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미국의 몰락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회복된 미국을 원한다’
프랑스 역사학자 엠마뉴엘 토드가 2002년 ‘미국 제국’의 종말을 예언하는 책 <아메리카 이후>에서 미국에 대해 이렇게 소리쳤다. ‘세계가 기다리는 것은 미국의 몰락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회복된 미국’이라고 말했다.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의 뿌리는 정치적 패배를 받아 들이는데 있다. 그 전통의 뿌리는 200년 이상 군림해왔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 때 와서 멈추었다. 아니 멈춘 것이 아니라 패배를 인정 안하고 폭동으로 이를 탈취하려는 전대미문의 폭거가 미국의 수도 워싱턴DC의 의사당에서 폭발했던 것이다. 세계적으로 아직도 패권국가인 미국이 그동안 지배하던 질서체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코로나-19 펜데믹 이 전세계 219개 확산 국가중에서 유독 수퍼 국가인 미국에게 가장 치명상을 입히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역시 코로나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트럼프의 실책이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이 멸망을 당하지 않고 시민국가로서 미국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여 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미국을 구성하고 있는 미국인(다인종)들이 깨어나야 한다는 것 이다.
성 진 (취재부 기자)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의 조카녀인 메리 트럼프가 쓴 <넘치지만 결코 만족을 모르는 : 우리 집안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을 만들어냈는가?>는 출간되자 일약 베스트 셀러에 올랐다. 이 책은 정치인 트럼프에 대한 심리분석서에 더 가깝다는 평이다. 이 책은 트럼프나 가족들의 압력에 묻혔더라면 은폐됐을 트럼프의 모습을 통해 미국식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한 단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통찰력 있고 짜임새 있는 회고록”(CNN 서평)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이 책은 ‘조카가 삼촌에 대해 쓴 책’이라는 점에서 다른 트럼프 관련 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신뢰도와 독창성을 가진 자료다. 자신의 삼촌 트럼프를 ‘괴물’이라고 지칭한 메리는 책에서 지난해 11월 3일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을 향해 이렇게 경고했다.
“만약 그에게 두번째 임기가 허락된다면, 그것은 미국 민주주의의 종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두번째 임기가 허락이 되지 않았지만, 그가 선동한 국회의사당 폭거로 미국 민주주의의 종말이 시작되고 있다.
지난 세기를 되돌아보면 미국이 패권국가로서 국제적으로 잘한 일과 잘못한 일들이 뒤섞여 있었지만, 분명2000년까지는 ‘미국의 시대’ 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미국의 시대’는 종말의 서막이 보이면서 트럼프의 잘못된 4년과 2020년 그 말기에 닥친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이 그동안 패권국가로서의 존재와 권위를 나타내는 세가지 축은 첫째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나라, 둘째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그리고 셋째 세계 최대 경제력이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은 독립이래 국론이 최대로 분열되어 있다. 좌파진영에서는 인종적 분열과 트럼프 정권의 국정파탄으로 미국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으로 미국의 앞날이 걱정이라는 반면에, 트럼프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우파진영에서는 미국을 “다시 위대 하게-MAGA”라는 슬로건으로 압박하더니 종국에는 미국의 민주주의 심장부인 ‘국회 의사당’을 쳐들어가 지금 까지 볼 수 없었던 ‘망나니들의 잔치’를 벌리고야 말았다.
“미국은 더 이상 패권국가 아니다”
이번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세계가 보는 미국은 “종이 호랑이”였다. 세계 3류 국가보다 코로나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오죽하면 미국이 위험해서 제3국으로 피난 가는 국민도 생겨났다.
많은 미래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미국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은 자신만이 유일한 강대 국이며 역사적으로 선택을 받았으며 문화적으로 위대하다는 믿음은 곧바로 실패에 이르는 처방 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21세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지난 2000년까지는 아메리카 미합중국은 영원할 것이라는 자만심이 지배적이었고, 미국만이 세계에 대하여 민주주의를 성공시킬 유일한 해법을 지닌 나라라고 믿었다. 유일한 군사적 패권과 경제적 번영이 자신들만의 역할임을 자임하였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허점이 많았다.
그 허점이 코로나-19팬데믹이 출현하면서 미국이 가지고 있는 틈새의 결함을 여지없이 노출 시켰다. 세기적 전염병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보인 허점은 특히 전쟁이 아닌 재난의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함을 드러냈다. 코로나-19 팬데믹에 갈팡질팡하는 미국을 경멸과 조소로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은 사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이 벌려온 것에 대한 평가의 재판이었다.
‘미국의 시대’를 받쳐온 3가지 축에서 첫 번째로 무너진 것은 군사력이다.
미국은 경제력의 심장부인 뉴욕을 위시하여 워싱턴DC 등을 표적으로 테러리스트들이 일으킨 9/11사태는 미국의 안보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그후 알케이다와 빈라덴의 탈레반에 대하여 정당한 응징을 행한 것은 나름대로 국제사회에 지지를 받아왔으나, 뒤이어 2003년 봄에 명분도 없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벌인 인권적으로도 무리한 점령정책과 십 수 년에 걸친 게릴라와 맥없는 전투는 “제2의 베트남 전쟁”과 다를바 없었다.
더구나 이라크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자행된 고문과 제재는 문제를 크게 확대 시켰는데, 이는 미국 자신이 오랫동안 지지해온 제네바협정을 정면으로 위반한 행위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 세계 최대 인권국가라는 이미지에도 먹칠을 가한 것이었다.
사실 미국도 소련이 사라진 후 내리막길을 걸어 왔다.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처럼 저항할 능력이 없는 나라들만 골라서 공격해온 미국의 모습은 미국의 약점을 말해줄 뿐, 미국의 단일 패권을 입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들어가는 북한까지 미국과 맞장구를 치겠다고 나서는 판이다. 트럼프가 역대 대통령 중에서 자신만이 북한을 다스릴 줄 안다고 허풍을 떨었으나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코로나 19가 미국의 허점을 노출시키다’
두 번째 무너진 축은 경제력이다.
‘미국의 시대’라는 자부심은 공산주의를 분쇄하기에 충분히 강력한 미국 경제시스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미국은 1989년 이후 구소련 해체와 동서독 통일에서 동유럽과 러시아의 재건에 청사진을 제시하며 자유시장 경제를 이끌어 왔다.
한편 중국은 WTO에 가입과 함께 여러 국제기구에 참여하면서 미국의 측면 지원으로 정부 주도 하에 경제성장을 하면서 미국을 바짝 쫓아왔다. 세계에서 미국 달러를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가 된 것이다.
미국의 경제력에 결정적인 강타를 맞은 것은 2008-2009년간의 세계적 금융위기였다. 미국의 은행들이 위기를 자초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세계적인 재앙이 되었다. 미국정부의 구제 조치로 금융 시스템은 가까스로 회복되었지만, 미국경제에 대한 명성, 즉 미국패권의 핵심 이라고 했던 경제의 축은 더 이상 맥을 추기 힘들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축은 민주주의이었다.
미국은 자신들의 민주주의가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진리라고 자랑해왔다. 실제로 미국 민주주의는 개인적인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공동체의 에너지를 잘 결합시키는 유일한 제도라고 자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미국은 동맹이나 경쟁국들에게 민주화를 추천하기도하고 때로는 인권외교라는 면에서 압박하기도 하였다.
독재자를 견제하는 길은 민주주의 밖에 없으며, 전제정치를 방어하고 풍요를 보장하는 가장 효과적인 제도 역시 민주주의였다. 그리고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그리고 집권 4년을 자신의 고집대로, 예측 불허한 정책을 마구 휘둘렀다. 백인우월주의를 위한 소수인종의 말살(?)을 위한 반이민정책을 강행하면서 원래 공화당의 건전한 보수정책마저 훼손시켰다.
트럼프의 집권 4년은 미국의 능력을 심각하게 훼손시키면서, 새로이 태생하는 포플리즘과 전체 주의적 압력을 그토록 비난해오면서, 세계에 과시해온 미국 자신이 무색해 졌다.
더구나 미국 대통령이라는 주요한 권력을 마구 남용해도 이를 견제하고 균형을 잡지 못하는 오늘의 미국 정치제도의 현실적 결함에서 이미 미국은 정치적으로 몰락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 집권 4년… 미국의 가치 훼손
미국은 자신만이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국가이며 ‘미국의 시대’가 끝나면 인류에게 퇴보가 올 것이라는 강한 자만심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지난 수 십 년간 미국은 자신의 국내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빈부의 차가 극대화 되어 가고, 일반 주민의 생활수준은 저하되었고, 같은 수준의 다른 나라들에 비하여 한참 뒤떨어 졌다.인종차별이 성행하고 교육과 공공의료 및 생활 수준에서 미국처럼 격차를 보이는 나라가 없으며, 자신의 시각으로 평가하여도 한때 스스로 성취한 기준에 한참을 뒤떨어져 있다. 교육, 의료, 사회복지, 가난구제는 물론 국방비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면서도 전혀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심각한 문제는 트럼프의 몰락이 미국 전통의 보수주의와 공화당의 소멸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 이다. 트럼프는 마지막 조지아주 상원 결선에서도 현직 공화당 상원 2명이 민주당의 신예 후보 2명에게 동시에 패했다는 것을 분명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면서도 이를 인정 하려 들지 않았다.
미국의 백인 전성 시대가 더 이상 전성시대가 아님을 그들(보수)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미국의 인구분포가 빠르게 변해온 것도 사실이며 그 변화의 결과는 매번 선거 때마다 반영됐다. 2016년 트럼프가 이겼던 소위 경합주 조지아 펜실바니아 위스컨신, 아리조나 등에서 트럼프가 2020 대선에서 분명하게 나타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듯’ 패퇴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를 위시한 공화당과 극우보수파들은 이같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게 아니라 알고도 외면해왔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 ‘부정선거로 도둑 맞았다’였다. 트럼프에 대해 책을 쓴 조카 매리는 트럼프는 ‘자신에게는 지는 것은 없다’라는 “망상을 지닌 자”라고 규정했다.
미국 유력 주간지 애틀란틱의 최신 기사 “미국은 어떻게 끝장날 것인가”(How America Ends)도 공화당과 보수주의가 그 명을 다했다고 단언한다. 컬럼니스트 요니 애플범 박사는 미국 역사에서 수많은 정치인들과 정당이 선거전에서 승패가 갈렸던 과정을 통해 때로 서로에게 생채기를 남기는 치열한 승부도 있었지만 불구대천의 정적을 만드는 일은 없었다고 전하면서 패자는 결과를 받아들였고 다음 선거를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지지 기반을 넓히면서 정책을 중심으로 실용적 발전의 길을 모색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이런 미국의 전통은 깨져버렸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이념적 색채가 분화되면서 민주-공화당 사이의 적대감만 커지고 있는 현상 중에 놀라운 일이 있다. 1960년 민주당과 공화당 성향 각 부모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자녀들이 상대편 정당 지지자들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겠다고 응답한게 각각 5%였다. 하지만 최근 같은 질문에 대한 조사에서 공화당 지지 부모는 35%, 민주당 지지 부모는 45%가 반대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정치적 견해 차이로 결혼을 반대하는 의견은 인종과 종교의 차이에 의한 반대 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였다.
이런 풍조가 계속 커지는데도 미국이 망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