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사태, 무엇이 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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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패배에 이어…20년 아프칸 전쟁까지

미국의 굴욕

멈춰진 시계

“당신들에겐 시계가 있지만, 우리들에겐 시간이 있다.(“You have the watches; we have the time.”) 이 말은 탈레반 간부 무자히드 라흐만이 지난 2011년 뉴스위크(Newsweek)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 이다. 그로부터 10년 미국의 시계는 정지되고, 탈레반의 시간이 왔다.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에게 항복을 하고 수도 카불을 넘겨주었다.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철군을 발표한지 3개월만에 벌어진 일이다. 미국과 아프칸 탈레반과의 20년 전쟁에서 미국이 완전 패한 것이다. 베트남 전쟁 막바지에 보여 준 것처럼 아프간 미국 대사관 위로 마지막 철군 장병을 나르는 미군 헬기의 사진 장면은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베트남을 떠나는 장면을 연상케 한다. 그동안 미군을 도와주었던 아프간 주민들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 미국 등 관련국들 모두가 제 앞길 가느라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불쌍한 건 아프간 국민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15일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에 항복했다. 이로써 2001년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20년 만에 베트남 전쟁에 이어 미국의 ‘실패한 전쟁’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이날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정권 이양 논의를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사퇴한 뒤 타지키스탄으로 떠났다”며 망명을 보도하면서 “탈레반은 과도 정부 수반에 알리 아흐 마드 잘랄리 전 아프간 내무장관을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의 전쟁은 2001년 알카에다가 일으킨 9.11 테러 사건 직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시작되었다. 21세기 최초의 전쟁이며 미국 역사상 최장기 전쟁이었다. 테러와의 전쟁이란 원대한 계획의 첫 단계로 펼쳐진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의 일부이자 마지막이다.

▲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대통령궁에 지도부가 모였다.

▲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하고 대통령궁에 지도부가 모였다.

원칙도 명분없었던 전쟁참여의 결과 아프간 사태는 현대사에서 최초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1919), 소련-아프가니스탄(1979-1989) 전쟁에 이어 세 번째로 강대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이 실패로 끝난 전쟁 이기도 하고, 미국이 이 무의미한 전쟁에 최소 2조 달러를 지출함으로써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가 약화된 원인 중 하나 이기도 하다. 이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개전 당시의 장병들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기도 한 전쟁이다. 전쟁 초기 에는 출생하지도 않았던 세대가 지금 미군 입대 가능 연령이 되기까지 하면서 “세대의 전쟁”(war of a generation) 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였다. 탈레반측 역시 전쟁 초기에 살아남은 자들은 대부분 간부급으로 올라가거나 일선에서 은퇴했고 그 자리를 다음 세대가 채웠으니 “세대의 전쟁”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아프간 정부는 미군 철수 3개원만에 탈레반에 항복한 것이다. 지난 5월 3일 미국이 아프간 철군을 시작한 지 3개월만이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아프간 내무부는 이날 현 행정부를 ‘과도 정부’로 전환하고 이후 평화롭게 탈레반에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했다. 아프간 현 행정부의 일부와 탈레반 고위 인사들이 함께 내각 을 구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CNN은 보도했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에 진입한지 수 시간만에 협상이 시작된 것이다. 압둘 사타르 미작왈 아프간 내무장관 대행은 이날 “현 행정부를 ‘과도 정부’로 전환하고 이후 평화 롭게 탈레반에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말했다고 AP통신 등 외신 매체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탈레반이 아프간 주요 도시를 모두 점령한 뒤 수도인 카불에 진입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였다. CNN방송은 탈레반의 정권 인수 협상팀이 카불의 대통령궁에 들어가 과도 내각 구성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탈레반은 아프간의 모든 주요 도시를 함락시킨 데 이어 이날 카불 외곽에 집결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아프간을 모두 장악하는 데 성공한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여론을 의식, “카불을 무력으로 점령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직원들에게 카불 관문에서 대기하고 입성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어서 탈레반은 “공항과 병원은 계속 운영될 것이며, 긴급 물품 공급 역시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며 “수도 카불 내 외국인은 원할 경우 떠나거나 새 탈레반 정부에 등록해야 할 것” 이라고 했다. 또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군 병사들에겐 “귀향이 허용될 것”이라며 군대의 해산을 지시했다. 탈레반은 카불 국제공항을 비롯한 공항과 병원은 계속 운영될 것이고 긴급 물품 공급 역시 중단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아프간 정부군 병사들에게는 귀향이 허용될 것이라며 군대의 해산을 지시했다.

미군 철군 3개월만 아프칸 정부 항복

▲ 미국 헬기가 아프간 미대사관 건물 위를 비행하고 있다.

▲ 미국 헬기가 아프간 미대사관 건물 위를 비행하고 있다.

2011년 5월, 전쟁의 원인이었던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 숨어 있다가 CIA에게 발각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당시 미국은 전쟁의 명분이던 빈 라덴을 처단하는 데 성공했으므로 아프간 에서 발을 뺄 기회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아프간에서 철군한다면 아프간은 중앙아시아의 소말리아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다시 탈레반이 권력을 잡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여 계속 주둔하다가 10년만에 피만 보고 물러나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탈레반에 대한 무지였다. “우리에게 시간이 있다”라는 탈레반 간부의 말은 지금에 와서 선견지명 바로 그것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2019년 12월 9일에 아프간 전쟁은 조작된 전쟁(!)이었고 온갖 거짓 정보로 포장 해왔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처음에 아프간에 미국에 우호적인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아프가니스탄은 단 한번도 서유럽식 민주주의 경험이 없었고 왕정-권위 주의-공산주의-탈레반 독재 정권으로 이어지는건 물론 카불에서 벗어나면 부족중심의 사회라 단기간에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애초에 민주주의 정권은 해당국 국민 스스로가 쟁취하는 것이지 외세 가 대신 세워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오랜 기간동안 내전을 치렀고, 1996년부터는 탈레반이 집권하여 이슬람 근본주의 정책을 시행하였기 때문에 제대로 된 공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혈연, 지연을 기반으로 한 연고주의 문화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정교분리나 국민의식이 정착되지 않은 지역에서는 명목상으로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예멘이나 필리핀처럼 지주들이 실권을 그대로 장악하거나 혹은 무함마드 무르시 시절의 이집트처럼 포퓰리즘 성향의 종교 근본주의 집단이 정권을 장악하는게 수순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철수하면서 미군에 협조한 몽족 상당수를 토사구팽한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군은 자신들에게 가장 적극적으로 협력한 하자라족들을 대부분 방치한 상태로 철수하였다. 하자라족들은 이미 탈레반 정권 시절 심각한 박해로 인구 상당수가 이란이나 파키스탄으로 망명한 전력이 있으며,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기간 내내 탈레반의 주요 테러 타깃이기도 했다. 미국이 이들을 버려두고 갔다는 점은 두고두고 조롱과 비난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이미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으로 망명을 거부하고 베트남에 잔류한 몽족들은 아예 사실상 비국민 대우를 받으 며 밀림 속에서 화전이나 일구며 다른 베트남인들의 괴롭힘을 피해 도망다니는 상황이 알려 졌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남은 하자라인들이 어떻게 될지는 뻔하다.

20년 무모한 전쟁 ‘젊은이들만 희생’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미국은 2001년 9ㆍ11 테러 직후 ‘테러와의 전쟁’을 기치를 내걸고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과 이를 비호하는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다는 명분으로 아프간전쟁을 시작했지만 이는 아직도 공식 종전이 되지 않아 미 역사상 최장기전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러나 아프간으로서는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1979년 소련의 침공 이후 40년간이나 전쟁 상태에 빠져 있다. 그 해 소련군이 아프간을 침략해 공산화시키자 미국은 소련에 맞서 싸운 이슬람반군 무자헤딘을 지원했고 결국 1989년 소련은 철수했다. 이후 아프간 내 정치적 혼란이 계속됐고 1994년 남부에서 순수 이슬람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는 탈레반이 등장해 권력 공백을 빠르게 메웠다. 탈레반은 1996년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해 소련의 꼭두각시 정권으로 평가받던 나지불라 정권 을 무너뜨렸다. 이어 1998년에는 아프간 영토의 90% 이상을 통제해 집권에 성공했다. 이후 이슬람 율법에 따라 TV 시청과 음악 청취 등을 금지하고, 여성의 권리를 억압하는 등 강압적 통치를 자행 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빈 라덴은 ‘슈퍼 테러’를 준비했던 것이다. 테러 직후 빈 라덴을 넘기라는 요구에 탈레반이 불응하자 ‘공세적 현실주의’를 대외정책 기조로 삼던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10월 7일 아프간을 침공했고, 같은 해 12월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다. 그럼에도 탈레반은 2004년쯤부터 다시 세력를 확장해 현재는 국토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상태로 됐다.

그후 트럼프 행정부와 탈레반 사이에 끼어있는 아프간 정부는 평화협정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협상 과정에서 자신들이 소외된 점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18년 넘게 이어진 전쟁이 모두에게 극도의 피로감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브라운대의 ‘전쟁비용 프로 젝트’ 연구에 따르면 2001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민간인, 미군, 동맹군, 아프간 군경, 무장 조직, 인도주의 활동가 등을 포함해 총 15만7,000여명이 아프간전에서 목숨을 잃었고 이 가운데 4만 3,000여명은 민간인이었다. 전비도 천문학적이다. 2001년 전쟁 시작 이래 미국이 지출한 공식적인 비용만 총 8,220억달러로 추산된다. 하지만 미군의 아프간전 작전기지인 파키스탄에서의 지출 등 각종 비용을 모두 고려 하면 총 비용은 2조달러에 육박한다는 게 브라운대의 추정이다. 이러한 전쟁 피로감이 당사자 모두 에게 평화협정 체결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다. 지난해 2월 29일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조직 탈레반은 카타르 도하에서 ‘아프간의 평화 도래를 위한 협정’(평화협정)에 서명했다. 911 테러 이후 약 18년7개월만이다. 그러나 체결 불과 두 달 만에 결렬 위기가 찾아왔다. 미국과 탈레반, 아프간 정부 사이의 ‘신뢰의 위기’가 그 핵심 이유 다.

미국 전비만 2조 달러로 국력 소모에 탕진

평화협정에서 탈레반은 알카에다와 관계를 절연하는 등 아프간 영토가 미국 안보를 위협하는 활동 무대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고, 미국은 그 대가로 아프간에 파병된 미군과 북대서양조약 기구(NATOㆍ나토)의 국제동맹군을 14개월 내로 모두 철수시키겠다고 했다. 그러나 당사자 간 신뢰 확인 절차이자 본격적인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마련됐던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간 포로 교환에서부터 진전이 없다. 양측의 의견 대립은 물론이고 아프간 정부 내 권력 갈등 탓에 약속한 포로 교환 기일(3월 10일)은 이미 지났다. 아프간 내 폭력이 다시 잦아지면서 평화 협정에도 암운을 몰고왔다. 물론 이전에도 평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2001년부터 아프간 과도정부 수반을 지냈고 2004년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던 하미드 카르자이는 2009년 재선에 성공한 뒤 평화협상의 운을 뗐다. 카르자이 정부는 2010년 9월 평화협상 담당기구인 아프간 고위평화위원회(HPC)를 설립하고, 2013년에는 미국의 제안에 따라 도하에 ‘탈레반 정치사무소’를 설치하는 등 유의미한 진전을 보였다.

그러나 이후 카타르가 미국-탈레반 간 직접 대화를 중재하면서 아프간 정부가 들러리로 전락하자 카르자이 정부는 양측의 직접 대화를 반대하고 나섰다. 이어 2015년 7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내전 14년만에 첫 공식회담을 열지만, 탈레반의 테러 등 악재로 이마저도 곧바로 동력을 상실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2018년 중반부터 미국과 탈레반의 직접 대화가 수 차례 이뤄지면서 다시 기대감이 커졌다. 탈레반의 자살테러 등에 대화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지난해 2월 양측은 대화 재개를 선언하고 일종의 숙려기간인 7일간의 ‘폭력행위의 대대적 축소’에 합의했다. 합의가 지켜질 경우 미국-아프간 정부-탈레반이 평화협정에 서명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를 ‘괴뢰정권’이라고 비판하며 배제하려 했고, 아프간 정부는 탈레반의 근본주의를 비판하며 믿을 수 없다고 맞섰다. ‘신뢰의 위기’가 디시 한번 발목을 잡은 것이다. 결국 일주일 뒤인 지난해2월 29일 미국과 탈레반 측 대표만 서명해 반쪽짜리 평화협정이 되고 말았다. 수하일 샤힌 탈레반 대변인은 최근 영국B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졌고,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다’고 했다. 과연 누가 이긴 전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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