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권 중 중국이 최강 국가 되는 일 없고…
김정은과 만날 일 절대 없을 것
미국에서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위험이 높지만 이득은 적은'(high risk, low yield) 행사로 통한다. 잘하면 본전이지만 실수라도 하면 잃는 것이 많다는 뜻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후 첫번째 기자회견은 첫번째 기자회견이라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주목했다.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으나, 걱정했던 말 실수도 없었으며, 그의 특기인 조크를 자주 사용했다. 트럼프 전대통령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의 기자회견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월 25일 기자회견에서 첫번째 기자 질문 을AP기자에게 주었다. 트럼프 때에는 무조건 FOX뉴스가 첫번째였다. 다음번 바이든 기자회견 때 는 어느 언론사를 먼저 지명할지 지금부터 관심사다. 트럼프 이전의 대통령들은 주로 처음 질문권 을 백악관 출입 최고참 기자에게 주었다. 원래 미국 대통령 기자회견은 사전에 질문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질의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에는 코로나 때문에 사전 교감도 있었다고 기자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다. <성진 취재부 기자>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말실수로 간혹 도마 위에 오른 탓인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회견장에 들어섰다. 예상 문답을 담은 메모지, 자료집까지 준비한 모습이었다. 62분간 진행된 회견에서 기자들의 질문은 약 45분 정도였다. 처음 질문에 답변한 후 기자들이 추가로 질문을 할 수가 있다. 이날 약 25명 정도의 기자들이 참석해 총 30건 정도 질문이 나왔다. 바이든 대통령은 큰 실수는 없었다. 질문 도중 가끔 자료집을 넘겨 보거나, 스스로 장황했다 고 생각했는지 “내가 너무 오래 답하고 있다”, “여기서 멈추겠다”고 말하는 장면도 있었다. 이날 바이든의 첫번째 기자회견을 두고 CNN방송은 “바이든 대통령은 때때로 두서없이 언급하고 몇몇 순간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 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대통령 업무와 미래에 대한 관점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폴리티코는 “바이든 대통령은 스스로 ‘실수 제조기’라고 칭하지만 눈에 띄는 실수는 없었다”며 “때때로 장황했지만 오바마 전 대통령에 비해 덜 교수 같은 버전이었고, 대본이 없고 참모들도 알지 못하는 정책 발표로 악명이 높았던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확연히 달랐다”고 말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첫 공식 기자회견에 앞서 북한 질문을 예상하고 미리 답변을 요약해 적어온 수첩이 AP통신 카메라에 포착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약간 고개를 숙이고 준비된 문구를 읽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결의 1718호 위반이고 미국은 동맹 및 파트너와 협의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북한이 긴장 고조를 택하면 상응 한 대응을 할 것이지만 비핵화의 최종 결과를 조건으로 하는 일정한 형태의 외교에도 준비돼 있다 는 언급도 했다.
AP통신이 촬영한 사진을 보면 바이든 대통령의 이러한 답변이 수기로 요약돼 수첩에 적혀 있는 것 을 볼 수 있다. 수첩에는 ‘유엔 결의 1718호 위반, 긴장 고조 택하면 상응 대응, 일정한 형태의 외교에도 준비’라고 손글씨로 적혀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메모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사진에서 수첩이 절반만 나와 아랫부분에 어떤 내용이 더 적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북한과 관련 해 준비한 답변은 사진에 나온 부분이 거의 전부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로 바이든 대통령의 반응에 관심이 집중된 상황에서 미리 외교안보 참모진과의 논의를 통해 메시지를 정리, 수첩에 기록해온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견에서 북한 관련 질문 말고도 여러 현안에 대한 질문에 준비된 답변을 읽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보수매체 폭스뉴스는 이런 사진들을 모아 ‘컨닝 페이퍼’라는 제목으로 보도 하기도 했다.
FOX매체, 바이든 기자회견은 ‘컨닝 페이퍼’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견을 취임 후 성과를 부각하고 역점 과제에 대한 초당적, 국민적 지지를 호소하는 자리로 활용하려는 듯했다. 이날 그의 중점적인 홍보 대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성과였다. 실제로 취임 후 확산세가 꺾이고 백신 접종 속도도 매우 빨라졌다. 그는 취임 100일까지 백신 접종 목표를 2배인 2억 회로 늘려 잡았고, 35일이 지나면 학교 정상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문답 에서 전염병 관련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이날 최대 이슈로 떠오른 이민 문제에 대해선 전임 행정부 책임론을 제기하고 공화 당이 국정 의제 를 제대로 도와주지 않는다는 불만도 강하게 표시했다. 회견에서 가장 많은 질문이 나오며 바이든 대통령을 괴롭힌 주제는 남부 국경지대에 남미로 부터 밀려드는 청소년 이민 행렬 문제였다. 그는 친이민정책이 밀입국자 급증을 초래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내가 좋은 사람이어서 늘어난 게 아니다”라며 날씨가 풀리는 연초 이민자 급증은 반복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 문제가 자신의 탓이 아니라고 강조한 것이다.
부모 동반 없는 미성년 밀입국자들이 열악한 조건의 시설에 수용돼 있다는 지적에 대해 “이런 상황 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호응했다. 또 “이 아이들이 국경에서 굶어 죽도록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자신의 정책 기조를 옹호했다. 그는 2024년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입장도 처음 밝혔다. 앞으로 4년후의 일인데 초장에 질문이 나왔다. 물론 예상된 질문이기도 했다. 역대 최고령인 78세의 나이로 취임한 그의 연임 도전 여부는 그간 관심의 대상이었다. 민주당 전략가 사이에선 실제 불출마하더라도 조기 레임덕을 피하려면 출마 의사를 밝혀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왔다. 그는 여러 질문에 답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곳곳에서 저격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트럼프식 이민 정책에 대해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이민을 늦추지도 못했다”고 혹평하고 “그가 해체한 것 위에서 재건하고 있다”라고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정책을 철회한 것에 대해서도 절대 양해를 구할 사안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 대통령 중 중국 위구르나 홍콩 같은 인권 문제에 대해 비판하지 않은 대통령은 트럼프가 유일하다는 취지로도 언급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4년 대선 때 트럼프 전 대통령과 재대결할 가능성을 묻자 “오 그러지 마. 나는 (그때) 공화당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농담까지 하면서 받아넘겼다. 그는 공화당에 대해 협력 의지를 피력하면서도 자신의 역점 과제 추진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취지 로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또 그는 공화당이 상원에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남용이라고 비난하면서 특정 사안에 대해선 이 규칙을 없애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중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공화당이 협력과 분열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며 “나는 분열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풀기 위해 선출됐다”고 공화당의 협력을 촉구했다. 공화당이 투표 절차를 까다롭게 만드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선 ‘구역질이 난다'(sick), ‘비미국 적’ (un-Ameirca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비판했다.
트럼프식 이민정책 “전혀 도움이 안돼” 혹평
원래 미국 대통령 기자회견은 기자들의 질문을 사전에 제출 받지 않는 것이 전통이다. 대통령은 관례적으로 현장에서 즉석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백악관 공보국이 사전에 질문을 받아 갔다는 소문이 기자들 사이에 퍼젔다. 백악관 기자단 대표인 ABC방송 기자는 백악관 측과 이 문제 를 두고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과 사이가 나빴던 트럼프 전 대통령조차 언론의 독립성을 위해 사전 질문을 받지 않았다며 기자들 사이에서 설왕설래했다고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는 전임 트럼프 대통령 시절과는 다르게 언론과 상호 발전적인 관계를 유지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매일 부지런히 언론 브리핑을 하며 기자들과 만난다. 트럼프 행정부 때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현재 백악관 일일 브리핑에는 10명 정도의 기자가 참석한다. 백악관이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을 엄수해야 한다”며 과거 50명씩 참석했던 기자 수를 확 줄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난 2월부터는 그 적은 기자들로부터 받는 질문조차 “내용을 먼저 제출해 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런 요구를 하는 것은 요즘 백악관 브리핑의 상당 부분이 과학적인 데이터 조사가 필요한 코로나19에 대한 것들이기 때문 이다. 일단 브리핑용 질문을 사전에 받기 시작했으니 기자회견용 질문도 받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다. 최근 언론과의 가장 극적인 갈등 사례는 코로나19 검사 비용 부담 문제이다. 백악관에는 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오가며 취재를 한다. 브리핑에 참석할 수 있는 기자 수는 제한되지만 백악관 내부, 특히 업무 관련 부서에 해당하는 웨스트 윙을 돌아다니며 취재하는 것은 자유이다.
백악관 경내에 입장하는 언론사 관계자들은 매일 코로나19 항원 검사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 비용이 1인당 170달러로 싸지 않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1개월 동안은 이 비용을 대주었는데 지난 3월부터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언론사에게 ‘자체 해결’을 통보했다. 물론 언론사가 자발적으로 백악관에 들어가 취재하는 것이니 자체 부담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신문사는 그런대로 부담이 크지 않지만 TV방송사들은 한번 촬영에 10명 이상의 보조 인력 이 투입되기에 매일 2000달러를 넘나드는 검사 비용을 대느라 허리가 휜다고 한다. 그래서 언론사 들이 “백악관의 비싼 검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검사를 받고 증명만 제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 했지만 백악관은 “공신력 있는 검사 기관이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언론사들은 눈물을 머금고 백악관에 입장하는 기자들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코로나19를 이용한 교묘한 언론 통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미국은 더 성장하고 건강하게 더 커질 것
백악관 기자회견이 이렇게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부터이다. 이때부터 대통령 기자회견은 TV로 생중계됐다. 그 이전까지는 기자회견을 해도 국민은 하는 줄도 모르거나 알아도 나중에 알게 됐다.외모와 언변이 모두 뛰어났던 케네디 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TV 생중계를 밀고 나갔다. 1960년대 초반 미국의 TV 보급률이 87%에 달할 정도로 전 국민의 사랑받는 매체가 됐다는 점을 십분 활용한 것이다. 케네디 전대통령은 취임 후 닷새 만인 1961년 1월 25일 부터 시작된 대국민 기자회견을 월 2회 꼴로 정례화 했다. 기자회견 뿐 아니라 대중 앞에 서는 것 자체를 즐겼던 케네디 전 대통령은 크고 작은 행사에서 공식 연설을 한 횟수가 700회에 이른다. 전임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비슷 한 수치다. 하지만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이 8년이었고, 케네디 전 대통령은 암살로 3년 미만이라는 점을 비교하면 ‘연설광’으로서의 면모를 알 수 있다. 케네디 전대통령은 이전까지 기자회견이 주로 열렸던 백악관 인디안 티룸이 너무 협소하다며 200명 정도가 수용 가능한 국무부 대강당으로 옮겨 갈 정도였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극도로 싫어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매번 기자들과 다투기도 했다. 말년에 코로나19 대응 기자회견을 몇 차례 열기도 했지만 그 이외의 일반적인 국정 내용에 대한 기자회견은 4년을 모두 합쳐 봤자 10회 정도였다. 그래서 기자들은 백악관 잔디밭에 모여 있다가 헬기를 타고 떠나기 직전의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질문을 외쳐 대는 광경을 자주 연출했다. 이런 장면들이 워낙 유명해 ‘헬리콥터 기자회견’이라고 불렸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현재 중국과의 경쟁이 극심한 상황이라면서 자신이 보는 앞에서 중국이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은 세계를 선도하는 국가, 가장 부유한 국가,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되려는 전체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면서 “내가 보는 앞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은 성장하고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