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성 노예가 아닌 매춘부라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부’로 규정한 마크 램지어(Professor J. Mark Ramseyer)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논문을 둘러싼 파장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현재 국내외로 하바드로스쿨 한인 학생회(KAHLS)와 반크 등에서 활발한 청원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금년에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 조이스 로씨는 15일 “청원운동에 열심히 나서고 있다”면서 “많은 동포들이 주위에 알려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17일 미국 하버드대 아시아태평양법대학생회(APALSA)가 주최하는 온라인 세미나 에서도 이용수 할머니는 자신의 피해를 증언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할머니는 현지 학생의 초청으로 온라인 세미나에 참석하게 됐다. 이날 온라인 세미나는 페이스북을 통해 중계될 예정이다.
이런 자가 하버드대 법대교수라니…
또 이 할머니는 16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위안부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넘길 것을 정부에 촉구하는 기자회견도 연다.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은 지난해 5월 정의기억연대 회계 부정 의혹 폭로 이후 9개월 만이다. 하버드대 로스쿨 존 마크 램지어 교수는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인 위안부가 모두 공인된 매춘부 이고 납치된 성노예가 아니라는 주장을 실은 논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해당 논문이 공개되자 하버드대 한인 법대 학생회가 즉각 성명을 내며 반박하는 수준을 넘어 정치권과 학계까지 비판에 가세함에 따라 조 바이든 새 행정부가 들어선 미국 사회의 관심사로 급부상 했다. 공화당 소속인 영 김(한국명 김영옥·캘리포니아) 연방 하원의원은 11일 트위터를 통해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진실이 아니고, 사실을 오도할 뿐 아니라 역겹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내용”이라며 “우리는 인신매매와 노예 피해자를 지원 해야 한다. 이들의 인격을 손상하면 안 된다”고 밝혔다. 학계에서도 램지어 교수의 논문 신뢰도에 대한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따라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게재하기로 한 국제 학술 저널이 우려를 표명하고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국제법경제리뷰>(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는 홈페이지에 “해당 논문에 실린 역사적 증거에 관해 우려가 제기됐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우려 표명’을 공지한다”며 “이러한 주장에 대해 현재 조사 중이며 국제법경제저널은 때가 되면 추가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국제법경제저널>은 3월호에 논문을 실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연구 신뢰성에 문제가 제기되자 제동이 걸렸다. 하버드대 로스쿨 한인 학생회는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인권 침해와 전쟁 범죄를 의도적으로 삭제한 것을 강력하게 규탄한다”고 밝혔으며, 당시 미 전역의 법대 학생 800명도 이 성명에 연명 했다. 이같은 램지어 교수의 주장은 한국은 물론 미국에서도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동료 교수들 조차 “한심한 논문”
일본 ‘산케이 신문’이 입수해 보도한 논문 요약문을 보면, 램지어 교수는 위안부 여성들이 성노예가 아니라 자신들의 금전적 이익을 위해 업자들과 계약을 맺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울러 위안부 여성들을 속였다면 일본 정부가 아닌 이들을 모집하고 계약한 업자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주장은 위안부를 일본군의 성노예 피해자로 규정한 유엔 인권기구와 국제 인권단체들, 전 세계 주요 역사학자들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하버드대의 다른 교수들은 당장 램지어 교수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 대학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지낸 카터 에커트 교수는 ‘크림슨’ 신문에 램지어 교수의 논문은 “실증적, 역사적, 도덕적으로 (볼 때) 한심할 정도로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동료 역사학자와 함께 이를 반박할 저널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과거 시카고대학에서 램지어 교수의 강의를 들었던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는 지난 12월 램지어 교수로부터 논문이 담긴 이메일을 받았을 때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더든 교수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근거 자료가 부실하고, 증거적으로도 가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램지어 교수의 동료인 하버드대 로스쿨의 한국계 지니 석 거슨(석지영) 교수는 6일 ‘트위터’에 램지어 교수의 논리는 “도덕적으로 터무니없는 것을 제외하고도 분석적으로도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램지어 교수가 논문에서 위안부들이 수천 명과 성관계 의무를 완수할 때까지 자유롭게 떠날 수 없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은 곧 계약제도가 있기 때문에 고용계약을 파기할 가능성이 없었다는 의미로 이것이 곧 “노예의 정의”라는 지적이다. 거슨 교수는 그러면서 “어떤 법률 제도도 이런 성격의 계약을 인정하거나 정당하게 시행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피해자에 대한 모욕이자 전쟁범죄 옹호
이런 가운데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규탄하는 청원 운동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하버드대 로스쿨 한인 학생회(KAHLS)가 지난 4일 규탄 성명과 함께 시작한 청원 운동은 8일 오후 현재 이 대학 5개 단체와 전미 대학 로스쿨 재학생 1천 11명이 연대 서명했다. 한편 한국의 사이버 외교 사절단 ‘반크’는 세계 최대 청원사이트인 ‘Change.org’에 ‘성 노예 전쟁 범죄를 옹호하는 하버드 로스쿨 교수?’란 제목으로 논문 게재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들은 램지어 교수가 경제학에서 말하는 ‘게임이론’ 논리를 적용해서 돈을 버는 여성의 목적이 모집업자, 일본군의 이해관계와 일치했기 때문에 계약이 이뤄졌다고 주장하지만, 위안부는 자유 롭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의 ‘게임이론’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강압적으로 자행되고 국제관습법상 허용되지 않는 성노예 제도”로 게임 이론을 위안부에 적용한 것은 “피해자에 대한 모욕이자 전쟁범죄 옹호”라는 것이다.
램지어 교수는 ‘하버드 크림슨’ 신문에 로스쿨 학생들에 대한 책무가 있다며 논문에 대해 학생들과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지만, 논문 철회 여부는 언급하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는 이미 일본 정부가 과거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사과했으며, 미국 의회에서도 결의안 을 통해 역사적 만행을 규탄한 바 있다. 미국 연방 하원도 지난 2007년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인정과 사과, 역사적 책임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