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앞에 작아지는 일본, ‘천황’ 때문이다”
김수희가 부른 ‘애모’라는 노래 가사에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라는 구절이 있다. 이 가사에 “그대” 대신에 <미국>, “나” 대신에 <일본>을 넣어 부르면 “미국 앞에만 서면 일본 은 왜 작아지는가” 가 된다. 지금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바로 그렇다. 왜 그렇게 됐을가.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겠지만 일본인들이 떠 받드는 “천황”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최근 일본의 제125대 아키히토 국왕이 지난달 30일 퇴위했으며 새로 126대 나루히토 국왕(Emperor Naruhito)이 지난 1일 즉위했다. 미국 등 세계 언론들은 “아키히토 천황(Emperor Akihito)은 재위한지 30년 3개월 만에 스스로 자리에서 퇴위하여 새로 나루히토 왕세자(Crown Prince)에게 황권을 물려 주었다”라고 밝혔다. “살아있는 천황”이 자리에서 물러나는 건 20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일본이 1890년 헌정 체제에 들어선 후로는 처음이다. 아키히토 국왕은 재임시에 ‘자신의 몸에 “백제의 피”가 흐른다’고 고백했으며, 세계대전 당시와 강점기 시절에 일본이 한국에 저지른 만행에 대하여 “한국민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며 저는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고 다른 어떤 정치인 보다 더 크게 사죄하였다. 이제 세계는 나루히토 국왕에게도 한 발작 더 나아가는 새시대를 열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성진 취재부 기자>
본보 기자는 최근 일본의 이키히토 국왕의 퇴위와 새로운 나루히토 국왕의 즉위를 놓고 미주중앙 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박용필 전국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국장은 기자에게 느닷없이 김수희가 부른 ‘애모’라는 노래 가사에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라는 구절이 있다며 이 가사에 “그대” 대신에 <미국>, “나” 대신에 <일본>을 넣어 부르면 “미국 앞에만 서면 일본은 왜 작아지는가” 가 된다고 했다. 지금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유행가 가사로 비교했다.
한 예로 최근 신조 아베 일본 총리가 워싱턴을 또 방문했다. 이번엔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의 생신 축하 차 방문했다. 현재 일본은 세계 제 3위의 경제대국인데. 왜 그렇게 머리를 조아리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 흔한 반미시위도 일본에서는 보기가 힘들다. 이를두고 박 국장은 “이 세상에서 미국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나라가 일본이 유일하지 않나 생각된다”면서 개인적인 의견이라며 “천황” 때문에 그렇게 된 것 같다는 것이다. 태평양 전쟁에서 패한 후 일본은 미국의 군사통치를 받았다. 당시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가 연합군 최고사령관 겸 점령군 사령관으로
도쿄에 진주해 일본을 통치했다. 맥아더가 6‧25때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보직 해임되기 전 6년이나 일본 군정 최고책임자로 있었다.
당시 패전국 일본의 히로히토 국왕이 맥아더 사령관을 찾아와 고개를 숙이면서 일본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사건의 내막은 이러했다. 맥아더 사령관에게 하루는 부하 장군이 아첨하느라 이런 얘기를 했다. “사령관 님, 히로히토가 아주 무엄합니다. 점령군 사령관인 장군님이 도쿄에 진주했는데 패전국 전범인 “천황”이 직접 찾아와서 인사를 해야지 아직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저희가 당장 잡아와서 장군님 앞에 무릎을 꿇리겠습니다” 이 같은 말을 들은 맥아더 사령관은 그 자리에서 화를 벌컥 냈다. “어느 누구도 내 명령없이 ‘황궁’ 을 출입하거나 연락을 하면 죄를 묻겠다”면서 “그냥 내버려 두라. 1주일 후 제 발로 나를 찾아 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히로히토 국왕은 정말 매일 매일이 바늘방석이었다. 사실상 전범 1호가 “일본 천황”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자료에서 그가 전쟁을 부추긴 정황이 많았다. 그래서 차라리 미군 헌병이 들이닥쳐 ‘당신은 전범이다’하고 수갑을 채웠으면 체념이라고 할텐데… 그나저나 왕궁 건너편 미국대사관 건물에 있던 맥아더 사령부에서는 아무 기별이 없으니, 히로히토 국왕의 심정은 불안의 연속이었다. 이같은 히로히토 국왕은 나중엔 참다 못해 ‘내가 직접 맥아더 사령부를 찾아 가겠다’고 말했다. 이러자 신하들이 난리가 났다. ‘일본 역사에 천황께서 궁 밖을 나가 외국인을 만난 경우는 없습니다’ 라며 읍소했다.
‘일본 천황을 당장 체포할까요?’
1945년 9월 27일 오전 10시, 히로히토 국왕은 말쑥하게 차린 연미복에 “천황의 모자”를 쓰고 시종무관들을 데리고 특별 제작된 롤스 로이스를 타고 맥아더 사령부 앞에 도착했다. 정문에서 맥아더 사령부 의전관인 포비온 바워스와 보너 팰러스로부터 영접을 받았다. 히로히토 국왕은 의전
관들의 인사를 받으며, 그들에게 자연스레 목례를 하고 악수했다. 최초로 “일본의 신, 천황”이 머리를 숙인 것이다. 이때 바워스 의전관은 “천황의 모자”를 받아 들었다. “천황의 모자”를 의전관이 들었다는 것은 더이상 일본인들이 믿고 있는 “신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사령관실로 히로히토 국왕을 안내한 바워 의전관은 맥아더 사령관의 인사말을 듣고 깜짝 놀랬다. “선생님, 당신을 매우 매우 환영합니다”(You are very very welcome, Sir.) .미국인들이 호칭하는 “Emperor-천황”으로 부르지 않았다. “선생님”(Sir)이라고 말했다. 맥아더 사령관이 어느 누구에게나 “선생님(Sir)”이라고 하는 말을 의전관은 들어 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 맥아더 사령관은 악수를 하려고 먼저 손을 내밀었고 히로히토 국왕은 떨리는 손으로 자연적으로 머리를 숙이며 사령관의 손을 잡았다.
그날 역사적인 만남에서 3장의 사진이 찍혔다. 한 장은 맥아더 사령관이 눈을 감은 채 서있고, 히로 히토 국왕은 입술을 약간 벌린채였다. 그리고 또 한 장은 ‘천황의 고개 숙인 모습’이었고, 마지막 사진이 오늘날까지도 전해지는 일반에게 공개된 두 사람이 정면을 보고 서있는 기념사진이었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은 신문에 나타난 이 기념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우선 연미복 차림의 ‘천황’의 옆의 맥아더 사령관은 평상복에 뒷짐을 진 채로 있었다. ‘천황’보다 맥아더 사령관이 더 높은 키 로서 있었다. 일본 국민들은 ‘신의 모습’이 초라한 채 외국인 장군 옆에 서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미군 사령관 앞에서 작아진 ‘천황’을 본 것이다. “천황”이 미국의 점령군 사령관 한테 고개를 숙였으니 일본 국민 모두가 미국에 고개를 숙이게 됐다. 당시 맥아더의 별명이 “가이진 쇼군”이라 불렀다. ‘가이진’은 “외국인”이란 뜻이고, ‘쇼군’은 일본의 “절대권력자”라는 의미다. 맥아더 사령관은 가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만일 그때 미국이 “천황”을 전범으로, 단죄했다면 오늘의 한일관계도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아마도 히로히토 국왕을 전범으로 처벌했다면 일본의 ‘천황제도’도 사라 졌을지 모를 일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미국은 소련의 스탈린과 영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효과적으로 그리고 쉽게 일본을 통치하기 위해서 “천황”을 앞에 내세우면 일본을 일사천리로 개혁해 민주국가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히로히토 국왕은 당시 군 통수권자로서 전쟁에 상당히 깊숙히 개입 했던 증거들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군부의 허수아비였고 오히려 전쟁을 끝낸 ‘공’이 있다”며 끝까지 잡아 뗐다. 여기에 맥아더 사령관도 “천황을 구속하면 우리의 점령계획에 큰 차질 이 빚어진다”는 이유로 히로히토 국왕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그리고 미국은 우선 “천황”으로 하여금 ‘닌겐센엔’ 즉, 우리 말로 ‘인간선언’을 하도록 압박했다. 당시 미국은 ‘히로히토 천황’이 신으로 추앙 받고 있는 한, 제대로 통치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히로히토 천황을 신의 지위에서 인간으로 끌어내리는 작업을 폈다. 1946년 새해 첫날 히로히토 ‘천황’은 역사적인 교지를 발표한다. “나와 우리 국민간의 유대는 상호 신뢰하는 경애로 맺어진 것이지 신화나 전설에 의한 것은 아니 다. 천황은 신이며, 일본인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해 세계를 지배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가공의 관념일 뿐이다.”
‘신에서 인간으로 내려온 국왕’
일본 국민들은 ‘천황’이 직접 육성으로 ‘나는 신이 아니다’라고 밝히자, 그 충격이 엄청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계속 “천황”이라고 호칭하고, 미국 등 많은 나라 등도 “천황”이라고 부른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2일 즉위한 나루히토 국왕을 “천황”이라고 부르면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사실, ‘천황은 하늘이 보내준, 즉 신격화됐다’는 뜻인데, 히로히토 천황이 신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 했기에, “천황”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것이다. 그냥 ‘국왕’ 또는 ‘황제’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다. 2차 대전에서 똑같이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은 많은 면에서 서로 달랐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인 지난 2004년 6월 6일. 미국 등 승전국 지도자들이 파리에 모였다. 당시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가 처음 초청됐는데 그의 인사말이 세계를 감동시켰다. “오늘은 승전국들의 승리의 날이지만, 우리 독일에게는 나치 파시즘으로부터 해방
된 날입니다” 이 말을 마치고, 슈뢰더 총리는 프랑스의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화해의 포옹을 나눴다. 이튿날 프랑스 신문들은 이 사진을 싣고는 “제2차 세계대전이 오늘에야 비로소 끝났다”는 제목을 크게 달았다. 하지만 일본은 아직도 전쟁 중 저질른 만행에 대하여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에이런 라제어라고 미국의 저명한 정신의학자는 “일본인들은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사과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분명히 히로히토 국왕은 그의 ‘인간선언’에서 “일본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건 그릇된 인식이다”라고 한 말을 따르면 세계인에 대하여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근대 역사에서 3대 사죄 표명이 있었다. 에이브리엄 링컨 대통령의 노예제도 사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유대인 학살에 침묵에 대한 사과, 그리고 리하르트 폰 바이트제커 독일 대통령의 제 2차 세계대전 만행 사과 등이다. 일본이 진정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독일처럼 진솔하게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이번에 퇴위한 아키히토 국왕은 한일 과거사에 대하여 어느 국왕이나 정치인 보다 진정한 화해와 사죄를 표명했던 국왕이다. 그는 한일 월드컵 전인 2001년에 그의 아버지 히로히토의 ‘인간선언’에 버금가는 메가톤급 발언을 했다. “1300년전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었다. 그래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며 자신에게 백제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인정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금기시했던 그들 ‘천황의 발언’에 일본 우익이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특히 아키히토 국왕은 1990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방일했을 때,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불행한 시기에 귀국민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며 저는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그의 이 같은 사죄는 아버지 히로히토 국왕의 사죄보다 수위가 더 높았고, 일본이 가해자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그후 일본 정부의 고노 담화(1993년-위안부에 대한 일본군의 강제성을 인정), 무라야마 담화(1995년 –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등이 가 나오게 만든 역할을 했다. 또 그는 2005년 사이판을 방문했을 때는 전격적으로 한국인 위령탑을 찾아 참배 하기도 했다. 지금 일본 열도는 그들이 말하는 ‘새로운 천황의 즉위’로 축제 분위기다. 나루히토 국왕은 즉위식에서 세계 평화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상왕이 된 아키히토 국왕의 뜻을 이어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 아버지처럼 역사에 대한 사과가 선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