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통점은 섹스 후 여성이
‘강간 당했다라고 하면 강간이다’
강간 등 성범죄에 대한 형사처벌이 더 강화되는 지구촌 추세에도 한국에서는 아직도 ‘동의없는 성관계는 강간’이란 인식이 미진하다. 현재 한국에서 강간죄는 ‘명백한 강간’만 처벌된다. 하지만 지난 7일 영국의 가디언지는 그리스 행정부가 ‘동의없는 성관계 = 강간’이란 내용을 담은 헌법 개정안을 6일 의회에 제출했다고 보도하면서 피해자의 동의 없이 성행위를 시도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그리스는 신체적 폭력이 동반되지 않는 성범죄의 경우 상대방의 저항이 없었다고 판단, 강간의 범주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국제 앰네스티 그리스 담당자는 이번 그리스 정부의 법 개정안 상정에 “이번 승리는 이날을 위해 길고 힘겹게 싸워온 운동가뿐 아니라 그리스 모든 여성들에게 역사적인 승리다”고 평가했다. UN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해 3월 한국정부에 ‘피해자의 자발적 동의 없이 이뤄 졌는가’를 기준으로 강간죄를 판단하라며 법 개정을 권고했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 선진국 에선 비동의 간음죄를 법으로 규정해 동의 없는 성관계를 강력하게 처벌하고 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성범죄는 지역이 따로 없다. 미국에는 UCLA이나 USC대학 캠퍼스에서도 강간 등 성폭행 사건이 발생하여 한인 유학생등도 피해자가 되기도 했다. 미연방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대학 캠퍼스 성범죄는 절반 이상이 캠퍼스 안 기숙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집계돼 대학 캠퍼스가 성범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 교육부의 미국내 주요 대학 사건 발생 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UC 캠퍼스 등 캘리포니아 내 주요 대학들에서 발생한 성폭행과 성추행 등 성범죄 건수가 평균 60건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가 미국대학협의회(AAU)의 설문조사를 인용해서 지난 2015년에 보도한 바에 따르면 “힘으로 제압당했거나 제대로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한 여성 학부생이 전체의 23%”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성기 삽입까지 이어진 성폭행을 당한 여성 학부 생도 11.7%에 달했다. 당시 설문조사는 하버드와 예일 등 미국 주요 27개 대학 학부생 15만 명을 대상으로 실시됐으며, 남학생의 경우에도 학부생 응답자의 5%와 대학원생의 2%가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캘리포니아 주는 미국 50개 주 가운데 처음으로 대학 캠퍼스 내 성폭력 기준을 대폭 강화한 ‘캠퍼스 성폭력방지법’(SB-967)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다.
가주 ‘캠퍼스 성폭력방지법’ 효시
미국성폭력자료원의(National Sexual Violence Resource Center)의 통계를 보면 성범죄의 심각성이 잘 나타나있다. 미국에서는 매 92초마다 성폭행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중 매 9분 마다 한 건씩 성폭행 피해자는 미성년 어린이들이다. 한편 성범죄자 1000명당 5명 정도가 감옥에 간다. 성폭력 피해자 중 가장 많이 당하는 층은 청소년 층이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의 대다수는 30세 이하이다. 연령층 통계 수치로 보면 성폭력 피해자의 15%는 12-17세, 피해자의 54%는 18-34세, 28%는 35-64세, 3%는 65이상이다. 따라서 12-34세의 나이층이 성폭력의 가장 큰 피해 연령 층이다. 여성과 소녀들이 성폭행을 가장 많이 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여성 6명중 한 명은 일생을 통해 성폭행을 당하든가 그럴 위험에 처한 경험을 지녔다. 통계에 따르면 이들 여성중 14.8%는 강간 등을 당한 경우이고, 2.8%는 미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에서는 근 2천만명의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다. 1998년 현재, 약 1,770만명의 미국 여성들이 강간을 당했거나, 당할 위험에 처해졌었다.
젊은 여성들이 특히 강간을 당할 위험이 높다. 청소년 피해자 중 82%가 10대 여성이고, 성인 피해자의 90%가 여성이었다. 특히 16-19세의 여성들이 일반인 피해자보다 강간이나 성폭력 피해가 무려 4배나 높다. 또한 18-24세 여대생들은 일반 여성보다 성폭력을 당할 확률이 3배 높다. 한편 여대생과 같은 나이 또래의 여성들은 일반 여성보다 4배나 높다. 여성들만 강간당하는 것이 아니다. 성인 남성이나 소년들도 성폭력의 희생이 되고 있다. 남자 대학생의 경우, 같은 또래 남성들보다 강간이나 성폭력 피해를 더 많이 당하는 편이다. 18-24세 남자 대학생의 경우, 같은 나이 또래 남성들보다 5배나 많이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수백만명의 남성들이 강간 당했다. 1998년 현재 통계로 미국에서 2백 78 만 명의 남성이 강간을 당했거나 강간미수 희생자였다. 미국 남성의 3%가 생전에 강간을 당했거나 미수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미국 남성 33명중 한 명이 강간 또는 강간미수의 희생자이다. 미국에서 10명 강간 피해자 중 한 명이 남성 피해자이다.
미국 강간 피해자의 54 %는 18-34세
이번에 그리스 정부는 개정법안에서 “동의 없는 성관계는 강간”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인정하고, 그 범죄를 강간으로 간주하기 위해서는 신체적인 폭력이 꼭 동반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고 밝혔다. 이미 그리스는 지난해 6월 18일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는 모든 성적 행위가 범죄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이스탄불 협약’을 비준하며 법안 개정 여론은 급물살을 탔다. 앰네스티 측은 “그리스의 법 개정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법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명확한 지침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그리스 개정법은 성폭행이나 이를 시도하는 행위 자체가 희생자에게 물
리적 위협을 가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는 데 의의가 있다. 많은 인권단체들은 그동안 “성폭행 피해자들은 피해 상황에서 겁에 질려 ‘무의식적인 마비 증상’을 보이거나 그대로 얼어붙는 경우가 다수”라며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강간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현행법에 문제를 제기해왔다. 성관계에 있어서 ‘동의’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전문가들이 남성 강간범 대해 알아낸 것’이라는 기사에서 강간범의 특징 중 하나로 “(강간범들이) 대부분 여성의 거부를 받아들이지 않고 섹스를 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이를 강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을 꼽았다.
실제로 미국성폭력자료원의(National Sexual Violence Resource Center)이 1221명의 성인을 대상 으로 한 조사를 보면, ‘동의하지 않은 성관계가 성폭력’이라고 답한 비율은 84%였다. 16%는 동의 없는 섹스를 강간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 같은 조사에서 남성의 33%와 여성의 21%는 ‘파트너 중 한 사람이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동의한 성행위’를 성폭력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는 ‘동의 없는 섹스’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밴더빌트대학교의 철학 교수 켈리 올리버는 뉴욕타임스에 ‘동의 없는 섹스란 없다. 폭력일 뿐 이다’라는 사설에서 “섹스라는 단어 자체가 ‘동의’의 뜻을 품고 있어서 동의 없는 섹스라는 표현은 모순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 ‘미투 운동’이 세계적으로 번지자 주요국들이 성폭력 피해를 막고 가해자를 엄벌할 수 있도록 기존 ‘강간죄(rape law)’를 개정하거나 관련 판례의 재정립에 적극 나서고 있다. 주로 서구 선진국에서 활발한 강간법과 판례의 수정 방향은 상대의 명시적인 동의를 얻지 않으면 강간죄로 규정 해야 한다는 취지다. 기존에는 동의 여부보다 성폭력 피해 당시 얼마나 강하게 저항했는지를 강간죄 적용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피해 여성들은 ‘여성도 싫다고 하지 않았으니 결국 잠자리를 받아들인 것 아니냐’ ‘왜 피해 당시엔 거부하지 않더니 이제 와서 문제 삼느냐’는 2차 피해에 시달리곤 했다.
‘동의 없는 섹스란 없다. 폭력일 뿐이다’
1990년대 초반 미국 일부 주에서는 여성이 확실히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성관계를 하면 강간으로 규정하자는 운동이 있었다. 2014년 캘리포니아주가 미국에선 처음으로 ‘여성의 확실한 동의’를 강간 관련 법률에 명시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더 나아가 2014년 대학 내에서 ‘적극적 동의가 없으면 성범죄’라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그동안 대학 내 강간 피해를 주장하려면 명확한 거절 의사가 있었음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했다. 그러나 법 개정에 따라 침묵이나 저항의 결여는 동의로 인정되지 않게 됐다. 술에 취하는 등의 이유로 의식이 없거나 잠들어 있는 경우엔 명백한 동의를 할 수 없다고 본다. 이 때문에 이런 상황 에서 성관계가 이뤄졌을 땐 무조건 강간으로 간주한다. 다만 동의는 꼭 말로 할 필요는 없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상대방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동의에 준한다고 본다. 독일에서는 2016년 쾰른 광장 집단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피해자가 저항을 해야만 성범죄를 인정하는 데 문제를 제기하는 캠페인이 벌어지면서 법이 바뀌었다. 피해자의 물리적·언어적 의사 표현를 참작해 거절 의사가 인정되면 강간죄가 성립되는 식이다.
북유럽의 스웨덴은 지난 2017년 12월 성관계 전 상대의 명시적 동의를 얻지 않으면 강간으로 규정하도록 강간법을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현행법은 가해자가 성폭력을 가할 때 위협이나 폭행을 사용했음이 입증돼야만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 이사벨라 뢰빈 부총리는 AP통신과 인터뷰에서 “미투 운동은 새로운 법의 필요성을 보여줬다”며 개정 취지를 설명했다. 스테판 뢰벤 총리도 “역사적인 개혁을 준비하고 있다. 사회는 당신(피해자)들 편이다”라고 선언했다. 프랑스는 성관계에 동의할지 스스로 판단하기 힘든 아동을 철저히 보호하도록 법을 바꾸고 있다. 프랑스는 15세 미만 아동과 성관계하면 아동이 관계에 합의하더라도 무조건 강간으로 처벌하는 법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최근 프랑스는 성관계 동의 판단이 어려운 15세 미만 아동과 성인간의 성관계는 동의가 없었던 것으로 간주해 처벌하는 법안을 마련키로 했다. 아동이 관계에 합의하더라도 무조건 강간이 된다는 내용이다. 마를렌 시아파 프랑스 여성부 장관은 “이는 프랑스 사회에서 성폭력과 성희롱을 예방하는 패키지 법안의 일부”라며 추가 법안 발표도 예고했다. 한국에서는 성폭력 피해 여성이 가해자를 고소를 하면 남성 가해자들이 펄쩍 뛰면서 오히려 무고혐의로 “꽃뱀”이라며 여성을 뒤집어 쒸우는 경향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남성 가해자 처벌보다 여성 자신에게 다가온 무고혐의를 방어하는데 더 신경을 써야 하는 웃지못한 사태도 나타난다.
한국 법원 ‘얼마나 저항했나?’ 판결기준
한국 법원도 웃긴다. 강간 혐의의 남성에게 무혐의 판결이 내린다. 지난 2016년, 40대 남성 A씨는 채팅으로 만난 30대 여성을 모텔에서 성폭행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됐다. 처음 피해 여성은 “저는 ‘처음 보는 남자와는 안 잔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 그 남자가 싫다는 저를 강제로 눕혀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녀는 말로는 안 한다고 했지만 제가 스킨십을 시도하는데도 가만있더군요. 좋으면서 싫은 척하는 거라 생각했죠. 이제 와서 강간이라뇨.” 경찰은 해당 여성이 자발적으로 모텔로 들어간 점 등이 드러났기에 남성에게 무혐의라는 것이다. 무혐의를 받은 남성은 곧바로 여성을 무고죄로 고소했다. 결국 3번의 재판 끝에 여성은 무죄를 인정받았다. 여성에게는 ‘뭣주고 빰맞은 격’이다. 미국 등 선진 외국의 경우 여성 피해자가 자칫 거부하다가 상대방으로부터 더 큰 폭행을 당해 다칠 우려를 염려해 성폭행을 당할 때 피해자에게 저항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반대로 피해자에게 정말 저항을 했는지 증명하라고 한다. 또 미국에선 재판에서 피해자 보다는 가해자가 성관계 동의를 구하지 않은 사실을 입증해야만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강간 피해자가 협박과 폭행을 받았는지를 증명해야 한다. 이처럼 한국 에서는 성폭력 가해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꾸며져 있다. 한국의 법도 피해자 중심으로 개정 할 때가 왔다.
✦성폭력 피해 안내 핫라인: 1800-656-46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