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박정희 핵무기개발 최초보고자 CIA로리스 ‘회고록 출판 허가해 달라’ 소송 낸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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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핵무기 사냥 50년’속에 무슨 내용이 들어 있기에…

그 속엔 ‘박정희 핵무기개발’ 실체가

박정희 정권의 핵무기 개발을 사전 탐지, 이를 포기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리처드 로리스 전 국방부 동아태차관보가 미국정부가 북핵문제를 주제로 한 자신의 회고록을 승인해주지 않는다며 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리처드 로리스는 CIA요원으로 15년간 활동하다 민간 기업에서 15년간 일한 뒤 다시 국방부 차관보로 영입돼 북핵 6자회담을 주도한 인물이지만 ‘황금백합작전’으로 알려진 부산 문현동 일본군 금괴찾기프로젝트에도 깊숙이 관여한 인물이다. 본보가 입수한 로리스의 ‘일본군금괴찾기’ 비밀합의서에는 CIA 정보원논란에 휩싸였던 백성학 영안모자 회장, 배영준 씨 등도 연관된 것으로 드러났다. 로리스의 회고록 소송 전말과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로리스의 ‘금괴찾기’ 흔적을 살펴본다. <안치용 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윗부분CIA 한국지부장으로 잘 알려진 피어드 실바, 도널드 그래그 등과 함께 CIA한국요원으로 잘 알려진 또 하나의 인물 리처드 로리스, 역사의 장막 뒤로 사라진 것으로 보였던 로리스가 다시 뉴스의 초점으로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리처드 로리스 전 국방부 동아태담당 부차관보가 지난 10월 28일 워싱턴 DC연방법원에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로리스는 국방부가 자신의 회고록에 대한 출판 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며 손해 배상을 요구했다. 로리스가 출판하려는 회고록의 제목은 ‘핵무기 사냥 50년’으로, 주로 북한의 핵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밝혔지만, 그의 경력 상 한국 정부의 핵무기 개발이 언급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방부가 회고록 출판허가 미루는 이유

로리스는 소송장에서 ‘나는 1972년부터 1987년까지 CIA작전관으로 일했고, 2002년부터 2007년까지 국방부의 동아태차관보로 일했다’고 밝히고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의 책임자로서의 활동, 그리고 한미 양국의 노력 등을 담은 책을 출판하려고 준비했지만, 국방부가 출판허가를 미루고 있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로리스는 ‘9개월간 회고록 원고를 정리한 뒤 지난해 10월 CIA의 출판물사전검토위원회에 심사를 의뢰했고, CIA는 책 내용 중 5백군데 정도를 기밀등과 관련한 사항이라며 삭제를 요청, 나는 이를 전부 수용했다’고 밝혔다. 또 ‘CIA는 지난 6월 21일 사전검토를 모두 마쳤다고 통보했지만, 최종 승인은 해주지 않고, 다시 국방부에 재검토를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국방부는 지난 7월 27일 국방부 승인 전까지 출판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고, 로리스가 변호인을 고용, 국방부에 신속한 승인을 요청하자 지난 8월 5일 국방부는 ‘언제 검토가 끝나고 출판허가가 승인될 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고 통보했다.

▲ 리처드 로리스 전 국방부 동아태차관보는 지난 10월 28일 국방부를 상대로 출판물 승인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 리처드 로리스 전 국방부 동아태차관보는 지난 10월 28일 국방부를 상대로 출판물 승인 지연에 따른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또 국방부는 지난 10월 25일 ‘출판허가에 앞으로 수개월은 더 걸릴 것’이라고 통보하자 로리스가 사흘 뒤인 28일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리처드 로리스는 소송에서 본인이 언급한 것처럼, 북핵문제 전문가로 알려져 있지만, 또 하나, CIA를 그만둔 뒤 한국 등 동아시아에서 민간 기업을 운영하며 한국에서 일본군 보물찾기인 ‘황금백합작전’등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은퇴한 정보요원의 일본군 황금찾기’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스토리의 주인공인 것이다. ‘황금백합작전’은 1945년 5월 일본군 대본영이 하달한 작전으로, 중국전역에서 황금과 보물을 약탈하라는 명령을 의미한다. 다큐멘터리 작가인 정충제씨는 이 사건을 추적하다 이 막대한 양의 금이 부산시 남구 문현동 1219번지 바닷가 지하에 건설된 비밀군사 시설인 어뢰공장에 숨겨졌고, 일본군은 패망 뒤 어뢰공장 입구를 폭파, 봉쇄하고 철수했다고 주장했다.

정씨는 일본이 패망 전 중국에서 수탈한 화차 14량의 금괴 470톤, 금동불상 36좌와 국보급 문화재를 잠수함을 이용, 부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가져가려다 미 해군에 의해 해상항로가 봉쇄당하자 문현동 지하 어뢰공장에 숨겼다는 것이다. 특히 어뢰공장에 접근할 수 있는 토지는 1945년 7월 3일, 패망직전 조선통독부 소유로 바뀐 것도 황금동굴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동굴의 존재는 이 작전을 지휘했던 일본군 중좌 미하라 도시오가 양자였던 조선인 군납업자 최종욱에게 어뢰공장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세상에 알려졌고, 이 지도를 근거로 42년 만인 1987년 ‘효자동 이발사’라는 영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발사 박수웅 씨와 교사 출신인 다큐멘터리 작가 정충제씨에 의해 보물탐사가 시작됐다. 박씨는 10여 년간 지하 수직굴을 파다가 실패했고, 정씨가 2002년 3월 2일 지하 16미터 아래에서 수평굴을 찾아냈다.

부산 문현동 일본군금괴찾기 당사자

▲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이 라이스 전 국무장관에게 보낸 추천서에는 로리스의 이력서가 첨부돼 있으며, 이 이력서에는 로리스가 1987년부터 2002년까지 유에스아시아의 대표를 역임했다고 돼 있다. 정충제 - 로리스의 비밀합의서에는 로리스가 유에스 아시아의 대표로 기재돼 있어, 이 합의서당사자인 로리스가 CIA요원이자 국방부 차관보인 로리스와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 럼스펠드 전 국방장관이 라이스 전 국무장관에게 보낸 추천서에는 로리스의 이력서가 첨부돼 있으며, 이 이력서에는 로리스가 1987년부터 2002년까지 유에스아시아의 대표를 역임했다고 돼 있다. 정충제 – 로리스의 비밀합의서에는 로리스가 유에스 아시아의 대표로 기재돼 있어, 이 합의서당사자인 로리스가 CIA요원이자 국방부 차관보인 로리스와 동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정씨는 일본군 대본영이 황금백합작전을 지시했다는 사실은 CIA가 미 국방성 자료실에서 찾아냈고, 수평굴 관통 뒤 수중카메라로 굴속을 촬영한 결과 일제가 숨긴 보물로 추정되는 황색포대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고 주장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CIA요원이자, 미 국방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로 활동했던 리처드 로리스가 개입했음이 본보가 확보한 두 장짜리 문서를 통해 드러난다.

정충제씨와 CIA요원 리처드 로리스, 그리고 CIA 정보원으로 알려진 배영준 씨 등 3명은 지난 1999년 11월 29일 이른바 ‘비밀합의’라는 계약을 체결했고, 영안모자 소유주로서 CIA정보원 논란을 낳았던 백성학 씨도 증인으로서 비밀합의서에 서명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비밀합의’에 따르면 계약당사자는 파트A가 정충제, 파트 B는 배영준과 리처드 로리스로 돼 있고 리처드 로리스는 한국소재 유에스아시아라는 기업의 대표라고 명시돼 있다.

이들 3명은 ‘부산의 전 일본군사기지에 대한 공동발굴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상호 문서상 동의 없이 이를 제 3자에게 공개하지 않는다’고 합의했다. 특히 정충제씨가 배영준 및 리처드 로리스에게 알려준 전 일본군사기지에 대한 구두 및 문서에 의한 정보를 일체 공개하지 않으며, 정씨가 수년에 걸쳐서 밝혀낸 비밀정보를 보호하는 데 합의했다.

또 이 합의서 체결 뒤 30일간 정씨는 제 3자들에게 이 프로젝트 참여를 권유하지 않고, 이 합의와 유사한 합의를 체결하지 않으며, 당사자들은 합의서체결 30일 이내에 50대 50의 주식 비율로 유한회사를 설립한다고 규정돼 있다. 합의기간은 상호서면 합의로 연장되지 않으면 1999년 12월 31일부로 만료되며 배영준과 로리스는 정씨로 부터 제공받은 모든 문서 등을 반환해야 한다고 합의했다. 이 합의는 정충제, 배영준, 로리스가 서명했으며, 백성학도 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30일내 회사를 설립하지 못했기 때문인지, 12월 17일 재합의를 통해 ‘30일’로 규정된 부분을 ‘60일’로 연장한다는 수정합의를 하고 역시 관련인물들이 모두 서명한 것으로 밝혀졌다.

▲ 수중동굴에서 발견된 한주소금 30킬로그램 포대

▲ 수중동굴에서 발견된 한주소금 30킬로그램 포대

특히 로리스가 CIA측에 영향력을 행사, ‘황금백합작전’ 비밀문서를 발굴한 것은 물론, CIA 비밀장비를 부산으로 공수해 금괴가 매장된 것으로 알려진 문현동 수중동굴을 찾아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또 일부에서는 정씨가 2002년 수중 동굴을 찾아냈을 때는 일본어가 쓰인 황색포대만 발견됐고, 로리스가 1999년 말 비밀합의로 정씨의 정보를 얻은 뒤 2000년-2001년 CIA 비밀장비로 수중동굴을 먼저 발견, 금괴를 가져갔다는 소문도 나도는 등 숱한 말들이 마치 전설처럼 떠돌고 있다.

한편, 이 수중동굴이 이미 발굴됐다는 사실도 구체적 정황과 함께 확인되고 있다. 지난 2003년 10월 2일 이 수중동굴을 탐사한 신모씨는 수중탐사결과 확인서에서 ‘동굴 속에서 1994년 및 1996년 생산된 것으로 확인된 PVC 파이프 및 1993년 생산된 한주소금 30킬로그램용 포대가 대거 발견됐고, 지름 3센티미터, 길이 30센터미터정도의 쇠막대기와 수많은 천공자국이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누군가가 1993년부터 2003년 이전 이 수중동굴을 발굴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금괴매장 수중동굴탐사 사실도 드러나

또 정씨의 주장처럼 효자동이발사 박수웅 씨가 이 일대에 수중동굴탐사를 했다는 사실도 입증됐다. 매장물 발굴현장 원상복구 완료보고 복명서에 따르면 박수웅 씨가 1997년 1월 16일부터 1998년 1월 15일까지 1년간 매장물 발굴허가를 받아 부산 남구 문현동 1210-5번지 일대에서 발굴을 했으며 2005년 4월 15일 원상복구 여부를 검토한 결과 굴착부분을 콘크리트로 포장, 원상복구를 완료했다’고 적고 있다. 정씨 이전에 박수웅 씨가 같은 장소에서 보물찾기에 나서는 등 문현동 보물은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비밀합의’에 등장하는 리처드 로리스가 CIA요원으로 재직했던 그 사람일까, 본보가 로리스의 이력서등을 확인한 결과 로리스는 1972년부터 1987년까지 CIA요원으로 재직한 뒤, 1987년부터 2002년까지 ‘유에스아시아 커머셜디벨럽먼트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를 설립, 대표이사를 맡은 것으로 확인됐다.
로리스
이 회사는 워싱턴 DC에 본사를 두고, 서울과 동경, 대만에 사무소를 둔 회사로 동아시아의 정보통신사업 투자 등을 하는 민간 기업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에 대해 일부에서는 CIA의 프론트컴퍼니, 즉 위장회사라는 설과 거꾸로 CIA와 관계없는 회사지만, 로리스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CIA위장회사라는 인식을 풍겼다는 등 상반된 설이 존재한다.

어쨌든 비밀 합의서에 기재된 유에스아시아 리처드 로리스가 전 CIA요원 리처드 로리스와 동일 인물임은 틀림없는 것이다. 바로 이 이력서는 포드 및 부시대통령시절 등 두번이나 국방장관을 역임한 도널드 럼스펠드 가 지난 2005년 4월 8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 첨부돼 있는 문서라서 그 어느 이력서보다 신빙성이 있다. 럼스펠드장관은 이 서한에서 ‘리처드 로리스 국방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아프카니스탄 주재 미국대사로 추천한다. 로리스는 내 부하로 일할때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장관이 로리스를 한번 만나보면 매우 유익할 것이다’라며, 로리스의 이력서를 첨부한 것이다. 로리스는 군사위성 및 핵무기 전문가로서, 지난 1970년대 박정희 전대통령의 핵무기 개발을 탐지, 저지한 장본인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리처드 로리스의 보고를 토대로 1975년 2월 28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보고된 비밀문서 -박정희 정권이 핵무기 개발의 초기단계에 진입했으며, 미국은 이를 저지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리처드 로리스의 보고를 토대로 1975년 2월 28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보고된 비밀문서 -박정희 정권이 핵무기 개발의 초기단계에 진입했으며, 미국은 이를 저지시켜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 보고된 1975년 2월 28일자 2페이지 분량의 비밀문서, ‘한국정부가 핵무기 개발의 초기단계에 진입했다’는 이 보고서는 박정희 정권의 핵무기개발을 단정적으로 언급한 최초의 미국정부 문서이며, 바로 이 문서 작성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이 당시 한국주재 CIA요원 로리스였다.

로리스는 ‘한국 핵무기 개발여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뒤 불과 3개월도 안 돼 핵무기개발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한국인으로 부터 이를 입증할 비밀문서를 입수했다’고 밝히기도 했었다. 당시는 포드대통령 집권기로, 국방부장관은 도널드 럼스펠드, 럼스펠드는 이 전문을 받은 뒤 한국을 방문, 박정희 대통령은 만나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한미관계 전체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그 뒤에도 박정희 정권의 핵개발노력은 계속됐지만, 로리스의 보고서로 인해 결정적 타격을 받았고, 결국 1979년 10월 박대통령 시해 뒤 전두환 정권은 핵개발 노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만다. 한때 한국인 여성과 결혼하기도 했으며 맥주에 위스키나 소주를 곁들인 폭탄주를 즐겼다는 로리스, 과연 그의 회고록에 박정희 시대의 핵개발 비밀이 포함될지 주목된다. 하지만 더욱 궁금한 것은 일본군 황금을 찾았는지 여부다. 로리스의 회고록은 이 부분에 대한 사실관계도 담아야만 진솔한 회고록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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