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최악일로 치닫게 만든 五賊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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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저자세 외교에 익숙해진 일본의 황당무계한 대담성

사법 친일파들이 오늘의 사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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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청구권 배상 판결에 반발해 불화수소를 비롯한 몇몇 제품들에 대한 사실상의 한국 수출조치를 취하면서부터다. 본국에서는 일본 제품에 대한 심상치 않은 불매운동이 일어나는 등 1945년 해방 후 한일관계가 최악의 관계에 놓이게 됐다. 일본은 이번 조치가 대법원 판결과는 관련이 없다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해명만 늘어놓고 있다. 본국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순히 일제 강제징용 청구권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굴욕적으로 끌려가던 모습을 보였던 한국 정부가 돌연 강경한 자세로 나서자 일본이 ‘한국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명박근혜 정부로 불리는 보수 정권 9년 동안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 일방적으로 일본에 저자세로 나온 것이 원인을 제공했으며, 일본 기업 변호에 앞장서온 국내 로펌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일본 측에 논리를 제공한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란 지적이 나온다. 본지는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현대판 을사오적’이란 제목으로 본국 정치 법조계의 친일행각을 고발했는데, 결국 그 때 그들이 만든 논리들을 일본이 다시 들고 대한민국을 옥죄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사법 친일파, 사법 부역자들로 불릴 법한 이들의 면면을 <선데이저널>이 쫓아가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문재인 아베

일본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가 근본적으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로 미쓰비시 중공업에 대한 강제집행 절차가 시작되자 일본 정부는 이런 대책을 들고 나왔다.
이번 판결은 2005년 처음으로 공개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문서에 따라 일본 정부의 불법 행위에 대한 개인의 배상청구 권리가 살아있다는 법적 해석이 나오면서 내려졌다. 1·2심 법원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판단했지만 2012년 5월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할아버지들이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2013년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시 내용대로 신일본제철이 1억 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신일본제철은 대법원의 판단에 불복해 재상고했다. 한국 사법제도에 따르면 원고나 피고가 대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면 재상고를 할 수 있는데, 이 경우 대법관 13명이 모두 모여 합의를 하는 이른바 전원합의체를 통해서만 뒤집을 수 있다. 문제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언제 열려야 한다는 강제 규정이 없다는 점이었다.

신일본제철도 이 과정을 밟았다. 신일본제철이 재상고했고,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불과 1년 전 대법원이 한 차례 판단을 내린 만큼 결론이 사실상 정해져 있는 사건임에도 차일피일 시간을 끌었다. 피해자와 유족이 빠른 판단을 촉구해도 대법원의 심리에는 이렇다 할 진척이 보이지 않았다. 무려 5년이 무의미하게 흐르며 소송 원고 중 생존자는 1명만 남았다.

쉽게 이해할 수 없던 대법원의 재판 지연은 지난해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의 고위 간부들이 2013년∼2016년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등 정부 인사를 수차례 만나 강제징용 소송의 재상고심 결과를 ‘피해자 패소’로 바꾸거나 소송 진행을 미루는 방안을 논의한 정황이 발견된 것이다. 지난해 본지는 여기에 관여된 정부 및 법원 관계자들을 ‘21세기판 을사오적’으로 꼽았고, 이 기사가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황교안은 안하무인 외교 일등공신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난 이후 한국과 일본은 경쟁과 협력을 통해 성장해왔다. 반일 정서가 국민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긴 했지만, 정치 경제 분야의 협력을 꾸준히 이어져왔다. 2002년에는 월드컵까지 공동개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독도를 방문했을 때도 일본은 강하게 반발했지만 지금과 같은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즉 박근혜 정부의 대일 저자세 외교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자세를 불러왔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정치인들과 법조계가 일본 정부에 유리한 판결을 위해 대책회의까지 하고, 국내 최고의 로펌이라는 곳은 일본 전범기업까지 나서서 변호하는 상황이 만들어지자 일본은 그와 같은 한일관계를 유지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리고 문재인 정부가 본격적인 강제 집행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 정부는 유례 없는 수출 제한 조치까지 들고 나왔다. 한 마디로 5년 동안 자신들 편이라고 생각했던 한국 정부가 강경한 자세로 나온 이 상황이 불쾌했던 것이다. 물론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신조 총리의 정치적 목적도 있었지만, 이번 일본의 조치는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린 것이라고 봐야 한다.

▲ 제1144호(2018년 11월 4일 발행)

▲ 제1144호(2018년 11월 4일 발행)

이런 일본의 안하무인격 외교를 불러온 일등 공신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다. 황 대표는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 시절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합의과정에서 내놓은 10억엔에 대해 ‘일본 정부가 사죄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시사하는 발언까지 해서 지탄의 대상이 됐다.

황 대표는 총리시절이던 2015년 10월 14일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발효해서 자위대를 파견한다면 할 것인가”라는 강창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질의에 “구체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면 허용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강 의원이 “정부의 기존 입장보다 후퇴했다. 한국정부 동의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다고 했는데, 일본 자위대도 한반도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당시 황 총리는 “한국이 동의해야만 들어올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며 “일본과 협의를 해서 필요하다면 허락할 수 있지만 다른 의도가 보인다면 우리 의견을 얘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강 의원은 “아주 심각한 발언을 했다. 판단해서 일본 군대 파견이 가능하단 소리인가. 무슨 조약이나 구두약속이라도 맺었나”라고 지적했다.

황 총리는 “제가 알기로 조약이나 협정으로 될 문제는 아니고 양국간의 협의를 통해서 포괄적인 논의를 했고 구체적인 얘기는 논의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며 “협의과정을 통해서 충분히 보장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강 의원은 “일본군이 협의를 거쳐서 한반도에 진출할 수 있다고 얘기한 것은 한국정부 입장과 아주 틀린 입장이다. 절대 밖에 나올 수 없다고 강력히 얘기해야 한다”고 재차 지적하자 황 총리는 “기본적으로 입국이 허용되지 않고 부득이한 경우에 우리나라의 동의 아래에 가능하다는 얘기였다”고 해명했다.

친일 로펌 김엔장과 윤병세

박근혜 정부의 주요 내각 인사들은 일본과 가까운 인사들로 채워졌다. 김기춘 전 실장은 자신의 동년배 친구를 주일한국대사로 보냈다. 한반도 주변 4국에 80살에 가까운 고령을 대사로 보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초대 외교부 장관은 아예 일본 전범 기업을 변호했던 윤병세 전 장관이었다. 윤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초대 외교부 장관으로 4년 넘게 재임한 ‘장수 장관’이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둘러싸고 대법원과 청와대가 부적절한 거래를 했다는 시기도 이때였다.

나중에 사법농단 재판 당시 증인으로 나선 윤 전 장관은 ‘외교관계’ ‘국익’을 그에 앞세웠다. 재판부는 재판을 공개로 진행했다. 그러나 윤 전 장관은 검사가 외교부 문건을 제시할 때마다 ‘비밀 자료’라며 공개해선 안된다고 막는가 하면, 답변도 어물쩍 넘어갔다. 검사가 질문할 때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곤 했다. 외교부 관료 출신인 윤 전 장관 역시 장관이 되기 전인 2009년부터 4년간 김앤장 고문으로 일했다. 2012년 5월24일 대법원이 피해자들 손을 들어주는 내용으로 일제 강제징용 사건을 파기환송했을 때도 김앤장 소속이었다.

윤 전 장관은 2013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통일안보분과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김앤장 고문직을 그만뒀다. 그해 2월에는 박근혜 정부의 첫 외교부 장관으로 지명됐다. 윤 전 장관은 장관 취임 후인 2013년 3월 김앤장 변호사들을 외교부에 초대했다. 김영무 대표와 현홍주 전 대사, 한상호 변호사 등이다. 현 전 대사는 윤 전 장관의 경기고, 서울대 법대 선배이고 외교부에서 함께 근무했다. 윤 전 장관을 김앤장에 스카우트한 사람이 현 전 대사이고 김앤장에서도 한팀으로 일했다. 한상호 변호사도 윤 전 장관의 경기고 선배다. 외교부 관료로 있을 때 윤 전 장관과 근무 인연이 있는 유명환 전 장관은 김앤장 고문으로 옮긴 뒤 현 전 대사와 함께 윤 전 장관을 수차례 만난다. 윤 전 장관은 이 같은 만남들이 모두 인사치레거나 친목도모 목적이었고 강제징용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했다. 외교부와 김앤장 사이에 정보는 수시로 오갔고, 결과적으로 외교부는 김앤장이 원한 대로 강제징용 사건 관련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문제가 있다는 데는 청와대와 법원행정처도 모두 입장이 같았다.

돈에 환장한 김앤장 전범기업들까지 변호

일본에 너그러운 이런 일사분란한 정부 인사들과 전범기업을 변호하는 김앤장이 손을 잡으니 일본 입장에서는 나서서 한국 정부와 각을 세울 이유가 없었다. 알아서 기는 사람들이 한국 내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있어서 정부 즉 행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난 5년 간 일본 정부는 정부와 사법부가 손잡고 일본 측 입장을 옹호한 것을 똑똑히 목도해왔다. 이것을 본 일본이 문재인 정부의 삼권분립 원칙을 인정할 리가 없다. 문재인 정부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박근혜 정부의 삼권분립 원칙 훼손이 결국 오늘의 결과를 불러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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