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특별취재] 미 국무부 충격적인 비밀전문 단독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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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만에 드러난 CIA 청와대 도청 논란
스위스 크립토AG사 암호장비 사용해 감시

주권포기…‘대통령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존심도 없었다’

청와대, CIA 도청 사실 알고도
항의 한번 못하고 오히려 애걸복걸한 사연

미국 중앙정보국 CIA가 스위스 암호장비기업인 크립토AG의 실소유주로서, 이 회사가 만든 장비를 한국을 비롯한 120개국에 공급, 각국 정부의 기밀을 빼낸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1일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하며 한국정부가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이 장비의 주요고객이었다고 밝혔고, 한국정부도 지난 13일 공식 성명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시인했다. 하지만 지난 1976년 10월 워싱턴포스트가 ‘코리아 게이트’로 명명된 박정희 정권의 대미로비의혹을 보도하며, 미국정부가 청와대를 도청해 정보를 입수했다고 보도하자, 박정희정권은 이에 대해 항의하기는 고사하고 박정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질 수 있다며 ‘제발 도청사실을 부인해 달라’고 간청하는 등, 주권국가임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동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본지가 입수한 미국무부 비밀전문을 단독으로 공개한다
안치용(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청와대

크립토AG 실소유주를 보도한 지난 11일로 부터 약 43년전인 바로 이날도 워싱턴포스트가 코리아게이트의혹을 터트리며 청와대 도청설을 보도했다. 코리아게이트를 폭로한 워싱턴포스트의 맥신 체서 기자는 1보에서 한국인 실업가 박동선이 미 의회 내에서 한국에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 20명 이상의 의원들에게 캐시와 선물을 퍼부었으며 미 사법당국이 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비록 조사가 초기단계이긴 하지만 조셉 아다보, 로버트 레게트, 오토 패스만 등 현직 의원 3명과 코르넬리우스 갤러거, 리처드 해너 등 2명의 전직 의원 등 5명이 수뢰혐의를 받고 있다며 실명을 언급했다.

▲ CIA가 소유주로 밝혀진 스위스 크립토AG사가 생산한 암호장비 CX-52

▲ CIA가 소유주로 밝혀진 스위스 크립토AG사가 생산한 암호장비 CX-52

CIA 청와대 도청 항의 한번 못해

특히 맥신 체서는 기사 중간 부분에서 ‘극도로 민감한 정보장치’를 한국 정부의 최고위층과 주미한국대사관에 설치해 박동선의 의원 매수정보를 입수했다고 밝혔다. 또 ‘극도로 민감한 정보장치’는 도청장치 또는 전자장치라고 보도했다. 한국정부의 최고위층은 청와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청와대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미 사법기관이 수사에 나섰음을 말하는 것이다. 맥신 체서는 10월 24일 박정희가 직접 관련됐다는 2보를 내보냈다. 박동선이 박정희로부터 개인적으로 지시를 받아서 의원들에게 수백만달러를 뿌렸다고 보도했다. 박정희의 직접 지시는 이후 청문회에서 제출된 그 어떤 증거를 통해서도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 정부가 도청을 통해서 파악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10월 26일에는 미 사법기관이 주한미국대사관에 대해 은행계좌자료를 제출하라는 자료제출명령서를 발부했으며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의 ‘청와대도청설 폭로’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당시 박정희정권의 대응이었다. 박정권의 대응은 주권국가이기를 포기하고, 절대권력만을 추구하는 탐욕스런 독재자의 민낯 그 자체였다. 1976년 11월 2일 스나이더 주한미국대사는 국무부로 비밀전문을 타전했다. 비밀전문에 따르면 이날 박동진외무부장관이 자신을 외무부로 불렀다는 것이다. 스나이더는 한국 정부가 ‘왜 청와대를 도청했느냐고 따지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머리를 싸매고 잔뜩 긴장한 채 외무부로 갔지만 박동진장관의 말은 예상과는 영 딴판이었다.

비밀전문에 따르면 박동진은 스나이더에게 ‘제발 미국 정부가 청와대 도청설이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돼 있다. 명색이 주권국가에서 국가 원수가 거주하는 곳이 도청당했다는 유력지의 보도가 있다면 당연히 항의해야 하건만 박정희 정권은 사실 여부를 물어보거나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사실을 부인해달라고 매달린 것이다. 이는 주권국가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갑과 을의 한미관계에서 슈퍼갑인 미국에 대한 한국의 노골적인 저자세였다. 그러나 한미관계의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외무부장관의 발언은 도저히 주권국가의 대응이라고 평가할 수 없을 정도였다.

박정희박정희, WP도청설보도 ‘부인해달라’애걸복걸

비밀전문에는 박동진이 스나이더에게 “11월 4일 열릴 예정인 국회 외무위원회에서 박동선의 미 의회 로비, 즉 코리아게이트와 청와대 도청설 등이 논의될 수 있으며. 코리아게이트는 쉽게 처리할 수 있지만 청와대 도청설은 정말 걱정거리”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에 대해 스나이더는 미국이 한국의 우방임을 강조하고 청와대 도청설은 확인되지 않은 추측성 보도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도청이 존재한다면 조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표명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하지만 박동진은 스나이더의 제의를 ‘불만스럽게’ 거절했으며 “언론에서 문제가 된다면 부인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고돼 있다. 상황을 보면, 뭐가 거꾸로 돼도 단단히 거꾸로 된 것이다. 가해자인 미국측은 박정희정권에게 ‘조사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하라고 권하고, 피해자인 한국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해달라’고 간청한 것이다. 얻어맞은 놈이 때린 놈에게 때린 적 없다고 말해달라는 격이요, 겁탈당한 아낙네가 치맛자락만 스쳤다고 둘러대는 격이다. 박정희정권의 이 같은 간청은 국격은 물론 국민의 위상까지 내동댕이친 것이다.

박동진장관은 한술 더 떴다. 스나이더에게 국회에서 답변할 수 있도록 미국 정부가 공식 부인해 달라고 다시 한 번 강력히 요청했다. “빨리 이 문제를 워싱턴에 보고해, 내일, 즉 11월 3일까지 답변을 달라, 그래야 11월 4일 오전에 열리는 국회 외무위 회의에 대비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박정희 정권이 끝까지 도청사실을 부인해 달라고 미국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린 것이다.

미 국무부, 박정희 부인요청 공식 거절

특히 박동진은 스나이더와 면담 중 배석한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스나이더를 잠시 옆으로 불러서 속삭였다. 그리고 자신이 오늘, 11월 2일 박정희를 면담했는데 “박정희가 청와대 도청설로 떨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이 공식 부인하지 않으므로 대통령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두려워 하고 있다”라며 “우리의 공식 부인 요청을 검토할 때 박정희의 깊은 우려를 워싱턴에 분명히 전달해달라”고 말했다.

스나이더는 이 전문 마지막에, 자신이 박동진에게 도청 등 정보기관의 활동에 대해 공식적으로 부인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지만 한국은 미국이 부인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적었다. 그리고 한국은 사실상 대통령을 심각한 어려움에 빠지게 하려는 미국의 간접적 공격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여러 가지 문제가 있더라도 이 문제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공식 부인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를 덧붙였다. 스나이더가 박동진의 하소연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미 국무부에 ‘청와대 도청 부인’을 건의를 한 것이다.

▲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1일자 보도를 통해 CIA가 120개국에 암호장비를 판매하는 방법으로 각국정부의 통신을 도청했으며, 한국도 스위스암호장비회사 크립토AG의 주요고객이었다고 밝혔다.

▲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1일자 보도를 통해 CIA가 120개국에 암호장비를 판매하는 방법으로 각국정부의 통신을 도청했으며, 한국도 스위스암호장비회사 크립토AG의 주요고객이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는 같은 날 주한미국대사관에 전문을 보냈다. 국무부는 ‘청와대 도청설에 대한 공식부인여부를 한국정부의 입장에서 면밀히 검토했다. 하지만 언론의 특정기사에 대해 선별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오히려 의혹을 부추길 수 있다’라며 공식부인 요청에 대해 명백한 거부입장을 밝혔다. 이로써 참으로 박정희 정권의 꼴이, 아니 나라꼴이 정말 우습게 됐다. 도청당한 것으로 알려진 측이 도청한 측에 대해 책임을 묻기는커녕 제발 도청을 안 했다고 말해달라고 애원하는데 도청을 한 측에서는 도청을 안 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사안에 대한 공식 부인도, 공식 시인도 하지 않는 미국정부의 방침[NCND]은 이미 잘 알려져 있지만‘공식 부인해달라’는 현지 대사의 정무적 건의도 무시한 것은 청와대 도청이 실제로 행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미 정부 부인에 박정희 극도의 불안감

박정희 정권이 하도 간절하게 부인을 요청하자, 스나이더대사는 본국정부의 전문을 받자마자 박동진장관 면담하루만인 11월 3일 다시 박장관을 만났고, 면담결과를 본국으로 타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스나이더는 “심각하게 고려했지만 청와대 도청설에 대해 공식 부인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고, 이는 국무부가 세계 각국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특히 스나이더는 “만일 우리의 대화 내용이 새어 나가서 그것에 대해 질문을 받더라도 내 대답은 노코멘트”라고 강조했다. 즉 미국정부의 공식부인거부가 새어나가서 청와대 도청설이 기정사실화된다하더라고 청와대 도청을 하지 않았다고 공식적으로 부인하는 것은 죽어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박동진은 더 기막힌 말을 한다. “미국 정부로부터 개인적으로 도청을 부인하는 입장을 전달받았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물은 것이다. 개인적으로 도청부인 통보를 받았다고 하면 안되겠느냐는 것이다. 환장할 일이다. 스나이더는 이 주장에 대해서 도 자신은 ‘노코멘트’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애가 탄 박동진은 또 다시 매달렸다. 박동진은 “한미 우호관계를 고려해서라도 미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도청설을 부인해야 한다”라며 재차 요청했다. 그러자 스나이더는 다시 한 번 거절함으로써 웃지 못할 광경이 벌어지고 말았다.


‘설마가 사실로 확인된 셈…’그들은 벼갯머리 송사까지 엿듣고 있었다’

탐욕스런 독재자의 민낯
그대로 드러낸 박정희의 굴욕 대응

스나이더는 비밀전문에서 박동진이 지난번 만남보다 더 불안해 보이고 차가워졌으며 미국 정부의 공식 부인 절대불가 입장에 대해 ‘대단히 놀랍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국회외무위원회가 11월 4일, 내일로 다가왔는데 미국이 공식부인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하자 박정희 정권이 극도로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을 보인 셈이다.

1976년 12월 16일 미 국무부가 주한미국대사관에 보낸 전문은 “청와대 도청설에 대해 우리의 기존입장을 재확인해주라. 지난 10월29일 함병춘 주미한국대사에게도 대통령 대화에 대한 도청이 없었음을 묵시적으로 전했다”고 밝혔다. 즉 박동진 외무부장관이 11월 2일 스나이 더대사를 만나기 전인 10월 29일, 이미 함병춘주미대사가 국무부와 접촉했고, 묵시적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박정희 정권 유지를 위해 도청설에 대한 공개적인 부인이 필요해 죽자사자 미국에 매달린 셈이다. 이를 부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특히 이 전문을 살펴보면 미국은 ‘청와대 도청’이 아니라 ‘대통령 대화’를 도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묵시적으로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는 오직 대통령의 대화에 한정된 것이지 대통령을 제외한 청와대 도청에 대한 부인은 아닌 셈이다.

▲ 1976년 11월 2일 스나이더 주한미국대사는 ‘박동진 외무장관은 오늘 청와대에서 박대통령을 만났다며 박대통령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있고, 떨고 있다고 말하고 거듭해 도청사실 부인을 요청했다’고 적고 있다.

▲ 1976년 11월 2일 스나이더 주한미국대사는 ‘박동진 외무장관은 오늘 청와대에서 박대통령을 만났다며 박대통령이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있고, 떨고 있다고 말하고 거듭해 도청사실 부인을 요청했다’고 적고 있다.

스나이더 부인거부에 키신저까지 동원

박정희 정권은 미국에 도청당했다면 박정희의 권위가 손상된다며 집요하게 공식부인을 요청했고, 닷새 뒤에는 마침내 키신저까지 나섰다. 1976년 12월 21일 국무부는 주한미국 대사관에 보낸 전문에서 “국무부장관과 상의한 결과 문서로 된 공식 부인 입장 표명은 불가하며 한국정부는 스나이더 대사로부터 구두 공식 입장을 통보 받은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무부장관은 키신저를 의미한다. 키신저가 청와대 도청을 공식부인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나이더가 한국정부에 통보한 내용은 공식 부인 거부와 노코멘트가 전부다. 공식 부인은 없었던 것이다. 뒤집어놓고 보면 국무부는 10월 29일 함병춘에게 묵시적으로 대통령 대화를 도청하지 않았다고 통보한 사실도 부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청에 대해 전혀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 시기는 미국이 1976년 11월 선거를 통해 공화당정권의 퇴진이 확정되고 한 달 뒷면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는 시기였다. 즉 정권교체가 정해진 뒤였다. 만약 도청사실을 공식 부인했다가 민주당 정권이 청와대 도청설을 조사해 도청 증거가 밝혀진다면 철창신세를 면치 못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코리아게이트는 ‘민주당게이트’라고 할 만큼 민주당 의원들이 많이 관련됐다. 닉슨의 워터게이트가 공화당에 된서리를 내렸다면 코리아게이트는 민주당을 곤혹스럽게 한 것이다.

그런데 때마침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서 공화당정권의 수사계기를 파헤친다면 도청사실이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정보기관활동에 대한 NCND 방침이 도청을 부인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겠지만 이같은 가능성도 조금은 고려됐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실제로 청와대 도청이 이루어졌으므로 도청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정희 정권은 도청당한 데 항의조차 못하고, 도청 안했다고 말해달라고 애원하며 국격을 내동댕이친 것이다.

미국정부가 청와대를 도청했음은 뉴욕타임스기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1977년 6월 20일 특히 뉴욕타임스는 청와대 도청에 동원된 방법까지 설명했다.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보원들이 전자감시장치를 사용해 1975년 한국의 대통령 관저 내부를 도청해서 미국 국회의원 매수 사실을 알아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코리아게이트’를 조사중인 워싱턴 수사진을 인용, 전자장치를 이용한 한국의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 사찰은 1975년 시작됐음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미CIA 요원들 전파탐지 정보수집 장기계획

또 1970년 서울과 워싱턴 간의 한국인의 전화와 전보를 도청했으며 1970년대 중반에 미국 정보요원들이 청와대 정보수집 장기계획을 세웠다고 밝혔다. 특히 고성능 지향성 전파탐지를 이용한 방법이 청와대 내부를 도청하는 방법으로 사용됐다는 것이 전자장치 전문가의 말 이라며 탐지방법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 장치는 도청목표의 실내에 도청기구를 설치할 필요가 없으며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청와대의 거리정도라면 그 같은 장치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감시체계가 전 세계에 걸쳐 도청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미국국가안보국에 정보를 제공했으며 미국 연방의원 매수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은 국무부가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 1975년 법무부에 넘겼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전자감시 방법으로 수집한 정보는 미국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않지만 사법당국이 미국 연방의원 등을 매수하려던 한국의 음모를 수사하는 데는 좋은 단서가 되고 있다고 밝혔다.

▲ 1976년 11월 2일 스나이더 주한미국대사는 국무부로 타전한 비밀전문에서 ‘한국정부가 청와대도청의혹에 대해 미국측이 제발 부인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 1976년 11월 2일 스나이더 주한미국대사는 국무부로 타전한 비밀전문에서 ‘한국정부가 청와대도청의혹에 대해 미국측이 제발 부인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가 청와대 도청 의혹은 물론 도청방식까지 보도하면서 한국 국회도 정부를 상대로 이를 추궁하고 미국 정부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라고 요구했다. 1977년 6월22일 국회본회의 외교국방분야질문에서 이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당시 구범모 의원은 총리에게 묻는다며 1976년 10월 15일자 워싱턴포스트에 이어 1977년 6월 20일 뉴욕타임스도 청와대 도청의혹을 보도했다며 사실이라면 중대한 주권모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구의원은 뉴욕타임스가 1975 년부터 한국이 북한과 비밀흥정을 할까봐 도청을 했다는 시점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남북대화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남북대화는 1973년 8월 28일에 중단됐다고 밝혔다. 그러니 뉴욕타임스보도는 말이 안 된다는 것이 요지다. 당시 총리 최규하도 지난해 문제가 됐을 때 미국 고위층으로부터 사실이 아니라는 분명한 언질을 받았다며 뉴욕타임스 기사는 지난해 보도를 각색한 것 같다고 답변했다. 청와대 도청설보도를 부인하기 위한 질의였다.

반면 강상욱 의원은 청와대 도청이 기술적으로 분명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도청 방식을 설명했다. 전파빔 조사방식, 즉 특수지향성 전파를 도청대상에 발사하면 전파가 반사돼 돌아오게 된다며, 만약 도청대상에 벽이 있고 안에서 이야기를 한다면 그 전파가 벽에서 진동한 뒤 반사된다고 설명했다. 그 뒤 반사된 전파가 다시 장치에 오면 또 진동이 생겨 혼합이 되는데 전파를 검출기에 넣어서 도청 대상에서 반사된 전파만 걸러내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강의원은 국가원수에 대해 도청을 하는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미국이 아닌 적성국가에서 이 같은 행위를 했다면 대사소환, 국교단절, 나아가 전쟁까지도 갈 수 있는 중대한 문제라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식대응에 주목되는 이유

지금부터 43년 전 박정희정권은 미국정보기관이 한국의 국가원수를 도청했다는 의혹에 대해 미국정부에 항의하기는 고사하고 ‘제발 부인해 달라며’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그리고 지난 13일 문재인정부는 공식성명을 통해 ‘우리나라는 과거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반까지 일부 공공분야에서 스위스크립토AG사 암호장비를 사용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스위스크립토AG사 장비의 고객이었다는 워싱턴포스트 보도를 사실상 인정한 것이다. 분명히 두 정권의 대응방식이 뚜렷한 차이가 난다. 아직 초기단계이므로 앞으로 문재인정부가 이에 대해 미국 정부에 대해 공식항의를 할지는 지켜볼 문제지만 사실여부는 국민들에게 명백히 밝힌 것이다. 정권의 정통성여부에 따라 대응방식이 극명하게 엇갈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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