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국관련대비계획’문건에서 드러난 황교안의 야누스 행적
알았으면 ‘내란수괴’
몰랐으면 ‘허수아비’
박근혜 대통령 재임 시 그가 탄핵 위기에 몰리자 당시 정권 수뇌부 및 군부가 합심해 쿠데타 계획을 세웠다는 확실한 증거가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의 계엄령 및 위수령 선포 계획을 처음 보도한 것은 2017년 3월 2일자 <선데이저널>이다. 당시 본지의 이런 보도가 허무맹랑한 얘기라고 눈여겨 보지 않았지만, 그날의 보도가 정확하게 사실이란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명백해지고 있다. 본국의 군인권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는 지난 21일 군사기밀 2급에 해당하는 박근혜 정부 ‘현시국관련대비계획’이란 문건을 입수해 공개했다. 이 문건은 지난번에 공개된 것보다 내용면에서 훨씬 진일보한 것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하들이 얼마나 초법적인 발상을 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날 공개된 문건 중 특이한 것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됐다는 점이다. 황 대표는 이날 인권센터의 주장이 완전한 거짓말이라며 법적대응에 나섰지만, 계엄령과 관련해서 황 대표의 입장은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꼴이다. 그가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군부는 황 대표를 허수아비 권한대행으로 밖에 보지 않았다는 셈이고, 보고를 받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쿠데타 시도 수괴 노릇을 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국이 조국 사태로 인해 모든 이슈가 거기에 빨려 들어갔지만 사실 황교안 대표야말로 야당지도자의 자격이 없는 무능함 내지 뻔뻔함으로 가득찬 인물이란 사실은 이미 그가 법무부 장관과 총리를 하면서 드러났다. 그가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통합진보당 해산 말고는 어떤 것도 없다. 그야말로 자승자박에 놓이게 된 황교안 대표와 쿠데타 모의 음모를 <선데이저널>이 추적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선데이저널, 계엄령 발동설 최초보도
2016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성한 내각 및 참모진이 청와대에 자리 잡고 있던 시절 청와대와 군 일부에서는 은밀하게 계엄령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판결을 인용할 경우를 대비해 만든 계획이었다. 2017년 2월 이들의 계엄령 및 위수령 선포 계획은 제법 구체화 됐고, 2017년 3월 본지가 이 사실을 처음 보도했다. 당시 본국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는 본지 보도에 대해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일부 sns에서 본지 보도를 퍼 날랐을 뿐이다. 이 문제가 공론화된 것은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군에서 계엄령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을 하면서부터다. 공당 대표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엄령 검토 계획은 허무맹랑한 얘기처럼 들렸다. 그런데 지난해 7월 본국의 군인권센터가 폭로한 이번 문건은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국면인 2017년 2월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이다. 이 문건은 지난해 7월 공개한 ‘전시 계엄 및 합수 업무 수행 방안’의 원본인 ‘현 시국 관련 대비 계획’이다.
이 문건에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정부부처에서 군 개입 필요성에 공감대를 만들고 국무총리실과 NSC가 계엄령을 사전에 협의한다고 나온다. 군 인권센터는 당시 NSC 의장이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였다며 황 대표 등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황 대표는 해당 내용을 보고받은 적 없다며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을 고소했다.
쟁점1 – 문건은 진짜인가?
이 문건과 관련해 몇 가지 쟁점이 있다. 이 문건이 과연 진짜냐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건을 보면 허위로 만들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 계획이 상세하게 나온다. 국회의 계엄령 해제 시도를 막기 위해 반정부 활동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내려 정치활동을 통제하고, 고정간첩 등 반국가 행위자 색출을 지시하는 등의 방식으로 야당 의원들을 사법조치 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청와대, 국방부, 법원, 검찰 등 계엄군 배치 장소와 이동경로까지 계획했다. 촛불집회가 열렸던 광화문 일대는 26사단·5기갑여단·3공수여단이, 국회와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는 톨게이트와 한강 다리는 30사단이 점령해 진압한다고 정확히 명시돼 있다.
독재정권 중에서도 엄혹하던 시절을 연상케 하는 내용 중엔 언론통제 계획도 있다. 문건을 보면 기무사는 탄핵 전 촛불집회 국면을 ‘사회질서 혼란’ 등으로 규정하고 보수언론을 이용해 계엄 여론을 조성하려 했다. 기무사는 ‘계엄선포 필요성 평가’에서 “공권력 붕괴로 인한 사회질서 혼란으로 국민 불안감이 고조됐다”며 “보수언론에서 계엄선포 필요성 제언, 보수층 및 경제단체에서 동조”라고 작성했다. 당시 매체의 성향을 분석했는데 YTN·KBS·SBS·조선·중앙·동아·뉴데일리·독립신문 등을 보수, MBC·연합뉴스·서울신문·한국일보·경제투데이 등을 중도, JTBC·한겨레·경향·프레시안·오마이뉴스 등을 진보 성향으로 구분했다. 이런 전반적인 상황을 봤을 때 문건이 가짜일 가능성은 극히 적다.
쟁점2 – 황교안은 알았나
기무사는 문건에서 계엄 선포 필요성에 대해 ‘NSC를 중심으로 정부부처 내 군 개입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라고 밝혔다. 이 내용은 기존에 공개된 문건에는 없었다.
그런데 당시 NSC 의장은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이었다. 황교안 대표는 권한대행 직무가 개시된 이후 2016년 12월 9일, 2017년 2월 15일, 2월 20일, 세 차례 NSC에 참석했다. 2017년 2월 15일 NSC 회의가 열리고 이틀 뒤인 2월 17일 한민구 국방장관은 조현천 기무사령관에게 계엄령 문건 작성을 지시했다. 이후 2월 25일 중간보고가 있기 전인 2월 20일 또 한 차례 NSC 회의가 열렸다.
계엄령 문건 작성 지시가 이뤄졌던 시기를 보면 황교안 당시 권한대행이 참석한 NSC 회의에서 군 개입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오갔을 가능성을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다. 이에 황 대표는 계엄령의 계자도 들어보지 못했다며 강렬하게 반발했다. 하지만 문서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계엄령은 NSC에서 논의됐고, 황 대표는 NSC 의장이었다.
지난해 검찰이 참여연대에 보낸 불기소 이유 통지서에도 이런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 실제 해당 불기소 이유서를 보면 “현재까지 피의자(황교안)가 계엄 문건 작성에 관련 됐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면서도 “계엄문건 실행 의사 유무 판단은 피의자(황교안)와 조현천과의 사전 의사 연락이 중요하다 보이고, 2017년 3월 경 피의자가 참여한 공식 행사에 조현천이 4회 참석한 정황이 나타나는 등 조현천이 피의자에게 계엄 문건을 보고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참고인 중지 시점도 ‘조현천의 소재가 발견될 때까지’로 함께 적시했다. 해당 이유서에 따르면 “조현천의 진술을 들어봐야 피의자의 관여 여부 등 그 진상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보이나, 조현천의 소재를 알 수 없다”면서 참고인 중지 사유를 밝히고 있다.
그가 계엄령을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면 가능성은 둘로 좁혀진다. 하나는 당시 NSC 구성원들이 황 권한대행을 유령이나 허수아비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황 대표의 무능함이 드러난다. 조국 사태를 거치며 마치 자신을 구국의 영웅처럼 삭발하며 말을 쏟아내지만, 실제로는 부하들에게도 무시당하는 존재였던 셈이다. 다른 하나는 거짓말일 가능성이다. 만약 그가 이 사실을 알았다면 이것은 내란예비음모죄에 해당한다. 황 대표는 말로는 자유민주주의와 헌법을 얘기하지만, 그가 뒤로는 쿠데타를 모의했다면 그는 자유 대한민국의 공당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
황 대표는 중요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자신은 모른다고 했다. 2012년 부산시는 엘시티 사업 부지를 부동산 투자 이민제 지역으로 지정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당시 권재진 법무부 장관은 특혜 시비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거절한 바 있다. 그런데 박근혜 출범 이후 3개월도 지나기 전에 승인이 났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황교안 전 총리였다. 황 전 총리는 당 대표 경선 때 관련 의혹이 제기됐지만 그 때도 모른다고 했다. 최종결재권자가 해당 사항에 대해서 모른다고 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무능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쟁점3 – 조현천, 안 잡나 못 잡나
계엄령을 모의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해 군과 검찰이 합동으로 37명의 대규모 합동수사단을 구성해 석 달 넘게 수사를 벌였다. 핵심인물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내란음모 혐의로 함께 고발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등에 대해선 별다른 조사도 하지 않았다. 합수단은 박근혜 전 대통령,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 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 등 8명에 대해서는 각 참고인 중지 처분했다.
신병확보를 하지 못했으면 먼저 당사자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 수사의 관례인데 수사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황 전 총리가 관련 의혹으로 포토라인에 서는 것을 용인치 않은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을 조사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한 것도 아니다. 조 전 사령관은 대구·경북(TK) 인맥으로 계엄령 문건 작성에 직접 관여한 인물이다.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대구고와 육군사관학교(38기)를 졸업했다. ‘친박’ 실세였던 최경환 전 부총리(구속)의 대구고 후배다. 조 전 사령관의 군 생활은 부침의 연속이었다. 군내 사조직 ‘알자회’ 출신이라는 이유로 영관장교 시절까지는 진급에서 번번이 누락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초기에도 군을 장악하고 있던 같은 TK였던 상주·김천 라인 실세들로부터 홀대를 받았다. 그가 군 실세로 부각한 것은 박근혜 정부 때였다. 조 전 사령관은 재직 시절 대부분 오후 10시 이전이면 종로구 청운동 기무사령관 공관으로 복귀했다. 술자리 2차를 가지 않는 그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기무사 안팎에서는 조 전 사령관이 청와대를 의식해 조심스럽게 행동한 때문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처럼 조 전 사령관은 당시 청와대와 끈끈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작성을 주도한 계엄령 문건은 청와대가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