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개발 영웅스토리… ‘카탈린 카리코’ 박사를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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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자도…모더나도…’ 그녀가 개발한 mRNA으로 백신개발에 성공

40년 각고 끝 결실… ‘이제는 행복하다’

전세계를 ‘공포의 대전염병’으로 몰아 넣고 있는 코로나-19 펜더믹을 멈추게 하는 백신이 개발 되면서 인류는 안도의 한 숨을 쉬게 되었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나오면서 우리는 코로나의 공포로부터 희망을 지니게 됐다. 지금까지 백신 개발은 아무리 빨라야 5~10년 대개 그 이상 걸린 다는 것이 의학계의 통설이었다. 물론 ‘긴급승인’이라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이번에는 1년 안에 백신을 개발 투여까지 하게 되었다. 그 배경에는 지난 40년 동안 눈물의 각고의 세월과 주변 동료 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면서 백신 연구에 몰입했던 항가리 태생의 카탈린 카리코(65, Katalin Kariko) 박사라는 여성 과학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학계에서는 ‘그녀에게 노벨상이 수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봄 창궐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과거의 ‘페스트’ 공포를 불러 올 만큼  전세계를 강타 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의 유수의 수많은 제약 회사들은 코로나 백신을 개발하려고 동분서주 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나 영국, 프랑스, 독일 그리고 중국 등을 포함 많은 국가들은 지금까지 없던 막대한 연구 개발비를 지원하면서 코로나 백신 개발에 전력을 투자했다. 의학계에서는 기존 백신 개발은 바이러스를 증식해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백신 생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수 십 억 명이 혜택을 볼 수 있는 백신 생산을 단 몇 달 안에 해 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카리코 박사가 연구해서 개발한 mRNA 백신 때문이었다. mRNA는 ‘메신저RNA’의 줄임 말로, 죽은 바이러스 잔해를 주입하는 이전의 백신 개발 방식과 달리, 단백질을 만들어 세포가 질병과 싸우게 하는 명령을 보내는 것이다. 생성된 바이러스 단백질은 질병을 유발하지 않지만 사람이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한다.

카리코 박사는 이번 코로나19 백신의 개발 배경이 되는 핵심기술, mRNA을 위해 지난40여 년간 연구에 매진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mRNA연구에 홀로 투자한 시간은 40여년이란 길고도 험난했다. 지난40여년 세월이 평탄한 것이 아니었다. 조국 항가리에서 20대에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으로 초청되어 왔지만 연구 실적이 없다고 추방 위협까지 당하고, 동료 연구원들의 조롱까지 당하고 한때는 자신에게 암 질환까지 닥쳤지만 이를 극복하고 끝내 인류에게 희망을 주는 mRNA 백신을 개발한 것이다.

▲ 40년 각고 끝에 백신개발을 성공시킨 카리코 박사(오른쪽)

▲ 40년 각고 끝에 백신개발을 성공시킨 카리코 박사(오른쪽)

1976년 헝가리 세게드에 있는 아틸라 요제프 대학의 생명과학 수업에서 mRNA를 처음 접한 카 탈린 박사는 23세 때 ‘항바이러스성의 짧은 RNA 분자의 합성과 적용’이란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항가리에서는 어느 누구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분야였다. 또한 공산 치하에서는 계속 연구 지원금 등을 찾기가 힘들었다. 1980년대 미국에서 mRNA 연구 호황이 이루어지자, 카리코 박사는 헝가리를 떠나 미국으로 가기로 작정했다. 이후, 1984년 미국에 문을 두드려 템플대학교에 박사후 과정 연구원 신분으로 초청을 받아 무작정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녀 수중에는 오직 딸의 ‘테디베어 인형’에 숨긴 현금 900유로(미화 약 150 달러)가 전부였다. 미국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다. 단지 공학도인 남편과 딸과 함께 다시 돌아 오지 못할 ‘편도 항공편 티켓’을 쥐고 꿈을 향해 1985년 미국으로 향했다.

항가리에서 20대 박사학위로 미국에 초청 받아

카리코 박사가 mRNA 에 관심을 둔 것은60년전1961년 당시로는 과학적으로 새로운 연구 과제인  mRNA 발견 사실이 공식 발표 됐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과 유럽 연구원들은 10년 넘게 DNA가 단백질 생성 과정에 관여하는 과정을 정확히 설명하기 위한 조사를 해왔다. 단백질 생성 과정이 모든 생명 체의 성장과 기능에 매우 중요한 아미노산의 긴 서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mRNA가 그 정답인 것으로 밝혀졌다. mRNA가 디지털 테이프 리코더 역할을 하면서 세포 핵에 있는 DNA의 지시사항을 반복적으로 복사하고, 단백질을 생성하는 구조인 리보솜으로 옮기 는 것이다. 이처럼 mRNA의 핵심 역할이 없었다면, DNA는 그저 쓸모 없는 화학 물질의 배열에 불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일각에서는 mRNA를 ‘생명체의 소프트웨어’라고 부른다.

전 세계 연구팀은 mRNA를 세포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바이러스 침투에 싸울 수 있는 특정 항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미래의 백신을 생성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다른 연구원들은 mRNA가 면역체계의 암 조직 인식 및 파괴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조사하기 시작 했다.과학자들은 mRNA와 세포를 분리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인공 mRNA 를 생성하는 방법은 확실히 알지 못했다. 그러나 1984년, 미국 생화학자 캐리 멀리스(Kary Mullis)가 극소량의 DNA의 양을 늘리는 기법인 유전자 증폭 기술(PCR)을 개발해, 유전자에 대해 상세히 연구할 수 할 수 있었다. 1989년, 다른 과학 자들이 PCR을 이용해 약간의 손상에서 mRNA를 생성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DNA 서열을 증폭하고, RNA 중합 효소라고 알려진 효소를 이용해 DNA 서열에서 mRNA를 생성하는 것이다. 카리코 박사는 “mRNA를 연구하는 과학자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발견이었다. 갑자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 화이자 백신

▲ 화이자 백신

카리코 박사의 미국에서의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백신 연구에 몰두했지만 초창기 괄목할 만한 성과는 없었다. 템플대학교에서의 성과 부진으로 눈총을 받던 중, 1989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로 직장을 옮겨야 했다. 소속 대학의 수석연구원은 mRNA 연구가 비현실적 이라고 지적했다. 대학은 카리코 박사에게 mRNA 연구를 포기하거나 직위와 연봉을 대폭 삭감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며 강요하기까지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95년 그녀는 암 진단을 받았다. 그렇지만 반복되는 악재에 연구 지원금조차 없었던 카리코 박사는 꿋꿋히 mRNA 연구를 고수했다. 그러나 연구에 진전이 없자 1995년 그가 속한 연구소와 대학은 연구 중단을 요청하고 추방 하겠 다고 협박까지 했다. 이에 카리코 박사는 애원하여 연구비 지원도 없이 반토막 월급만 받기로 협상하고 동료 연구원 들의 심한 조롱 속에 홀로 연구를 계속했다. 그녀는 자신의 백신개발이 “인류를 구원해낼 것이라는 믿음과 남편의 용기가 그녀를 지탱하게 했다”고 나중 고백했다.

“인류를 구원해낼 것이라는 믿음과 남편의 용기가”

1995년은 카리코 박사에게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연구를 하던 시기 중 절반 이상은 별다른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 무수히 많은 승인 신청이 거부 됐으며, 뉴욕 벤처 투자가, 독립 기업 등에게서 연구 자금을 육성하기 위한 시도도 결실을 얻지 못했다. 설상가상 1990년대 중반,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측은 카리코 박사에게 절망적인 선택권을 주었다. 연구소를 떠나거나 직위 강등을 당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측은 카리코 박사에게 mRNA 연구를 계속한다면, 명문 대학에서의 교수직 지위를 잃고 연봉이 많이 삭감될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카리코 박사는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최후통첩을 받았던 시기가 매우 끔찍한 시기였다. 당시 암 진단을 받았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두 차례 수술을 두고 있었다. 당시 남편은 영주권 취득 을 위해 헝가리로 돌아갔으나 비자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헝가리에 남아있어야 했다. 남편은 이 때문에 6개월간 헝가리에 있어야 했다. 매우 힘든 시기였다. 이때,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최후 통첩을 받았고, 암 진단도 받았다”라고 말했다. 카리코 박사는 암 수술을 이어가는 동안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권을 두고 평가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에 남아 자신의 지위가 강등되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어려운 상황 에서도 mRNA 연구를 계속 진행하기로 했다. 이 덕분에 카리코 박사는 자신의 경력과 과학 분야에 큰 변화를 가져다 줄 만남을 갖게 됐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듯이 하나님은 카리코 박사의 꿈을 이루게 했다.

1997년,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면역학자 드류 바이스만(Drew Weissman) 박사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왔다. 카리코 박사의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내 학문적 지위가 낮은 상태였지만, 바이스만 박사가 카리코 박사의 연구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둘의 협력 관계가 시작됐다. 카리코 박사는 “바이스만 박사의 도움 덕분에 낙관적인 전망을 갖게 되었고, 연구를 이어 나갔다. 당시 내 월급이 내 옆자리에 있던 기술자보다 적었다. 그러나 바이스만 박사가 도움을 주어, 이전처럼 장벽을 마주 하지 않고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2005년, 카리코 박사와 바이스만 박사는 특정 목적으로 mRNA를 수정한 사실을 발표하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 연구에서 우리딘과 똑같이 보이지만, 면역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분자인 아날로그 분자로 우리딘을 대체했다. 실험용 쥐에 변형 mRNA를 투입했을 때, 쥐는 멀쩡히 살아있었다.

카리코 박사는 그때가 mRNA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순간이며, mRNA를 백신과 치료에 사용할 수 있다고 깨달았다. 그래서 연구 논문을 게재하고 특허를 출원한 뒤 기업을 설립했다.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으나 일부 과학자가 카리코 박사와 바이스만 박사의 연구에 주목했다. 결국 둘은 힘을 합쳐 2000년대 초반 실험쥐를 이용한 mRNA 실험에 성공하고 특허를 출원했다. 이는 화이자-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의 백신 개발의 핵심적인 기술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그녀가 없었다면 백신 개발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러한 카리코 박사 업적에 화이자의 경쟁사라고 할 수 있는 모더나 설립자인 데릭 로시도 “그녀가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화이저와 모더나가 카리코 박사의 백신 특허를 사서 이번에 생산하게 된 것이다. 이번 코로나 백신은 이전의 기술과 달리 mRNA를 사용한 신기술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녀는 2013년부터 바이앤텍의 부사장으로 있으면서 이 회사 역시 백신을 따로 개발하였다. 이렇게 세 회사가 모두 그녀의 연구 결과물을 바탕으로 해서 지금 인류의 생명을 지켜내고 있다. 카리코 박사는 무려 40여년의 긴 “왕따” 생활을 끝내고 사람들의 찬사를 받게 되었다.

 “40년 왕따” 생활을 끝내고 사람들의 찬사를

2010년, 데릭 로시는 하버드대학교와 MIT 교수 여러 명과 함께 모더나라는 바이오 테크 기업을 공동 설립했다. 변형 mRNA를 이용해 백신과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한 특수한 목적으로 설립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모더나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경쟁의 선두에 서 있으 며, 약 350억 달러(38조 3,145억 원)의 가치를 지닌 기업이 됐다. 3상 임상시험에서 mRNA 기반 백신의 효과가 94%라는 사실을 발표한 덕분이다. 그러나 전 세계가 mRNA에 다시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다. 로시가 모더나 를 창립했을 때, 카리코 박사와 바이스만 박사도 자신들의 연구 내용을 기반으로 간신히 상업화 하는 데 성공하고, 바이오앤 테크라는 독일의 소기업에 기술 사용 권한을 주었다. 5년간의 시도와 실패 끝에 얻은 성과이다.

모더나와 터키계 기업가 우구르 사힌(Ugur Sahin) 박사가 설립한 기업 바이오앤 테크 모두 암 면역 치료, 심혈관 질환 및 대사 질환이라는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 주목했다. 카리코 박사와 바이스만 박사의 연구 결과 덕분에 환자에게 mRNA를 안전하게 주입할 수 있게 됐다. 1970년대 당시 mRNA 연구 목표가 다시 가능성을 보이게 됐다. 2020년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코로나19 때문에 유례없는 규모로 백신이 필요해지자 mRNA 백신이 기존 백신 접근 방식보다 확실히 유리했다. 2020년 4월, 모더나는 코로나19 백신 개발 프로그램 추진 속도를 높이도록 미국 생물의약품첨단연구개발국(Biomedical Advanced Research and Development Authority)에서 4억 8,300만 달러(528억 4,986만 원)를 지원받았다. 카리코 박사는 바이오앤 테크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프로그램을 담당했다.

2013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1995년에 강등된 교수진 지위 복구 거부를 받고, 바이오앤 테크의 상무 자리를 제안 받았던 것이다. 오랜 시간 역경을 겪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mRNA 연구의 가치를 설득하는 데 큰 어려움에 부딪 혔지만, 카리코 박사는 “항상 많은 사람을 돕고, 임상 의학에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이것이 나에게 동기 부여가 됐고, 항상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사람을 도울 것이라고는 절대 상상해본 적이 없다. 내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이라는 성공 신화에 한몫을 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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