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투쟁의 아수라장 판이 된 청와대 ‘우려가 현실로…’
적(適)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김태우 수사관의 폭로로 시작된 문재인 정부 특별감찰반 논란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6급 수사관에 이어 이번엔 5급 기획재정부 사무관까지 나서서 KT&G 인사개과 청와대의 적자국채발행 압력 논란에 대해 전격 폭로하며 블랙리스트 작성 의혹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청와대가 5급과 6급 공무원들과 진실공방을 하는 전례 없는 볼썽사나운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논란의 진원지인 청와대 민정수석실 내에서는 운동권 정치인 출신 비서관과 검찰과 경찰 출신 공무원들이 한 곳에 얽혀 권력투쟁이 한창인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하극상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같은 운동권 내에서도 물과 기름관계인 PD(민중민주), NL(민족해방) 계열이 섞여 애초부터 어울릴 수 없는 구조였다고 한다. 청와대 임종석 비서실장은 대표적 NL계 운동권 출신이고, 조국 민정수석은 PD출신으로 국보법을 위반해 구속됐던 전력도 있다. 이런 태생적 한계들이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화약고와 같은 요소들이었고, 결국 정권 3년차로 접어들면서 이런 문제들이 외부로 불거져 나오는 것이다. 현 청와대와 정부는 그야말로 권력투쟁이 아수라장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본국에 학생운동이 한창 활발하던 1980년대에 학생운동권은 NL계와 PD계 크게 둘로 나뉘었다. NL계와 PD계는 NLPDR(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이라는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으나, NL계는 민족해방을 우선적 투쟁 과제로 주장하면서 반미 운동에 힘을 쏟았다. 주한미군 철수나 전시작전권 독립 등이 이들이 주로 주장했던 이슈들이다. 반면, PD계는 민중민주주의를 우선시하면서 한국 사회의 모순을 자본가과 노동자의 계급 문제로 파악하는 태도를 견지했다. PD계는 주로 노동운동에 치중했다.
현재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막연하게 운동권이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운동권의 두 분파들이 나름의 헤게모니 싸움을 하고 있다. 과거 학생운동시절부터 두 분파는 물과 기름으로 비유됐다. 오히려 정치적 이념이 완전히 반대였던 군사정권보다도 양측에게 더 적대감이 있다는 말도 공공연한 정설이었다.
NL계 임종석과 PD계 조국은 물과 기름
이번에 본국 국회 운영위에 나온 청와대의 쌍두마차라 할 수 있는 임종석 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부터가 계열이 다르다. 임 실장은 NL계의 한양대 총학생회장이자 3기 전대협 의장이었다. 조 수석은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데, 조 수석은 PD계 출신으로 분류된다.
현재 청와대 핵심 비서관엔 대체로 NL로 분류되는 인물이 많다. 특히 조국 수석 바로 밑 민정비서관으로 있는 백원우 전 의원의 경우 전대협 연대사업국장을 지낸 확실한 NL계로 인식된다.
조 수석과 백 비서관 간 알력다툼이 있다는 설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이번 특감반 감찰을 맡은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김 수사관 외에 또 다른 특감반원들이 골프를 쳤다는 혐의를 파악했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감찰 확대를 결정하고, 김 수사관 외에 또 다른 특감반원들에게 휴대전화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 특감반원들은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했고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알려졌다.
민정수석실은 이를 사실상의 ‘항명’으로 받아들였고 이 때문에 특감반 전원을 원소속청으로 돌려보내 감찰을 받게 했다는 것이다. 특히 특감반원들 사이에서는 백원우 민정비서관에게 민정수석실의 권력이 쏠려 있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 백 비서관의 경우 민정수석도 아니면서 월권에 가까운 행동을 자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예를 들어 민정비서관이면서도 민정수석실 다른 비서관, 즉 반부패비서관, 공직기강비서관 산하 전체 민정수석실 직원들에게 전체 문자를 보낸 것은 내부에서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한 예로 백 비서관은 전체 문자를 통해 특정 대기업을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정권 초부터 민정수석실 산하 실세는 열린우리당 전 의원이자 친노 핵심으로 불렸던 백원우 민정비서관이란 소문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런 사건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둔 검찰과 경찰의 권력투쟁으로 보거나, 사법개혁을 주도하는 조 수석을 쳐내려는 시각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청와대 입장에서는 이번 사건을 한 특감반 직원의 일탈 행동으로 단순화하고 싶겠지만, 이 문제가 청와대발로 언론에 생중계되듯 보도되면서 사건은 전혀 다른 성격을 띠게 됐다.
민정수석실 내 권력투쟁은 박근혜 정부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반복하는 모양새다. 본지는 박근혜 정부 초기에 박지만 회장을 등에 업은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을 등에 업은 민정비서관과의 권력투쟁을 몇 차례 보도한 바 있는데, 현 정권에서도 이런 내용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낙하산 운동권 출신들로 가득 찬 靑에 반기
수석비서관들을 제외하고도 청와대 내 핵심요직에 두 계파 운동권은 수두룩하다. 진성준 정무기획비서관도 전북대가 ‘NL계의 아성’으로 통하던 시절에 이 대학의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원광대 총학생회장 출신 한병도 정무비서관, 국민대 총학생회장 출신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 유송화 제2부속비서관, 전북대 총여학생회장 출신 김금옥 시민사회비서관, 제주대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 출신 문대림 제도개선비서관, 국민대 총학생회장 출신 권혁기 춘추관장도 NL계로 분류된다.
전대협 3기 중앙위원을 지낸 유행렬 자치분권비서관실 행정관 등 일부 행정관들도 NL계로 알려져 있다.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실 행정관은 고려대 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는데, 조국통일위원회는 골수 NL계 조직으로 통한다. 오 행정관은 1999년 11월 언론 인터뷰에서 “한때 주체사상가를 자처했다. 북한체제도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북한의 실상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의문이 생겼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입’으로 통하는 신동호 연설비서관은 전대협 문화국장을 지냈다. 1980년대 전대협 문화국은 ‘문화 통일 일꾼’을 자처했다. 신 비서관이 맡은 전대협 문화국장은 골수 NL계 운동권 학생이 거쳐 가는 자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출신인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은 NL계의 영향력이 미치는 여성운동계에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내각에서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NL계 출신으로 분류되고,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NL계 성향의 시민운동을 해온 것으로 비친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던 황인성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은 ‘원로 NL계’로 알려진다.
반면, PD계 성향은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에서 조국 민정수석 외에 하승창 사회혁신수석, 다음카카오 이사를 지낸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 정도가 꼽힌다. 결국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와 내각 내에선 대체로 NL계 출신이 요직을 장악하고 PD계 출신이 보완하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운동권의 후발주자인 PD계는 ‘현실과 과학’이라는 잡지 등을 통해 NL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런 인연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이 NL계는 PD계를 경계했고 양 진영은 견원지간인 것으로도 전해졌다.
문캠프 출신 논공행상이 부른 예견된 참사
운동권 내부 다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민정수석실에 파견된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권력다툼이 존재한다. 이번 비위 사건과 관련해 특징적인 점은 청와대 내부에서 진행하고 있는 감찰 내용들이 실시간 중계되어 외부로 흘러나왔다는 점이다. 일례로 몇몇 언론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 특감반 일부 직원들의 휴대전화 제출을 요구했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다.
김씨가 감찰 과정에서 “다른 특감반 직원들도 평일과 휴일에 골프를 쳤다”고 진술하자 실명이 거론된 특감반원들의 휴대전화를 청와대 감찰팀에서 제출받으려 했는데 직원들이 이에 반발했다는 내용이었다. 첫 보도는 이를 ‘항명’이란 단어로 표현했다. 하지만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했던 특감반원들은 ‘해당 사안에 대해서만 소명하면 되는데 휴대전화까지 가져가는 것은 향후 정보활동에 상당한 제약이 있을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이에 반대했다. 다만 이들은 영장에 의한 정식적 절차를 밟는다면 응하겠다는 전제조건도 달았다. 그러자 조국 민정수석은 특감반원 전체 교체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당시 특감반원들은 문재인 캠프 출신 공직기강 비서관실 직원이 수사관들의 전반적인 정보 출처를 파악하려 한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내부 미묘한 다툼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현 민정수석실은 민정비서관실, 공직기강비서관실, 반부패비서관실 등 총 세 개로 구성되어 있다. 민정비서관실은 대통령 친인척관리,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청와대 내부 직원들 감찰 업무, 반부패비서관실은 공직사회 감찰 업무를 주로 한다. 이 중 특별감찰반은 민정비서관과 반부패비서관 산하에 각각 있다. 반부패비서관실은 주로 사정기관 인사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민정비서관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에는 캠프 출신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정기관 출신 등 다양한 출신 인사들이 있다. 업무가 분리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하나의 수석실 아래 있고,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 수사처 등 다양한 현안 등으로 맞부딪칠 수밖에 없어 갈등의 소지는 항상 내재되어 있었다.
운동권이 요직에 있고, 다양한 기관에서 파견된 인사들이 구성되어 있는 인사들은 애초부터 권력투쟁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불안요소들이 하나 둘 불거지면서 청와대는 어느새 사분오열되고 있고, 박근혜 정부의 전철을 밟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