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에 수면제 먹이고 일가족 탈북한 양강도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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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1

북 김정은 대노 ‘심각한 군민관계 훼손행위’

“억만금 들여서라도 꼭 잡아라”

중국과 접경지역인 북한 양강도 근처 마을에서 최근 일가족 4명이 북한군 감시조에게 수면제를 먹인 다음 강을 건너 탈북했다. 이에 이례적으로 김정은이 직접 나서서“억만금 들여서라도 잡아라”라는‘1호 방침’이 떨어지면서 지금 북중 국경 지역의 분위기는 더 흉흉해졌다고 한다.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는 일가족 4명이 지난 1일 새벽 국경 경비에 빈틈이 생긴 순간을 노려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향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번 탈북사건과 관련“인민이 군인에 약을 먹이고 도망쳤다는 것은 심각한 군민관계 훼손 행위로, 국경 군민의 사상을 전면 검토하라”는 지시를 하달해 당분간 압록강을 건너 탈북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김현철 취재부 기자>

탈북한 일가족의 집에는 평소 국경경비대원들이 자주 드나들었는데, 이들은 그중 유독 친하게 지내던 국경경비대 부분대장(하사)이 근무하는 날을 노렸다. 미리 수면제를 섞은 탄산음료와 빵을 준비해둔 일가족은 1일 새벽 해당 부분대장에게 음식을 건넸다. 그와 함께 경계 근무를 서는 하급 병사까지 챙기는 척하면서 탄산음료와 빵을 하나씩 더 챙겨주기도 했다. 이 가족은 국경경비 대원들이 잠이 든 틈을 타 별 탈 없이 강을 건넜다. 그간 밀수로 생계를 이어온 가족이었기에 중국으로 통하는 길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한다. 국경경비대는 이들의 탈북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고, 즉각 중앙 국가보위성까지 보고됐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2일 “억만금을 들여서라도 민족반역자를 무조건 잡아와 본보기로 강하게 처벌 하라”는 내용의 1호 방침이 떨어졌다. 또 “인민이 군인에 약을 먹이고 도망쳤다는 것은 심각한 군민관계 훼손 행위로, 국경 군민의 사상을 전면 검토하라”는 지시도 담겼다고 한다.

김정은, 탈북자 대대적 강경책 지시

북한탈북한 일가족이 건넨 음식을 먹고 잠이 든 부분대장은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이들이었고, 일가친척 중에 도주자도,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없는 소위 ‘혁명적인’ 집안의 주민들이었다”고 진술했다. 다만 가족들은 최근 국경 지역에 장벽과 고압선이 설치되자 “앞으로 밀수를 못 하게 되면 희망이 없다. 밀수를 못 하면 사람처럼 못 산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보위성은 중국 내 보위성 요원들에게 체포 임무를 내리고 중국 공안 등에도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접경 마을에 내려와 군인들이 어떤 주민의 집에 자주 드나드는지 등을 조사 하고 있다. 매체는 “이 사건이 양강도 전체에 다 소문으로 퍼졌다”며 “이 일로 국경 지역의 분위기 는 더 흉흉해졌다”고 소식통의 말을 전했다. 한편, 김정은이 최근 전국노병대회 연설에서 “사상 초유의 세계적인 보건 위기와 장기적인 봉쇄로 인한 곤란과 애로는 전쟁 상황에 못지않은 시련의 고비”라고 말했다고 노동신문이 보도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고강도 대북 제재 영향이 ‘전쟁의 시련’에 버금간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경제난 고통을 강도 높게 토로한 것은 이례적이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청와대를 향해 ‘더 이상 상종 않겠다’며 막말을 퍼붓던 김정은이 남북 통신선 복원 등 문재인 대통령 제안에 호응하고 나온 이유가 바로 이것일 것”이라고 했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한의 경제 상황은 주민들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처럼 식량을 위해 집기를 내다 팔아야 할 정도로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식량 생산이 감소하고, 코로나 봉쇄로 수입도 금지되면서 올해 봄부터 비축 식량이 고갈됐다. 일부 지역에선 식량 가격이 코로나 봉쇄 이전보다 두배 가까이 올랐다고 한다.

여기에 외환 통제와 국경 봉쇄로 달러와 위안화 가격이 하락하고 북한 원화 가격이 두배로 상승한 것도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외화 가치가 하락하면 물가도 같이 떨어져야 하는데 북한에선 반대의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며 “주민들의 구매력이 떨어져 더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북한은 또 공영 시장 운영 시간을 제한하고, 골목 장사를 단속하는 등 시장을 억제 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대북 소식통은 “각종 검열대 완장을 찬 무리들이 시장과 거리, 골목과 농촌까지 활개치고 있다”고 했다.

윤엔 안보리, 북한 인권 감시 활동 촉구

다만 북한은 남북 통신선 복원 소식을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주민들이 보는 대내 매체 에는 보도하지 않았다. 김정은이 여러 차례 ‘한류 접촉 시 강력 처벌’을 경고한 상황에서 남측에 손을 내미는 모습이 알려질 경우 역효과를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국제인권연맹(FIDH), 세계기독교연대(CSW) 등 전 세계 40개 인권 분야 비정부기구(NGO)가 193개 유엔 회원국들에 서한을 보내 “북한과의 양자·다자 관계에서 안보와 인권을 주요 의제로 함께 다뤄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단체들은 북한의 노동당 창당 76주년(10일)을 맞아 발송한 서한에서 “단순히 안보에 초점을 맞추거나 정치적 대화를 반복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미국의소리(VOA)방송이 10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비핵화 논의에 치우친 기존의 대북 접근법의 한계를 지적하며 북한의 열악한 인권 문제를 정면 제기할 것을 촉구한 것이다. 이번 서한 발송에 뜻을 함께한 단체는 서방뿐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전 세계에 걸쳐 300여 곳에 달한다. 1922년 설립된 FIDH에만 192개 단체가 회원으로 있다. 이들은 이번 서한에서 “북한 주민들은 1945년 노동당 창당 이후 김씨 일가의 잔혹한 통치 아래 고통받고 있다”며 “북한의 지독한 인권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책임은 지도자 김정은과 노동당에 있다”고 했다. 이어 “북한 정권은 주민들이 굶주리는 상황에서도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계속 개발하는 등 주민들의 기본권을 묵살한 채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만 혈안이 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들은 특히 북한이 작년 말 한류 등 외부 문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 제정한 반동사상문화 배격법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서한은 “김정은은 지난 4월 젊은이들 사이에 외국의 말투와 머리 모양, 복장이 유행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며 “북한 당국이 이를 행동으로 옮기면 가뜩이나 취약한 주민들의 사생활 권리가 더욱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했다. 유엔 안보리에도 북한 인권을 논의할 정기 회의 개최, 북한 인권 상황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추가적인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북한 인권 감시 활동 등을 촉구했다. 이 단체들의 주장은 대외 정책에서 인권을 중시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 기조와도 궤를 같이 한다. 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행정부는 이미 대중 정책에서 홍콩과 신장·위구르 등 인권 문제를 적극 제기하고 있다”며 “대북 정책에서도 한국·일본의 납북자, 정치범 수용소 등의 인권 이슈를 건드릴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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