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단독입수공개] 美연구소 ‘고엽제관련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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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칠곡 캠프캐롤 고엽제 무단매입 의혹 보고서

‘미8군 고엽제 무단매립 없었다’

고엽제경상북도 칠곡의 캠프캐롤 고엽제 무단매입 의혹과 관련, 2011년 11월 미8군이 민간연구소에 의뢰해 관련 문서 등을 조사한 결과. ‘캠프캐롤에 고엽제를 매립한 사실이 없다’는 보고서가 제출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미8군은 당시 진상조사단을 구성, 캠프캐롤에 고엽제를 매립한 사실이 없다는 결론만 발표했을 뿐 보고서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본보가 입수한 이 보고서에 따르면 미8군은 1968년 전후 고엽제 관련 문서를 샅샅이 뒤졌고, 한국에 공급된 고엽제는 모두 살포돼 잔여물량이 없었기 때문에 매립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결론을 얻은 것으로 밝혀졌다. 본지가 입수한 ‘1968년 한국비무장지대 전술적 제초제살포프로젝트에 대한 역사적 고찰’ 보고서를 중심으로 어찌된 전후사정인지 전후사정을 짚어 보았다. <안치용 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지난 2011년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고엽제 파동, 한국에 주둔했던 미군의 구체적 증언이 이어지면서 주한미군기지에 고엽제가 불법 매립됐다는 의혹이 제기됐었다. 미군기지 자체가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금단의 땅이었기 때문에 이 같은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 수 밖에 없었고, 급기야 한국정부와 미국은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조사에 나섰고, 6개월 이상의 조사 끝에 고엽제 매립 등은 사실무근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었다.

▲ 오크릿지연구소는 이 보고서에서 ‘국립문서보관소등에 대한 조사결과 1968년 한국비무장 지대에 살포된 고엽제는 베트남에서 조달돼 한국 1군사령부 예하장병들에 의해 살포됐고, 1968년 모두 살포됐기 때문에 캠프캐롤로 옮겨져 매립되거나 비무장지대 이외지역에 살포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 오크릿지연구소는 이 보고서에서 ‘국립문서보관소등에 대한 조사결과 1968년 한국비무장 지대에 살포된 고엽제는 베트남에서 조달돼 한국 1군사령부 예하장병들에 의해 살포됐고, 1968년 모두 살포됐기 때문에 캠프캐롤로 옮겨져 매립되거나 비무장지대 이외지역에 살포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바로 이 고엽제 매립의혹의 중심에 섰던 경상북도 칠곡의 미군기지 캠프캐롤은 기지 내 일부지역을 포크레인으로 파헤치면서 매립여부를 조사했지만 드럼통 등 고엽제 흔적은 없었다. 당시 미8군은 진상조사결과 매립은 없었다고 발표했고, 본보는 이 당시 미8군에 보고된 민간연구소의 보고서를 입수했다. 즉 고립제 매립 사실무근 발표의 근거가 된 보고서를 본보가 입수한 것이다.

베트남 공수 고엽제 DMZ모두 살포

‘1968년 한국비무장지대 전술적 제초제살포프로젝트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라는 이 보고서는 테네시 주 오크릿지소재, 오크릿지과학교육연구소가 지난 2011년 11월 30일 미8군사령관에게 제출한 것으로 25페이지 분량이다. 오크릿지과학연구소는 2011년 7월 미8군의 의뢰를 받아 약 4개월간 국방부 문서 등을 조사했다고 밝힌 뒤 명확한 결론을 제시했다. 이 연구소의 조사 결론은 ‘(고엽제인) 에이전트 오렌지가 캠프 캐롤로 보내지거나 매립된 사실은 없으며, 한국에서는 1968년 비무장지대 이외의 지역에 고엽제가 살포된 사실이 없다’였다. 미군기지에 불법 매립된 고엽제가 없으며 한국고엽제 살포도 1968년 한해 뿐이었다는 것이다. 오크릿지과학교육연구소는 미8군문서는 물론, 미 국방부 본부, 월남주둔 미군사령부의 문서까지 모두 뒤져서 1968년 한국에 고엽제가 공급된 경위, 물량 등을 모두 규명했다, 한국에 대한 고엽제공급은 지난 1968년 2월 17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이날 미 육군참모총장은 공군군수사령부 및 베트남주둔 미군지원사령부를 경유, 베트남 탄손누트소재 1군수지원단에 고엽제공급을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전문은 ‘베트남 주둔 미군이 보유한 제초제 허브사이드블루 610드럼[1드럼은 55갤런], 허브사이드오렌지350드럼을 미육군에 공급하라. 육군은 1968년 3월 20일까지 한국에 도착할 수 있도록 수송수단 등을 준비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뒤 1968년 3월 12일 베트남주둔 미군지원사령부는 주한미8군에 고엽제 수송일정을 통보했다. 이 전문에 따르면 ‘허브사이드블루 610드럼, 허브사이드 오렌지 350드럼을 3월 9일 사이공에서 미군함정 조프린 빅토리호에 선적했으며, 3월 14일 사이공을 출발, 3월 20일 한국 인천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베트남 사이공에서 한국인천까지 운송하는데 약 7일이 걸리는 것이다.

▲ 오크릿지연구소는 이 보고서에서 ‘2011년 5월 주한미군출신 전역군인 3명이 아리조나 피닉스의 방송국과의 기자회견을 통해 1978년 에이전트 오렌지를 캠프캐롤에 참호를 파고 매립했다고 주장했으나, 유일하게 남아있는 문서는 1968년 5월부터 7월까지 비무장지대에만 살포됐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 오크릿지연구소는 이 보고서에서 ‘2011년 5월 주한미군출신 전역군인 3명이 아리조나 피닉스의 방송국과의 기자회견을 통해 1978년 에이전트 오렌지를 캠프캐롤에 참호를 파고 매립했다고 주장했으나, 유일하게 남아있는 문서는 1968년 5월부터 7월까지 비무장지대에만 살포됐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172명 조사결과 ‘고엽제 매립 전무’

그렇다면 이 같은 수송일정은 지켜졌을까, 오크릿지과학교육연구소가 공개한 또 다른 전문을 보면 고엽제 수송은 한 치의 차질도 없이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1968년 4월 10일 주한 미8군은 베트남주둔 미군지원사령부에 ‘물품인수’를 확인하는 전문을 보냈다. 미8군 사령부는 ‘1968년 3월 20일 오후 1시 에이전트블루 625드럼과 에이전트오렌지 380드럼 이 인천항에 도착했으며, 한트레일러에 48드럼씩 실려 운반됐다’고 통보했다.

또 베트남에서 에이전트 블루와 에이전트 오렌지가 도착한 날, 미국에서 모뉴론이라는 제초제도 한국에 도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초 선적보고서는 에이전트블루가 610드럼, 에이전트오렌지가 350드럼이었지만, 실제 도착보고서에는 에이전트블루가 625드럼, 에이전트오렌지가 380드럼으로, 선적물량과 하역물량이 차이가 나지만 이유는 알 수 없다는 것이 오크릿지의 조사 결론이었다.

그 뒤 고엽제 2종류와 모뉴론이 비무장지대에 도착한 것은 4월 10일이었으며, 모뉴론은 1968년 4월 15일부터 4월 28일까지, 에이전트 블루와 에이전트 오렌지는 5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 살포된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많이 살포된 제초제는 모뉴론으로 7800드럼, 18만 4백 킬로그램이 비무장지대 630헥타르에 살포된 것으로 조사됐다. 1헥타르당 285킬로그램이 뿌려졌다는 것이다, 또 관심의 초점이 되는 에이전트 오렌지는 380드럼, 7만9040리터가 2820헥타르에, 에이전트 블루는 625드럼, 13만리터가 4660헥타르에 살포된 것으로 확인됐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11리터에 디젤 190리터의 비율로 희석했고, 에이전트 블루는 11리터에 물 190리터의 비율로 희석해서 살포했다.

▲ 오크릿지연구소는 ‘에이전트오렌지와 에이전트블루는 미군함정 조플린 빅토리호에 실련 1968년 3월 14일 사이공을 출발, 1968년 3월 20일 오후 1시 인천항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 오크릿지연구소는 ‘에이전트오렌지와 에이전트블루는 미군함정 조플린 빅토리호에 실련 1968년 3월 14일 사이공을 출발, 1968년 3월 20일 오후 1시 인천항에 도착했다’고 밝혔다.

특히 고엽제 살포에는 한미합의에 따라 1군사령부소속 한국군 3345명이 동원됐으며, 미군은 이를 감독만 하고, 직접 살포작전에는 투입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군은 대신 M106 백팩 분무기 등만 공급했고 전적으로 한국군에게 살포를 맡긴 것이다. 2011년 고엽제파동당시 1968년뿐 아니라 1967년과 1969년에도 고엽제 살포의혹이 제기됐지만 1968년을 제외하고는 상업용 살충제가 살포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오크릿지과학교육연구소는 ‘1968년 7월 미국학계에서 베트남 살초제 살포에 따른 연구결과를 발표하면서 고엽제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1969년 4월 고엽제가 완전히 중단됐다’며 배경을 설명하고, 한국에서는 1968년 하반기에만 사용된 뒤 1969년에는 대체재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살충제-제초제 드럼통 매립‘ 오해한 듯

한국에 1969년에 고엽제가 살포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문서는 1969년 9월 20일 미 국방부 전문이다. 이 전문은 ‘토양오염경고에 따라 1969년 4월 15일부터 식물통제계획 지속을 위한 예산이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식물통제계획이란 비무장지대의 시야확보를 위해 수풀을 제거하는 계획으로, 1968년 고엽제 살포도 바로 이 계획에 의해 진행됐다. 하지만 1969년은 이 계획에 대한 예산자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69년에는 모뉴론 2천파이브드럼[1드럼당 110파운드]가 미8군에 제공돼 1600에이커에 살포된 것으로 확인됐고 에이전트 오렌지나, 에이전트 블루는 살포되지 않았다. 오크릿지과학교육연구소는 ‘당초 한국군과 미군은 8110헥타르에 살포할 계획이었으나, 한국군은 7330헥타르에 에이전트 오렌지와 에이전트 블루, 모뉴론을 전부 살포했고, 이에 따라 캠프캐롤에 보내진 에이전트 오렌지와 에이전트 블루가 없었다’고 밝혔다.

▲ 오크릿지연구소는 1969년 9월20일 미8군사령부가 태평양사령부에 보낸 전문에서 ‘1969년 4월 15일 식물통제계획 계속을 위해 배정된 예산이 없다’고 밝혔고 베트남사령부는 ‘미8군에 모뉴론 2800드럼만 제공한다’는 전문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 오크릿지연구소는 1969년 9월20일 미8군사령부가 태평양사령부에 보낸 전문에서 ‘1969년 4월 15일 식물통제계획 계속을 위해 배정된 예산이 없다’고 밝혔고 베트남사령부는 ‘미8군에 모뉴론 2800드럼만 제공한다’는 전문을 보냈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 고엽제를 담았던 드럼통은 한국군의 자산으로 분류됐기 때문에 한국군이 물 또는 디젤로 세척해서 재사용했고, 한국군이 이를 무단 폐기했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모뉴론 드럼은 한국군이 매립했으며, 빈 드럼통도 미8군의무대, 즉 캠프캐롤에 보내진 기록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주한미군기지에 고엽제가 매립된 사실이 없다는 것은 미 국방부의 고엽제 제거작전 문서에 의해서도 확인됐다.

미 국방부는 1971년 10월 13일 ‘베트남 및 남아시아지역의 에이전트 오렌지를 모두 존스턴섬으로 보내라’는 명령을 하달했으나, 한국에는 잔존물량이 전혀 없어서 이 명령에 해당사항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1968년 공급된 물량은 모두 살포하고 남은 물량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캠프캐롤에 고엽제가 매립된 사실이 없으며, 1968년 이외에 한국에 고엽제가 살포된 적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 보고서에는 미 국방부의 고엽제 관련문서 및 예하사령부간의 전문번호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으므로, 적어도 문서상으로는 이 결론에 신빙성이 있는 것이다.

고엽제2‘1968년 고엽제 1드럼살포’허위 주장

캠프캐롤 고엽제 매립의혹은 2011년 5월 주한미군기지에 근무했던 미군3명이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한 방송국에 제보를 한데서 비롯됐다. 로버트 트래비스, 스티브 하우스, 리처드 크래머는 ‘1978년 캠프캐롤에 도랑을 판 뒤 에이전트 오렌지드럼 55갤런 짜리 250여개를 매립했다. 이 매립작업에 동원되면서 에이전트 오렌지에 노출돼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 오크릿지연구소는 1969년 9월20일 미8군사령부가 태평양사령부에 보낸 전문에서 ‘196다.

▲ 오크릿지연구소는 1969년 9월20일 미8군사령부가 태평양사령부에 보낸 전문에서 ‘196다.

1명도 아닌 3명의 미군이 동일한 주장을 하면서 의혹이 증폭됐고, 조사가 시작됐지만 결론은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한국에 공급된 에이전트 오렌지 전체 물량도 최소 350드럼에서 최대 380드럼이므로, 250여 드럼이 불법 매립됐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이에 앞서 1999년 11월 23일 국회 국방위보고에서 국방부는 ‘1967년 10월 9일부터 10월 15일까지 미2사단과 보병 231사단이 에이전트 오렌지 55갤런과 모뉴론 1천 파운드를 살포했다. 에이전트 오렌지는 1968년에만 공급 살포됐고 미군은 오렌지살포에 동원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에이전트 오렌지가 1968년에만 살포됐다는 것은 오크릿지과학교육연구소의 결론과 동일했다, 하지만 에이전트 오렌지가 55갤런이 살포됐다는 것은 드럼통 1개 분량으로, 국방부 발표는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누가 봐도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한국국방부가 이 문제에 대해 수박겉핥기식으로 대응함으로써 문제를 키운 측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비무장지대 고엽제 및 살충제 살포작전은 유엔군사령부 협조 하에 한미양국의 승인을 받은 것으로, 1967년 9월 20일 한국 총리가 승인했으며, 1968년 1월 20일 유엔군 및 군사정전위원회가 북한에 정식으로 통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캠프캐롤 고엽제 매립의혹과 관련, 한미공동조사위원회도 최종발표를 통해 ‘캠프캐롤 근무자 172명을 면담한 결과 에이전트 오렌지가 아닌 살충제, 제초체, 솔벤트, 기타화학 물질들이 매립된 적이 있으며, 나중에 미국본토로 수송됐다는 증언은 확인했다’고 밝혔다. 캠프캐롤에 근무했던 미군 3명이 살충제 등의 매립을 고엽제로 잘못 알았을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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