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력취재] 박지원의 아킬레스건 영화배우 최정민이 입을 열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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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이건수

입에 칼 물고 저주를 퍼부었던 ‘그녀의 침묵’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정보원장에 박지원 씨 임명을 강행했다. 대북관계 개선을 위해 그를 임명했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은 상관없다’는 대통령의 인사 철학이 이번 국정원장 인사에 그대로 담겨 있다. 박 원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돈을 매개로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적지 않은 공을 세웠는지 모르지만, 그는 드러난 의혹만 놓고 봐도 한 국가의 정보기관 수장을 맡기에는 부적절한 인물이다. 본지도 제기하고, 청문회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던 의혹들 중 어느 하나 클리어하게 해명된 것이 없다. 여기에는 무기력한 야당도 한 몫 했다. 야당은 이번 청문회에서 박 원장의 의혹과 관련한 증인들을 신청했지만, 단 한 명도 출석시키지 못하는 무기력함을 드러냈다. 특히 미주 한인사회에서 너무나 유명했던 박지원과 영화배우 최정민과의 스캔들과 청부 살해 의혹 주장을 파헤치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조자 하지 않았다. 안하무인 대통령과 무기력한 야당이 사실상 시너지 효과를 내며 희대의 파렴치한이 국정원 수장이 된 것이다. 영화배우 최정민의 침묵도 석연치 않다. 박지원이 뉴욕에서 가발장사를 할 때 교제했던 것으로 알려진 최 씨는 박지원이 한국에 들어와 정치를 시작할 때 역시 한국에 와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 바 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최 씨는 박지원과의 관련 의혹에 갑자기 침묵하기 시작했다. 본인이 주장한대로 억울한 점이 있었다면 이번 국정원장 청문회야 말로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음에도 최 씨는 끝내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도대체 두 사람 사이에서는 지난 몇 십 년 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선데이저널>은 노력 끝에 최정민 씨의 최근 근황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 영화배우 최정민의 침묵도 석연치 않다. 박지원이 뉴욕에서 가발장사를 할 때 교제했던 것으로 알려진 최 씨는 박지원이 한국에 들어와 정치를 시작할 때 역시 한국에 와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 바 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최 씨는 박지원과의 관련 의혹에 갑자기 침묵하기 시작했다.

▲ 영화배우 최정민의 침묵도 석연치 않다. 박지원이 뉴욕에서 가발장사를 할 때 교제했던 것으로 알려진 최 씨는 박지원이 한국에 들어와 정치를 시작할 때 역시 한국에 와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 바 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최 씨는 박지원과의 관련 의혹에 갑자기 침묵하기 시작했다.

박지원 국정원장 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 하태경 의원은 국정원장 후보자와 관련해 총 10명의 증인을 요청했다. 증인들 면면을 보면 <선데이저널>이 지난 달 7월 16일자를 통해 보도했던 “‘비리 종합세트 박지원’ 미리보는 국정원장 후보자 지상 청문회”기사에서 제기한 의혹들에 맞닿아 있던 인물이었다. 학력위조와 관련해선 단국대 총장, 군 황제복무에 대해서는 국방부 인사국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사안보다 더 관심을 모았던 것은 박지원이 과거 청부 살인을 사주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주인공 영화배우 최정민 씨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의 불법 비자금과 정치자금과 관련해 최종흡, 김승연 전 국정원 직원 그리고 동아일렉컴 이건수 회장 등의 출석여부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영화배우 최정민 씨는 이번 국정원장 청문회야 말로 그가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박지원과의 관계, 그리고 청부살해 의혹 등 그 과정에서 있었던 억울함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이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지원 국정원장은 그 동안 경기도 부천과 목포 등지에서 총선에 출마하며 선출직 국회의원이 됐지만,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하는 임명직을 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거 문광부 장관을 맡은 적이 있지만 그가 장관에 임명된 것은 청문회가 처음 도입된 2000년 6월 이전이었던 1999년 5월이었다. 따라서 이번 청문회는 박 후보자와 관련한 의혹을 TV카메라 앞에서 검증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또한 본국 언론에서는 최정민 씨와 관련한 의혹을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지만, 본지가 이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분위기기 달아올라 결국 야당 의원이 청문회 증인으로 신청하기까지 했다. 비록 여당의 반대로 증인 채택이 되지 않았지만 본인이 마음만 먹었다면 지난 수십 년 간의 원한을 얼마든지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최 씨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청부 살해 의혹에 대해 박지원은 ‘그런 일 없다’는 다섯 마디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겼다.

박지원, 프론티어타임즈만 한 차례 고소

<선데이저널>이 사건의 당사자인 최 씨의 근황을 추적 취재한 결과 최 씨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친 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슬하에 한 명의 자녀를 두고 있으며, 언니가 상당한 재력가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1990년대 초 본국으로 귀국해 재기를 노렸다고 알려진 그는 1996년도 박 원장이 경기도 부천 지역구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자 부천 지역 신문 등과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있었던 강제성폭행 및 살인교사 의혹 등에 대해 적나라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최 씨가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것이 끝이었다. 이후 최 씨의 행방에 대해서는 ‘박 원장의 협박에 못 이긴 최 씨가 미국으로 돌아갔다’는 식의 루머만 파다할 뿐 지금까지 그녀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박지원과 어떤 식으로 해결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추측만 난무할 뿐이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 스캔들에 대해 박 원장은 단 한 번도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다가, 그가 유일하게 대응했던 것이 2012년 본국의 한 인터넷 매체인 프론티어타임즈의 논객들에 대해서다. 당시 프런티어타임스에서는 박지원 원장과 배우 최정민과의 관계를 과거 신문 기사를 인용하여 수차례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박 원장은 관련 글을 게시한 보수 논객 4명을 무더기로 고소했다. 당시 소송 결과가 어떻게 끝났는지는 외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박 원장이 외부에서 이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그것은 이미 소송에서 결론이 난 일”이라는 식으로 애둘러 표현해서 마무리했었다.

하지만 본국의 법체계를 감안하면 박지원이 인터넷 논객들을 대상으로 승소했다 하더라도 이것이 곧 스캔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스캔들의 주인공인 최정민 씨가 본국에 들어와서 관련 증언을 했다는 것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즉 재판부는 보수 논객들의 주장이 최 씨로부터 직접 들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허위일 가능성이 아니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만약 최 씨가 재판의 증인으로 나왔다면 재판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박지원과 최정민, 두 사람의 관계를 최초로 폭로한 언론인은 작고한 인사이드월드 발행인 손충무 씨다. 필라델피아 등 동부지역에서 신문을 발행하던 손 씨는 집요하게 두 사람의 관계를 파고 들었다.

흥행대박 기대했던 청문회 쪽박으로

그렇다면 최 씨는 강제성추행과 청부살해 주장 등을 제기하고는 왜 20년이 넘게 침묵하고 있는 이유와 까닭은 무엇일까. 1996년 박지원이 경기도 부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하자 진정서까지 뿌리며 “박지원으로부터 성폭행 및 협박, 살해위협까지 느꼈다”고 주장했던 그녀가 현재까지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일까. 본지가 최 씨의 최측근으로부터 들은 증언에 따르면 박 원장과 최 씨 간에는 모종의 합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박 원장과 가까운 한 기업인이 나서서 합의를 종용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금전이 오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이지만 실제로 돈이 오갔는지, 오간 돈이 얼마인지는 최정민 씨가 털어놓지 않은 이상 확인할 길은 없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본지는 이런 의혹들에 대해 최 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최 씨의 최근 전화번호를 어렵게 입수해 수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메시지를 남겼지만 끝내 답이 오질 않았다.

아마도 최 씨가 침묵하는 이유는 두 사람 간 합의가 있었을 가능성, 다른 하나는 1996년 때와는 달라진 박지원의 위상 정도가 그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가발장사를 하다 전경환의 가방 모찌, 이후 김경재 전 의원의 소개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거듭났던 그가 20년이 지난 지금은 본국 정보기관 수장 자리까지 올랐으니 최 씨가 더 이상 거론하기 어려운 인물로 큰 것이다.

이런 각종 의혹을 안고 있는 그가 국정원장이 된 것은 결국 후안무치한 문재인 대통령과 무기력한 야당의 합작품이다. 하태경 의원만 혼자 난리를 쳤을 뿐 야당 안에서도 이들의 출석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인사는 없었고, 당연히 여당은 이들의 증인 출석에 대해 합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지원은 하태경의원이 학력위조문제를 추궁하자 ‘존경하는 하의원님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다. 그 당시는 시대적 상황이 그랬다’며 오히려 하태경의원을 조롱하기까지 했다.

결국 대박 흥행을 예고했던 청문회는 맹탕으로 끝났고, 문 대통령은 박 원장을 국정원장에 임명했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인사에 대해 맹공하던 여당이 정작 자신들의 정권을 잡자 아예 야당의 얘기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이고 희대의 의혹에 휩싸인 자를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이다. 박지원이 국정원장이 된 일차적 책임은 대통령과 여당에 있지만, 아무 전략도 없고 무기력하기만 야당에도 큰 책임이 있다. 박 원장이 청문회 과정에서 실실 웃으며 야당 의원들에게 ‘다 아는 사람들끼리 살살 좀 하라’고 말한 것은 이번 청문회가 어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였다.

단돈 5천만을 빌리면서 차용증을?

본지가 10년 넘게 제기해왔던 박지원의 50년지기 친구이자 스폰서로 알려진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 역시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박지원은 지난 2015년 8월 5000만원을 이 회장에게 빌린 뒤 이자는커녕 원금도 돌려주지 않고 있어 이 돈의 성격에 대한 의혹을 산 바 있다. 이에 대해 미래통합당이 불법 정치자금 아니냐며 문제를 제기하자 이 회장은 “50년 지기 친구가 급하다고 해서 돈을 꿔준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원장 역시 지난 달 27일 청문회 장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친구라서 5000만원을 빌렸고 재산신고도 했다”며 “갚든 안 갚든 저와 제 친구 사이의 문제”라며 야당이 제기하는 고액 후원 및 불법 정치자금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천하의 박지원이 단 돈 5천만원을 친구에게 빌리면서 차용증을 써 줬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고 무엇인가 또 다른 이유 때문일 것으로 추측된다. <선데이저널>은 단독으로 이 문제의 차용증을 입수해 공개한다.

본국 정치권 일각에서는 보수 야당이 이번 청문회에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 배경에는 이건수 회장이 보수 언론과 정치권에 갖고 있는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 아니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박지원의 오랜 후견인인 이 회장은 오히려 정치적으로는 현 야당과 가까운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야당 정치인에게도 적지 않은 후원을 하는 인물이다. 특히 이 회장은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과 매우 가까운 사이이며, 과거에는 일 년이면 한두 번씩 조선일보 편집국 간부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그의 마당발 이력인지 박지원의 국정원장 청문회 과정에서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은 그다지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지 못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건수 회장은 올해 2월 조선일보와 중국 인민일보 공동 주최로 베이징에서 열린 ‘제1회 한 ·중 경제심포지엄 ’에 참석했는데 이 때도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 신한금융지주 조용병 회장 등과 한 비행기를 타고 중국을 방문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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