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색행각 레전드 국정원장의 정신 나간 정치공작
새파란 젊은 여자와
도대체 무슨 짓거리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사주 의혹’으로 호재를 맞았던 여당이 난데없는 박지원 국정원장의 등장으로 인해 입장이 난처해 졌다. 개 버릇 남 못 준다는 속담이 떠오르듯 박 원장은 자신의 동선을 철저하게 숨겨야 하는 정보기관 수장 자리를 망각한 듯 수십 년 아래 여성과 최고급 호텔 식당에서 만나 희희낙락 식사를 하는 등의 황당무계한 행각을 벌인 사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 여당 입장에서는 가장 강력한 상대 대선 후보를 일거에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음에도 자신의 부적절한 행각으로 인해 오히려 역풍을 맞고 있는 신세가 됐다. 박 원장은 최근 본국에서 불거졌던 수산물 업자의 로비 리스트에도 이름이 등장했고, 지난 7월에는 사위가 마약을 밀수입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북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장에 임명했는데, 그런 그의 돌출행동들이 오히려 현 정부에게 X맨과 같은 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장 청문회장에 나왔을 때 초미의 관심사였던 건은 그가 뉴욕교포 시절 영화배우 최정민과의 염문설, 또 그를 죽이려 했다는 청부 사주설 등의 진실이 드러날지 여부였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영화배우 최정민 씨는 당시 청문회야 말로 그가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박지원과의 관계, 그 과정에서 있었던 억울함을 외부에 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이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 바 있다.
박 원장이 미국에서 가발장사를 할 때 교제했던 것으로 알려진 최 씨는 박 원장이 한국에 들어와 정치를 시작할 때 역시 한국에 와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한 바 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최 씨는 박 원장 관련 의혹에 침묵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사건의 진실은 드러나지 않은 채 박 원장은 국가 정보기관 최고 수장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박 원장은 국정원장 답지 않게 틈만 나면 언론에 등장해 국정원 직원들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있다. 특히 과거 숱한 염문설을 뿌린 당사자답게 이번에는 조성은 이라는 새파랗게 젊은 여성과의 수상한 만남으로 인해 대선판에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조성은은 누구?
박 원장이 만났다는 조성은이란 인물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조성은은 정치권 밑바닥에서는 제법 알려진 여성 정치인이다. 그는 지난 총선에서 브랜드뉴파티란 당을 만들어 국회 입성을 준비하기도 했다. 빨간색 벤츠, 마세라티 등을 갈아타며 부를 과시하는 등 다른 정치인들과는 다른 특이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정치권에서 멀어지게 된 것은 다름 아닌 당원 명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이후다. 1988년 대구에서 태어난 조 씨는 연세대학교 법학·생물학 학사를 취득한 뒤 정치권에 뛰어들었다. 정치 DNA를 물려준 건 부친 조현국 변호사다. 17대 총선에 경북 구미갑 지역구에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한 인물이다. 조 씨가 정치권에 뛰어든 건 2014년 지방선거 때다. 천정배 전 의원이 조 씨를 영입했고, 조 씨는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2016년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 간판을 교체한 뒤 친문과 비문 사이 계파 갈등으로 홍역을 앓았다.
결국 분당 사태를 맞이했다. 조 씨를 영입한 천 전 의원은 탈당한 뒤 국민회의를 창당했다. 이때 조 씨도 국민회의에 입당했다. 정치 인생 첫 번째 이적이었다. 국민회의는 이후 국민의당과 합당했다. 2021년 현 시점 존재하는 국민의당과는 그 궤가 다른 정당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비롯해 비문계 민주 인사들이 힘을 합쳤다. 조 씨는 국민의당에 합류해 20대 총선 공천관리위원으로 활동했다. 국민의당에서 조 씨와 박지원 국정원장은 한솥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러던 2018년 국민의당도 분당의 위기를 맞았다. 2018년 2월 박지원 국정원장을 필두로 호남 지역구 의원들이 국민의당을 나와 민주평화당을 창당했다. 조 씨는 박 원장과 함께 민주평화당으로 적을 옮겼다. 민주평화당에서 조 씨는 부대변인 직을 맡았다.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조 씨는 박 원장과 소셜미디어 포스트에 댓글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과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 씨는 2019년 6월 9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김일성 역시 독립운동에 관한 한 민족 결속을 위한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승만 만큼, 혹은 어떤 면에선 이승만보다 월등한 부분도 있었다고 평가한다.
이것 가지고 나를 빨갱이 어쩌고 하면 모자란 인간일 것”이라고 밝혀 논란 중심에 선 바 있다. 조 씨는 21대 총선을 앞두고는 자체적으로 창당을 준비했다. 브랜드뉴파티였다. 청년 정당을 표방한 브랜드뉴파티는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했지만 창당엔 실패했다. 창당에 실패한 브랜드뉴파티는 세 불리기에 나선 미래통합당 눈에 띄었다. 2020년 5월 정치권에선 그가 창당한 브랜드뉴파티 가짜 당원 명부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브랜드뉴파티 당원 명단에 대구·경북 지역 월남전 참전 유공자 1122명이 포함돼 있었다.
해당 명단엔 사망자도 포함돼 있었다. 이른바 거짓 창당 의혹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조 씨는 제도권 정치에서 멀어졌다가 최근 언론매체 뉴스버스에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로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여기까지가 34세 청년 정치인 조 씨의 이력이다. 조 씨가 거쳤던 정당만 나열해도 새정치민주연합, 더불어민주당, 국민회의, 국민의당, 민주평화당, 브랜드뉴파티(창당준비위원회),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8개다. 소속 정당 변천사를 살펴보면 이력 자체가 좌충우돌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두 사람 만남 왜?
조 씨는 지난 2016년 국민의당에 입당하면서 박 원장과의 인연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조 씨는 정치 행보에 있어 언제나 박 원장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이며 박지원의 ‘정치적 수양딸’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고발 사주 의혹 보도에 앞서서도 조 씨가 박 원장과 만난 것으로 밝혀지면서 두 사람이 함께 제보를 공모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사실 박 원장과의 만남 자체를 조 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지 않았으면 여기까지 사건이 번지지 않았을 텐데 유력 인사와의 만남을 훈장처럼 여기는 조 씨의 행동 때문에 박 원장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조 씨가 박 원장과 만난 후 남긴 페이스북 글을 보면 도대체 80세를 바라보는 노인이 50살 아래 여성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조 씨는 지난 2월 15일 페이스북에 “설이라며 뵙고 어제 다섯 시간 넘게 나눴던 말씀이 생각나서 엄청 웃었네. 머리 꼭대기에 계시던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씨는 타인의 말을 전하듯 ‘언더바’(_) 기호를 넣어 “나는 별말 안 했다, 다 공개하면 딴 건 모르겠고 이혼할 사람들 많을 거다, 고만 전하라 했다”, “날던 새가 떨어지던 시절을 넘어 내가 걸어가도 새가 안날 기는 하던데”라고 적었다. 올해 2월은 ‘국가정보원 불법사찰’ 논란으로 여야가 격돌하던 시기다. 당시 박 원장은 국회 정보위에 출석해 비공개 회의를 진행했다. 야권에서는 당시 조 씨가 박 원장을 만나 5시간 동안 관련 대화를 나눴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조 씨가 언급한 “공개하면 이혼할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문장도 의혹을 부추기는 대목이다. 두 사람의 관계를 저격한 하태경 의원은 “(공개하면 이혼한 사람이 많을 것)이란 말은 올 2월 쯤 국회 정보위에서 비공개로 한 말”이라며 “역대 정부들의 국정원이 정치인 불법 사찰을 했는데 그 내용들이 공개되면 이혼할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는 “박 원장의 표현이 워낙 하드코어라서 당시 정보위가 끝난 뒤 이 내용은 브리핑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며 “그런데 비슷한 시기 조성은 페이스북에 똑같은 내용이 있다. 박 원장에게 듣지 않았으면 쓰지 못할 내용”이라고 했다. 이런 여러가지 정황들은 고발사주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살 길을 내어준 셈이 됐다.
반대로 여당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를 국정원장의 행태로 날려먹은 셈이다. 국민의힘은 ‘박지원-조성은’ 관계를 연결고리로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박 원장이 고발사주 의혹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을 토대로 ‘제보사주 의혹’을 띄우고, 한 발 나아가 ‘국가기밀 유출 가능성’까지 제기해 국면 전환을 꾀하는 모양새다. 정치권은 야당이 ‘윤석열’에 대응하는 인물로 ‘박지원’을 상정하고 고발 사주 의혹의 본질을 여권의 정치공작으로 규정해 정국을 돌파하는 전략을 시행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국정원장의 국가기밀 유출 의혹이 확전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리스크’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