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커도 가족도 ‘목숨걸어야’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 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 오래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 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다. 특히 돈을 버는 경제활동의 주체로 여성의 역할이 커졌다. 탈북 여성들이 누구보다도 경제력이 강해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보내고 있는데 최근에는 코로나 19로 북한으로의 송금도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 19로 북중 국경이 봉쇄되어 있어 중국을 통한 북한으로의 송금이 어려워졌다.
중간 브로커45~50% 수수료 요구
요즘 한국에서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기가 쉽지 않은 가운데, 중간 브로커들이 떼는 송금 수수료가 크게 올라 탈북민들이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 북한에 송금할 때 드는 중간 수수료 가 너무 많이 올라서 많은 탈북자들이 주저하고 있다고 RFA방송이 보도했다. 중간 브로커들에게 무려 45~50%의 수수료를 줘야 한다고 한다. 이전에는 송금 수수료가 30% 정도 했는데 50%까지 많은 탈북민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려 했지만, 수수료가 너무 비싸 서 보내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RFA방송은 탈북민 김혜영 씨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김씨는 만약 한국 돈 100만 원(미화로 약 900달러)을 보낸다고 할 때 요즘 환율로 바꾸면 중국 돈으로 약 5천600위안 정도 된다. 그런데 그 돈에서 절반을 중간 브로커가 가져가는 건데, 제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돈과 중간 브로커가 받는 돈이 똑같다는 것이다. 김씨는 “저도 돈 100만 원을 겨우 모아서 보내는 건데, 수수료가 아까워서 보낼 수가 없죠. 북한에 송금하는 탈북민들끼리 서로 정보 교환을 많이 하는데요. 그들이 저에게 말하길 “수수료가 너무 많이 올라서 보내지 못하고 있으니, 아직은 보내지 말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100만 원이라는 돈을 보내는 것도 큰 부담인데, 중국 돈으로 채 3천 위안이 안 되는 돈 으로 북한에서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김혜영 씨는 “북한에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다를 텐데요. 요즘은 중국 돈 3천 위안 으로 먹을 것만 산다고 해도 두세 달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면서 “북∙중 국경이 코로나로 일 년 넘게 봉쇄된 이후 지금 북한에서는 시장 활동도 못 하게 하고, 생필품 판매도 통제하는 가운데 대부분 식료품 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기름 한 병이 중국 돈으로 100위안이라고 한다. 기름 10병이면 1천 위안이다. 쌀도 10kg에 1천 위안 정도 한다고 보면, 온 가족이 한 달이나 먹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또 식량값만 오른 것이 아니라 조미료나 비누, 옷 등 기본적인 생필품 값까지 다 올라 중국 돈 3천 위안이라고 해봐야 많은 돈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김씨는 “일 년 전만 해도 물가가 지금보다 싸서 쌀이나 기름을 사면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도 버틸 수 있었지만, 지금은 물가도 오르고 중간 송금 수수료로 절반을 가져가니 도저히 답이 안 나옵니다.”면서 “그래도 북한에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돈을 보내주고 싶은데, 단속이 너무 심해 선뜻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이전에는 송금 수수료가 30% 정도였다는 것이 지금 50%까지 갑자기 오른 이유에 대하여 김 씨는 “이전에 중간 수수료로 30%를 뗐을 때도 너무 많다고 생각했지만, 그때는 물가가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기 때문에 보낼 만 했습니다.”면서 “또 지금처럼 북․중 국경이 봉쇄되지 않고, 단속도 심하지 않았을 때는 중국을 통하지 않고, 한국에 있는 탈북민들을 통해 송금이 가능했습니다.”라는 설명 이었다.
송금 받았다 적발되면 간첩으로 몰아
그런데 최근에는 한국에 있는 탈북민 중에 북한 내 가족과 연락하는 사람들이 브로커 역할을 대신 해주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탈북민에게 돈을 보내면, 그 탈북민이 북한의 가족에게 연락 해서 “돈을 받았으니 가족에게 전달하라”고 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저희 가족에게 돈도 전달해주고, 가족의 목소리나 편지로 돈을 잘 받았다는 확인까지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 당국의 단속이 너무 심해서 탈북민 가족을 통한 브로커들이 전혀 활동을 못 하고 있다. 지난동안 많이 적발되기도 했다. 그래서 중국인이나 조선족 브로커를 통할 수밖에 없고, 위험하기 때문에 저절로 중간 수수료가 오른 것이다. 단속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지만, 중간 브로커가 많이 사라지면서 경쟁이 없어지고, 일부 브로커가 송금 활동을 독점하면서 수수료가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바람에 많은 탈북민들이 송금에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또 한국에서 보낸 돈을 받았다고 북한 당국에 적발되면 ‘간첩 돈’을 받았다며 다 뺏기고, 감옥에 까지 갈 수 있기 때문에 아무 브로커와 연락했다가 가족의 안전까지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김 씨는 “이같은 북한의 실상을 너무나 잘 아는 저희로서는 지금처럼 위험하고, 어려운 시기에 선뜻 나설 수가 없는 겁니다.”면서 “그래서 제 주변에서도 지금은 송금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다들 힘들게 벌어 돈을 모으는데, 지금 상황 에서 한두 번은 보내줄 수 있지만, 계속 보내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라고 고충을 털어 놓았다. 지금 북한에서는 가장 돈이 많이 필요한 것은 당연히 식량, 먹는 것에 돈이 필요하다. 지금 농촌 에서는 한창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시내에서도 시장에 식량과 생필품이 있지만, 돈이 없어서 사 먹지 못하는 상황이다. 현금 수입이 급감했으니 지금 돈이 가장 필요한 곳은 역시 식량 구매이다. 많은 탈북민들은 하루 빨리 중간 수수료가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코로나가 완화되어 북∙중 국경이 다시 열리면 어느 정도 틈새는 생기지만 국경이 다시 열린다 해도 탈북민 송금에 대한 당국의 단속이 계속 이어지면, 브로커들의 활동은 계속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송금 수수료는 계속 비싸질 수밖에 없다. 브로커들도 자신이 혹시 적발됐을 때를 대비해 뇌물을 주고 풀려나려면 수수료를 크게 올려야 하는 의도도 있다. 이처럼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 대한 통제를 더 강화할수록 브로커들도 살기 위해 수수료를 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북한에 가족을 둔 탈북민들은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