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대표부측, 외국주권면제법 대상이므로
운전기사소송 성립 안 된다고?
유엔한국대표부에 5년간 운전기사로 근무했던 행정직원이 사직과 동시에 외교관등의 비리를 폭로하며 임금관련소송을 제기한 것과 관련, 유엔대표부측은 지난달 말‘유엔은 외교공관으로서 외국주권면제법에 해당되므로 미국연방법원이 재판관할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엔대표부측은 ‘유엔과 원고 측은 이미 1년 전인 9월에 올해 6월 30일부로 고용관계가 종료되며, 민형사상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며 합의서를 증거로 제출했다. 유엔 측은 정식답변서 제출에 앞서 지난달 27일, 재판부에 ‘재판 전 회의’를 요청, 재판부로 부터 이에 대한 승인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아예 재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유엔대표부 측의 주장을 재판부가 검토하겠다는 것으로, 유엔대표부 측이 기선을 제압한 것으로 풀이된다. 어찌된 영문인지 전후사정 관계를 짚어 보았다.
<안치용 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유엔대표부 행정직원의 노동법 소송과 관련, 답변시한연기를 요청했던 유엔대표부 측은 지난달 30일 답변서를 제출하고 소송기각을 요청했다. 유엔 측은 (첫째) 유엔한국대표부는 외국주권면제법에 의해 소송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 (둘째) 원고는 외교활동을 지원하는 운전기사로, 상업적 활동이 아니므로 외국주권면제법상 소송대상 제외요건에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 (셋째) 원고는 유엔 측과 고용종료합의서를 작성했다는 점 등을 기각요청사유로 내세웠다. 유엔대표부는 기각요청서에서 ‘유엔대표부는 한국정부기관의 구성체로서 1991년 9월 유엔에 가입한 이래 외교특권을 누리고 있다. 즉 외교공관은 외국주권면제법에 따라 미국법원의 재판관할권에 속하지 않는다. 유엔대표부가 외국주권 면제 법에 해당된다는 사실은 다툼의 여지가 없다.
‘재외공관 행정직원 규정에 따른 것’ 주장
특히 원고가 외국주권면제법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면, 이에 대한 입증책임 또한 원고에게 있으므로 이를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유엔대표부 측은 불법 해고됐다는 원고의 주장에 대해서도 “원고는 외교공관의 행정직원으로서 한국 외교부의 ‘재외공관 행정직원규정’에 따라야 한다”고 밝히고 ‘이 규정에 따르면 행정직원은 직급 등에 관계없이 60세에 정년퇴직을 하며, 유엔대표부는 연방 및 주정부의 세금부과대상에서 제외되는 기관이므로, 남씨에게 W2등을 발행하지 않고 현금으로 임금을 지불한 것은 미국정부에 규정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엔대표부는 ‘외교공관의 상업적 행위는 외국주권면제법의 예외사항이지만, 원고 남씨는 한국정부에 고용된 직원으로서, 지난 2020년 6월 60세 정년에 달해서 퇴직할 때까지 운전기사로 근무했으므로 상업적 행위를 한 것이 아니다.
원고는 외교공관 본연의 임무인 외교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운전임무에 종사했으므로 외국주권면제법 예외사항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엔대표부는 원고인 남씨와 고용인인 유엔대표부 조진호공사가 이미 지난해 9월 1일 고용종료합의서를 체결했다며, 이 합의서를 증거로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합의서에 따르면 ‘현지고용원의 고용관계가 2021년 6월 30일부로 종료된다는 것에 대해 차후에 민형사상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합의했기에 합의서를 제출한다’고 기재돼 있다, 이 합의서 작성일자는 2020년 9월 1일로, 남씨 및 조공사가 각각 서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원고도 자신의 정년인 올해 6월 30일 퇴직한다는 사실을 이미 9개월 전 알고 있었으며, 이를 받아들이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고 인정한 셈이다. 즉 이 합의서로 원고의 소송 이유가 상당부분 사라지는 셈이다. 또 소송피고 중 한명인 유엔대표부 조진호공사 역시 자술서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조 공사는 자술서에서 ‘나는 이 소송사안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고용종료합의서를 보관하고 있다.
한국 외교부의 재외공관 행정직원 규정 영문번역본 및 고용종료합의서를 제출한다. 유엔 측은 관련규정에 의해 원고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려 하고 있지만, 원고는 이를 받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엔대표부 행정책임자인 유병석씨 역시 자술서를 제출했다. 유 실장은 자술서에서 ‘유엔대표부 및 조현대사, 조진호, 정대영 공사 등에 대한 소송은 외국주권면제 법에 의해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병석씨는 또 ‘한국의 재외공관 행정직원 규정의 제10조 고용계약, 제58조 사직, 제62조 정년, 제64조 위로금등의 조항이 있으며, 유엔대표부는 이를 준수했고, 원고 또한 이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병석씨는 이 규정을 낱낱이 영어로 번역했으며, 행정직원의 정년은 60세이며, 사직은 자진 사퇴, 사망, 정년, 고용 계약 만료, 해고 등 5가지 사유로 성립되며, 1년 이상 근무했을 경우 1년당 30일의 임금을 위로금으로 지급한다’고 밝혔다. 즉 원고 남씨가 60세를 넘겨 퇴직한 것은 이 규정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유 씨는 또 유엔대표부도 외교부의 재외공관 행정직원 규정을 따라 자체규정을 제정, 운영하고 있으며, 남씨에 대한 제반 행정처리는 이 규정을 따랐다고 강조했다.
10월초 국회외통위 유엔감사 ‘관심 집중’
이외에도 유엔대표부는 또 미국무부가 지난 2002년 6월 12일 발급한 ‘유엔대표부는 연방정부 및 주정부등 지방정부의 세금부과대상이 아니다’라는 증서도 증거로 제출했다. 즉 유엔대표부는 W-2등 고용인의 임금관련 세금서류를 발급하지 않으며, 명세서 없이 현금으로 지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유엔대표부는 지난 7월 20일 원고 남씨가 소송을 제기하자, 지난 8월 20일에 답변서 제출기간을 40일 뒤인 9월 30일로 연장해 달라고 요청, 이를 허용 받은 뒤 기각요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유엔 측은 이 기각요청서에 앞서, 사흘 전인 지난 9월 27일 재판부에 재판 전 회의를 개최해 달라고 요구했고 재판부는 9월 29일자로 ‘오는 10월 15일 오후 3시 15분 재판 전 회의를 개최한다’고 명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재판부가 일단 유엔 측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유엔 측이 기선을 제압한 셈이다. 유엔 측은 재판 전 회의 요청서에서 ‘유엔 측은 원고 측 변호사에게 외국주권면제법에 따라 유엔은 소송대상이 아니며, 유사사건의 판례를 모두 설명하며, 소송철회를 요구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재판부가 재판 진행에 앞서 양 측의 입장을 듣고, 유엔 측 주장이 합리적이면 이를 조기 기각해 달라’고 요구했다.
유엔 측은 과연 재판의 실익이 있는지, 기각 요건이 확실해 실익이 없다면, 사법권 낭비를 막기 위해서라도 무분별한 소송을 막아달라’고 강조했다. 즉 유엔 측은 9월 27일 재판 전 회의를 요청, 승인을 받은 데 이어, 9월 30일 기각요청서를 제출하는 등 2가지 서류를 연달아 제시했고, 오는 15일 재판 전 회의에 총력을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고 측 또한 고위외교관들의 비리 의혹까지 폭로하는 등 만만치 않은 준비 끝에 소송을 제기한 만큼 소송이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러설 수 없는 승부를 준비 중인 셈이다. 그러나 뉴욕남부연방법원, 나아가 제2연방항소법원은 외교공관의 상업적 행위를 매우 제한적으로 판단하고, 대부분의 유사한 소송이 기각됐음을 감안하면 이 소송도 기각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 판단이다. 또 2010년대 중반 뉴욕에서 근무하던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 직원이 정년퇴직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이 기관 또한 한국정부 산하기관으로서 외국주권면제 법 적용대상임이 입증됨에 따라 소송이 기각된 것 또한 기각가능성을 보여준다. 한편 이 사안은 올해 유엔대표부 국정감사에서 뜨거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된다. 국회 외교통상위는 지난해에 코로나19로 중단했던 현지 감사를 올해 재개하기로 하고,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3개 반을 편성, 미국과 유럽지역에 대한 현지감사에 나선다. 특히 외통위 미주반은 이광재 외교위원장을 반장으로, 김영호, 윤건영, 박진, 태영호, 김홍걸 등 6명의 위원이 편성됐으며, 뉴욕의 유엔대표부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즉 이번 국정감사에서 소송을 통해 고위외교관의 비리를 폭로한 이번 사건에 대해 여야의원들이 어떤 입장을 표명할 지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