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경이 이재용을 살렸다?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위원회가 1년 8개월을 이어온 ‘삼성 합병·승계 의혹’ 수사 중단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불기소를 권고했다. 검찰은 이 부회장의 기소여부에 대해 고민에 빠졌지만, 법조계 안팎에서는 예정된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최재경 전 민정수석이 사실상 삼성의 배후에서 컨트롤타워 해결사 역할을 한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이번 결과는 예상했던 것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본지가 두 차례 보도했던 것처럼 ‘삼성 장학생’으로 잘 알려진 최 전 수석은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구성은 물론이고 검찰수사위원회가 꾸려지는 데 있어서 막후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내용이 5월 13일 본지 보도로 처음 알려지자 최 전 수석은 6월 초가 되어서야 본국 한 언론을 통해서 삼성전자 고문을 맡고 있다는 사실을 슬쩍 털어놓기도 했다. 결과는 검찰 칼잡이 최재경이 물에 바진 이재용을 살린 1등 공신이 된 셈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심의위)는 본국시간으로 지난 6월 26일 삼성 합병·승계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수사를 중단하고 재판에 넘기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현안위는 무작위 추첨된 현안위원 15명 중 1명이 불참해 14명 참석으로 개회됐다. 안건은 지난 4일 청구된 구속영장에 기재된 범죄사실에 관해 Δ피의자 이 부회장 수사계속 여부 Δ피의자 이 부회장, 김종중 전 삼성그룹 미전실 전략팀장, 삼성물산에 대한 공소제기 여부였다.
심의절차에서 수사팀, 피의자 측 대리인들이 각 50쪽 분량 의견서를 제출하고 의견을 진술했고, 위원들은 충분한 숙의를 거쳐 심의한 결과 과반수 찬성으로 수사중단 및 불기소 의견으로 의결했다. 고발인 참여연대가 낸 의견서도 위원들 숙의에 참고 됐다.
하지만 문무일 전 총장 시절 도입된 수사심의위원회 개최를 요청했을 때부터 이미 불기소는 예견된 결론이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수사심의위원회는 검찰 외부 전문가들이 검찰 수사의 적절성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인데 한국에서 삼성그룹이 차지하고 있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삼성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를 받아들인 것 자체도 의외라는 평가가 많았다.
이재용 살려낸 최재경의 힘
결국 이런 시나리오 작성의 배경에는 윤 총장과 친분이 두텁고, 삼성과 오랜 연이 있었던 최재경 전 민정수석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검찰에서 설득력 있게 흘러나왔다. 이미 최 전 수석은 이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에도 관여해 있단 사실이 본지 보도를 통해 처음 드러나면서 이런 이야기에 신빙성이 더해졌다.
<선데이저널>이 취재한 바에 따르면 삼성은 법원이 명령한 준법감시위를 만들어 삼성그룹의 준법경영을 도우라고 했지만, 사실상 또 다른 형태의 구조조정본부를 만들어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다. 특히 과거 법조계 인사들이 삼성그룹의 경영을 좌지우지했던 것처럼 준감위에도 다수의 법조계 인사들이 포함돼 사실상 그룹 경영에 막강한 행사할 것이란 말이 나왔다. 이렇게 되면 기존 삼성그룹 임원들은 사실상 허수아비가 된 채, 이재용 부회장과 직통으로 연결된 준감위 인사들이 그룹의 실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삼성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의 대국민사과 이후 준법감시위는 삼성 최고 권력이 됐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준감위에서 특정 사안을 권고하면 할 수 밖에 없는 분위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재 준감위는 준감위원 6명과 그 밑에 최재경 고문을 비롯해 수십 명의 변호사, 회계사 등이 일하고 있다. 특히 감시기구인 만큼 변호사들의 비중이 월등히 높은데, 이 변호사들을 꾸리는 데 있어서 최재경 변호사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고 한다.
중수부장 시절 이미 삼성에 면죄부
<선데이저널> 최초보도로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6월 초 삼성그룹은 뒤늦게야 중앙일보에 최 전 수석이 삼성전자 고문변호사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당시 중앙일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6월 5일 삼성전자와 법조계에 따르면 최재경 전 검사장은 현재 삼성전자 법률 고문역을 맡고 있다. 법률 고문으로 위촉된 정확한 시점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과거 구조조정본부 법무실장을 맡다가 법률고문을 지낸 검찰 출신 이종왕 변호사처럼 상근 근무를 하지는 않는다.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김기동(56·21기) 전 부산지검장, 이동열(54·22기) 전 서울서부지검장 등 특별수사에 밝은 검사장 출신 변호인단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들보다 선배인 최 전 검사장이 고문으로 뒤를 받치는 양상이다.”
본지가 최재경 전 수석의 역할이 과거 이종왕 법무실장과 같다는 말을 언급한 것처럼 중앙일보도 이를 확인한 것이다.
최 전 수석은 삼성장학생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이건희 회장과 같은 TK출신으로 이종왕 전 법무실장과도 막역한 사이로 전해진다. 또한 그는 특수부 검사를 오래한 인연으로 윤석열 검찰총장과도 가까운 사이다.
최재경 전 수석은 2005년 대검 중앙수사부의 삼성 수사 당시 주임검사 역할을 했던 인물로 삼성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는 200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성된 800억원대 삼성 채권의 사용처를 수사해온 대검 중수부는 2005년 삼성 채권이 노무현 캠프와 한나라당 등 정치권에 흘러들어간 사실 등을 추가로 밝히고 수사를 마무리 지었다.
검찰은 삼성 채권의 총규모를 837억원으로 결론을 내렸으며, 수사 과정에서는 퇴직 임원들에게 20여억원의 채권이 전달되고 이들이 증여세를 내지 않은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은 그러나 “삼성에 공이 많고 우리나라 경제발전에도 기여한 사람들에게 준 격려금이니 그냥 넘어가자”고 말했다. 이번 검찰수사위원회에서 주장한 것과 동일한 논리다.
남편은 삼성 수사, 부인은 삼성건물에서 약국
그는 대검 중수부에서 삼성 비리 수사를 담당하기 전인 지난 2002년, 최 전 수석은 법무부 검찰국에서 근무했다. 최 전 수석의 부인 황모씨는 약사인데, 2002년 삼성엔지니어링 사옥 준공 때부터 점포를 임대해서 약국을 독점운영해 말들이 많았고 국회에서까지 논란이 됐었다. 사옥 맞은편에 타워팰리스가 있고, 당시는 입주가 시작될 때였다. 최 전 수석이 대검 중수부장이던 2012년, 결국 이런 사실이 국회에서 논란이 됐다. 서기호 당시 정의당 의원 등이 이 문제를 거론했었다. 고위 검사 가족에게 삼성이 베푼 특혜라는 것이다. 당시 최 전 수석은 공직자 재산 신고 내역에는 없었던 타워팰리스에 주소지를 뒀던 사실도 드러났다. 타워팰리스 역시 삼성이 시공 및 분양을 했다. 고위층에 대한 특혜 분양 의혹이 불거졌었다.
최재경 삼성전자 고문 변호사는 삼성 장학생으로 검찰에 있을 때는 삼성비리에 면죄부를 줬고 퇴임 후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비리 재판을 막기 위해 손발 노릇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