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기고문]탈북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김형수씨 특별 기고문 통해 북한체제 신랄히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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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사회주의 연장으로 국가 발전 이끌 수 없다’

비판할 자유마저 빼앗긴 삶은 과연 무엇인가?

김일성대학한국 국민들이 북한에 대해 가장 호기심을 가지는 부분 중의 하나가 “왜 북한에서는 한국에서 왕왕 벌어지는 반정부 시위나 폭동, 그리고 구테타 등 정변이 없느냐?”라는 질문이다. 과연 북한에선 김씨 일가의 파쇼독재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없었을까? 북한의 세습독재의 원조 김일성의 이름을 딴 김일성종합대학은 북한에서 최고의 대학일뿐 아니라 권력으로 다가가는 대학이다. 지금은 김일성대학 출신 중에서 탈북자나 망명자도 많아 서울에는 ‘김일성종합대학 총동창회’ 까지 있다고 한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이 자랑하는 김일성종합대학과는 반대로 북한에서 김씨일가의 노예왕족독재에 누구보다 일찍이 반기를 든 사람들이 바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하던 지성인들이었다. 김일성종합대학 생물과를 졸업하고 김일성 만수무강연구소에서 일한 후 2009년 탈북한 김형수씨는 “미주동포들도 실상을 알아야 한다”면서 이 기고문을 보내왔다. 현재 그는 통일교육 위원으로 활동중이고 저술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한편 김씨가 기고한 ‘김일성 종합대학 대학생들의 반독재 항거’ 기고문은 SF에서 번역가로 활동중인 존 차 선생이 영문으로 번역 미국내 지성인들에게 배포되고 있다. 영문 기고문을 원하는 독자는 본보 이메일[email protected]으로 연락하면 된다.
<특별기고 김형서(김일성종합대학 출신 탈북자)>

1988 여름 평양시의 각 구역 체신소(우체국)들에서 익명의 편지들이 다발적으로 신고되었다. 보내는 사람의 이름은 밝히지 않은 편지 봉투들엔 받는 사람의 이름으로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라고 적혀져 있었다. 하지만 투서편지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내용은 북한의 체제를 신랄하게 비난 하는 꼭 같은 내용이었다. 우선 투서에서 김일성의 독재를 강하게 비난하며 낡은 사회주의제도의 연장으로 국가발전을 이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마르크스 ‘자본론’의 모순점을 조목조목 지적 하면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창조성을 억제하고 경제 발전을 침해한다고 강조하고 북한사회 성분제도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투서에는 21세기가 눈앞에 닥쳐왔는데 아직도 봉건사회에서 권력을 유지하던 신분제도가 남아 있는 북한의 체제는 무계급사회를 지향하는 공산주의 이념과 완전히 상반되는 가혹한 노예 사회이고 극악한 착취 사회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출신 성분이나 가정 토대가 없는 진정한 무계급 사회에서 능력있는 사람들이 국가발전을 위하여 일할 수 있어야 나라가 발전할 수 있고 경제 활성화도 기대할 수 있다며 백두산줄기요, 낙동강 줄기요 하는 사회 계층을 부정했다.

그리고 북한의 권력층들이 만들어 낸 사회계층 제도에 의해 공부도 못하고 사회적으로 인성이 돼먹지 않은 자들이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후광으로 간부가 되고 있다며 “이를 비판할 자유마저 빼앗긴 인민의 삶은 과연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국가보위부가 투서와 관련해 김일성종합대학을 의심한 것은 그 주위의 체신소들에서 편지가 많이 나왔기 김일성대학2때문이었다. 북한에서 일반주민들에겐 공개되지 않은 비밀들까지 폭로한 것도 김일성종합 대학을 의심한 원인으로 됐다.
특히 투서편지가 북한에서 이미 사라진지 오랜 등사기로 인쇄됐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북한은 1970년대부터 타자기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엔 주요 국가기관들에서 타자기가 일반화 되어 등사기는 더는 찾아 볼 수 없었다. 투서는 파라핀과 바쎌린, 송진을 섞어 만든 등사잉크를 이용해 인쇄했는데 이러한 등사 방법은 글을 쓴 사람의 필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결함이 있었다. 국가보위부는 김일성종합대학 재학생들을 상대로 투서에 나타난 필적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국가보위부는 우선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의 ‘생활총화’ 노트를 모두 회수해 필적을 조사한데 이어 대학 도서관에 드나든 우수 학생들을 조사했다. 그러던 중 우수학생 9명이 같은 시각 도서관에 자주 모였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이들의 생활총화 노트를 조사한 결과 투서편지의 필적과 유사한 점도 다수 발견됐다. 특히 이들 9명은 김일성 종합대학 5학년과 6학년으로 성적이 뛰어난데다 졸업을 앞두고 있다는 사정도 모두 비슷했다.

항거자는 모두 우수생들

국가보위부로부터 투서편지를 직접 받아 본 김정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들 전원을 반드시 잡아 내어 극형에 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수사망이 좁혀지자 투서편지를 쓴 우수 학생들은 대학을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러나 이미 대학생들 속에 박아놓은 국가보위부의 첩자들이 주목된 학생들을 철저히 감시했고 국가보위부가 대학 주변을 그물처럼 둘러쌌다. 대학을 빠져 나가려던 학생들이 국가보위부에 잡히는 모습도 포착됐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자 교내에 남아있던 한 학생은 1호 교사의 9층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그런 와중에서 도주한 3명을 체포하기 위해 국가보위부는 국경을 봉쇄하는 동시에 도주한 학생들과 친구들의 집까지 급습했다. 도주한 학생들은 대동강구역 외국대사관 촌에 은신해 있다가 잠복을 서던 국가 보위부 요원들에 의해 보름만에 체포됐다. 이들은 모두 국가보위부에서 즉결 처형 됐음이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하던 고위급 자녀들을 통해 전해졌다. 당시 투서사건 소식은 소련과 독일, 웽그리아(헝가리)등 동유럽사회주의 나라들에서 유학 중이던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유학생들에게까지 알려졌다. 동유럽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많은 지식인들과 대학생들은 매일같이 시위를 하며 공산당의 일당 독재에 저항했다. 놀랍게도 사회주의에 저항하는 시위군중 속에는 북한에서 온 유학생들,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유학생들도 있었다. 당시 레닌 그라드 대학교, 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의 한 유학생은 아버지 김일성에서 아들 김정일로 권력을 넘기는 봉건적 세습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북한의 파쇼화를 세상에 알렸다.

그는 북한사회에 만연한 간신들의 아첨 행위가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며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가인 소크라테스의 명언 “사냥꾼은 개로 토끼를 잡지만 아첨쟁이는 칭찬으로 우둔한 자를 사냥한다” 말을 인용하며 북한당국을 비난했다. 또 “악한 행위를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은 물론 자신에게 더 큰 상처를 입힌다”는 명언을 인용하며 노동당 간부들을 간신으로 비난했는데 그 이유로 모스크바에 있던 북한대사관 담당보위원에게 불려가서 사실 확인 조서까지 써야 했다.

▲평양에 위치한 김일성 종합대학 전경

▲평양에 위치한 김일성 종합대학 전경

대사관 서기관인 보위원이 “귀국준비를 하라”는 말에 문제의 심각성을 눈치 챈 그는 정치 망명을 결심하였고 국제경찰인 인터폴에 도움을 요청 했다. 급해 맞은 당시의 소련대사 손성필은 이 사실 을 김정일에게 보고하였다. 비열하기 짝이 없는 김정일정권은 그 학생의 어머니를 소련까지 끌고 갔다. 국제형사기구 인터폴이 가족의 면회를 허용한다는 점을 악용해 아들을 설득하여 무조건 귀국시키라는 지시를 모스크바 주재 북한 대사관에 내렸다. 북한은 어머니를 보는 아들의 마음이 약해져서 동요할 수 있다고 어리석은 타산을 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세계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모자의 상봉은 북한이 의도한대로 흐르지 않았다. 겨우 이루어진 상봉에서 어머니는 단호했다. 그 유학생의 어머니는 아들을 향해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조국에 가면 너는 용서가 아니라 처형될 수밖에 없으니 다신 이 엄마를 생각하지 말고 네 결심을 끝까지 굽히지 말기를 바란다”라는 말을 남긴 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유학생은 ‘정치망명’ 신청

그는 인터폴의 도움으로 베를린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애인과 함께 서독으로 망명했다. 북한 당국이 가족들까지 끌어들여 유학생들의 귀국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은 동유럽에서 공부하던 북한의 대학생들을 크게 긴장시켰다. 서독정부가 북한 출신 유학생들의 망명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옛 동부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북한출신 유학생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들의 망명에 이어 소련과 다른 동유럽 나라들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도 “북한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현대판 봉건왕조”라고 외치며 속속 망명의 길을 택했다. 이미 망명한 대학생들 말고도 소련과 뽈스까(폴란드) 등 여러나라 대학들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은 ‘서광’, ‘민주주의 학교’를 비롯하여 비밀독서회를 만들고 북한에서 독재체제를 허물기 위한 토론을 활발히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북한의 보위부가 모를리 없었다. 훗날 이들이 몰래 가진 토론이 많이 알려졌는데 “사회주의는 자유로부터의 후퇴이며, 자본주의를 거치지 않은 사회주의는 한갓 노예왕족 정치에 매달릴 수 밖에 없다”는 내용들이었다. 이에 김정일은 노동당 과학 교육비서였던 최태복을 모스크바로 파견했고 북한도 마치 동유럽사회주의 붕괴를 받아들이고 개혁개방의 길을 물색하는 것처럼 유도했다. 이어 개혁개방과 민주화에 유학생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호도했다.

또 유학생들에게 “조국을 방문해 휴가도 보내고 국가의 앞날도 논해보자”는 김정일의 지시까지 설명하며 귀국을 유도했다. 동유럽의 붕괴를 경험한 많은 유학생들이 북한도 이제는 자유민주주의 밖에 길이 없다며 김정일의 꼬임에 넘어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김정일이 파놓은 죽음의 함정이라는 것을 이들은 몰랐다. 당시 김일성종합대학과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철도대학, 함흥수리 대학, 청진금속단과대학 등에서 동유럽으로 공부하러 떠났던 유학생 수백명이 귀국했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평양의 아늑한 호텔이 아니라 국가안전보위부의 무서운 철창이었다. 이들은 전부 당과 국가를 배신했다는 누명을 쓰고 정치범수용소에 구속되거나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되었다. 김일성종합대학 투서편지 사건은 사회주의를 원칙적으로 고수하고자 했던 학생들이 북한의 왜곡되고 독재화된 사회주의를 바로잡으려는 의도에서 시도됐다. 때문에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는 학생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원칙주의자들의 조언을 무참히 짓밟아 버린 김정일은 결국 북한을 세계 최빈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시절의 김정일처럼 아직도 공포정치로 권력을 유지하려 하는 김정은이 앞으로 북한의 인민들에게 어떤 가혹한 운명을 강요할지 불보듯 뻔하다. 이들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그들이 외치던 민주화의 목소리는 아직도 남아 언제인가 북한에서 자유의 큰 불씨가 되어 타오르게 될 것이다.

‘김정일 유학생에게 철퇴’

1950년대부터 60년대 사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스탈린 우상화를 배격하는 운동이 거세지자 모스크바와 베를린 등지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김일성종합대학 출신 유학생들도 김일성 우상 화를 강하게 비판했다. 급해 맞은 김일성 정권은 소련과 동유럽에서 유학생들을 모두 강제로 귀국시키려 했다. 일부 유학생들은 강제귀국을 거부하여 망명하였고 북한으로 끌려 온 유학생들은 정치범 관리소에 감금되었다. 북한당국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까지 유학생 파견을 폐지하고 완전한 쇄국정치에 매달렸다. 북한이 다시 해외에 유학생들을 파견하기 시작한 것은 1984년 5월 김일성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을 방문한 이후부터였다. 1980년대 김정일이 후계자 자리에 올라선 후에야 북한은 해외 유학의 문을 다시 열었다. 그러나 1988년 김일성종합대학 투서사건과 대학 총장이었던 황장엽 비서의 망명, 1990년대 동유럽에서 유학하던 김일성종합대학과 여러 대학출신 유학생들의 집단 망명 사건들이 일어났다. 1980년대 사회주의는 그 결함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스스로 몰락해 가고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사회주의 정치가들이 “몇몇 자본가들을 위한 사회”라고 비난을 아끼지 않았던 자본주의는 눈부시게 비약하며 승승장구의 길을 걸었다. 이제 북한에도 중동에서의 ‘재스민 혁명’처럼 자유의 운동이 일어날 날이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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