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윤’빅뱅…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나는 서바이벌 게임
‘현재권력’이 몰락할까
‘미래권력’이 비상할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국민들이 생사기로에 있는 와중에도 본국 정치권 안팎에 극심한 혼란을 초래해왔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충돌이 발단 4개월 만에 일단락됐다. 추미애 장관은 본국시간으로 12월 16일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의 ‘2개월 정직’ 징계안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청하면서, 동시에 사의를 표명했다. 사전 각본대로 문 대통령의 추 장관의 제청을 즉각 받아들였고, 사의도 수용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결이 일단락된 것일 뿐 대통령의 재가를 기점으로 싸움은 ‘문 대통령 대 윤 총장’의 구도로 바뀌고 있다. 만약 윤 총장이 이쯤에서 스스로 물러선다면 싸움은 더욱 길어지지 않았겠지만, 윤 총장은 자신에 대한 부당하고 불공정한 징계안에 대해 소송전을 예고한 만큼 더 큰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란 분석이다.
리차드 윤(취재부기자)
일단 문재인 대통령은 새로운 법무부 장관 임명과 고위공직자수사처 출범을 통해 윤 총장 개인을 본격적으로 압박해 갈 가능성이 크다. 사실 윤 총장 개인의 문제로 좁혀가면 문제 삼을 것들은 적지 않지만 윤 총장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추 장관의 압박으로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검찰 조직을 등에 업은 윤 총장은 박근혜 정권 인사들을 직권남용으로 줄줄이 잡아넣었듯이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향해 칼을 들이밀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현재권력’인 문 대통령과 차기 대선후보 1위를 달리고 있는 잠재적 ‘미래권력’ 윤 총장 간 정면충돌이란 유례없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어 그 귀추가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초조한 文- 당당한 尹’ 2막 시작
문 대통령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2개월 정직 징계안을 재가하면서 초유의 검찰총장 직무정지가 현실화됐다. 하지만 징계에 이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하면서 상황이 조금 더 복잡 미묘해졌다. 윤 총장이 징계위 징계 결정 직후 법적 대응을 시사하고 나섰지만 추 장관의 사퇴로 징계를 수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초 여권에서 추 장관과 윤 총장 동반 사퇴만이 정권과 검찰이 정면으로 치닫는 파국을 피하기 위한 방안으로 거론돼 왔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윤석열 징계-추미애 사퇴’를 이번 사태의 수습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윤 총장이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1위까지 오른 상황에서 이번 사태는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이라는 새로운 양상으로 접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
일단 문 대통령은 징계안 재가와 동시에 추 장관의 사의를 수용하면서 레임덕에 빠져들 수 있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동시에 윤 총장의 정치적 결단을 할 수 있는 여지까지 남겨뒀다. 당초 해임까지 거론되다가 2개월 정직이란 상대적으로 낮은 수위의 징계에 그치며 당장 두 달간 직무가 정지되더라도 윤 총장은 내년 7월까지인 임기는 채울 수 있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윤 총장의 자진사퇴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윤 총장이 여기서 물러설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맞으면 맞을수록 지지율이 올라가는 지금의 상황에서 굳이 나서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문 대통령에게 부정적이었던 동정론으로 돌아설 수 있다. 이는 내년 초 출범이 예정되어 있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라는 칼을 휘두를 명분이 생긴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징계로 2021년 2월15일까지 직무가 정지되는 윤 총장이 내년 초 공식 출범하는 공수처의 첫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尹, 공수처 1호 수사대상 될까
당장은 2개월 동안 총장 직무가 정지되지만, 공수처 수사로 윤 총장이 피의자로 전환되면 또 다시 직무에서 배제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윤 총장은 정직 처분 관련 소송과 함께 공수처 수사까지 뚫고 나가야 하는 최대 위기를 맞게 된다.
공수처에서 윤 총장을 수사할 건은 얼마든지 있다. 당장 본지가 지난 두 주에 걸쳐 보도한 ▶장모와 처가 관련된 의혹 ▶윤 총장 본인이 웅진그룹 윤석금 회장 수사무마에 연관되었다는 의혹 뿐 아니라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도피 공조 의혹 등이 그것이다. 게다가 공수처법에 따르면 고위공직자가 연루된 경우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인 사건도 공수처로 이첩될 수 있다. 정직 처분을 받은 윤 총장이 1호 수사 대상에 오를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윤 총장 아내의 전시회 협찬 및 주가조작 의혹 사건과 윤우진 건은 친형 수사 무마 의혹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에, ‘판사 문건’과 관련한 법무부의 윤 총장 직권남용 혐의 수사 의뢰는 서울고검에 배당돼 있다.
공수처가 나서기 전에 이미 서울중앙지검 반부패부가 나서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은 문 대통령의 경희대 후배인 이성윤 검사장이 수장으로 있고, 반부패부는 과거 특수부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는 지난주 국민일보의 사업부서 관계자 2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김건희 씨의 기획사 코바나컨텐츠가 지난 2017년 말 국민일보 창간 기념 전시회를 기획했는데, 유명 게임업체 ‘컴투스’와 ‘게임빌’이 협찬한 돈이 코바나컨텐츠로 흘러간 것이다. 당시 두 게임 업체는 행사를 주최한 국민일보에 5천만 원을 협찬했지만, 10%의 수수료를 뗀 이 돈의 대부분이 코바나컨텐츠로 흘러갔다. 검찰은 이들 업체가 사실상 코바나컨텐츠를 후원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코바나컨텐츠 측과 각자 협찬금을 유치하기로 계약하고도 코바나의 후원금 통로 역할을 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업체들은 지난해 6월 코바나컨텐츠가 주관한 또 다른 전시회인 ‘야수파 걸작전’의 협찬사 명단에도 이름을 올려 후원 경위 등에 대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윤 ‘이대로 당하지 않겠다’ 반격태세
윤 총장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윤 총장을 지키려는 검찰의 반격이다. 검찰은 윤 총장을 향한 공격이 결국 검찰 조직을 무력화하려는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추미애 장관이 자신의 조직을 인사권으로 흔들어 놓고, 공수처와 검경수사권 분리 등으로 누더기를 만들었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만큼 약이 올라있다. 그런 검찰이 임기 말 현 정부 인사들에 대해 칼을 들이댈 것은 정해진 수순이다.
자체 인지수사가 불가능한 만큼 본국의 보수단체들이 나서서 문 대통령과 추 장관을 고발하면 검찰이 이를 받아 자연스럽게 수사에 착수하는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이럴 경우 검찰은 직권남용으로 현 정권 인사들을 옭죄려들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전 대통령, 김기춘 전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 여러 혐의로 기소됐지만 특검이 공통적으로 적용한 혐의가 바로 직권남용이었다. 우 전 수석의 경우 검찰이 적용한 19개의 범죄사실 중 직권남용 관련 혐의만 11개였다. 정권이 바뀌고 친정권 체제로 검찰 조직이 정비되면서 직권남용은 더 빈번하게 적용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역시 기소된 여러 혐의에 직권남용이 포함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감찰하고 직무를 정지시키는 과정에서 일련의 행위들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결국 그 배후에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들이 솟아나고 있다.
윤석열 총장 징계를 놓고 현재 돌아가는 상황은 절대적으로 추 장관에게 불리하다는 분석이 많다. 과거 법원이 직권남용을 유죄로 판단했던 판례와 이번 사태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추 장관과 그 측근들은 윤 총장을 감찰하는 과정에서 이미 무리수를 둔 정황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추 장관의 측근인 박은정 감찰담당관의 경우 직속상관과 부하를 패싱하면서까지 감찰과 수사 의뢰를 주도했다. 윤 총장 역시 추 장관이 지시하는 일련의 행위들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는 확신을 갖고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윤 총장은 이른바 최순실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있으면서 사실상 전 정권 인사들에게 적용했던 직권남용의 법리적 기초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직권남용 혐의를 전직 대통령과 대법원장 등에게 적용하며 이들의 구속까지 이끌어냈다.
文 측근들 ‘직권남용의 덫’
추 장관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검찰 내 인사들조차 징계과정에서 반기를 든 것 역시 직권남용과 무관하지 않다. 법무부에서는 고기영 법무부 차관이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문제 삼아 사표를 낸 데 이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측근인 김욱준 1차장검사도 12월 2일 사의를 밝혔다. 신성식 반부패부장도 징계위에서 기권했다. 법무부 감찰위와 법원이 모두 윤 총장 징계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상황에서 자칫 징계 과정에 몸을 담았다가는 직권남용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분위기가 법무부와 검찰 안팎에 퍼져 있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문재인 대통령의 퇴임 후 법적 책임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추 장관의 일련의 행동은 대통령의 묵시적 동의 없이는 진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정황이 다수 드러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이용구 신임 법무부 차관을 임명하면서 “윤 총장 징계위에 참석하지 말 것”을 지시하며 징계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강조한 것도 결국 방어논리를 만들기 위한 절차란 말이 나온다.
‘추-윤’ 갈등에서 ‘문-윤’ 충돌로 2라운드에 접어든 상황이 어떤 과정을 거쳐 결론에 도달할지 여부에 비상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들은 코로나 때문에 죽느냐 사느냐하는 절체절명의 절박한 비상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아랑곳 않고 연일 쌈박질로 날을 새고 있는 모양세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고 이구동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