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1.5 리더 황준철변호사 차별소송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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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청소년들의 든든한 ‘멘토’
참을 수 없는 인종차별 시달리다 부당해고

▲ 황성철변호사[형, 왼쪽]와 황준철 변호사[동생, 오른쪽]

▲ 황성철변호사[형, 왼쪽]와 황준철 변호사[동생, 오른쪽]

미국 내 한인1.5세의 리더로서 한인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한 황준철변호사가 자신이 재직한 로펌에서 지속적으로 인종차별을 받고 부당해고까지 당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황변호사는 미국 내 명문대학과 명문로스쿨을 졸업하는 등 미 주류의 미국인들과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능력을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에서 끊임없이 차별에 시달렸다고 밝혀 많은 한인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전문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도 한인사회를 위한 봉사에 발 벗고 나섬으로서 많은 한인청소년들의 든든한 멘토였지만 얼굴색에 따른 차별을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어찌된 영문인지 전후사정을 짚어 보았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올해 54세의 황준철 변호사. 지난 2003년 1,5세, 2세들을 규합, 한인비영리단체에 기금을 지원하는 한인커뮤니티재단을 창설했고, 한국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맨해튼에서 태권도장까지 운영하며 태권도 보급에 앞장섰던 인물로 유명하다. 그의 본업은 유능한 상법전문변호사였지만, 자기만의 행복한 삶에 안주하지 않고 한인커뮤니티를 위해 몸을 던져 봉사함으로써 아름다운 1.5세, 자랑스러운 1.5세로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뉴욕을 비롯한 미주 한인사회는 자랑스런 1.5세대 리터 황변호사가 자신이 다니던 로펌에서 인종차별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깊은 시름에 빠졌다.

명문 로스쿨 졸업한 한인사회 기둥 인물

황변호사는 지난달 25일 뉴욕남부연방법원에 대형로펌 그린스푼마더를 상대로 지속적인 인종차별을 받았고, 부당해고까지 당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1964년생으로 다트마스대학과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한 황변호사는 225년 전통의 뉴욕로펌 CADWALADER, WICKERSHAN TRAFT LLP에서 변호사생활을 시작한 뒤 1992년 7월부터 상법전문로펌으로 유명한 제이콥 메드링거 앤 피네건에서 일해왔다. 24년간 우직하게 JMF로펌에서만 근무했다. 2016년 4월 이 로펌은 플로리다주의 그린스푼마더에 인수됐고, 2년 뒤인 지난해 5월 갑자기 해고됐다. 사실상 26년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된 것이다.

▲ 황성철-황준철변호사 형제를 주축으로 지난 2003년 한인 1.5세,2세가 설립한 한인커뮤니티재단[KACF]

▲ 황성철-황준철변호사 형제를 주축으로 지난 2003년 한인 1.5세,2세가 설립한 한인커뮤니티재단[KACF]

황변호사는 소송장에서 ‘1992년 7월부터 JMF에서 일했으며 2004년 이 로펌의 지분을 가지지 않은 파트너가 됐고 2015년 지분을 가진 파트너가 됐으며 그린스푼마더의 주주’라고 밝혔다. 그러나 황변호사는 ‘로펌 내에서 한국인의 후손으로서 인종과 국적에 따른 차별을 경험했으며 지분을 가진 파트너가 되지 못하도록 차별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황변호사는 JMF로펌에서 한국인동료들과 훌륭한 실적을 올렸으며, 파트너가 된뒤 폴란드에서 소송중이던 사건의 리드변호사였지만, 폴란드측 의뢰인이 아시안변호사가 리더가 되는 것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리드변호사의 자리를 잃기도 했다’고 밝혔다. JMF가 차별이란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직원을 보호하지 않고 폴란드고객핑계를 대며 황변호사를 배제시켰다는 것이다.

▲ 황준철변호사는 1992년이후 2018년까지 JMF로펌등에서 인종과 국적문제로 차별을 받았다며 지난달 25일 그린스푼마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 황준철변호사는 1992년이후 2018년까지 JMF로펌등에서 인종과 국적문제로 차별을 받았다며 지난달 25일 그린스푼마더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황변호사는 자신이 JMF에서 근무한지 12년, 즉 2004년까지 지분을 가지지 않은 파트너자리조차 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로펌의 파트너는 지분을 소유, 연봉 외에 수익을 나눠 갖는 파트너와 지분이 부여되지 않아 수익은 나눠갖지 못하는 파트너로 구분된다.
즉 어소시에이츠에서 난에쿼티파트너를 거쳐 에쿼티파트너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황변호사는 입사 12년이 지나서야 난에쿼티파트너가 된 것이다.

‘백인은 5년이면 파트너, 나는 11년 걸려’

또 난에쿼티파트너가 된뒤 10년이 지나도 에쿼티파트너로 승진시켜 주지 않았고 11년째인 2015년에야 에쿼티파트너로 승진시킨 것으로 확인됐다. 통상 난에쿼티파트너로서 5년간 근무하면 에쿼티파트너로 승격된다. 하지만 황변호사는 그 2배 이상인 11년 이상이 걸린 것이다. 황변호사는 난에쿼티파트너에서 에쿼티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에쿼티파트너전원이 동의해야 하는데, 자신을 차별해 이들이 동의하지 않아 에쿼티파트너로 승진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에쿼티파트너가 되고 불과 1년만인 2016년4월 JMF가 그린스푼마더에 합병됐다. 황변호사는 JMF의 에쿼티파트너 4명과 함께 그린스푼마더에 합류했고, 5명 모두 30만달러씩의 연봉을 받았다. 하지만 합병당시 4명의 변호사에게만 합병에 따른 수익이 지급됐고 황변호사에게는 에쿼티파트너가 받아야 할 지분수익을 나눠주지 않았다. 이들 5명은 담배회사인 임페리얼타바코 소송을 계속 맡았지만 그린스푼마더가 황변호사에게만 에쿼티파트너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제조물책임법 소송에서 기업측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것으로 유명한 황변호사는 회사측의 차별에도 불구하고 2018년에도 중요한 고객을 유치하며 열성적으로 일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21일 황변호사는 사실상 26년간 일한 로펌에서 단 한장의 해고통보서를 받게 된다. 비용절감을 위해 10일 뒤인 5월 31일자로 당신을 해고한다는 통보였다. 단 10일 노티스로 26년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된 것이다. 이 결정을 통보한 사람은 같은 팀 동료였던 JMF의 시니어파트너였다. 그린스푼마더측의 결정이라는 것이다.

황변호사는 ‘은퇴를 앞둔 업무량도 많지 않은 다른 백인파트너변호사를 비롯해 4명의 백인파트너변호사들은 단 한명도 해고되지 않았다. 이는 인종 및 국적차별이며 이처럼 갑자기 해고한 것은 합리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변호사에게는 그 흔한 고문변호사라는 자리도 주어지지 않았다. 황변호사의 주장은 JMF시절부터 인종차별이 발생했고 새 회사인 그린스푼마더로 인종차별에서 비롯된 부당해고를 했다는 것이다. 미국인보다 더 능력있는 황변호사가 인종차별을 당하고 부당하게 해고까지 됐다는 것은 자식을 둔 한인들에게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똑똑하고 미국 주류사회에서 인정받아도 얼굴색을 이유로 하루아침에 ‘팽’당할 수 있는 것이 미국사회라는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 황준철변호사는 지난해 5월21일 약 26년간 근무했던 로펌에서 5월 31일 열흘뒤 해고한다는 통보를 받고 쫓겨났다고 밝혔다.

▲ 황준철변호사는 지난해 5월21일 약 26년간 근무했던 로펌에서 5월 31일 열흘뒤 해고한다는 통보를 받고 쫓겨났다고 밝혔다.

매년 한인단체에 100만달러 발전기금 지원

황변호사는 지난 1964년 외교관이 부친이 일본주재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할때 일본에서 쌍둥이 형과 함께 태어났다. 형의 이름은 황성철, 그역시 다트머스대학을 졸업하고 NYU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로, 형역시 아름다운 1.5세대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두 형제는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능력과 시간을 쪼개서 한인사회발전을 위해 무엇이든 몸소 실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 형제는 바쁜 변호사생활속에서도 지난 1992년부터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에서 5백여미터 떨어진 지점에 ‘웨스트사이드태권도’라는 태권도장을 운영하며 한국인의 정신을 미국에 심고 있다.

태권도 공인 5단인 이들 형제는 낮에는 변호사로 일하고 저녁이 되면 태권도장에 와서 미국수련생들을 직접 가르쳤던 것이다. 특히 황준철변호사는 지난 2004년 트리디나드 토바고의 올림픽대표팀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때 트리디나드 토바고 선수들을 이끌고 출전했던 것이다.

이들의 사회참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뉴욕한인사회에 큰 족적을 남겼다. 형 성철씨는 동생 준철씨와 함께 미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는 한인 1.5세와 2세를 규합, 지난 2003년 비영리단체에 자금을 지원하는 한인커뮤니티재단 KACF를 설립했다. 형 성철씨가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바쁜 시간을 쪼개 1,2,3대 회장을 맡으며 재단을 반석위에 올려놓았다. 이 단체는 미 주류사회와 주류기업들로 부터 연 백만달러이상의 후원금을 유치, 이를 한인단체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기금지원도 대단한 일이지만, 의사, 변호사, 금융전문가등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는 한인들을 한데 묶고 1세대 중심의 한인사회와 교류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한인사회의 든든한 울타리를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이제 한인사회가 쌍둥이 울타리 돼야

이처럼 언제나 한인사회 일에 앞장서고 언제나 활짝 웃으며 자신의 몸을 던졌던 황준철변호사가 사실은 직장내에서 인종차별이라는 커다란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이다. 그같은 어려움속에서도 커뮤니티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은 한국인과 한인사회에 대한 사랑때문이다. 황변호사는 다른 후배 한인변호사 들과 한인 1.5세,2세들의 권익을 위해서도 중도합의없이 끝까지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거대로펌과의 소송은 과연 몇년을 끌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소송과정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의도하지 않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다. 그가 모든 것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이제는 한인사회가 그의 든든한 울타리가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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