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정치자금 미끼…’ 미 정치인들에 접근 정보 수집
‘핵무기 작전 계획’까지 몽땅 유출됐다
미국 중서부 오하이오에 자리한 소도시의 시장이 호젓한 곳에서 중국계 여대생과 카섹스를 벌였다. 그 정치인이 여대생에게 물었다. ‘왜 나에게 관심을 두는가?’라고 했더니, 그 여대생은 “영어를 좀 더 잘 하려고…”라는 대답이었다. 이 카섹스 장면을 근처에서 FBI가 낱낱이 녹화했다. 그 중국계 여대생은 이른바 ‘미인계’(honey trap) 여간첩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 자신이 추적을 당한다고 느낀 그 여대생은 갑자기 사라저 버렸다. 중국으로 도망친 것이다. 미국에는 이같은 여간첩이 여기저기 활개를 치고 있는데 최근 미국 정보 당국이 추적에 나서고 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최근 미국 민주당의 텃밭인 캘리포니아주에서 중국 여대생 간첩 소동이 벌어졌다. 미 인터넷 매체인 악시오스가 지난 7일 중국 국적의 여성이 미국에서 정치인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첩보 활동을 벌인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고 지난 7일 보도했다. 악시오스는 이날 크리스틴 팡(Christine Fang)이라는 중국인 여대생이 2011년부터 5년간 주로 샌프란시스코 등지를 중심으로 미 정치인들을 상대로 첩보 활동을 벌였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이같은 사실을 1년간 심층취재를 통해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취재 결과 팡은 오바마 정부시절인 2011년 부터 2015년 중반까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을 중심으로 오클랜드‧산호세 등을 포함한 광역권 정치인들을 포섭하려 했다”고 전했다. 5년 동안 캘리포니아 정치인 22명에게 접근, 포섭 시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미 정보 당국에 따르면 팡은 주로 선거자금 모금에 도움을 주거나 성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정치인들에게 접근한 뒤 정보를 빼냈다. 그리고 미 중서부 지역의 시장 중 한 명을 포함해 2차에 걸친 성관계가 FBI 감시망에 잡혔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악시오스는 “팡은 베이 지역과 미 전국적으로 성공을 거둘 잠재력이 있는 유망한 지역 정치인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했다. 미 정보당국은 팡이 주로 선거자금 모금에 도움을 주거나 성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정치인들에게 접근한 뒤 정보를 빼낸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인 중에는 두명의 시장이 포함됐고, 거물급 인사도 있었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특히 크리스틴 팡은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22명의 전‧현직 선출직 정치인들과 친분을 쌓았다. 이 중 2명은 전‧현직 시장이었고, 거물급 정치인도 있었다고 매체는 밝혔다. 그녀와 사진이라도 찍힌 정치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나는 무죄’라고 항변이다.
선거 자원봉사원으로 접근
크리스틴 팡이 미국에서 활동할 당시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그의 지인들에 따르면 그녀는 유학생 신분이었다고 한다. 2011년 크리스틴 팡은 캘리포니아 주립대 이스트베이(Cal State Univ. at East Bay)에 유학생으로 등록해 아시아계 미국인의 시민 참여를 독려하는 단체인 아시아태평양 지역학생회(APAPA, Asian Pacific Islander American Public Affairs,) 캠퍼스 지부장을 역임했다. 그녀는 정치권에 접근하기 위해 이같은 학생 간부 직책을 이용했다. 우선 베이지역의 전‧현직 정치인을 포함 관료는 물론 학생 활동 간부들과도 교류했는데 그녀의 소셜 미디어 활동에 따르면, 그녀는 정치 인사, 기업 간부들, 중국 총영사관 관계자들까지 함께 어울렸다. 그녀가 스왈웰 의원, 주디 추 의원, 해리슨 전 시장 그리고 당시 후보였던 칸나 등 수많은 정치인들을 처음 접촉한 것은 이러한 단체의 회장으로서의 역할을 통해서였다.
크리스틴 팡이 미국 정치인들과 친해지는 방법은 겉으로 보면 평범했다. 자신을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대학에 다니는 중국계 유학생이라고 설명한 뒤 선거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정치인들은 자원봉사들을 필요로 한
다. 자원봉사를 한다면 대부분 정치인 들은 좋아한다. 미국의 많은 정치인들은 보좌관 등을 둘 때도 과거 자신의 사무실에서 자원봉사했던 학생들을 키워서 인턴을 시키고 보좌관까지 만들게 되는 수가 종종 있다. 크리스틴 팡은 어느정도 정치인과 친분이 생기면 ‘무기’를 꺼냈다. 유력 인사를 소개하거나 선거자금을 모아주는 식으로 정치인들에게 도움을 줬다. 정치인들에게 후원자를 소개하거나 기금을 모아주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필요시 성관계도 단연 무기였다. 악시오스는 그녀가 주목했던 민주당의 에릭 스왈웰(캘리포니아주 제 15지역구) 연방하원 의원과의 관계를 취재했다. 스왈웰 의원은 2019년 5월 민주당 대선 경선 출마를 밝히면서 후원금을 암호 화폐로 받겠다고 해 화제를 모은 정치인이다.
스왈웰 의원은 그가 캘리포니아 더블린 시의회 의원시절 그녀와 친분을 쌓았을 때 처음 알려진 정치인 중 한명이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중국학생회 간부로서 접촉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팡은 2014년 스왈웰 의원의 하원 재선을 도왔다. 팡은 당시 선거자금 모금부터 선거캠프 인턴직원 채용에 까지 관여했다. 스왈웰 의원이 재선에 성공한 뒤 팡은 그와 계속 교류했다. 스왈웰 의원은 재선 임기 중 하원 정보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했다. 정보위원회라면 국가기밀 정보를 다루는 위원회다. 당연히 팡이 스왈웰 의원에게 달라 붙었다. 이에 팡의 활동을 주시하던 미국 정보기관은 2015년 스왈웰 의원 측에 주의 하라고 경고했다. 이에 스왈웰 의원은 팡과의 관계를 단절한다. 팡은 미국의 첩보 기관이 자신을 추적하자 2015년 중반 돌연 중국으로 귀국했다. 이와 관련, 스왈웰 의원 측은 “지난 6년간 그녀를 만난 적이 없으며 연방수사국(FBI)에 모든 정보를 제공했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팡이 활동기간에 입수해 중국 본국에 보낸 내용 중에는 다행히 국가 차원의 기밀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미래를 보고 수십년 공들인 간첩망
크리스틴 팡은 2012~2013년도 중국학생회를 대표해 활동한 공로로 캠퍼스 우수상을 받았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립대 이스트베이 중국 학생회장을 지낸 공로로 샌프란시스코 주재 중국 총영사관이 수여한 ‘명예증서’도 있다. 이 기간동안 팽은 샌프란시스코의 중국 총영사관과 유별나게 긴밀
한 관계를 유지했다. 중국계 총학생 회장은 중국 총영사 관계자와 수시로 소통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소셜미디어 게시물, 행사 전단, 사진 활동 등을 분석해 볼 때 팽과 중국 총영사관과의 관계는 특별한 관계였다고 한 정보당국자는 밝혔다고 악시오스는 전했다. 한편 미국 정보 관계자들은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서 외교관으로 위장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중국국가안전보위부 요원과의 만나는 인물중에 크리스틴 팡을 처음 발견했다고 전했다.
특히 크리스틴 팡은 중국 총영사관을 기지로 삼아 지역의 미정치인들을 중국 방문에 초청하는 등 주 및 지방 정치인들을 상대로 홍보 활동을 벌였다고 이 관리는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녀와 총영사관 정보요원들이 베이 지역에서 정치 첩보를 수집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악시오스는 미 국무부를 통해 팡이 접촉한 위장 외교관들이 모두 샌프란시스코 중국총영사관 직원들임을 확인했다) 샌프란시스코와 산호세 일대 지역은 실리콘 밸리 등 믹구의 첨단 산업 기지가 있는 곳으로 오래 전부터 중국 스파이들의 표적 대상이었다.
현직 고위 정보관계자는 “정부 관계자들은 팡이 미국의 국가 기밀을 주고 받았다고 믿지 않지만, 이번 사건은 대단히 민감한 사람들이 첩보망에 포착됐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악시오스는 “팡은 선거캠프 외에도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의 시민사회 모임‧정치 집회와 대학 학내 모임 등에 적극 참여해 선출직 공무원, 지역 저명인사들과 인맥을 형성하는데 주력했다”고 주변 인물들의 말을 소개했다. 악시오스는 “이번 간첩사건은 지금의 소도시 시장과 지자체 의원들이 미래에는 주지사나 연방의원으로 진출한다는 생각에서, 이들과 결실을 맺는데 몇년 또는 수십 년이 걸리는 관계를 구축하려는 중국식 첩보전략을 보여줬다”며 “팡과 친분을 쌓은 정치인들의 성격, 습관 등이 기밀정보는 아니지만 첩보기관들이 일상적으로 수집하는 정보”라고 지적했다. 악시오스에 따르면, 팡의 사건을 수사한 FBI는 2019년 5월 해당 지역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중국 정보기관의 공작에 대응하는 전담 부서를 만들고 조사를 시작했다. 한 고위 정보관계자는 “팡은 수 많은 중국 간첩 가운데 한 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중국의 위협이 날이 갈수록 증가하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악시 오스는 덧붙였다.
“팡은 수많은 중국 간첩 가운데 한 명일 뿐”
악시오스는 또한 ‘미인계’(honey trap)으로 추정되는 이번 사건에서 크리스틴 팡은 중서부 지역에서 활동하는 두 명의 시장들과 성적인 관계도 맺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시장 중 한명을 포함해 최소 두 번의 성관계가 FBI 전자 감시에 적발됐다. 그 보도에 따르면 이 만남 중 하나는 오하이오 출신의 한 시장과의 차 안에서 카 섹스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문제의 정치인이 “나에게 왜 관심이 있느냐”는 질문에 “영어를 더 잘하고 싶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국가안보 관계자들은 중국의 위협이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녀는 많은 요원들 중 한 명일 뿐”라고 현 미국 정보 고위 관리는 말했다. 크리스 레이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지난 7월 연설에서 “중국은 매우 정교한 악의적 방법으로 외국에 대한 영향력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우리 정부의 정책을 흔들고, 우리나라의 공공담론을 왜곡하며, 우리의 민주적 과정과 가치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기 위한 법죄적 행위 를 일삼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악시오스는 “크리스틴 팡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활동이 끝난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국 정부 입김이 들어간 이 작전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도 계속됐으며 조 바이든 신임 행정부에서도 미국 방첩기관의 집중 견제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매체는 미국 주재 중국대사관과 당사자인 팡도 악시오스의 취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과거부터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여성 간첩을 활용하는 미인계(honey trap)에 능하다는 말을 들어왔다.
핵무기 작전계획 등 특급정보 제공
중국 정보기관이 미인계를 이용해 정보를 수집한 대표적 사례는 미국 태평양사령부 군무원이었던 벤자민 비숍 사건을 들 수 있다. 미국 하와이 연방 법원은 2014년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비숍에게 징역 7년 3개월을 선고했다. 예비역 중령 출신인 비숍(60)은 2011년 6월부터 연인으로 지내온 중국인 여자친구(28)에게 미국의 핵무기 현황, 중‧장거리 미사일 포착기술, 조기경보 레이더 시스템, 태평양 사령부 작전계획 등 특급 정보를 제공했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따르면 미국에 유학 온 이 여성은 국제 세미나에 참석해 비숍에게 접근했다. 1급 비밀 취급 인가증을 갖고 있는 비숍은 이 여성의 유혹에 넘어가 각종 비밀을 줄줄이 넘겼다. 이 정보들 중에는 2010∼2012년 태평양사령부의 북한의 탄도미사일 방어 전략, 한‧미 연합훈련 내용 등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