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영화보다 더 실감나는 ‘사우디판 김형욱’ 사건
24시간 내 귀국하지 않으면
‘캬슈끄지처럼 회를 칠 것’
2017년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의 궁중쿠데타 성공으로, 졸지에 쫓기는 몸이 된 빈나에프 왕세자의 최측근 샤드 알자브리 전 중앙정보부장, 쿠데타 며칠 전 극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 탈출에 성공했지만 빈살만 왕세자로 부터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오라는 회유와 압력, 그리고 살해협박에 시달리고 있는 알자브리의 운명은 마치 박정희정권 중앙정보부장으로 지내다 미국으로 도피한 뒤 실종된 김형욱의 삶과 기가 막히게 닮은꼴이다. 빈살만 왕세자와 알자브리의 왓츠앱을 통한 귀국협상, 사우디아라비아탈출에 실패한 알자브리 자녀의 억류, 송환직전 터키에서 캐나다로의 탈출성공, 자말 캬슈끄지를 터키대사관에서 ‘회를 치듯’살해한 타이거암살단의 암살시도, 빈살만 왕세자에 대한 암살시도혐의 소송 등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리얼드라마의 전말을 알아본다. <안치용 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빈살만 왕세자-당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게 직접 말해보라. 알자브리–신의 가회가 있기를, 제 아이들을 억류한 것은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저의 문제를 잘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제가 이미 당신에게 보낸 것을 검토해 주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의 안전은 제게 매우 중요합니다. 빈살만왕세자–박사, 이 이슈는 매우 민감한 문제이므로 나는 당신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와서 해결하기를 바란다. 24시간내에 결정하라.’
자녀를 살려달라는 애원, 24시간 내로 돌아오라는 최후통첩,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이 무시무시한 문자메시지는 왓츠앱을 통해 교환된 사우디아리비아 최고위 층의 생 얼굴, 바로 지난 2017년 9월 7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와 사드 알자브리 전 정보부장간의 문자메시지다.
미국의 친구 알자브리 눈에 가시로 여겨
한 국가의 최고 권력자의 문자메시지가 공개된 것도 놀라운 일이지만 ‘24시간 내에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오지 않으면 억류된 자녀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겠다’라는 메시지 내용은 마치 첩보 영화나 조폭영화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한다.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는 올해 35세로, 현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의 아들이며, 지난 2017년 왕자의 난을 통해 자신의 사촌형인 모하메드 빈나에프 왕세자를 축출하고 제1왕세자에 오른 인물이다. 반면 사드 알 자브리는 올해 63세로, 왕자의 난으로 거세된 빈나에프 왕세자의 최 측근으로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정보부장을 하면서 미국 정보기관과 긴밀히 협조, 테러분쇄에 나섰던 인물이다. 말하자면 차기 왕위승계 서열 1위인 현 국왕의 조카이자, 자신의 사촌형인 빈나에프를 축출한 빈살만 입장에서는 미국 측과 굳건한 동맹관계인 알자브리가 눈에 가시였던 셈이며, 빈나에프의 뒤집기 등 후환을 막기 위해서는 알자브리의 제거가 급선무였던 셈이다.
알자브리 전 정보부장이 해외로 도주한 뒤 현 실권자로 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 1974년 박정희 정권 당시 미국으로 도주, 끝없는 회유와 살해 위협을 받았고, 결국 1979년 10월 실종돼 4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행방을 알 수 없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과 닮은꼴이다. 한마디로 알자브리는 사우디판 김형욱인 셈이다. 두 사람 모두 극적으로 자신의 나라에서 탈출했지만 끝없이 쫓기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너무 많이 알고 있으면 위험하다’는 ‘정보쟁이의 숙명’에 맞닥뜨린 셈이다. 특히 알자브리는 미국 정보당국과 긴밀히 협조, 테러를 분쇄하고 911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의 검거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과연 미국이 그를 보호할 것인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또 지난 2018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가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를 터키 내 공관으로 유인, 인체해부전문가를 동원해 토막 살해한 뒤 머리만 들고 자가용제트기를 타고 유유히 사라져 전 세계를 분노케 했던 사건과도 무관치 않다는 점이 엄청난 흥행 요소(?)가 되고 있다. 이스라엘 모사드만 세계 최강의 정보기관으로 알았던 우리들에게 사우디아라비아 정보부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 끝나자마자, 이 사건을 결행한 이른바 ‘타이거암살단’이 알자브리 암살에 나섰던 것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첩보영화(?)의 발단은 권력다툼이다. 세계최대 석유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최고 권력자 자리를 두고 벌이는 암투인 것이다. 지난 2015년 4월 29일 빈나에프는 제1왕세자가, 빈살만은 제2왕세자가 됐고, 바로 왕위 계승순위 1위인 빈나에프 왕세자의 측근 중 최측근이 정보부장이자 특별보좌관인 알자브리였다. 하지만 빈나에프가 제1왕세자가 된지 약 4개월여 만인 2015년 9월 공직에서 축출됐다.
알자브리가 미국을 방문, 당시 CIA국장을 만났지만, 이 같은 사실을 당시 국방장관인 빈살만 왕세자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됐고 빈살만 측의 대공세로 알자브리는 결국 밀려난 것이다. 이때 알자브리는 장차 자신에게 닥쳐 올 ‘정보 쟁이의 숙명’을 눈치 챘고, 2015년 말 말티스라는 조그만 국가의 시민권을 신청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015년 9월 공직축출은 결과적으로 알자브리의 목숨을 구하는 ‘신의 한수’가 됐다. 빈살만이 2015년 제2왕세자가 되면서, 약관 29세 나이에 국방장관 자리에 오른 뒤, 국방장관직을 발판으로 힘을 키웠고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알자브리는 2017년 5월 신병치료를 이유로 사우디아라비아를 탈출, 터키로 도피했다. 알자브리가 공직을 떠나 있었기에 비교적 쉽게 사우디아라비아를 탈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불귀의 객이 되기 바로 직전 목숨을 건졌다는 점에서, 공직축출은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그리고 알자브리가 터키로 탈출한 뒤 채 한 달도 안 된 2017년 6월 왕자의 난, 이른바 궁중쿠데타가 발생했던 것이다.
신병확보하려 귀국 회유와 살해협박
빈살만왕세자가 사촌형인 빈나에프 제1왕세자를 가택 연금한 뒤 축출한 날은 2017년 6월 19일, 하지만 바로 하루 전 알자브리의 파워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한다. 빈살만왕세자는 거사에 앞서 빈나에프의 책사인 알자브리의 신병부터 확보하려 한 것이다. 빈살만은 6월 18일 왓츠앱을 통해 알자브리에게 즉각 귀국하라고 회유했다, 빈살만은 ‘나와 빈나에프 왕세자, 그리고 당신 등 3명이 화해하는 자리를 가지고 싶다. 당장 귀국하라’고 달콤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알자브리는 ‘건강 상의 이유로 6월 24일까지는 귀국할 수 없다고 답했다. 빈살만이 목숨을 건 거사를 앞두고 알자브리부터 잡으려 했던 것은 알자브리가 미국과 협조, 자신을 몰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옛 주군의 눈물어린 부하사랑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가택 연금 된 빈나에프왕세자가 알자브리에게 ‘절대로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오지 말라. 돌아오면 죽는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빈살만은 알자브리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하루 뒤인 6월 궁중쿠데타를 감행, 정권을 쟁취했다. 6월 거사로 정권을 획득한 빈살만에게 가장 큰 위협요인은 국외로 탈출한 알자브리였다. 이때부터 ‘회유–강요–협박’으로 이어지는 알자브리 확보 작전이 더욱 집요하게 진행됐다. 살려서 잡아오든지, 아니면 죽이라는 것이었다. 알자브리의 자녀는 6남 2녀이며, 알자브리 부부와 자녀 6명은 이미 해외로 도피했지만, 당시 18세인 아들 오마르와 17세인 딸 사라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남아있었다.
알자브리는 두 자녀에게 즉각 출국하라고 명령했지만 빈살만은 이미 출국금지령을 내렸고,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국제공항에서 미국 보스턴으로 출국하려던 두 자녀는 공항에서 출국금지 사실을 알고 발길을 돌렸다. 알자브리는 자녀 2명을 인질로 잡히자 자식들 걱정에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 2017년 9월 7일부터 빈살만과 알자브리간에 집중적으로 왓츠앱 교섭이 진행됐다. 9월 7일 알자브리는 빈살만에게 ‘두 자녀가 미국에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안전한 출국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고, 빈살만은 ‘당신이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오는 것이 먼저’라며 이 같은 요청을 거부했다. 이틀 뒤인 9월 9일 무려 5시간에 걸쳐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빈살만은 당시 터키에 은신 중이던 알자브리에게 ‘당신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돌아오면 미래를 약속하겠다. 당장 내일 돌아오라’고 요구했다. ‘신변 보호–미래 보장’이라는 달콤한 회유책을 제시했다. 또 그 다음날인 9월 10일 빈살만은 ‘박사, 당신의 귀국을 위해 자가용 제트기를 준비했다. 어디로 보내면 되겠느냐’고 물었다. 외견상 양 측이 어느 정도 귀국에 접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빈살만의 최측근들도 알자브리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자가용제트기를 언제 어디로 보내야 하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알자브리의 대답은 ‘노[NO]’였다. 알자브리는 빈살만이 타깃 확보하기 위해 자가용제트기를 이용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제트기에 타는 순간 구금이 되고 고문을 당한다며 귀국 요구를 거부한 것이다. 회유에 실패했다고 판단한 빈살만은 9월 10일 오후 왓츠앱을 통해 최후통첩을 했다. 협조 요구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빈살만은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당신을 침묵시킬 것이다. 법적 조치 및 다른 조치를 통해 당신에게 데미지를 줄 것이다. 지금 당장 2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라.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와서 가택 연금을 당하든지, 아니면 전 세계 어디에 숨더라도 암살당하게 되는 타깃이 되든지, 결정하라, 한 시간 내에 결정하라, 우리는 당신이 어디 있더라도 찾아낸다’고 통보했다. 24시간에 결정하라던 회유가 한 시간 내에 결정하라는 위협으로 바뀌고, 전 세계 어디라도 암살단을 보내 처단할 뜻 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빈살만은 이튿날인 9월 11일, 터키정부에 알자브리의 송환을 요청하는 서류를 전달하고, 양국 간의 우호적 관계를 고려, 알자브리를 사우디아라비아로 보내라고 요구했다.
터키 탈출 이어 캐나다로 극비리에 탈출
이 같은 정보는 평생 ‘정보 쟁이’로 살아온 알자브리의 안테나에 걸렸고, 바로 다음날인 9월 12일 알자브리는 목숨을 건 터키 탈출을 감행, 사우디아라비아와 범죄인 송환협정이 체결되지 않은 나라인 캐나다로의 도피에 성공했다. 2017년 5월 사우디아라비아 탈출에 이어 9월 캐나다 토론토로의 탈출에 성공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자녀는 단순히 출국만 금지됐을 뿐 자유로운 생활을 누렸지만 지난 2020년 3월 납치됐다. 빈살만은 2020년 3월 9일 알자브리의 친척을 불러 오마르와 사라를 만나서 ‘아버지를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 오도록 설득하라’는 메시지를 전했지만, 이 또한 실패했다. 그러자 3월 16일 새벽 두 자녀는 알자브리의 저택을 급습한 민간인 복장에 복면을 한 50여명의 무장한 남성에 의해 납치됐고 중요한 서류와 주택 등 부동산의 열쇠 등도 탈취, 8개의 백에 담아 유유히 사라졌다. 이때부터 알자브리와 두 자녀와의 연락도 완전히 두절됐다. 그 뒤 알자브리의 두 자녀는 지난 2020년 9월 국제 돈세탁 및 국외도피 시도혐의로 정식 기소돼 1심에서 오마르는 징역 9년, 사라는 징역 6년형이 선고됐고 항소심에서도 1심판결이 인정돼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에 유학중인 알자브리의 아들 중 1명은 보스턴의 로건국제공항에서 FBI로 부터 ‘사우디아라비아로 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가 보호해 주겠다’는 통보를 받고 충격에 휩싸였다. 또 알자브리는 자신의 친인척도 빈살만으로 부터 무자비한 박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빈살만과 알자브리의 왓츠앱 협상이 결렬된 직후인 2017년 9월 26일 아랍에미레이트공화국의 수도인 두바이에서 친척이 납치돼 사우디아라비아로 압송됐다. 중동의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남의 나라 수도에서 납치를 감행한 것이다. 이때 납치된 사람은 알자브리의 큰 사위로 알려졌고, 모진 고문을 당하다 2018년 1월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한 채 석방됐다. 또 2020년 5월에는 알 자브리의 친형이 리야드에서 복면괴한에 납치됐고, 2020년 6월에는 알자브리의 조카가 납치되는 등 친인척 40여명이 억류되는 등 위해가 가해졌다. 빈살만은 이처럼 물리적 위협을 가하는 한편 법적인 조치도 강구하는 등 치밀한 작전으로 알자브리를 압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우디아라비아 검찰은 지난 2017년 9월말 부정축재 혐의 등으로 알자브리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한 뒤, 이를 활용해 2018년 1월 9일 인터폴에 적색수배자로 등재, 알자브리가 캐나다에서 다른 나라로 도피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 알자브리의 반격도 만만치 않아서 미국 CIA등 정보기관의 협조를 받아 인터폴에 적색수배의 부당성을 지적, 2018년 7월 20일자로 적색수배가 해제된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결정적 위협은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먈 카슈끄지를 ‘회를 뜨다시피’ 해부하고 머리만 들고 유유히 사라진 이른바 ‘타이거암살단’의 등장이다. 지난 2018년 10월 2일 민원서류를 발급받기 위해 터키의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을 방문한 캬슈끄지는 아름다운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살해된 사실이 녹음테이프를 통해 드러났다. 바로 이 같은 암살을 실행한 집단이 빈살만 왕세자가 지휘하는 ‘타이거암살단’이라는 사실도 미국은 물론 UN의 조사보고서를 통해 밝혀졌다.
‘자말 캬슈끄지처럼 회 쳐서 죽일 것’ 경고
바로 이 타이거암살단이 캬슈끄지 살해 보름만인 10월 15일 캐나다의 온타리오 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려다 입국심사관에 의해 저지됐다. 타이거암살단 10여명은 2-3명씩 분산해 관광비자로 입국하려 했으나, 입국심사관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데다, 이들이 범죄감식장비 등을 휴대한 사실이 발각돼, 전원 입국을 거부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이들이 입국했다면 ‘전 세계 어디에 숨더라도 반드시 찾아내 처리한다’는 빈살만의 협박이 실현됐을 가능성이 크고, 제2의 캬슈끄지 사건이 됐을 것이다. 특히 사우디판 김형욱 사건은 미국연방법원에 빈살만 측과 알자브리가 여러 소송을 제기하면서 재판을 통해 공개된 자료를 통해 많은 비밀이 드러나고 있다. 선제공격을 취한 측은 알자비리로, 지난해 8월 6일 워싱턴 DC 연방법원에 빈살만 왕세자와 측근 등을 상대로 암살시도 등의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빈살만 왕세자 등은 소송제기 약 2개월만인 10월 8일 답변서를 통해 빈살만은 외국주권면제법에 따라 소송대상이 될 수 없다며 기각을 요청한 상황이다.
알 자브리 측이 미국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자, 빈살만 측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를 동원, 지난 1월 21일 캐나다 온타리오지방법원에 ‘알자브리 및 일가를 상대로 횡령한 돈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매사추세츠 주 서폭카운티법원에도 동일한 소송을 제기했다. 그 뒤 이 소송은 알자브리의 요청으로 3월 29일 메사추세츠연방법원으로 이관됐다. 또 빈살만은 지난 4월 21일에는 뉴욕남부연방법원에 HSBC은행을 상대로 알자브리일가의 은행계좌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하는 등 양 측의 소송도 봇물을 이루고 있고 사우디아라비아 궁중의 비밀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주목할 점은 빈살만왕세자가 알자브리 전 정보부장이 천문학적 액수의 부정축재를 했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빈살만왕세자 측은 캐나다 온타리오지방법원 및 미국 매사추세츠 주 서폭카운티지방법원, 매사추세츠 연방법원등에서 알자브리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정부재산을 무려 34억 7천만 달러, 한화 약 3조 5천억 원에 달하는 돈을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액수이며 세계최대 산유국답게 클라스가 다르다. 빈살만왕세자 측은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사카브홀딩스를 앞세워 제기한 소송에서 알자브리가 사우디아라비아내 부동산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과 캐나다, 스위스, 오스트리아, 영국 등에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와 브리티시버진아일랜드 등의 은행들에 수백 개의 예금계좌를 가지고 있다며 그 목록을 제시했다.
왕세자 측은 이 같은 주장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세계적 회계법인인 딜로이트를 고용해 조사를 시키는 등 치밀한 준비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알자브리를 일방적으로 몰아세우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납득할 만한 방식을 취한 셈이다. 딜로이트는 지난 2019년 12월 1차 조사보고서를 통해 알자브리가 국부펀드 등에서 최소 26억 달러를 횡령했다고 밝힌데 이어 2020년 12월 18일 2차 보고서를 통해 추가로 4억 8천만 달러 횡령을 적발했다고 공개하는 등 횡령액수를 최소 34억 7천만 달러로 못 박았다. 딜로이트는 알자브리의 사우디아라비아내 부동산이 최소 26건 이상으로 이중 대부분을 이미 자녀들에게 증여했고, 미국에 9개의 부동산, 캐나다에 2개의 부동산 등이 있고, 캐나다의 큐파이브, 그리폰시큐어 등의 주식, 브리티시버진아일랜드의 드림스 인터내셔널, 사우디의 자아릭주식회사 등을 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빈살만왕세자 측은 빈나예프왕세자를 추출한 직후인 2017년 8월 역시 세계적 회계법인인 언스트앤영을 고용, 국부펀드의 자산 가치를 평가하게 했고, 같은 해 9월 25일 알자브리의 횡령에 대한 보고서 초안을 근거로, 사우디검찰이 알자브리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리고 2017년 11월 부패척결위원회를 설치하고 스스로 위원장이 된 뒤 알자브리의 전 재산을 동결했다.
귀국 거부하자 35억 달러 부정축재자로 몰아
이에 대해 알자브리는 지난 6월 30일 자신의 장남을 통해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서 자신의 재산이 3억 8500만 달러라고 밝혔다. 이는 빈살만왕세자 측이 주장하는 횡령액 35억 달러의 약 10분의 1에 불과한 것이다. 알자브리는 이 서류에서 ‘아버지는 왕족에 대한 충성으로 훈장을 받았으며, 2015년 1470만 달러 상당의 금품을 하사받았다. 그리고 빈나예프 왕세자로 부터도 금품을 하사받는 등 합법적으로 재산을 모았으며, 이를 투자해서 돈을 모았을 뿐 국부를 횡령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또 캐나다의 부동산은 모두 2개로, 1개는 2018년 2월 28일 1300만 캐나다달러, 1개는 446만 5천 캐나다달러에 매입했으며, 미국 보스턴의 부동산과 워싱턴DC의 부동산에 대한 월 임대수입이 7만 1500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패트릭 레이, 마르코 루비오, 팀 케인, 크리스 밴 홀렌 등 연방상원의원 4명은 지난해 7월초 트럼프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억류된 알자브리의 자녀 2명의 안전에 우려를 표하고 미국정부가 이들의 구출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들 상원의원은 1년이 지나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지난 7월 28일 바이든대통령에게 같은 내용의 서한을 보내 ‘알자브리는 미국인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한 사람’이라며, 자녀들의 안전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특히 패트릭 레이는 민주당출신이며, 마르코 루비오는 공화당출신으로, 연방상원 정보위원회 공화당 간사를 맡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여야의 거물급인사들이 알자브리 구명에 나선 셈이어서 바이든 행정부 또한 이 같은 요구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방상원의원들이 두 번째 알자브리 살리기에 나선지 약 엿새만에 바이든 행정부가 손발을 걷어붙이고 이판사판 구명에 나섰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3일 매사추세츠 연방법원에 ‘소송이 진행돼 정보가 공개되면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해가 될 수 있음은 합리적으로 추정이 가능하다’며 사우디아리비아 국부펀드 대 알자브리 전정보부장의 재판에 적극적으로 개입, 재판 진행을 일시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다. 연방법무부는 알자브리가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해 매우 민감한 국가정보를 폭로하거나 정보소스 등을 공개할 수 있으며 이는 미국 등 자유진영에 위해가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알 자브리는 미국정보기관과 협조, 수백 명에서 추천명의 미국인 생명을 구한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미국정부는 이 서류에서 첫째, 미국정부의 개입요청은 시의적절한 것이며 둘째, 미국정부는 이 소송과 직접적인 법적 이해관계가 있으며, 셋째, 미국정부는 잘못된 궐석개입에 따른 이익을 보호하고, 넷째, 현재 당사자들은 미국정부의 이해관계를 적절하게 대변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흡사 사우디 판 김형욱사건…미국이 보호
‘사우디판 김형욱’ 알자브리 사우디아라비아 전 정보부장, 끊임없는 생명의 위험으로, 그가 캐나다에 체류 중이라는 사실만 알려졌을 뿐, 현재 어디에 은신해 있는지는 베일에 쌓여있다. 24시간 경호를 받는 상태에서 재판에도 일체 나타나지 않고 그의 자녀가 소송을 대리하고 있다. 또 그의 주군이었던 빈나에프 왕세자도 가택연금 돼 있다가 지난해 3월 전격 체포된 뒤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김형욱과 다른 점이 있다면 김형욱은 3자녀를 모두 무사히 미국으로 도피시킨 반면, 알자브리는 8명의 자녀 중 2명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억류됐다는 점이다.
또 미국정부가 알자브리 신변보호가 미국국익에 부합한다며 적극적으로 구명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전직 CIA 고위간부들도 전문가[EXPERT] 자격으로 재판부에 알자브리를 옹호하는 객관적인 증거 등을 제시하고 있다. 궁중쿠테타로 사촌형을 몰아내고 전권을 장악한 35세 빈살만 왕세자의 거침없는 진격, 미국 중요정보 소스를 공개할 수도 있다며 자신의 보호를 요청한 알자브리 전 정보부장, 두 사람의 대결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리얼버라이어티쇼를 방불케 한다. 과연 알자브리도 김형욱처럼 생사도 알 수 없는 불귀의 객이 될 것인가, 아니면 이후 락처럼 신변안전을 보호받고 안락한 노후를 누리게 될 것인가? ‘식자우환’인가 아니면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인가, 그 생생한 드라마가 바로 미국법정에서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