신을 눈앞에 두게 됐다. 베트남의 11월 피파 랭킹은 100위이고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17위다. 딱 3계단만 더 오르면 베트남 축구의 새 역사를 만든다. 한편, 베트남은 A매치 기간인 내년 3월 26일 홈에서 지난해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우승팀인 한국과 맞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