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4일 일본 외무성은 홈페이지에서 “한국은 일본과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 국가”라는 구절을 삭제했다. 일본 외교 활동과 방침을 기록하는 연차 보고서인 2015년 외교청서(Diplomatic Bluebook) 역시 같은 구절을 제거했고, 이 상태를 2019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어 한국을 이미 이웃나라가 아닌 적대국가로 간접적으로 묘사하고 있었는데도 한국정부는 이를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오늘의 사태를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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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 가토 사건이 불러온 나비효과와 한일무역분쟁
위안부 합의 관련 “너무 서둘렀다”
한일 무역분쟁의 시작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전범기업이 배상을 인정하는 판결한데 대해 일본 정부가 무역 보복을 단행한 것이 기초 원인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수출제한 조치가 한국 대법원 판결과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결국은 여기에 보복 조치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본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한국 정부는 대법원, 즉 사법부의 판단을 정부(행정부)가 나서서 간섭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인 삼권분립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일본의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어 하는 것처럼, 일본 역시 우리 정부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즉 논의 자체가 안 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일본 역시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정부가 이러쿵저러쿵 할 수 없는 민주주의 국가임에 우리 측의 주장에 대해 이해할 법한데 그렇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에서는 한국 행정부와 사법부 관계에 대한 불신이 결국 한국 정부가 자초했다는 목소리가 많다. 즉 어떤 때는 사법부 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고 하다가, 어떤 때는 자기들 맘대로 사법 판결에 관여하는 행태가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 사법 시스템에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선데이저널>이 일본의 한 소식통으로부터 들은 정보에 의하면 그 발단은 바로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판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 서울 지국장에 대한 판결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한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행한 후 2014년 8월 3일 <산케이신문> 서울 지국장이던 가토 다쓰야는 세월호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이 파악되지 않았다는 내용의 《박근혜 대통령 여객선 침몰 당일, 행방불명… 누구와 만났을까?(朴槿恵大統領が旅客船沈没当日、行方不明に…誰と会っていた?)》라는 컬럼을 게재하였다.
가토 전 지국장은 이 칼럼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관련 행방 의혹을 제기했다. 가토 전 지국장은 증권가 관계자 등을 인용해 “박 전 대통령이 (그해)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일에 ‘비선’ 정윤회씨를 만났고, 정씨와 그의 장인이던 고 최태민 목사가 박 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였다”는 내용을 적었다.
일부 시민단체의 고발을 받은 서울중앙지검은 8월 7일 가토에게 출국 금지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10월 8일 가토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2015년 4월 14일 검찰은 가토에 대한 출국 금지를 해제하고, 당일 오후에 가토는 일본으로 돌아갔다.
2015년 10월 19일 검찰은 가토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하였으나, 12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종적으로 가토의 혐의에 대해 정윤회와의 남녀애정행각으로 묘사한 명예훼손은 인정된다고 하고 다만 비방의 목적은 없었기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명예훼손은 인정되지만 비방의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유죄가 된다는 이상한 논리로 선고했다. 당초 가토 전 지국장에게 징역형을 구형했던 검찰은 아예 항소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은 법원 선고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정치적 합의가 있었단 얘기다. 한국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가토의 비판이 비정상적이었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은데 의의를 뒀고, 일본은 가토 전 지국장을 자국으로 불러들였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셈이었다.
재판거래가 결국 부메랑
본지는 2018년 8월 [단독]세월호 7시간 의혹 제기…일본 기자 무죄 나온 진짜 이유란 보도를 통해 한국 사법부의 어설픈 판결을 비판한 바 있다. 당시 본지 취재에 따르면 가토 다쓰야 전 국장의 명예훼손 재판 역시 일본 정부의 항의 – 청와대 – 법원을 거쳐 조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는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을 검찰이 기소한 것에 대해서 강하게 항의했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사생활에 의혹을 제기한 가토 지국장을 가만히 놔둘 수 없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법원이 어떻게 이 문제에 대해 판결을 내릴지에 많은 관심이 모아졌었다.
결국 재판부는 가토 전 지국장이 기사에 허위사실을 적어 박 전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인정했지만, 박 전 대통령을 비방할 목적은 아니었다며 양측 모두의 입장을 반영한 판결을 내렸다. 그러면서 “공적 존재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 언론의 자유를 우위에 둔다는 점을 적용했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는 법원이 허위사실이란 판단을 내려줌으로써 체면치레는 했고, 대신 일본과의 관계도 별 탈 없이 넘어갔다. 당시 이를 위해 김 전 실장과 법원이 긴밀하게 협의했고, 법원은 청와대와 이런 논리를 공유한 후 사건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나섰다고 볼 수 있는 또 다른 근거는 검찰의 움직이다. 검찰은 자신들이 기소한 사건을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음에도 이에 항소하지 않았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정권의 안위를 유지하기 위해 사법부에까지 압력을 가하며 국민들에게 큰 상처를 안겨줬다고 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야말로 우리 국민의 정서에 가장 민감한 부분인데 이것을 100억원에 마무리하기 위해 일본 대사도 비서실장 측근으로 앉히고, 재판도 좌지우지한 파렴치한 행태를 보인 것이다.
아베, 가또 건강까지 챙길 정도
이런 사실들은 박근혜 정부 외교라인을 통해서도 어느 정도 확인이 가능하다. 주철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2013년2월~2015년10월)은 문재인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5월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서두른 측면이 있었다”며 “가토 다쓰야 무죄 판결(2015년 12월 17일)뒤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갑자기 (한일간에 논의가 오가던 안을) 받아들이겠다고 나오면서 정부도 서둘렀다”고 말했다.
합의의 당사자인 박근혜 정부의 외교수석이었던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가토 다쓰야 지국장과 위안부 합의의 관련성에 대한 단서는 적지 않다.
당시 유흥수 주일대사는 2016년 7월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가토 지국장의 문제가)비중이 다르다는 것을 본국(한국정부)에 보고했다”면서 “가토 전 지국장을 선처해 달라는 일본 입장을 법무부에 전달했고 11월에 무죄 판결이 났다. 이런 것을 바탕으로 12월 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합의됐다”고 했다.
2016년 9월 세월호 유가족 및 생존자 김성묵씨는 가토 다쓰야 전 지국장을 만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면서 도쿄 경시청의 고위관료를 비공개 면담한 적이 있다. 지금은 외무성으로 자리를 옮긴 이 고위관료는 2015년 4월 귀국한 가토 다쓰야와 아베 총리의 독대 이후 일본의 태도가 강경해졌다며, 그 배경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것은 본지가 그토록 세월호 7시간의 진실과 관련해 주장한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그는 “독대 이후 아베는 가토의 건강까지 챙기며 독려했으며 일본 언론은 가토를 영웅시 하는 기사로 도배됐다”며 “그 만남에서 아베는 가토가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모든 것을 물어봤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한일관계에 자국의 이익으로 돌릴 것인가를 계산했음에 틀림없다”고도 했다.
실제 가토 다쓰야의 귀국 이후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행보는 아베 총리의 미 상하원 합동연설(4월29일), NPT평가회의에 외무성 심의관 파견(원폭 투하지인 일본의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각국 정상의 방문을 추진) 등 한층 적극적이고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일본의 덫에 걸리다
하지만 가토는 무죄판결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 2016년 ‘한국의 법은 대통령과 국민감정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법이 뒤틀린 나라다’ 등의 내용이 담긴 《나는 왜 한국에 이겼나 박근혜 정권과의 500일 전쟁(なぜ私は韓国に勝てたか 朴槿惠政権との500日戦争)》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가토에 대한 박근혜 정부와 사법부의 이 같은 판결은 일본으로 하여금 사법부 판결이 정부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특히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평가 절하할 수 있는 대단히 좋은 기회였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가토 전 지국장을 관저로 초대해 장시간 위로하는 방법으로 이 사건에 무게를 부여했다. 두 사람의 만남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일본 언론은 한국을 “반일 감정으로 통치되는 비민주주의 국가” “풀뿌리 파시즘” 등으로 호칭했는데, 이는 일본의 공식적 외교정책에 반영된다.
2015년 3월4일 일본 외무성은 홈페이지에서 “한국은 일본과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 국가”라는 구절을 삭제했다. 일본 외교 활동과 방침을 기록하는 연차 보고서인 2015년 외교청서(Diplomatic Bluebook) 역시 같은 구절을 제거했고, 이 상태를 2019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일본은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한국 정부가 얼마든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지난 정권에서 몸소 겪은 것이다. 이런 일본에게 사법부 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는 문재인 정부의 비판은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주 본지가 보도했던 것처럼 사법적폐들이 친일행각을 벌인 것이 낳은 결과다. 또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의 이중잣대를 들어 이번 한일 무역전쟁에서 한국의 논리를 방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갈 길 먼 사법농단 재판
기피심리 길어지면서
언제 재개될지 아무도 장담 못해
양승태 사법농단’ 수사 1년…재판도 징계도 ‘지지부진’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으로 꼽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포함한 전·현직 판사 14명이 기소됐지만 진실규명의 길은 멀어 보인다.
사상 초유의 전직 사법부 수뇌부를 향한 수사가 시작된 지 1년이 흘렀는데도 사법농단 재판은 물론, 사건에 연루된 법관에 대한 사법부의 징계도 지지부진해서다.
우선 사법농단 ‘기소 1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재판은 ‘개점휴업’ 상태다. 임 전 차장이 지난달 31일 재판부가 부당하게 재판을 진행해왔다며 재판부 기피신청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직권 남용죄 치열한 공방
심리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 측의 기피신청을 받아들였고, 같은 법원 형사합의33부(손동환 부장판사)가 이를 맡았다.
임 전 차장 측은 지난 1월 말에도 첫 정식 재판을 하루 앞두고 변호인단이 집단 사임해 한 달 가까이 재판이 열리지 않았다. 이에 구속만기일이었던 지난달 13일 재판부는 추가 기소된 사건에 대해 새 구속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하지만 기피에 대한 심리가 한 달 넘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데다, 기각되면 임 전 차장 측이 대법원 판단까지 받는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재판이 언제 재개될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피신청 이전에도 전체 심리해야 할 양의 반도 끝내지 못했다.
‘사법농단 최정점’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들의 재판도 원활하지 못하다.
피고인들은 검찰이 입수한 이동식저장장치(USB) 파일문서와 이를 출력해 제출한 증거의 동일성을 문제 삼으면서 증거조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법정에서 1000개가 넘는 파일을 일일이 열어 출력물과 ‘완벽하게’ 동일하다는 점을 검증하는 웃지 못 할 상황도 벌어졌다.
서초동의 한 법조인은 “직권남용죄를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일 줄 알았는데 정말 상상도 못했던 상황”이라며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힘든데 피고인 본인이나 재판부, 검찰의 피로감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들의 지시를 받아 사법행정권 남용을 실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실무진들의 재판도 마찬가지다.
사법행정권 남용 재판 시작도 못해
그나마 ‘대법원 기밀문건’ 유출 혐의로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의 경우는 조금 낫다. 함께 기소된 다른 전·현직 판사들 중 유일하게 공판준비기일을 끝내고 정식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현재 유 전 연구관 측은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에 증거능력을 부여한 형사소송법 312조 일부 조항과 검찰의 출석요구권에 대한 위헌심판제청이 기각된 뒤 별도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제기한 상태다. 당장 검찰 피신조서가 증거로 제출된 상태에서 재판부가 난감한 기색을 내비쳤으나 “일단 효율적인 심리를 위해 실질적인 진정성립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검토해보겠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재판부는 내달 8일 예정된 유 전 연구관의 3차 공판에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곽병훈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증인 소환해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간다.
이밖에도 정운호 게이트 당시 수사기밀을 대법에 보고한 혐의로 기소된 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와 성창호·조의연 부장판사나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방법원장, ‘옛 통합진보당 소송 개입’ 혐의 등을 받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및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 심상철 전 서울고등법원장에 대한 재판은 여전히 준비기일 단계에 머물러 있다.
가토 재판개입 임성근 내달 2일 첫 공판
또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된 ‘세월호 7시간’ 칼럼을 쓴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 등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재판은 내달 2일 첫 공판준비기일을 앞두고 있다.
사법부 내부의 징계절차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당초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은 연루 법관 66명의 명단을 대법에 통보했다. 대법은 우선 기소된 10명 법관 중 정직 중인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를 제외한 6명 전원을 재판업무에서 배제시켰다.
하지만 정작 법관징계위원회에 회부된 건 66명 중 10명뿐이다. 상당수가 이미 징계시효 만료됐다는 이유에서다. 징계위는 검찰이 비위를 통보한 지 3달여가 지난 24일에서야 1차 심의를 진행했다.
법관들은 아직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결론이 날 때까지 징계절차를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징계위가 관련 재판의 증거조사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면서 최종 징계 결정은 더욱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