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을 기리는 사람들] 중가주애국선열추모회 김명수 회장 30년 동안 일편단심 애국선열 추모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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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독립자금 바치며…
‘외롭게 사라진 선열 넋을 기리다’

100년전 척박한 아메리카 땅에서 일생을 홀아비로 살면서 오직 조국 광복을 위해 중가주 과수 농장에서 땀흘리며 받은 임금을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내고 외롭게 죽어가 잠들고 있는 묘역에 광복절을 맞아 뜻을 모은 동포들이 옷깃을 여미며 선열들의 희생에 명복을 빌었다. 이날 미주 애국선조 묘역인  중가주 리들리 공원 묘소(Reedley Cemetery District, 2185 S. Reed Ave. Reedley, CA 93654)에서 14일 열린 ‘제 76주년 광복절 경축식 및 제30주년 애국선열 추모식’은 코로나 19로 LA와 SF에서 극히 제한된 인원이 참배하여 식을 진행했다. 이날 경축식과 추모식을 주관한 중가주애국선열추모회 김명수 회장은 “우리는 오늘 제한된 인원이지만 1당 100의 정신 으로 선열들을 추모한다”고 의미를 강조했다. 중가주 리들리 애국선조 묘역은 미대륙에서 단일 묘지 로는 가장 많은 146기의 무명 애국 선조들이 잠들어 있는 성역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중가주 리들리-다뉴바 지역은 하와이 이민을 했던 선조들이 대륙으로 이주해 살던 곳이다. 이곳은 대한여자애국단이 창설된 지역이고, 대한인국민회 지방회가 활동한 곳으로 무엇보다 미대륙에서 단일 지역으로는 가장 많은 동포들이 거주하면서 독립운동 자금을 많이 냈던 유서 깊은 곳이었다. 코로나19 펜더믹 상황으로 인해 현지의 최소 인원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의 기념행사는 146 기의 애국선조들이 곳곳에 잠들어 있는 리들리 공원묘지에 특별히 마련된 추모식장에서 오전 11시에 거행된 광복절 76주년과 애국선조 참배 30주년 추모식은 김명수 중가주 애국선열 추모 회장의 개회선언으로 시작되었다.

선조들의 유산 기리는 일에 모두 함께

김명수web

▲ 김명수 회장

이날 국민의례 순서에서 태극기와 성조기에 대한 경례 그리고 국악인 심현정 원장(인강판소리 예술원장)의 애국가 선창으로 참석자들이 함께 했으며, 애국선열과 호국영령을 위한 묵념으로 이어 졌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참석한 임봉대 목사(에벤에셀 교회)의 조국의 안녕과 애국 선열를 위한 기도로 진행됐다. 대한민국 광복회 샌프란시스코 지회 윤행자 회장은 경축사에서 “일제강점기에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애국선열의 혼이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에서 기념행사를 갖게 되어 감회가 크다” 면서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기 위해 독립금을 모아 보낸 선조들의 독립 정신은 후대에 길이 전승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변홍진 언론인은 추모사를 통해 “중가주 리들리와 다뉴바 지역은 미주 한인이민사에서 하와이 다음으로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영면하고 있는 성역”이라면서 1920년 3.1운동 1주년 기념 퍼레이드를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벌인 이 지역 동포들은  상하이 임시정부와 독립군에 가장 많은 독립금을 모아 보낸 사실 등 중가주 지역의 미주한인 이민사적 의의를 설명했다. 이날 100도가 넘나드는 무더운 날씨 속에 열린 추모 행사에서 LA인강 판소리예술원 심현정 원장 은 외롭게 살다간 선열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한 ‘아리랑’ 노래를 청아하게 불러 넓은 공원 묘지 곳곳에 잠든 146기의 영령들에게 고향의 가락으로 위로했다.

현장한편 한국의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의 김을동 이사장은  지난 30년간 헌신적으로 애국선조 묘역을 지키고 현양한 김명수 회장과 이문석 부회장에게  각각 감사패를 전했다. 또한 이날 샌프란시스코 광복회 윤행자 회장도 김명수 회장 과 이문석 부회장에게 감사패를 수여하며 격려했다. 이어 만세삼창으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이날 코로나 19와 델타 변이로  김명수 중가주 애국선열 추모위원 회장과 가족 3명, 이문석 부회장, 그리고 LA에서 2명 샌프란시스코 에서 5명 등 극히 제한된 인원만 참석했다. 한편 LA원로 인사 정용봉 박사(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장)는 올해가 애국선열추모식 30주년 이라는 의미에 “미주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지역인 중가주 선조 묘역을 가꾸는 김명수 회장을 포함해 가족과 해병 전우들의 오랜 봉사에 감사를 드린다”면서 “우리 커뮤니티도 선조들의 유산을 기리는 일에 동참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김명수 회장이 이끄는 중가주 애국선열추모위원회는 지난날 아무도 찾지 않던 선조들의 묘소에 지난 1992년부터 오늘 에 이르기까지 30년간 매년 메모리얼 데이와 광복절에 태극기와 성조기, 꽃을 꽂아 놓으며 광복절 경축식을 겸해 애국선열 추모행사를 가져왔다. 이 지역은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중가주 애국선조들을 포함해 미전역의 1만여명도 안되는 동포들이 상하이 임시 정부에 보낸 독립자금이 2천만 달러(오늘의 화폐 가치)를 넘었다. 당시 상하이 임시정부의 재정의 60%가 미주동포들이 보낸 독립 성금이었다. 미주동포들의 성금이 없었다면 상하이 임시 정부는 결코 존재할 수 없었다.

이날 행사는 중가주 애국선열 추모위원회(회장 김명수),백야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미주본부 (회장 권욱종), 중가주해병대 전우회(회장 김명수), 재미 사우스베이 해병대전우회(회장 이동호)가 공동주최했으며 국가보훈처와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이 특별후원 했다. 그리고 후원단체로는 대한민국 광복회 샌프란시스코 회장(회장 윤행자),재미해병대전우회 서부연합회(회장 김훈), 재미 오렌지 카운티해병대 전우회(회장 정재동),  백야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북가주지회(회장 권욱순), 백야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 네바다 지회(회장 김수철), 인강판소리예술원(원장 심현정)등이다.

30년 미주 애국선열 성역을 가꾼…

“이민선조들의 묘지기 김명수 회장”

중가주애국선열추모회 김명수 회장(82)은 “귀신잡는 한국해병” 출신이다. 경남 마산이 고향이다. 지난 1987년 중가주 농업도시 프레스노 인근으로 이민 온 김 회장은 집 현관에 대형 태극기를 걸어 놓고 집을 나설 때마다 “충성!”하며 거수경례를 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종종 애국가를 틀면서 다니곤 한다. 1990년 초에 자신이 운영하는 잡화상 ‘킴스 패션’ 한쪽편에 넓은 사무실을 만들어 ‘중가주해병 전우회’ 간판을 걸었다. 당시 LA에 해병대전우회도 제대로 독립 사무실이 없던 시절에 시골(?)에 버젓한 해병대 서무실을 차린 것이다. 이런 김 회장은 1992년 어느날 우연히 자신의 인근 동네 ‘리들리’라는 묘지에 한인 이민 선조들이 많이 안장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민 역사에 부쩍 관심이 갔다. 놀라운 사실은 묘역에 한인 선조들이 여기저기 단체로 안장됐으며 약 90% 가 무연고자임을 알게 되었고, 이들 중 많은 분들이 홀아비로 살면서 독립자금을 냈던 선조들임을 알게 됐다.  더 놀라운 일은 이렇게 애국애족의 희생을 하다가 이국 땅에서 외롭게 죽어 갔지만 한국 정부는 물론 어느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당시 김 회장은 먼저 가족들에게 그리고 자신이 이끌던 중가주해병전우회 회원들에게 알려 선조 추모활동에 나섰다. 우선 광복절에 묘역에 선조들 비석 앞에 태극기와 성조기 그리고 장미꽃으로 단장하고 묘지에서 광복절 기념식과 추모식을 함께 개최하면서 이민선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았다.

특히 김 회장은 리들리 묘지 곳곳에 16개의 대리석 벤치를 설치해 이곳이 한인 이민 선조들의 묘역임을 알렸다. 또한 이민 후손들을 위해 리들리 시 박물관에 작지만 의미있는 한국 민속실도 만들었다.한국 이민선조의 훌륭한 유산을 알리기 위한 조그만 정성이었다. 이 같은 김 회장의 애국선조 추모 활동은 LA와 샌프란시스코 한인사회에도 알려지면서 많은 동포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중가주 이민 역사를 전파시키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2014년 1월9일에 한국의 국회의장이 김 회장의 “애국선조 묘지기” 공적을 기려 공로상을 당시 국회의원이며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김을동 이사장을 통해 증정했으며, 2015년 10월 27일 에는 SF총영사관에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당시 한동만 SF총영사는 김명수 해병전우회장에 대해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름 없는 독립 운동가들의 묘소를 오랜 동안 일일이 챙겨왔다”고 전했다. 김명수 회장은 “이민초기 미주 최초로 한인다운타운이 있었던 지역이 프레즈노였다”며 “최초의 미주 백만장자가 탄생했으며 독립금의 60%가 이 지역에서 조달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기에 묻힌 분들을 ‘숨은 애국지사, 알려지지 않은 애국지사’라고 칭한다”며 “이들 독립운동가들의 묘소를 돌보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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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맞아 도산 정신 부활시킨다

도산동상76돌 광복절을 맞아 지난 11일 리버사이드의 도산 안창호 동상 제막 2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미주도산 안창호기념사업회(총회장 홍명기) 주관으로 한인사회 및 리버사이드 시 관계자 등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렸다. 이날 동상이 자리잡은 리버사이드 시청 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홍명기 총회장은“도산 정신을 지키고 후손들이 이어받을 수 있도록 다같이 노력하자”고 말했다. 독립운동가이며 민족교육자인 도산 안창호(1878-1938) 선생의 동상 제막식은 20년전 2001년 8월11일 로스앤젤레스 동부 리버사이드 시청 앞 광장에서 애국가가 울려퍼진 가운데 2시간 가량 성대히 거행됐다. 리버사이드 시와 시의회는 이날 `도산 안창호의 날’로 선포했다. 당시 제막식에서 홍명기 리버사이드 도산기념사업회 회장은 “오늘은 미주한인 이민 100년 역사상 가장 감격적인 날”이라며 “한인 2세 들에게 도산의 독립정신과 민족교육 이념을 물려 줄 수 있게 돼 더욱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또한 홍 회장은  “도산 동상은 미 본토에 세워진 한국인최초의 동상” 이라 며 “미주 동포의 위상과 한국인의 긍정적 이미지를 제고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로널드 러브릿지 리버사이드 시장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도산의 동상이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 동상과 나란히 자리하게 됨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치하하고 이날을 ‘도산 안창호의 날’로 선포했다.

한편 도산의 맏딸로 LA에서 태어난 안수산(86) 여사는 참석자 300여명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행한 폐회 사에서 한국말로 “아버지, 어머니, 큰오빠, 작은오빠 저 아래를 내려보세요. 동상이 있습니다” 라고 외치며 감격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강영훈 한국도산기념사업회장(전 국무총리)은 “도산 동상이 인권운동가 킹 목사동상이 있는 곳에 함께 세워진 것은 한국사람으로서 큰 기쁨이요 자랑” 이라고 말했다. 동상 제막식을 주최한 기념사업회는 50년후인  2051년 8월11일 개봉될 예정인 도산 관련 도서 와 화보집 등을 담은 타임캡슐의 열쇠를 도산의 외증손자인 마이클 기티스(13)군과 줄리아 기티스 (11)양 등 6명에게 증정했다.

당시 행사에는 한국 도산기념사업회 회장인 강영훈 전 국무총리, 이재달 국가보훈처장, 양성철 주미대사, 강인섭 한나라당 의원, 리버사이드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권문용 강남구청장, 하기환 LA한인회장, 백영중 흥사단 미주위원부 위원장 등 각계 인사 300여명이 참석했다. 서울 강남구와 자매결연을 하고 있는 리버사이드시는 동산 건립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도산 동상은 높이 약 2.2m의 청동 전신상으로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목사 동상 건너편 부지 11평위에 세워졌으며 도산의 생애와 업적을 그림으로 새긴 부조 6판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한국인 동상이 미 본토, 그것도 시 정부에 의해 공공장소에 건립되기는 당시로 처음이다. 동상건립에는 약 4천명의 성금과 한국정부 지원금 8만달러 등 총 55만달러가 소요됐다. 1년여 작업 끝에 동상을 완성한 한인 조각가 김문경(50.샌디에이고 미술주조연구소장)씨는 “자료 와 사진 등을 종합해 전체적 이미지를 근엄하고 평범하면서도 힘있게 표현했다”며 “도산의 독립 정신과 교육이념을 강조하기 위해 방향은 한국을 바라보고 있도록 하고 뒷짐으로 책을 쥐게 했다”고 동상 모습을 설명했다. 도산은 1902년 샌프란시스코로 도미한 후 1903년 리버사이드로 이주, 8년간 오렌지 농장의 한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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