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국일보 창업주 장재구 동생 장재민에 보낸 공개편지 전후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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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지경에까지…’

‘우리 형제 맞아?’
끝장 대결 임박

미주한국일보의 창업 발행인인 장재구 전회장이 지난주 동생 장재민 미주한국일보 회장에게 보낸 공개편지(1)의 파장이 크다. 지난번 공개편지(1)과 이에 대한 기사가 선데이저널에 보도되자 미주 언론계는 물론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이 일고 있다. 미주한국일보의 전직 직원들은 물론 현재 직원들이 크게 술렁이고 있으며, 코리아타운의 올드타이머들도 본보에 사태추이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공개 편지(1)을 발표한 장재구 전 회장은 본격적으로 민‧형사 재판을 위한 변호사를 선임해 작업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져 이번 공개편지 공개 파문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특별취재반>

미주한인사회에 충격파를 몰고 온 공개 편지(1)과 관련해 본보로 부터 6개 항목의 질의서를 받은 장재구 전 회장은 20일 “현재 소송을 준비 중인 변호사와 협의하고 있다”면서 “변호사가 (선데이 저널)기사를 보고 자세히 검토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애초 공개 편지에 언급했던 ‘약속 불이행시 법적 대응할 수 밖에 없으며, 민‧형사상의 모든 책임은 장재민 회장에게 있다’고 한 것처럼 법적 수속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이에 대해 미주한국일보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공개 편지(1)에 언급된 ‘55억원은 장재민 회장이 미주로 가지고 갔다’라는 내용에 대하여 “문제의 55억원은 미주한국일보가 서울에 빌려 주었던 돈을 가지고 회수한 것이다”라며 장재구 전회장의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라며 대응할 가치가 없는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다라고 일축했다.

창사 50년에 터진 최대 위기

지난번 공개 편지(1)와 이에대한 기사가 선데이 저널에 보도되자 이곳 언론계는 물론 커뮤니티에서도 아주 큰 반향이 일고 있다. 미주한국일보 창사 50년에 터진 최대 위기이다. 국내외 언론사에 지난 세월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한때 국내외 최대 한인 언론사로 유명세를 떨쳤던

▲ 공개 편지를 보낸 장재구 전 회장

▲ 공개 편지를 보낸 장재구 전 회장

한국일보의 흥망성쇠는 달랐다. 서울의 한국일보는 ‘장씨 패밀리’가 지키지 못하고 동화그룹에 넘어 갔고, 한국일보 미주본사는 ‘장씨 형제의 난’으로 앞날에 심한 안개가 드리워지고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하여 특히 미주한국일보 출신들의 모임인 녹우회에서도 초미의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으며, 당연히 이번 사건은 최대 이슈가 되고 있다.

조만간 이번 문제와 관련해 대책모임을 가질 것이라고 한 관계자가 밝혔다. 이 관계자는 “백상 장기영 사주가 심은 언론의 지침을 지키지 못하고, 추락하는 신문을 보는 심정이 매우 아프다”면서 “장기영 사주가 지하에서 통곡할 것이다”는 격앙된 반응이다. 또한 “조만간에 대책 모임을 갖자는 의견들이 많아 금명간에 회의가 열릴 것 같다”고 전했다. 두 사람을 잘알고 있는 타운의 올드타이머들은 이번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며 “장재구-재민 형제의 원만한 해결을 통해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안타까운 심정을 보이고 있다. 또한 ‘장재민 회장이 형에게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의 미주한국일보는 장재구 사장이 터전을 잡았고 장재민 회장이 이를 이어 키운 만큼 “형이 이유야 어찌되었던 한국일보를 살리기 위해 옥살이를 한 사람이니 동생인 장재민 회장이 도와 주어야 도리가 아닌가”라며 안타까워 했다. 미주한국일보의 일부사원들은 “이번 ‘공개 편지 사건’은 최근에 미주한국일보에 불어닥친 집단 소송으로 야기된 어수선한 분위기에 ‘설상가상’으로 덮친 사건”이라면서 “장차 신문사가 어디로 갈지 걱정스럽다”는 반응이다. 이와 함께 중견기자 두명이나 신문사를 잇따라 떠나 신문사 편집국도 씁쓸한 분위기다. 미주한국일보 LA본사와 SF지사 전현직 200여 직원에게 영향을 주는 집단 소송을 당한 신문의 대표 장재민 회장은 지난해 98만 달러 합의금으로 일단 사건을 수습하려고 현재 막바지 합의 조건을 제의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집단소송으로 그동안 관행처럼 부려왔던 직원들에 대한 노동 조건을 일부 개선했지만 오버타임 등을 포함한 근무조건을 다시 악화 시키는 행태로 나오고 있어 일부 직원들이 분노하고 있는 실정이다. 집단 소송의 시초는 30여년을 근무한 여직원이 제기한 것인데 파트타임으로 만들어 놓고는 실제 풀타임 근무를 시키는 악조건에 억울한 심정을 표출하면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부당한 대우를 받은 전‧현직 직원들의 집단소송으로 번진 것이다. 이번 집단 소송을 통해 대부분의 직원들은 부당노동 행위의 공소시효가 4년임을 배웠다. 비록 10년을 부당노동 행위로 피해를 당한 직원 들이라도 피해 보상은 4년에 준한다는 사실을 알고 전‧현직원들은 허탈해 했다고 한다.

‘집단소송’에 이은 ‘공개편지’로 충격

지난해 6월 미주한국일보가 창간 50주년을 기해 발간한 ‘한국일보 미주본사 50년사(1969-2019)’ 책자를 보면 첫 부분에 창업자 고 백상 장기영 사주, 미주 창업자 장재구 전 회장과 현재 장재민 회장의 사진이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장재구 전 회장 이름 다음에 (1069-1981. 4.)라는 재직 기간이 적혀있고, 장재민 회장 다음에는(1981. 5.- 현재)이라고 재직 기간을 명시했다. 이 재직 기간을 보면 장재구 전회장은 미주한국일보에 재직 기간이 12년 정도이고, 장재민

▲ 장재민 미주한국일보 회장

▲ 장재민 미주한국일보 회장

회장은 현재까지 38년을 재직하여 장재구 전 회장보다 거의 3배 이상을 근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999년 6월 미주한국일보 창간 30주년을 기해 발간한 ‘한국일보 미주본사 30년사’에는 고 장기영 사주, 창간 발행인 장재구, 미주본사 회장 장재민으로 사진이 수록됐으나 그때는 재직 기간을 명시하지 않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장재구 전 회장과 장재민 회장과는 결속 관계가 좋았다. 한편 ‘한국일보 미주본사 30년사’에는 특히 <장재민 사장 시대가 열리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크게 실렸다. 그 30년사에는 고 장기영 사주나 미주한국일보 창업자인 장재구 이름이 들어간 제목의 기사는 없었다.

<장재민 사장 시대가 열리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81년 한국일보 LA 지사에는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서울 본사 임시 이사회가 4월 10일 장재구 미주본사사장 겸 LA지사장을 서울 본사 사장으로, 장재민 이사를 미주본사사장 겸 LA지사장으로 임명했다. 이로써 장재구 사장은 69년 2월 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와 한국 언론 불모지에 한국 일간지의 뿌리를 내린 후 12년의 미국 생활을 마감하고 본사로 돌아갔다. 장재구 사장의 본사 8대 사장 취임 소식은 전직원의 경사였고 한인타운에서도 화제가 됐다. 장재구 사장의 동생인 신임 장재민 사장은 70년 한국일보에 입사하고 76년부터 한국종합물산 미국 지사장으로 일하다 한국일보 LA지사장을 맡았다. 남가주의 하버드 고교와 클레어몬트 맥키나 컬리지를 거쳐 UCLA를 졸업, 미국사회를 잘알고 미국식 합리적 사고 방식을 갖춘 장재민 사장의 취임은 LA지사의 많은 변화를 초래했다. 우선 분위기가 바뀌었다.

개척기였던 장재구 사장 시대가 한 가족같은 분위기였다면 장재민 사장 취임으로 시작된 제 2기에는 명실공히 기업다운 분위기를 갖춰갔다. 취임 당시에 대하여 장재민 회장은 “전임 사장의 노력으로 기틀을 잡아놓은 ‘할 소리 다하는 신문’의 스피릿을 지켜가는 한편 경영면에서는 업무의 분업화로 기업의 틀을 안정시키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았다”고 회상한다. 미주한인사회의 미래에 큰 관심을 가졌던 장재민 사장이 취임 후 첫 작업으로 시행한 것은 ‘견습 기자 제도’였다. 당시까지 편집국 인력은 미국 연수차 LA체류 중이던 서울 본사 기자들에게 많이 의존했다. 그러나 서울 기자를 데려오는데도 한계가 있고, LA 도착후 기자들이 운전을 배우고 집 구하고 하는 정착 과정들을 모두 새로 거쳐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장기적 인력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낀 장사장은 현지에서 채용, 훈련시키는 견습기자 제도를 도입했다.> 장재구 전 회장이 서울로 떠나간 후 미주한국일보의 번영과 발전은 장재민 시대가 만들어 논 것이라는 취지이다.

‘형제의 난’에 “2세의 난”까지 파급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라는 우리네 속담이 있다. 이번 장재구 전회장과 장재민 회장간의 ‘마지막 대결’의 단초 중에는 양 회장의 2세들 간의 대립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전‧현직 직원들간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같은 양상은 미주한국일보가 현재의 윌셔와 옥스포드 빌딩 10층 사무실로 이사오면서, 2세들간 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삼촌과 조카간의 대립으로 번지면서 사무실과 책상까지 치우고 OC로 퇴출시키면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버렸다는 것이다. 원래 한국일보 5형제 중 둘째와 셋째인 장재구 전 회장과 장재민 회장은 ‘장씨 패밀리’에서 아주 가까운 “통속”이었다. 서울에서는 이 두 형제를 “해외파”로 불리웠다. 그러나 장재구 전 회장이 서울 본사로 입성하면서 조금씩 틈새가 벌어졌다. 여기에서 서울의 한국일보는 “해외파”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장재구 전 회장은 비록 한국일보의 회장으로 군림했지만 고질적인 서울 한국일보의 텃세 때문에 두고두고 고생했다. 결국은 서울 본사 노조의 고발로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서울의 한국일보는 한때 ‘조‧중‧동’과 함께 4대 일간지로 군림한 적도 있으나 나중 200만부 신문 발간이 20만부로 쪼그라드는 신세가 됐다. 후반부에는 경영난으로 미주한국일보의 지원을 받기도 하여 서울에서는 한 때 “서울 한국일보가 LA 한국일보의 지사인가”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미주한국일보 위상은 대단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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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에서 장재구 전회장에게 보낸 질의서

1) 장재구 회장이 이번에 공개편지(1)를 발표하게 된 동기와 미주한국일보 창업 발행인으로서 미주동포사회에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2) 공개편지(1)에 따르면 “전‧현직 사우들과 동포사회 많은 유지분들의 충언을 듣고 수차례 해명과 약속 이행을 촉구하였으나 답변이 없어 공개편지를 보냅니다”라고 하셨는데, 어떤 해명과 약속을 제의했는가?
3) 공개편지(1)에 따르면 “(장재민 회장이) 회장직을 어떻게 맡게 되었습니까?”라고 지적했는데, 장재민 회장의 미주한국일보 회장직 승계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4) 현재 장재구 회장(직계 가족 포함)이 소유하고 있는 미주한국일보와 이에 관련된 계열 회사의 주식이나 지분은 어는 정도인가?
5) 장재구 회장은 한국일보 서울 본사를 살리기 위해 2002년 서울 본사 회장으로 취임했으며 그후 5년 뒤 회생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늘의 현실에서 한국일보는 서울이나 미국 이나 많은 독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분석하는가?
6) 공개편지(1)가 공개될 경우에 이에 대한 시한을 정하였는가?

본보에서 장재민 회장에게 보낸 질의서

1) 장재구 전회장이 이번에 공개편지(1)를 게재한데 대하여 장재민 회장의 입장을 듣고 싶다.
2) 장재구 전회장의 공개편지(1)에 따르면 “전‧현직 사우들과 동포사회 많은 유지분들의 충언을 듣고 수차례 해명과 약속 이행을 촉구하였으나 답변이 없어 공개편지를 보냅니다”라고 했는데, 어떤 해명과 약속 이행을 촉구 받았는가?
3) 장재구 전회장의 공개편지(1)에 따르면 “(장재민 회장이) 회장직을 어떻게 맡게 되었습니까?”라고 지적하였는데, 장재민 회장의 미주한국일보 회장직 승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4) 장재구 전회장 공개편지(1)에 따르면 “장재민 회장에게 묻습니다. 55억원은 누구 자금입니까?”라고 했는데, 이 점에 대하여 장재민 회장의 입장은 무엇인가.
5) 장재구 전회장의 공개편지(1)에 대하여 만약 사실이 아닌 사항이 있다면 지적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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