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 유물 100년만에 ‘고국 나들이’ …대여 첫날부터 우려감이 고조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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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회 유물운송작업은 시작일뿐…’
끝까지‘역사적 중요성’ 잊지 말아야

유물대한인국민회의 미주독립운동 유물 2만여점이 100년만에 지난달 23일 한국의 독립기념관(관장 이준식)에 ‘대여’ 조건으로 운송됐다. 지난달 23일 국민회 유물은 ProPack라는 전문운송업체에 의해 그동안 나성한인 연합장로교회 어린이 교실에 방치되었던 유물들을 특수 포장하여 한국행 화물기에 실려 한국으로 운송됐다. 이날 국민회 유물 관리 4인 위원회는 유물이 교회내 허름한 창고에 과학적인 보존 처리없이 홈디포 박스 등에 처박혀 16년째 방치되어 있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한편 이번에 유물을 대여받은 독립기념관 측은 애초 지난 9월 4일 유물대여 합의서에 규정된 보험 조건이나 이행 조치에 대하여 첫날부터 준수하지 않아 유물 대여 초기단계부터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향후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한편 유물이 한국에 도착한지 3주가 경과했음에도 독립기념관 측은 ‘유물이 안전하게 도착했다’라는 소식도 보내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어 관계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짚어 보았다. <성진 취재부 기자>

국민회 유물의 한국 운송을 위탁받은 ProPack업체는 이날 오전부터 특수제작된 13개의 운송 상자를 교회 주차장에 하역 시킨후 교회 어린이 교실 창고에 보관된 유물들을 종류별로 13개 운송 상자에 담았다. 이날 대여 운송을 담당한 독립기념관 관계자들은 4인 위원회가 ‘유물 대여 운송의 안전 등을 위한 보험 증서’ 등을 요청했으나 ‘전문적인 회사로 선정했다’며 ‘염려 말라’는 식으로 지나쳤다. 이들은 운송업체가 특수 전문 회사라고 강조했으나, 1905년부터 발행된 신한민보 원본이나 이민 초창기 깃발 등을 꺼내 운반할 때 당연히 착용해야 할 장갑조차 끼지 않고 작업을 벌였다. 유물 운반 과정의 기초 과정도 지키지 않은 운송 작업이었다.

허술한 유물 한국 운송작업

허름한 교실 창고에는 1920년대 미주한인 인구 현항을 수록한 ‘재미동포 인구등록’, 한인 이민초기 한글 교과서, 개인 서신 및 사진 ,이민 초창기 태극기와 일제강점기 서울 전경 사진, 공립신문· 신한민보 원본 및 축쇄판, 장인환·전명운 의사의 스티븐 저격 사건에 따른 변호사 비용 모금내용, 3·1운동 전후 대한인국민회 공문서와 상해 임시정부

▲ 허술했던 유물 창고

▲ 허술했던 유물 창고

재정지원내용 문서, 1930~40년대 국민회 각 지방 공문독립운동 자금 입금대장, 대한인국민회관 낙성식 휘호 등등이 홈디포 종이박스를 포함한 각종 박스에 담겨져 있었다. 이들 유물은 미주 한인이민 역사 및 일제강점기 시절 미국을 중심으로 펼쳐진 우리 민족 독립운동 역사를 밝혀줄 귀중한 문헌들로 금액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미주한인사회의 유산이다. 이처럼 귀중한 유물이 발견 당시부터 보존처리를 하지 않고 국민회관 건물을 구입한 나성한인연합 장로 교회 1층 어린이 교실 임시 보관소에 16년째 방치되어 왔었음이 이날 운송 과정에서 낱낱이 노출된 것이다. 이날 유물 운송 작업이 있기 전날인 지난달 21일 대한인국민회관에서 독립기념관 측과 4인 위원회는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독립기념관으로 대여를 위해서 한국으로 운송한다는 행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4인 운영위원회 권영신 위원(국민회기념재단 이사장)은 “100년전 이민 선조들의 대한민국 독립을 위한 소중한 자산들이 대한민국으로 이송돼 복원이 제대로 이뤄지고 이를 토대로 미주 독립 운동사에 대한 새로운 발견 및 재조명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유물을 대여받은 독립 기념관의 김영임 자료부장은 “대한민국 독립사적으로 소중한 자산인 유물들이 독립기념관으로 대여돼 연구·보존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LA한인 동포사회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며 “독립운동 유물들의 복원에서부터 분류, 이미지화, 분석, 그리고 보존에 이르는 과정이 최소 3년은 걸릴 것으로 보고 있고, 복원이 되고 준비가 된 독립유물들은 USC와 협력해 웹사이트 상에서도 최대한 빨리 관람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완중 LA총영사는 “대한민국 정부가 이 독립운동 유물들에 대한 재판관할권을 양보해가면서 완벽하게 이 자산들을 보존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 오늘의 결실을 이루게 됐다”고 밝히고 “LA한인 동포사회의 양보와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2020년 3.1절 기념일 이전에 LA동포사회의 관계자들을 초청해 한국에서 자료 공개 행사가 이뤄지도록 한국 정부에 건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합의서 서명 잉크도 마르기전에…’

한편 지난 9월 4일 대한인국민회 기념관에서는 4인 위원회와 독립기념관 관계자인 독립운동사 연구소 신주백 소장, 김완중 LA총영사 등이 모여

▲ 안전 장갑도 없이…

▲ 안전 장갑도 없이…

유물을 정식으로 한국 독립기념관에 대여한다는 합의서 서명식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신주백 소장은 “대한인국민회 자료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나 한국 근현대사, 미주 한인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새롭고 풍부하게 해명하고 규명된 가치를 미주 한인사회에 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고 말했다. 이 유물은 지난 2003년 7월 당시 방치되어 있던 대한인국민회관(Korean National Association Hall)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당시 밀폐된 다락방에서 발견됐다. 이들 유물은 미주 한인이민 역사 및 일제강점기 시절 미국을 중심으로 펼쳐진 우리 민족 독립운동 역사를 밝혀줄 귀중한 문헌들로 금액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미주한인사회의 유산이다. 이처럼 귀중한 유물이 발견 당시부터 보존 처리를 하지 않고 국민회관 건물을 구입한 나성한인연합 장로 교회 1층 어린이교실 임시 보관소에 16년째 방치되어 왔었다.

이처럼 방치되자 한국의 독립기념관 산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보존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2011년부터 두 차례 실사작업을 벌여왔다. 지난 2011년에도 독립기념관 측은 국민회관 유물을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국내로 유물을 이전하려 했으나 선데이저널 등을 포함해 한인사회의 거부 운동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원래 국민회관 유물은 캘리포니아법원이 1984년에 내린 판결에 의거 2083년까지 99년 동안 해외로 이전이나 반출이 금지되었다. 판결의 요지는 ‘국민회관 유물은 캘리포니아 한인사회의 역사적 재산이기 때문이다’라는 점이다. 지난 2003년에 본보 취재진이 입수한 캘리포니아법원 판결문(사건번호C-297-판결문(사건번호C-297-554)에 따르면 국민회관과 유물의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해 1984년부터 ‘99년 동안’ (2083년 까지) 유물이 보존된 교회는 국민회관과 유물에 관해 “철거, 매각, 임대, 양도, 이전 등 하지 못한다” 고 못 박았다.

‘우여곡절끝에 ‘대여’ 명목으로 반출

지난 1984년 4월 26일자로 캘리포니아법원(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상급법원)의 잭 크리카드 판사는 1984년 당시 국민회관과 관련된 분쟁소송에서 소송 당사자들의 합의서를 검토하고 “국민회관이 역사적 유적지로서 한인사회를 위해서” 관리 유지 되어야 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판결문은 ‘국민회관에 있는 유물과 사료등도 99년 동안 그대로 회관 내에 보존되어야 한다’면서 ‘교회(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는 국민회관이 미주한인이민사의 역사적 기념 유적지라는 사실을 인식해 건물 소유주로서 한인사회를 위해 제반 사료보존에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합의서에는 교회가 (국민회관) 건물의 소유권은 있으나 “국민회관은 한인사회가 사용할 수 있도록 차별 없이 완전히 개방되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판결문과 부속 합의서를 보면 국민회관과 유물 등 사료가 미주한인사회의 역사적 유적지로서 “특별히 캘리포니아주의 한인사회를 위한 것”임을 여러 조항에서 강조했다.

특히 판결문은 국민회가 1978년 9월20일 회관건물을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당시 담임 우상범 목사)에 매각한 것을 인정했으나 국민회관과 유물의 ‘역사적 중요성’을 감안해 1984년부터 ‘99년 동안’(2083년)까지 교회는 국민회관과 유물에 관해 “철거, 매각, 임대, 양도, 이전 등 하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이 합의서에는 ‘역사적 건물 보존’ ‘한인사회에 조건 없이 개방’ ‘국민회관 역사적 유물 보존’이라는 별도 제목까지 제정해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이같은 판결문을 보면 “국민회관과 유물이 미주 한인 사회의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판결임을 알 수 있다. 유물은 2003년 발견 당시도 이미 일부 자료는 손상되어 있었다. 당시 다락방에서 임시보관처인 국민회관과 한 울타리에 있는 나성한인 장로교회로 운반하는 과정에서 일부 사료들이 손상 당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같은 초기단계 조치부터 비전문가들에 의해 잘못 보존됐다. 처음 유물을 발견때부터 전문가에게 연락해 조치를 취하는 것이 기초 단계인데, 사료보존에 무지 한 당시 국민회관 복원위원회 관계자들이나 교회 관계자들이 초기과정을 소홀히 했던 것이다.

‘다락방’유물 이미 많이 손상

국민회관 유물들은 발견 당시 종류별로 오피스 디포에서 구입한 20여개 박스상자에 넣어 교회 내 주방 옆 허름한 사무실에 그대로 보관했다. 한마디로 무방비 상태라고 볼 수 있다. 한때 보관소 옆 주방에서 물이 흘러 땅바닥을 적실 경우 옆방 유물 보관 장소로도 스며들어 갈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런 환경이라 교회 측은 이민사 연구자들이 한번쯤 외관

▲ 국민회유물 2만여 점은 모두 13개 특수 컨테이너에 실려 운송됐다.

▲ 국민회유물 2만여 점은 모두 13개 특수 컨테이너에 실려 운송됐다.

으로라도 유물을 관람을 하고 싶어도 허가를 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국민회관 기념재단, 교회 상급 관계자들, 그리고 본국 고위층이 오면 비밀리에 관람을 해주곤 했다. 현재 국민회관 유물이 어느정도 손상이 됐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관련자들은 책임이 두려워 손상 여부나 관리여부가 외부에 일체 비밀에 붙여지고 있었다. 다만 30% 정도는 복원 불가능한 상태임을 추정할 뿐이다. 2016년 법원 판결에 의해 USC에서의 자료 목록 작업과 스캔 과정, 그리고 지난 2005년에 한국정부 보훈처 유적실태 조사단이 LA방문 길에 ‘다락방’유물의 중요성을 인하고 “조사단을 보내겠다”고 약속한 후 1년 후 2006년 9월, 2명의 조사단을 파견 했다. 이들 조사단은 ‘다락방’ 일부 유물은 특별한 화학처리 없이는 제대로 검토할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많이 손상되었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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