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박문덕 이름만 까고
나머지 인물들은 새까맣게 가렸나?
지난 2009년 여배우 장자연씨 자살직후 경찰의 장씨와 장씨가족의 계좌에 대한 수사결과 재벌2세인 재벌그룹회장, 전직 장관의 아들, 대형로펌 변호사등이 고액수표를 건넨 것으로 밝혀졌다. 본보가 확보한 경찰수사기록 목록에는 이들이 조사를 받은 날짜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또 검찰과거사위는 장자연사건에 대한 경찰과 검찰의 수사부실, 조선일보의 수사무마의혹은 사실로 확인됐지만 장자연리스트의 존재여부는 규명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수사권이 없는 과거사위의 한계가 드러나 수박 겉핥기식의 부실조사라는 비난의 여론이 급등하고 잇다. 수사권이 없어 제대로 된 증인들이나 참고인들을 소환조사하지 못했고 소환에 불응해도 강제구인이나 체포권이 없어 대상에 오른 인물들이 한결같이 조사위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모두 잠적해 소환에 불응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지난 2009년 3월 여배우 장자연씨의 자살직후 검찰은 장씨와 가족들의 계좌에 대해 수사를 했고 고액수표 입금자들을 일일이 불러 그 경위를 조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검찰은 장자연씨가 소속된 매니저회사의 사장 김종승씨와 장씨의 전 매니저 유장호씨를 명예훼손, 폭행, 협박등의 혐의로 기소했으며, 이 재판과정에서 수원지검 성남지청의 수사기록이 증거로 제출됐음이 드러났다. 이 수사기록은 모두 2백여페이지로 제목은 ‘장자연의 계좌로 입금된 수표발행자 수사철’이었다. 즉 장자연에게 고액수표를 준 사람들을 조사한 것이다.
정재계 유명인사들 쏱아져 나와
이 자료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인물은 유명로펌의 A변호사로 2009년 4월 15일 조사를 받았으며, 진술조서, 수사과정확인서, 주민등록증 사본등이 편철됐다. 또 H모씨도 같은 날 수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주목되는 인물은 모 전직대통령의 이종 조카이자, 전직장관의 아들인 중견기업인이다. 이 전직 장관의 아들은 3월 30일 고액수표발행자중 가장 먼저 조사를 받은데 이어 4월 15일 2차조사를 받는 등 2차례나 조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서류에는 이 전직장관의 아들에 대해 ‘장자연 계좌관련자 000에 대한 수사’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박문덕 하이트진로회장도 2009년 4월 15일 조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오랜 역사를 가진 한 재벌 오너의 2세로, 독립해서 별도의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인물 B도 같은 날 조사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유명자산관리회사등 신생금융그룹의 대표 박모씨도 같은 날 조사를 받았고, 김모씨는 4월 15일과 4월 16일 두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 또 한모씨, 최모씨, 이모씨, 유모씨등이 장자연계좌관련 수사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 서류철에 조사를 받은 것으로 기록된 인물은 모두 13명이며, 이중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다. 이 서류에 기록된 인물중 2차례 조사를 받은 인물은 전직대통령의 이종조카와 김모씨등 2명이었다.
당시 경찰은 장씨측 게좌에 입금된 수표중 10만원권 수표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추적하지 않았고, 백만원권이상의 고액권 수표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수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사철에 기록된 인물들은 백만원이상의 고액권 수표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편 지난 20일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사건 최종결과발표를 통해 장씨가 남긴 문건 3건의 내용을 전격공개했다. 그동안 장씨가 남긴 문건은 4장이 공개됐으나, 일부 내용은 검게 칠해져 있었다. 본보가 장시의 육필문서와 과거사위가 공개한 문건내용을 대조한 결과, 검게 칠해져 있었던 부분은 조선일보 관련 부분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공개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모두 5개 부분으로, 가려졌던 내용은 ‘조선일보 방사장이라는 사람과’. ‘사장님이 방사장님이’ ,‘조선일보 방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과 술자리를’, ‘(올리브나인 고00대표님 생일날), ‘전00감독님이’ 으로 밝혀졌다.
장자연 유서는 유서아닌 흡사 고발장
장씨는 사망직전인 2009년 2월 28일, ‘2008년 9월 조선일보 방사장을 룸싸롱에서 접대했고, 김종승사장이 방사장과의 잠자리를 요구했고, 몇개월 뒤 방사장님 아들을 룸싸롱에서 접대했다’고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본보 보도대로 이 문서는 유서로 보기 힘들다는 사실도 입증됐다. 2페이지짜리 문서1개, 1페이지짜리 문서 2개등 3개 문서 모두가 ‘배우 장자연의 피해사례입니다’로 시작되고 있어, 유서가 아니라 고소장에 가까웠다. 결국 누군가 장씨에게 매니저회사 사장인 김씨에 대한 피해사례를 작성하게 했고, 장씨는 이 문서를 작성, 전 매니저 유씨에게 전달했으나 문서의 파장을 두려워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장씨는 김사장과 대립관계에 있던 누군가에게 이용당하고 죽음의 지경으로 내렸던 것이다.
검찰 과거사위는 장자연 문건에 기재된 ‘2008.9 경 조선일보 방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싸롱접대에 저를 불러서 사장님이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다’는 대목과 관련해 경찰과 검찰의 수사가 부실했다고 밝혔다.
문건상 조선일보 방사장이 과연 방상훈 사장인지, 방상훈사장의 동생 방용훈 코리아나호텔사장인지, 아니면 방상훈사장의 차남인 방정오사장을 말하는 지 밝혀내는 수사가 엉터리였다는 것이다.
경찰은 ‘조선일보 방사장’이 방상훈사장을 가리키는 지를 확인하기 위한 수사과정에서 방상훈사장명의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단 한달치만 확인했고, 비서실과 비서진의 통화내역을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 경찰은 ‘2007.10경 모중식당에서 방용훈이 장자연과 식사를 했다’는 김종승등의 진술을 확보하고, 2009년 7월 8일 방용훈사장을 조사하기 위해 코리아나호텔을 방문했으나 해외출장중이란 이유로 조사를 할 수 없었고, 방용훈사장이 귀국한 뒤에도 수사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일보 수사압력, 손바닥으로 하늘가리기
과거사위는 2007.10경 모 중식당에서 방용훈이 장자연을 만난 사실이 확인되는 점, 당시 방용훈이 술자리등에서 ‘조선일보 방사장’으로 불리기도 한점, 방용훈의 지훈 한모씨가 김종승의 누나 및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조선일보 방사장의 친구’라고 소개한 점으로 미뤄 장자연이 방용훈을 ‘조선일보 방사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검찰도 경찰수사결과를 보고받은뒤 ‘조선일보 방사장’ 접대에 대해 사실관계를 자체 조사하지 않고 김사장의 스케줄표에 기재된 ‘2008.7.17 조선일보 사장 오찬’등만 사사한뒤, 이날 만난 사람이 방상훈과 무관하다고 판단하고 수사를 종결한 것도 부실수사라고 과거사위는 지적했다. 김씨는 자신의 다이어리에 적힌 조선일보사장오찬의 당사자가 스포츠조선 사장이라고 진술하자, 방사장이 아니라며 수사를 끝내버린 것이다.
그러나 같은 날 스포츠조선사장은 다른 식당에서 다른 사람과 점심을 한 사실이 드러났고, 김사장도 이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진술을 번복해 ‘스포츠조선사장과 약속을 했다가 취소했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진술을 번복했음에도 검찰은 김사장 진술이 신빙성이 있다며, 방상훈사장에 대한 불기소처분을 내린 것이다.
또 ‘김종승이 조선일보 방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과 술자리를 만들어 나에게 룸싸롱에서 술접대를 시켰다’는 내용과 관련한 수사도 부실투성이였다. 경찰은 방정호사장을 피내사자신분으로 조사해 2008년 10월 28일 모유흥주점 술자리에 참석한 사실을 확인하고서도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장자연, 김종승사장, 방정호사장의 휴대폰 기지국 위치, 김종승의 신용카드 결제내역등을 통해 방정오 접대자리에 장자연이 함께 하도록 한 사실이 인정되고 그 직후인 2008년 11월 4일에도 김종승, 방정호, 한모씨와 통화를 했으므로 통화내역을 더 확인해야 하지만, 10월 28일과 29일 이틀치만의 통화내역만 확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방상훈 사장은 한달치를 조사했고, 아들 방정오는 이틀치만 통화내역을 조사한 것이다. 또 누군가 수사대상자인 조선일보기자의 부인이 검사라는 말을 후임검사가 주임검사에게 말한 것도 부당한 일로 지적됐다.
초등수사 때부터 노골적으로 봐주기 수사
이같은 부실수사의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일보측의 적극적인 외압이 부실수사를 초래했다고 과거사위는 밝혔다. 과거사위는 조선일보가 현재는 국회의원인 강효상 당시 경영기획실장을 중심으로 대책반을 만들어 장자연사건에 전사적으로 대처했다고 결론을 냈다. 특히 당시 이동한 조선일보 사회부장으로 부터 협박을 받았다는 조현오 경기지방경찰청장의 진술도 사실로 인정됐다. 이부장이 조청장에게 ‘조선일보는 정권을 창출할 수도 있고, 퇴출시킬 수도 있다. 이명박정부가 조선일보와 한판 붙자는 겁니까’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부장은 강희락 경찰청장과 경기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을 만나거나 연락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조청장과 만난 사실은 부인했다, 하지만 과거사위는 정황상 이부장이 조청장을 만난 것이 사실로 인정되지만, 2016년 4월 22일로 특수협박 공소시효가 끝나서 기소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조선일보 전 고위간부, 하모씨는 ‘조선일보 법조팀장이 방정오가 매일 전화해 통화기록 뺀다고 고생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조선일보 전직 기자도 방정오의 통화기록 빼내고 경찰과 쇼부를 본 것은 조선일보 시경캡이다’라고 주장했으나, 하씨진술외에 다른 증거는 확보하지 못했다고 발표햇다.
특히 경찰은 장씨 자살뒤 초동수사때 집을 압수수색하면서도 ‘조선일보 방사장’등이라고 적힌 다이어리, 수첩, 메모장등을 압수하지 않았고, 장씨와 김사장등에 대한 1년치 통화내역을 조회했으면서도 이를 수사기록에 첨부하지 않아서, 현재 이 조회내역이 어디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장씨의 유족이 유장호씨를 만나 장자연문건을 돌려받을 때 녹음을 했고, 이 녹음파일을 전달햇지만 경찰은 녹음파일이나 녹취록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장자연 리스트, 윤지오외 본사람 없어
장자연수사와 관련해 가장 이목이 집중된 부분은 과연 리스트형태의 문건이 있느냐의 여부였다. 이에 대해 과거사위는 술접대 혹은 성접대를 받은 사람의 이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문건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과거사위 조사결과 3개문건, 4페이지의 장자연문건외에 사람 이름만 나열된 리스트는 발견하지 못햇다고 밝혔다, 장씨의 후배 여배우 윤지오씨만이 이같은 문건이 있고, 이를 본 적이 있다고 진술했을 뿐 다른 사람들은 그 문건을 본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장씨의 오빠등 가족들도 ‘사람이름만 나열된 리스트는 없었고, 모두 서술식으로 쓰여있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 진상조사단은 리스트가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으나 과거사위는 최종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결론냈다.
장자연수사는 조선일보의 압력으로 초동수사부터 소홀해 지면서 10년만에 재수사가 이뤄졌지만 이미 없애버린 증거때문에 사실상 진실규명에 실패했다. 특히 장자연이 문건을 작성한 배경에 대해 수사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이또한 이뤄지지 못함으로써 블의가 승리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