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상대 소송 중 최대 배상액 기록할 듯하지만…
‘황소,등에 앉은 파리 보듯…’
판결문 백번 받으면 뭐하나
북한 정권을 상대로 미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푸에블로호 승조원들이 최대 60억 달러가 넘는 거액을 북한에 배상금으로 요구했다고 미국의 VOA방송이 지난 19일 보도했다. 현재 재판부의 최종 결정이 남아있지만 승조원은 물론 가족들까지 소송을 제기한 점을 고려할 때 북한이 지급해야 할 배상금 중 사상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한편 일부 승조원들은 지난 2008년 당시 푸에블로호 사건 40주기를 맞아 이번과 유사한 소송을 벌여 승소판결을 받았으나 실효성이 없었다. 북한은 지난 1968년 공해상에서 나포한 미 해군함 푸에블로호를 현재 평양 대동강 변에 전시해 놓았다. 한편 한국에서는 지난 7월 탈북 국군포로가 북한 김정은 상대로 소송해 승소판결을 받은바 있다. <성 진 취재부 기자>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 호 승조원들의 변호인은 북한이 지급해야 할 손해배상금 규모를 1인당 최대 1억 3천만 달러라고 주장했다. 이 소송의 원고 측 변호인은 지난 17일 미 법원에 전체 약 170명에 달하는 푸에블로 호 승조원과 가족, 유족 중 현재 생존해 있는 승조원 46명에 대한 판결을 먼저해 줄 것을 요구하는 ‘부분 판결 요청서’를 제출했다. 요청서에는 재판부가 임명한 ‘특별관리인(special master)’의 피해액 산정 부분이 공개됐는데, 변호인은 이를 근거로 북한이 부담해야 할 손해배상금액수를 명시한 것이다. 이에 따르면 특별관리인은 승조원들이 북한 억류 기간인 335일 동안 고문과 폭력 등에 시달린 점을 감안해, 피해액을 1인당 하루 1만 달러로 계산한 총 335만 달러로 책정했다.
승조원 46명 피해액 약 60억 달러
또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 약 50년 동안 정신적 고통 등에 시달린 부분에 대해선 1년에 33만 5천 달러씩, 총 1천675만 달러를 인정해, 승조원 1인당 산정된 금액은 약 2천 10만 달러이다. 변호인은 그러나 북한에 억류될 당시 1인 당 피해액인 335만 달러에 대해 미 재판부가 이자를 부과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이 금액은 이자 계산 방식에 따라 현
재 최소 7천 480만 달러에서 최대 1억 3천 90만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승조원 46명의 피해액은 최대 약 60억 달러까지 치솟게 된다. 이후 별도로 공개될 가족과 유족들의 피해액까지 합치면, 북한이 푸에블로 호 나포와 관련해 미 법원으로부터 명령받게 될 손해배상금은 역대 최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미 법원은 지난 2018년 북한에 억류됐다 송환 직후 숨진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가족들에게 북한이 5억 114만 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으며, 비슷한 다른 소송에서도 대략 3억 달러 선에서 손해배상금을 인정해 왔다. 960년대 북한에 나포됐다 풀려난 푸에블로호 승조원들과 가족, 유족 등은 2018년 2월, 북한에 억류된 기간 동안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승조원들은 억류 중 고문과 구타 등의 피해를 입었고,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으로 고통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가족들도 승조원들의 억류 기간 동안 경험한 경제적, 정신적 피해에 대해 북한 측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밝혔었다. 재판부는 원고인 주장만을 바탕으로 한 ‘궐석판결’로 내려진다. 같은 이유로 손해배상금 책정 부분에 대해서도 원고 측의 목소리만이 반영된다. 물론 재판부가 최종 판결문을 통해 북한 측에 거액의 손해배상금 지급을 명령하더라도, 북한이 이를 이행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북, 미국소송 피해액 이행 가능성 희박
한편 대북 제재 전문가인 조슈아 스탠튼 변호사는 지난 18일 VOA와의 전화통화에서 변호인이 요구한 60억 달러가 북한의 국내 총생산(GDP)보다 많다면서, 손해배상금을 회수할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는 원고가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 피해기금(USVSS Fund)’을 수령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테러지원국 피해기금’은 북한 등 미국 정부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된 나라로부터 피해를 입은 미국인과 가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로, 제재를 위반한 기업 등의 벌금으로 기금이 충당된다. 스탠튼 변호사는 그밖에 다른 나라에 있는 북한 자산과, 최근 미 검찰이 대북 제재 위반과 관련해 몰수 소송을 제기한 자금 등에 대한 소유권 주장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법원은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승조원과 가족 등 170여명에 대한 북한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었다. 미국의 소리(VOA)방송 보도에 따르면, 2019년 10월 30일 워싱턴 DC 연방법원은 1960년대 북한에 납북됐다 풀려난 푸에블로호 승조원들이 북한 정권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를 판결했다. 대브니 프리드릭 판사는 이날 공개한 ‘의견문(Memorandum&Opinion)’에서 “북한이 원고 측의 모든 청구에 대해 책임이 있다”며 원고가 요청한 부분 궐석 판결을 승인한다고 밝혔다. 최종 판결문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프리드릭 판사는 원고의 손해 부분을 담은 별도의 의견서를 통해 손해배상금(damages)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소송은 북한을 상대로 미 법원에 제기된 소송 중 규모가 가장 컸다. 앞서 미 법원은 지난 2008 년 북한 당국이 푸에블로호 승조원이었던 윌리엄 토머스 매시 등 5명에게 658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2월엔 북한 정권이 오토 웜비어의 가족들에게 약 5억 달러를 배상하라고 명령하는 등 북한 정권의 피해를 입은 가족 등에게 상당 액수의 배상금을 인정해 왔다. 따라서 이와 비슷한 배상금이 책정된다면, 이번 소송에서 북한의 배상 책임은 수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VOA는 전했다. 그러나 북한이 원고들에게 손배해상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원고들이 이 소송에서 승소하면 웜비어 부모처럼 억류된 북한 자산에 대해 배상권을 주장할 수 있으며, 테러 희생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미 정부의 ‘테러지원국 피해기금(USVSST Fund)’ 를 받을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2017년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한 바 있다.
북, 소환장 받고도 공식적 대응 없어
북한은 1968년 1월 23일 푸에블로호를 공해상에서 납치해서 83명의 승조원들을 포로로 삼았던 북한은 그 해 12월 미국이 북한 영해 침범을 사과하는 사죄문에 서명하고서야 탑승자 82명과 유해 1구를 석방했다. 푸에블로호 선체는 현재 북한 평양의 전승기념관 야외전시장인 보통강변에 전시돼 있다. 푸에블로호 승조원들은 지난 2018년 2월 납북 당시 입은 피해에 대한 책임이 북한 측에 있다며 외국 주권면책특권법(Foreign Sovereign Immunities Act·FSIA)에 따라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납북된지 꼭 50년만이다. 원고는 승조원 49명과 가족 91명, 그리고 사망한 승조원 32명 등 172명이다. FSIA는 피해자를 고문하거나 인질로 납치하고, 신체에 상해를 가하거나, 사망에 이르게 한 테러지원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프리드릭 판사는 ‘의견문’에서 증언 등을 토대로 납북 기간 “승조원들이 종종 안면이 빨갛게 돼 있거나 코피가 나고, 입술이 터져 있었고, 주먹으로 맞은 옆구리를 붙들고 있었다고 밝혔다. 한 승조원의 경우 19시간 동안 각목으로 폭행을 당하고, 목과 사타구니를 발로 밟혀 일주일 넘게 서있지 못했다고, 북한의 선전에 동원되는 걸 거부한 또 다른 승조원은 총살장으로 끌려갔다가 처형 직전에 살아 나오기도 했다는 것이다. 프리드릭 판사는 소송 제기 이후 북한이 소환장과 소장, 그리고 이에 대한 한글 번역본을 정상 적으로 수령했지만 아무런 공식 대응도 하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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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에블로호 승무원
2008년 소송판결에도 받았지만 무슨 의미가…
1968년 미국 해군 첩보함 “푸에블로 호 사건” 발생 후 40년째 되는 지난 2008년. 북한 정부를 상대로 당시 승무원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궐석재판이 미국에서 진행되면서, 푸에블로 호 사건이 당시 주목 받았었다. 미국의 첩보 활동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알려진 푸에블로호 승무원들은 당시 11개월 간의 감금 기간 중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며 북한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궐석재판법원은 지난 2008년 북한 당국이 푸에블로호 승조원이었던 윌리엄 토머스 매시 등 5명에게 6580만 달러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었다. VOA방송은 당시 2008년 9월 열리는 40주기 기념식에 앞서 ‘푸에블로호 재향 군인협회’ 도널드 리처드 페퍼드 회장의 소회를 들어봤다.
당시 40년 가까이 침묵해 온 푸에블로 호 승무원들이 뜻을 모은 것은 지난 2006년. 그 해 열린 푸에블로 호 재향 군인협회 회의에서 윌리암 토마스 매시 씨 등이 소송을 제의했다. 자신들의, 또 가족들의 아물지 않는 가슴 속 상처를 조금이나마 어루만지기 위해서였다. 매시 씨를 비롯한 4명은 법원이 북한 측의 참가 없이 재판을 진행하겠다며 이른바 ‘궐석재판’을 선언한 뒤, 지난 6월 1인당 2천 4백 35만 달러씩 총 9천 7백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푸에블로 호 재향 군인협회’ 도널드 리처드 페퍼드 회장은 전체 승무원 82명 가운데 단 4명만 소송에 참가한 것은 북한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실제로 성과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법원이 승소 판결을 내리더라도, 실제로 북한 당국이 자신들에게 배상을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승소판결 받아도 묵묵부답
당시 페퍼드 씨가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또 있다. 만약 승소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승리한 것이지만, 의미 없는 승리라고 페퍼드 씨는 말했다. 이미 흘러버린 40년의 세월을, 북한도, 미국 정부도, 그 어느 누구도 보상해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40년의 세월이 흘러 나포 당시 30살의 미 해군 일등병이었던 페퍼드 씨는 2008년에 71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지난 1968년 1월 23일, ‘그 날’의 기억은 아직도 그를 놓지 않고 있었다. “생각나죠. 아직도 간간히 떠오릅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당시 푸에블로 호에 승선했던 83명 가운데 사건 당시 사망한 1명을 포함해 2008년까지 모두 12명이 세상을 떠났다. 40년이 세월이 흘렀으니 당연한 일이다. 지난 40년 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겪었다.
페퍼드 씨는 대부분의 승무원들이 신체적 외상 뿐 아니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오랫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전했다. 특히 당시 18살, 19살이었던 어린 승무원들의 정신적 충격은 너무도 극심했고, 승무원 가운데 상당수가 1968년 12월 미국으로 돌아온 뒤 바로 군을 떠났다. 그 때문인지 푸에블로 호 재향 군인협회는 사건이 발생한 지 20년 뒤인 지난 1988년에야 결성됐다. 첫 모임 때는 30명, 격년 열리는 모임에도 평균 40명 정도만 참석하고 있었다. 절반 가량의 승무원 들은 그 때의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다며 참석을 거부하고 있다고, 페퍼드 씨는 전했다. 2008년 9월 12일 미국 버먼트 주 벌링턴에서 열리는 40주기 기념식에도 모든 승무원들이 함께 하지는 못했다. 반백의 노인이 된 이들은 기념식과 함께 당시 사건을 극화한 연극을 함께 관람할 계획도 세웠다. 연극은 2008년 9월 19일부터 10월 11일까지 미국 메릴랜드주 스프링필드의 ‘헤리티지 극장’에서 무대에서 열렸다.
‘푸에불로호’ 미국 반환돼야
자신들의 사건을 소재로 한 연극이 처음 무대에 오른 지난 1970년에도, 또 텔레비전 드라마가 방영된 1977년에도, 승무원들과 가족들은 예술작품이 된 자신들의 경험을 되새기며 눈물을 흘려야 했다고, 페퍼드 씨는 전했다. 40년이 흘렀지만, 2008년에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페퍼드 씨는 다른 소망이 있었다. 이작도 북한에 남아있는 ‘푸에블로 호’ 선박을 미국으로 반환되는 것이다. 페퍼드 씨는 자신이 죽기 전에 푸에블로 호가 북한으로부터 반환됐으면 좋겠다며, 승무원 모두가 아마 자신과 같이 느끼고, 바라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원산항에 정박 중이던 푸에블로 호를 지난 1999년 평양의 대동강 변으로 옮겨와 대미 항전의 상징으로 전시하고 있다. 40년 전, 자신과 동료들을 극심하게 고문했던, 그들의 나머지 인생의 진로를 송두리째 빼앗았던 북한 당국에 대해, 페퍼드 씨는 ‘증오’의 감정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페퍼드 씨는 대신 북한주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가슴이 아프다며, 미국 정부가 북한 주민들을 더 많이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북한으로부터 사과를 바라느냐는 VOA질문에, 페퍼드 씨는 직접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페퍼드 씨는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당시 승무원들을 고문했던 북한 당국자들도 몇 명은 죽었을지 모르겠다며, 세월이 많이 흘렀고, 모두 다 함께 나이를 먹어가고 있지 않느냐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