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에서도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언론 재갈물리기 악법
명예훼손죄 형사처벌
세계 유일국가 오명도 모자라…
지난해 추석 때 나훈아는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라는 신곡 ‘테스형’을 불러 중장년층은 물론이고, 2049세대 젊은 층에게 충격을 안겨주며,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나훈아의 ‘테스형’의 노래가 그리워진다. 그 ‘테스형’이라는 소크라테스가 남겼다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다시 회자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지금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하지 않았 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지만, 하여간 지금 한국에서 여권인 더불어민주 당이 만지작 거리고 있는 소위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국내는 물론 미국을 비롯 전세계 언론 기관 단체 학자들이 한국 여권을 “뭣도 모른다”며 되받아치면서 비난과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그런데도 여당을 대표하는 송영길 의원은 외국의 우정 어린 충고에 “뭣도 모른다”고 막말을 쏟아 내어 한국 정치인의 무지함을 그대로 표출했다.
문재인은 뭣이 그렇게 두려울까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기자협회 창립 57주년 축하 메시지에서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둥’ 이라며 ‘언론이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한 언론 자유는 누구도 흔들 수 없다’고 강조했으나 최근 여당에서 강제로 추진하려는 언론 중재법 개정안을 보면 대통령의 언론관은 구름잡기 식이다. 이같은 언론 중재법 개정안은 야당을 비롯한 정치권 뿐만 아니라 여당내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으며 언론 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단체와 학계 등도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여러 독소조항으로 개정 안의 위헌성을 제기하며 폐기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여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악법으로 비판을 받는 것은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독소조항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는 언론의 고의 또는 중과실로 인한 허위, 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액의 최대 5배라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다. 현행법에서는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에 대해 민법상 손해배상과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이 가능한데, 이에 더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과도하고 중복된 규제로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 무엇보다도 과연 허위나 조작 보도의 정의나 기준이 분명하지도 않고 명확하지 않으며, 해석에 따라 언론 보도를 봉쇄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소송을 청구해 언론의 비판 기능을 무력화할 가능 성도 크다는 것이다. 또한, 법원의 판례를 보면 취재, 보도에서 위법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공익을 위한 것이라면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런데 위법행위로만 고의, 중과실을 추정하는 것은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을 지우는 우리 법체계와도 맞지 않아서 문제가 있다. 법을 제정하거나 시행할 때는 분명하고 객관적으로 명확해야 한다. 애매모호한 것을 법으로 제정 하게 되면 기준이 되지 못해 법안 판결이나 해석에 오류가 따르게 된다.
특히 개정안에는 보도가 진실하지 않거나 사생활의 핵심 영역을 침해했을 때 기사의 삭제를 청구 할 수 있는 기사 열람차단 청구권도 있다. 그런데 보도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명확 하지 않으며, 사생활의 핵심 영역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이렇게 요건이 명확하지 않으면 자의적 해석이 가능해 오,남용될 위험성이 크다. 역사적으로 보면 권위주의적 정권은 예외 없이 언론의 자유를 규제하고 통제했다. 과거 우리도 그랬다. 현 여당이 야당이었을 때 강하게 주장했던 게 언론 자유의 최대한 보장이었고, 강하게 비판했던 게 정권에 의한 언론의 재갈 물림이었다. 그런데 이제 여당이 되고 보니 언론의 자유가 그렇게 보장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김정은 정권보다 못한 언론 자유 규제
“악법도 법”이라던 소크라테스의 유언도 이미 역사적 유물이 된 지 오래다. 오늘날 법치국가인 헌법국가에서 ‘악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 헌법이 국회에 입법권을 준 것은 이를 멋대로 행사 하라는 게 아니다.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국민의 의사를 살피고 헌법이 요구하는 원칙을 준수하며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따라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악법으로 규정해 철회시켜야 한다. 언론의 자유는 인간의 존엄과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기본권이다. 언론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하며, 그 제한은 가능한 한 공동체의 자율적 조정 기능에 맡겨야 한다. 현대 문명국가에서 악법은 결코 법이 아니다. 최근 국경없는기자회(RSF)와 세계신문협회(WAN), 세계언론인협회(IPI), 국제기자연맹(IFJ), 서울 외신 기자협회 등 국제 언론 단체들은 한국의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이 언론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 가 크다며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을 잇따라 냈다. 또, 프랑스 일간 르몽드와 일본 아사히, 마이니치 신문 등 해외 언론들도 이 법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된다며 비판에 동참했다.
특히 미 외교안보 전문지 ‘디플로맷’은 지난달 26일 언론중재법을 다루는 기사에서 “한국은 전통 의 대형 언론사들을 표적 삼아 ‘가짜 뉴스’법을 이용하는 유일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일 것”이 라고 했다. 언론자유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 전제 중 하나인데, 언론 자유를 권위주의 국가의 독재 정권 에서나 행할 법한 방법으로 억누르려는 한국 집권 세력의 모습에 국제사회는 한국이 과연 민주 주의를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나라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댄 큐비스케 미국기자협회(SPJ) 국제커뮤니티 공동의장은 지난29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이건 정말 심각한 사안이다.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는(world shattering) 일”이라고 말했다. 1909년 설립된 미국기자협회는 미국의 가장 오래된 기자 단체이며, 국제커뮤니티는 해외 언론 자유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그는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국제 언론 감시 기구들의 비판에 “뭣도 모르면서”라고 한 데 대해 “한국의 상황을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을 억압하기 위해 설계된 법안들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 이 법안은 딱 그렇게 생겼다”고 말했다. 댄 큐비스케는 “그들(한국의 집권 세력)은 이 법이 ‘반언론법’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언론이 더 정직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직한 언론에 반대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문제는 (법안의) 모호함에 있다”면서 “그들이 ‘가짜 뉴스’라거나 ‘조작됐다’고 할 때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다는 사실 이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판사만 잘 만나면 그들은 자기들이 좋아하지 않는 무엇이든 다 ‘가짜 뉴스’ ‘조작된 뉴스’라고 결정할 수 있다. 그러고선 ‘이 언론사는 유죄 판결을 받았으니 믿을 수 없다’고 낙인찍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의 사례가 다른 전 세계 권위주의 정권 또는 비민주주의 세력에 언론 탄압의 근거와 선례 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이나 서유럽이나 어느 대륙의 민주주의 국가에도 이런 법 은 없다. 한국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이런 종류의 법을 제정하는 최초의 국가가 될 것” 이라 며 “이는 비슷한 일을 하고 싶어하는 많은 다른 나라에 문을 열어줄 것이다. 필리핀도, 폴란드와 헝가리도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인데 이런 법을 하지 않느냐’고 따라 할 것”이라고도 했다.
허위 가짜 뉴스 빙자한 언론탄압 폭거
미국 미디어법 권위자인 론넬 앤더슨 존스 유타대 로스쿨 교수도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모호한 잣대의 법을 가지고 정부와 권력을 감시하는 언론을 무너뜨릴 정도의 위협을 가하는 것은 사회적 공론의 장 자체를 닫아버리겠다는 협박으로 민주주의에 큰 해악”이라고 말했다. 존스 교수는 오하이오 지역 신문 기자를 하다 로스쿨에 진학,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미 수정헌법 1조와 언론 관련법을 연구한 학자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미국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예로 들며 ‘우리도 늦었지만 따라 하자’는 논리로 언론중재법을 추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게 사실이냐?” 며 “그건 대기업 이야기다. 알고도 해악을 일부러 끼치는 ‘실제적 악의’를 입증해야 하는데 충족 하기 어려운 기준이라 적용되는 일이 드물다. 미국에서 언론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은 거의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에선 수정헌법 1조에 따라 언론 자유를 막는 법을 제정할 수 없고,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매우 어렵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가짜 뉴스’ 라며 공격했지만, 차마 이런 법을 추진하는 건 꿈도 못 꿨다”고도 했다.
존스는 “미 헌법 정신은 ‘설사 그것이 거짓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표현을 벌하는 행위는 공익과 관련된 중요한 언론 보도를 옥죄고 언론의 자기 검열이라는 해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으 므로 금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뱅상 페레뉴 세계신문협회(WAN-IFRA) 최고경영자(CEO)는 26일 동아일보-채널A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뭣도 모르니까” 발언에 대해 “언론 전문가들을 과소 평가했다고 지적했다. 지난25일 송 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비판한 국경 없는 기자회(RSF) 성명을 두고 “자기 들이 우리 사정을 어떻게 알겠느냐. 뭣도 모르니까”라고 말했다. 페레뉴 CEO는 “송 대표는 우리들이 관여한 많은 보고서 등을 읽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규제하려는 ‘허위정보 확산’의 위기는 한국만이 겪는 게 아니라 전 세계 에 닥친 공통된 문제이고, 세계의 여러 언론단체들이 이를 함께 연구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 하고 있다면 나올 수 없는 발언이라는 것이다. 그는 “바라건대 이런 보기 드문 맥락과 한국의 입법 전통을 벗어난 상황에서 여당이 법안을 통과 시키려 하는 것이 (한국이) 국제적 파트너들 사이에서 갖고 있는 명성에 손상을 입히고 있다는 점을 이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뭣도 모르는 소리” 개정안 비호
앞서 세드리크 알비아니 RSF(국경없는 기자회) 동아시아국장도 25일 동앙일보와의 화상 인터뷰 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선도적인 민주 국가 중 하나”라며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례를 만들어 다른 나라에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페레뉴 CEO는 법안 내용과 관련해서는 “정부와 기업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게 투명성과 책임 을 부과하는 저널리즘의 주요한 가치를 훼손한다”고 비판했다. 페레뉴 CEO는 한국의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해 가장 우려하는 부분으로 법안이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고 의견 수렴이 부족했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개정안이 서둘러 마련됐다는 것과 반박 논의의 부재는 이 법안을 만든 사람들의 숨은 의도를 의심할 여지없이 보여준다”고 했다. 한국의 언론중재법과 비슷한 규제 절차를 다른 국가에서도 봤지만,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전문가 와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긴 논의 끝에 대개 수정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페레뉴 CEO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에 들어갈 경우 한국 언론의 자기 검열이 강화될 가능성도 우려했다. “과도한 규제는 기자들로 하여금 자기 검열을 하도록 만드는데, 이는 열린 사회의 민주주의 체제에 극도로 해롭다”고 강조했다. 또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송이 넘쳐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고, 내년 3월에 있을 대선을 앞두고는 언론을 통한 이슈 공론화를 제한 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기자협회의 국제커뮤니티 담당인 댄 큐비스케 공동의장도 앞서 본보에 “이런 종류의 법은 기자들에게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든다”고 밝힌 바 있다. 1948년 설립된 세계신문협회는 세계 최대 규모의 언론 단체로 각국 3000여 개 언론사와 1만 8000여 개 매체를 회원으로 두고 있다. 앞서 12일 세계신문협회는 ‘전 세계 언론이 ‘가짜 뉴스법’과 싸우고 있는 한국의 언론과 함께 나서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언론중재법 개정안 철회를 촉구 한 바 있다. 성명은 개정안 처리 절차를 중단하라고 한국 정부와 여당에 촉구하며 한국의 언론단체 들과 연대해 이들의 노력에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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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훈클럽 성명서 전문
표현의 자유 옥죄는
반헌법적 과잉 입법
한국의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은 1957년 창립 이래 정치 현안에 대한 공식 의견 표명을 자제해왔다. 언론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가치 수호를 위해서다. 그러나 최근 여당이 추진 중인 언론 중재법 개정안 등은 우리 사회 저널리즘의 미래와 국민의 알 권리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다음과 같이 의견을 밝힌다.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헌법 제21조에 보장된 언론·출판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 할 수 있으며,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할 소지가 크다. 개정안은 헌법 상 보장된 권리를 법률로 제약 하려 할 때 반드시 지켜야 할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으며, 중대한 입법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민주적 의견 수렴과 공론화 과정을 제대로 밟지 않았다. 더구나 대통령 임기 말과 선거를 앞둔 시점에 여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하려는 것은 언론의 권력 비판 기능을 위축시키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자초하는 일이어서 시기적으로도 적절치 않다. 가짜뉴스가 기승을 부릴수록 감추어진 진실을 추적하고 팩트를 확인하는 정통언론의 가치와 역할은 더욱 절실해진다.
그런데 여당의 개정안은 오히려 탐사 보도, 추적 보도, 후보 검증 같은 정통언론의 진실 탐구 보도 기능을 위축시킬 소지가 크다. 징벌적 손해배상, 입증책임 피고에 전가, 명예훼손 위법성 조각 사유 무력화 같은 독소 조항들이 현업 언론인들로 하여금 감추어져 있는 진실을 파헤치는 부담스런 작업을 기피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정권과 정치인, 고위 관료, 재력가 등 힘 있는 이들을 상대로 한 언론의 감시 기능이 약화되면 이는 사회 전반의 불의와 부패를 부추겨 결국 국민 모두의 피해로 돌아올 것이다. 과거 군사독재 시대에 언론의 편집권과 언론인의 자율성을 유린한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우리 언론인들은 반 헌법적 과잉 입법이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질곡이 또다시 되풀이되는 것을 방관 하지 않을 것이다.
2021년 8월 2일 관 훈 클 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